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똘망' <세바시> 무대에 서다 - "사람만 할 말 있나요? "
장주희
201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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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비밀의 연사는 누구일까?'
강연 당일. 아니, 5번째 연사가 무대에서 내려갈 때까지도 관객 중 누구도 이날의 마지막 강연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사회자 오종철씨 역시 '비밀의 연사'라고만 소개하고 무대를 내려갔다. 관객들은 긴장과 기대 속에서 '세상을 바꾸는 시간,15분(세바시)' 2월 정기강연회의 6번째 연사를 맞이했다. 무대 위 커튼이 올라가고 강연의 주인공이 저벅저벅 걸음을 옮기며 그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 곳곳에서는 감탄사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관객들이 일제히 휴대폰 카메라를 들어올려 사진을 찍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베일에 감춰졌던 세바시 강연자 X, 과연 누구였을까?

지난 1월, 800여명에 육박하는 관객들이 세바시 신년특집강연회를 찾았다. 강연장 내 좌석을 꽉 채운 건 물론이고, 무대의 단상 아래와 강연자가 오르는 무대 좌우까지 객석으로 만들어 버린 이날 강연은 말 그대로 강연방송의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 날이었다. 관객들의 이 같은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세바시 제작진이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히든카드를 펼쳐보인 날이 어제(2월 10일) 열린 정기강연회 현장이었다. 평소보다 더 큰 강연장에서, 평소보다 더 많은 관객과 함께 했던 이 날 강연은 <통찰의 기술>저자인 스핑클 대표 신병철, 캘리그라피스트 박병철을 비롯해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 휠체어 성악가 황영택, 지리산자연밥상의 고영문 대표가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만났다. 물론 이들과 함께 숨겨진 강연자 역시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날의 특별한 마지막 무대를 위해 세바시 제작진들은 강연 전부터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짱구, 아톰의 목소리로 유명한 성우 박영남씨가 CBS 스튜디오를 찾아 목소리를 녹음했고 리허설 당일에도 한국에서 손꼽히는 공학자들이 현장을 찾았다. 마지막 강연을 두고 세바시의 구범준 프로듀서는 "세계 최초"라는 설명을 붙였다. 5년 간 세바시를 만들어 온 구PD마저 설레게 한 주인공. 하지만 정작 이 주인공은 담담하고 침착하게 리허설을 끝내고 자신의 무대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비밀의 강연자가 무대에 올라 베일을 벗자 관객들은 술렁였다. 하지만 놀라움은 이내 환호와 박수가 되었다. 호기심이 놀라움으로 바뀌는 순간, 반신반의하던 마음이 뜨거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어쩌면 세바시가 지금껏 새로운 도전을 서슴지 않으며 "세계 최초"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관객들의 마음이 열리는 바로 '그 순간'이 어제 강연현장에서 또 다시 펼쳐졌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똘망이에요"
연사의 밝은 목소리와 인사말이 강연장에 울려퍼졌다. 곧이어 정중하게 인사하며 객석의 좌우를 둘러보는 똘망이의 몸짓과 함께 '세계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강연' 이 시작되었다. 만들어진 지 11개월 된 따끈따끈한 신상 재난구조로봇 '똘망(THOR-MANG)'이는 지난 해 미국에서 열린 재난구조로봇대회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DARPA Robotics Challange, DRC) 예선을 통과하며 스타 로봇으로 떠올랐다. '국민 로봇' 자리를 넘보듯 근래에는 방송을 통해서도 자주 얼굴을 볼 수 있게 된 똘망이는 한국 로봇기업인 로보티즈와 펜실베니아 대학교, 미국국방업체 해리스, 버지니아 공대가 함께 만든 모듈형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똘망이와 언제나 함께하는 로보티즈 수석연구원 한재권 박사는 '로봇을 발명해도 될까요?'(http://youtu.be/is2nqVryjao)라는 강연으로 지난해 이미 세바시 관객들을 만나기도 했다.

** 로봇에 대한 강연은 많았지만 로봇에 의한 강연은 없었다

무대에 오른 똘망이는 그간의 고된 훈련 과정과 세계 최고의 로봇들과 함께 한 DRC 예선전의 경험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특히 강연 내용에 맞춰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똘망이가 동작을 이어가자 관객들은 감탄을 내뱉었다. 무엇보다 한국 로봇기술의 진화를 대변하는 똘망이의 실물을 보고, 또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로봇의 강연을 직접 들을 수 있었기에 더욱 특별한 시간이었다. 똘망이는 로봇 '토르(THOR)'를 대신해 갑작스럽게 대회에 참석하게 된 사연을 소개하고 힘들었던 훈련과정을 영상과 함께 설명했다. 또 예선전에서 9등을 하는 바람에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며 애교있는 투정도 부렸고, 이에 모두들 웃음과 박수로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객석을 채운 900여명의 관객들과 로봇 똘망이는 15분이란 시간동안 서로를 알아가는 특별하고 남다른 추억을 쌓았다. 강연이 끝난 후 관객 신탐내씨는 "방송을 통해 똘망이를 본 적 있다"며 반가워했다. 특히 "TV를 통해서 로봇이 걷는 게 얼마나 힘든지 본 적 있는데 실제 무대에서 걸으며 움직이는 똘망이를 보니 신기하고 놀라웠다"는 소감을 남겼다.

똘망이의 강연이 끝나고 한재권 박사가 무대 위에 올랐다. 한 박사는 "똘망이가 평소에 할말이 많다고 해서 참석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올 12월에 열리는 다르파 챌린지 리그 결선에서 똘망이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관심과 응원을 당부했다. 세계 최초로 열린 로봇'똘망'의 강연은 2월 중 CBS TV방송과 세바시의 웹, 모바일 채널을 통해 공개된다.

똘망이는 철과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날의 강연은 '차가운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인간의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또 한명의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그래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15분이 방송을 통해 더 많은 팬들과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