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깊어지는 하나님의 지혜
[본문말씀]
시편 119: 9∼16
[그림QT] 십자가 묵상
검
[묵상내용]
9∼16절은 두 번째 글자 베이트(b)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알레프(a)가 머리라면 베이트(b)는 ‘이해, 명철’을 의미하며 알레프(a)와 유기적인 연속성을 갖습니다.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잠 19: 8).” 머리로 시작한 토라에, 믿음이 자라듯 이해와 분별력이 더해져야 합니다. 청년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어떻게 행실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시편 119편 서두에서 제시한 토라가 큰길이라면, 9∼16절은 골목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큰길이란 신앙인이 가야 할 길과 방향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도를 늘 주의 깊게 살펴보고 토라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신앙의 길이 큰길처럼 똑바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신앙의 길에서 예기치 못한 우회도로나 샛길을 만나면 방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시인은 네 단계의 길을 제시합니다.
우선, 주의 말씀 곧 토라의 가르침대로 순종하고(9절), 둘째 주의 계명을 마음에 두어 늘 묵상하며(11절), 셋째 모든 규례를 입으로 선포하며(13절), 마지막으로 주의 법도를 묵상하고 즐거워하여 잊지 않는 것입니다(15절). 주의 계명을 익히고 깨달으면, 그로 인해 스스로 기뻐하고 자랑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누룩이 점점 부풀어오르듯 저절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탈무드에, 향수 가게에 들어가서 향수를 사지 않아도 향수 냄새가 묻어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과 율례를 사모하고 항상 지키려고 노력하면, 어느새 말씀의 향기가 내 안에서 은은하게 풍겨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 절에서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16절)”는 재귀적인 용법으로 특정한 목표에 완전히 골몰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리하여 중세 랍비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어린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동안 정신을 온통 장난감에 집중하기 때문에 그밖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일평생 믿음의 길을 가는 우리는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낼 수 없습니다. “악이 아무리 강해도 토라가 꽉 들어찬 마음을 해치지 못합니다(탈무드).” 베이트(b) 연(9∼16절)은 젊은이를 죄악으로부터 지켜주는 유일한 보호책이 곧 주의 말씀과 율례임을 선포하고, 행실을 깨끗케 하여 마침내 거룩함에 이른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주의 계명을 실천할 때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기쁨과 즐거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