이주일의 아티스트 - 브루스 스프링스틴
2002.09.16
조회 1559
<이 주일의 아티스트 >
BRUCE SPRINGSTEEN
그는 사실 미국의 영광을 노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조국인 미국을 조롱하는 방식으로
그만의 조국을 사랑하는 법을 노래했다.
바로 이것이 그가 미 노동계급에게 진한 감흥을 주고
그를 BOSS로 부르는 이유일게다
방송다시듣기
[9/16 선곡] GLORY DAY
[9/17 선곡] HUNGRY HEART
한주간동안 브루스 스프링스틴에 관한 많은 신청곡..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1949년 9월 23일 미국 뉴 저지에서 태어난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보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미국 록 음악계의 대부이다.
하지만 이처럼 미국 록 음악의 대표적 스타로 군림하는 그도
음악계에서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리기까지는
10여 년의 무명 생활이 필요했다.
1950년대의 록 사운드를 60년대의 시대 정신과 결부시켜
70년대 스타일로 빚어낸 그의 음악에 대해
비평가들은 미국 록 음악의 구세주라는 찬사를 퍼부었다.
물론 그의 음악이 미국에서 이런 대단한 반응을 얻었다는
얘기는 뒤집어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별로 인기가 없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나 어쨌든 그가 1975년 [Born To Run] 앨범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자 <타임>과 <뉴스위크> 등의 시사지는
이 현상을 커버 스토리로 다루는 등
그에 쏟아진 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앨범이 히트한 후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라이브 공연에서도 대단한 반응을 얻으며
라이브 공연장의 규모도 arena급으로 격상되었다.
10대 시절 로큰롤 음악에 경도된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196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스타일의 록 밴드에서 연주를 했고
1970년대 초에는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포크 가수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1972년 콜롬비아와 계약을 한 그는 고향인
뉴 저지 출신 뮤지션들을 주축으로 한 연주인들과
함께 녹음을 한 [Greetings From Asbury Park]를
1973년 1월 발매하는데 이 음반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채
실패작으로 끝났지만 4년 뒤 수록곡 중
Blinded By the Light을 맨프레드 어스 밴드가 리메이크해
차트 1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다음 앨범인 [The Wild, the Innocent and the E Street huffle]
는 1973년 9월 발매되었지만
이 역시 당시에는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는
참패를 겪었다
(하지만 이들 앨범은 그 이후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뒤늦게 평가를 받았다)
그 이듬해 그는 클라렌스 클레몬스등 모두 6명으로 구성된
자신의 백 밴드 이 스트리트 밴드를 다듬어
맹렬한 연주 활동에 들어갔고 <콜롬비아> 레이블에서의
세 번째 앨범 녹음작업도 병행했다.
우리 말에도 삼세판이란 말이 있듯이 두번의 실패를 겪은 후
1975년 8월 발매된 3집 [Born to Run]은 타이틀 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40위권에 올랐고 앨범은
10위권에 오르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탄탄대로를 달릴 것 같았던 그는 그러나 이후 몇 년 동안
매니저가 제기한 소송으로 인해 레코딩 작업을 할 수가 없었고
그 사이에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음악적 환경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가 인기를 얻었던 당시는 아트 록과 헤비 메탈,
그리고 소프트 록 등이 넘쳐나던 상황이었고 그런 환경에서
정통 록 사운드로 회귀한 음악을 들려주었던 그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는데 다시 앨범을 냈을 땐
이미 팝 음악계는 펑크/뉴 웨이브가 물결을 이루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그와 비슷한 음악을 했던 밥 시거 등의 유명세에
눌려 그는 이미 선구자의 대접을 받긴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4집인
[Darkness at the Edge of Town](1978년 6월)은
공장 노동자 등 소외된 계층을 팬들로 끌어들인
그의 음악적 영향력 아래서 전작에는 비록 못미치지만
그런대로 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고 이어진 더블 앨범
[The River(1980년 10월)]는 차트 1위에 올랐다.
싱글 차트에서도 Hungry Heart를
그의 생애 첫 톱 텐 히트곡으로 올리게 되었다.
그 후 [Nebraska](1982년 9월) 앨범을 통해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그는 마침내 1984년 6월 4일,
그의 최대의 역작이자 미국 역사상
최고의 록 앨범 중 하나로 평가받는 [Born in the U.S.A.]를
내놓게 된다. 무려 일곱 곡의 히트 싱글과 천 만 장이 넘게
팔린 앨범 판매고는 그를 미국 록의 대명사로 올려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986년 나온 [Bruce Springsteen & the E Street Band/Live 1975-85]역시 차트 1위에 올랐다.
그 후 첫 아내와의 이혼을 예고하듯
그는 다소 내면적인 성찰을 보여준 앨범
[Tunnel of Love](1987)를 냈고
1989년에는 그와 15년간이나 함께 했던 이 스트리트 밴드를
해체했다. 1992년의 [Human Touch]와 [Lucky Town]은 비교적
좋은 차트 성적을 내긴 했지만 예전의 영화를 재현하기엔
다소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 해 [MTV Unplugged] 실황을 녹음하기도 했다.
그 후 그가 다시 각광을 받은 것은 톰 행크스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영화 <필라델피아>의 사운드트랙 삽입곡
Streets of Philadelphia였다.
1994년 히트한 이 곡은 아카데미 최우수 노래 부문을
차지하기도 했고 이듬해의 그래미 역시 차지했다.
그의 밴드 the E Street Band를 다시 조직해 앨범을 냈고
이를 다시 히트시켰다. 1995년 어쿠스틱한 앨범
[The Ghost of Tom Joad]를 낸 그는 솔로 투어에 이어 박스
세트 앨범 발매와 라이브 등을 가졌고 2001년 3월
[Live In New York] 앨범을 발매,
최근 The Rising 앨범으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