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찾아올 수 있지만 소란스럽지 않는 곳.
레인보우 스트리트와 밤손님이 만나다. -CBS 김다은 프로듀서-
내가 기억하는 아련한 장면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내가 아직 한참 어릴 때, 유치원생 정도였을까. 저녁노을이 붉게 온 동네를 감싸 안을 무렵. 놀이터의 흙이 손톱 사이사이에 마른 김처럼 끼어 있고 입고 있는 옷도 진창이 되었을 무렵. 나는 주황색 빛이 골목 끝으로 수렴하는 먼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그 끝으로 친구들이 하나씩 뛰어나갔다. 마치 빛의 아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듯 그들은 자신들의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노릇노릇한 고등어가 올라온 식탁이 있는 곳으로, 왁자지껄한 일일드라마가 나오는 곳으로 뛰어가는 것이다. 아마 그날은 내가 그 놀이터에서 가장 오래 어머니를 기다린 날이리라.
그런 길들이 있다. 나만이 알고 있거나, 나만이 기억하는. 그래서 더 애틋하고 소중한 그런 곳. 그러니 오솔길이든 골목길이든 시멘트길이든 그저 다 ‘길’이라는 똑같은 이름 하나로 뭉쳐 말해버리긴 아쉽기도 하다.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하려는 ‘길’도 마찬가지다. 그냥 ‘어떤 무엇이 있고, 어디서든 볼 수 있는’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무엇보다 7명이나 되는 DJ들이 화분에 물을 주듯 소중하게 청취자들을 기다리고, 음악이라는 열매를 함께 맛보고 싶어 문을 활짝 열어놓은 곳이기 때문이다. 좋은 음악을 틀어놓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준비해 ‘밤의 손님’들을 기다리는 7개의 집. 그리고 그 집들이 모인 조그만 길. 누구나 찾아올 수 있지만 북적이진 않는 고즈넉한 곳. 그곳의 주소는 939번지이고 길의 이름은 <레인보우 스트리트>이다.
레인보우 스트리트는 매일 새벽 2시부터 4시에 찾아올 수 있다. 그러니 불면의 밤을 보내는 모든 이들에겐 이미 초대장이 발송된 것과 같다. 물론 ‘폭풍졸림’을 이겨낼 수 있는 용자(勇者)도 언제나 환영이다. 이쯤 되면 뭐 이리 설명이 장황하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CBS 음악FM, 939Mhz에서 매일 새벽 2시부터 4시에 만날 수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 레인보우 스트리트. 그리고 그 길을 지키는 7명의 파수꾼에 대하여.
월요일부터 수요일,
종횡무진 선곡과 날 것의 DJ를 만나는 시간.
어느덧 3달째다. 첫 방송은 5월 19일 2시에 시작됐다. 살짝 밝은 시그널 음악에 놀란 청취자들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원래 ‘길들임’의 시작은 ‘낯섦’에서 시작되는 법. 월요일의 문을 여는 DJ는 ‘올댓재즈’의 터줏대감 정우식PD다. 12시에서 2시까지 ‘올댓재즈’를 생방송으로 연출한 그는 속칭 ‘CBS의 쥬크박스’로 사내에서도 유명하다. 또 다른 별명을 짓자면 ‘음악 자판기’랄까.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음악이 나온다는 의미다. 음악만물박사의 위엄이다. SKA부터 90년대 Dance pop, Standard jazz까지 그가 소개하는 음악의 범위는 끝이 없다. 월요병의 증상이 서서히 몰려오는 새벽엔 그의 음악으로 ‘출근증후군 처방전’을 서둘러 받기를 권한다.
화요일 새벽을 책임지는 DJ는 아나운서 이지민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이지민.ttf’ 폰트로 만든다면 세로획에는 단호한 강단이, 하지만 획의 끝은 둥근 부드러움이 새겨져 있을 것 같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도 사랑스러운 눈으로 볼 줄 아는 그녀의 오프닝은 언제나 귀를 잡아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세련된 음악은 귀를 휘감는다. 화요일 밤은 감히 귀가 호강하는 밤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Electronic과 Hip-Hop까지 두루두루 넓게 음악을 듣는 그녀의 취향은 2시간 동안 청취자들을 지루할 새 없게 만든다.
수요일에 만나는 김다은DJ는 레인보우 스트리트에서 가장 연차가 어린 막내PD다. 하지만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후덕한 부장님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인지 종종 Oasis음악 뒤에 장사익이, Parov Stelar 음악 뒤에 김정미가 붙는 예상불가의 선곡을 한다. 자칫 막말을 연상케 하는 쿨한 언변으로 열대야에 뒤척이는 청취자들을 사로잡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조금 다른 의미지만 이미 방송 사고로 청취자들의 잠을 쫓은 적은 있다고 하니 김PD의 살신정신이 대단하다. 게다가 사연을 구걸하는 멘트에도 뻔뻔하다고 하는 후문이다.
목요일부터 일요일.
막강캐릭터 DJ들이 마음먹고 ‘좋은’음악을 튼다면?
목요일 밤은 순례 온 뮤지컬 팬들 덕에 유난히 북적이는 날이다. 김윤주 아나운서가 2부에 ‘뮤지컬 뚫는 여자’라는 코너로 다양한 뮤지컬 넘버들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평소 뮤지컬배우 뺨치게 뛰어난 미모와 몸매, 게다가 애교와 품위를 갖추어 뭇 남성청취자들을 설레게 했던 그녀. 그 자신도 뮤지컬 매니아라 그런지 직접 소개하는 뮤지컬 음악들이 유난히 더 특별하게 들린다. 그 새벽에도 문자폭주 현상을 일으키니 인기는 이미 증명된 셈이랄까. ‘국내최초 뮤지컬 음악방송!’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니 이렇게 슬쩍 자랑하며 금요일로 넘어간다.
레인보우 스트리트의 ‘불금’을 지키는 DJ는 ‘한밤의 음반가게’ 점원으로 친숙한 이지현PD다. 많은 청취자들에게 ‘북한 사람이거나 외국인일 것’이라는 추측을 자아내며 2년간 CBS음악FM의 밤을 지킨 이 남자. 들을수록 중독성 있는 말투는 그대로인데 여기에 기존보다 2시간 더 늦게 팬들을 만나게 된 것만큼 더 야(夜)한 선곡으로 청취자들을 즐겁게 한다. 유머는 간간히 분수처럼. 좋은 노래는 언제나 홍수처럼. 금요일 밤은 목마를 새가 없다.
토요일 밤은 한 때 CBS 대표 시사프로그램인 ‘김현정의 뉴스쇼’을 연출하며 상을 휩쓸던 서병석PD가 사수한다. 혹자는 ‘레인보우 시사쇼’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눈길을 보냈으나 평소 회사와 집에서 이중생활을 하며 락 스피릿을 고수해온 그에게 이것은 기우였다. 여기에 매일 아침 7시엔 ‘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을, 11시엔 ‘유지수의 영화음악’을 연출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는 서병석PD. 의외로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그는 푸딩, 루시드폴, 재주소년의 음악을 틀지만 가장 흥분할 때는 7,80년대 락음악을 소개할 때라는 청취소감도 있다.
일주일을 마무리 짓는 일요일의 DJ는 여미영PD다. 마치 여동생처럼 푸훗, 하면서 웃고 참새처럼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그녀의 진행은 일요일의 ‘쉼’과 닮았다. King of conveniece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할 때, 김추자 언니(!)의 신보를 소개할 때.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짜 좋아!”라는 외침이 자동탑재돼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다. 이 사랑스러움은 직접 들어봐야 안다. 음악을 첫사랑 그 남자처럼 사랑하고, 진심으로 설레며 좋은 곡을 소개해주는 그녀. 좋은 노래를 듣는 즐거움만큼이나 같은 음악팬으로서 더 없이 마음이 흐뭇하게 해주는 방송이다.
번지수는 939, 길을 잃으면 음악소리를 듣고 찾아오라.
새벽은 고독한 시간이다. 말소리보다 멜로디가, 열정보다 쉼이 그리운 시간이기도 하다. 아직 하루를 마무리 짓지 못한 이들이 깨어있는 새벽. 그렇게 잠들지 못한 이들을 위해 ‘레인보우 스트리트’는 언제나 문을 열어놓고 이들을 기다린다. 길 위에 선 DJ들은 말한다. “청취자들이각자가 자신들의 새벽을 즐기며 위로하고, 위로받을 때 우리 역시 음악으로 함께 있고 싶다”라고. 당신이 주파수만 돌리면 언제나 그곳엔, 그들이 있다.
매일 7명의 DJ가 각각의 색깔로 음악을 나누는 프로그램, CBS 음악FM ‘레인보우 스트리트’ 는 93.9Mhz로 방송된다. 매일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방송되며 CBS 홈페이지와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cbsrainbowstreet)을 통해 선곡표를 확인하고 소감을 올릴 수 있다. 또한 해당 방송에서 나온 음악을 각각의 게시판을 통해 유투브 재생목록으로도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