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쫓겨난 엄마의 부활
장효성
2017.03.12
조회 575


2017.2.28, 후속 4.18 (진짜)뉴스에 의하면,
목사가 “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투자하고 있다. ”는 거짓말로 수익을 약속하며
6년간 교인 등 150여명에게 200억여 원을 뜯어 가로챈 사기로 구속됐답니다.

“ 하나님 명령으로 하는 것이므로 투자를 안 하면 데려간다(죽는다). ”
“ 투자는 헌금이니, 전세금을 빼서 투자하고 월세를 살아라.
목사인 내가 주는 수익금으로 월세를 내고도 풍족하게 살 수 있다.”
“ 신고하면 믿음에 대한 의심이 생긴다. ” 고 설교, 교육, 회유했다고 하지요.

역할분담과 유지체계가 조폭에 해당돼 범죄단체 조직죄도 적용키로 했다는데,
사람에 달라붙어 고통도 못 느끼게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와도 같다 싶습니다.


부딪혔던 어떤 상황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합리적인 결론이, 기존에 철석같이
믿었던 생각과 정반대로 모순될 때, 사람들은 합리적 결론보다 부조리하지만
자신의 기존생각을 그대로 선택한다.

그리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난 후에도, 어떻게든 그 선택이 불가피했음을
믿으려 애쓰며, 명백한 판단착오였어도 오류를 바로잡기보단 끝까지 자신을
우기며 생각을 아예 바꿔버리기도 한다.

이를 ‘ 인지 부조화의 원리 ’, 또는 ‘ 매몰 비용의 효과 ’라고 하는데,
우리 인간에겐 돈이나 노력, 시간 등을 일단 투입하면 그것을 지속하려는 강한
성향이 있는데, 이는 낭비를 싫어하고 또 낭비하는 것으로 보이는 걸 싫어하는
동시에,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자기합리화욕구 때문에 발생하지요.

개인보다는 집단이 매몰 비용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교주나 정치인 등 추종지지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지지도 감정이 투자되는
권력 감정을 대리경험하며 권력 중독에 빠져들어서,
지지를 철회해야 마땅한 사태가 벌어져도 철회는커녕,
그 동안 쏟은 노력과 정열이 아깝고 억울해서라도 더욱 광신적인 지지를
보내며 맹종한다고 합니다.

기업 마케팅인 ‘무조건 100퍼센트 환불 보장’ 에서처럼,
대부분의 소비자는 일단 자기 것이 된 물건을 다시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는데,
이는 자신의 소유나 관련이 있는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자기중심적인
자기애(自己愛) 때문에 발생하는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이기도 하는데,
실험에 의하면 그들의 생각이 비합리적인 결과일지라도 이에 동의하지 않고
집요하게 반박하며 자신이 어리석게 보임을 원치 않는 경향이 나타난다하네요.

이와 같은 인간의 심리를 누구보다도 꿰뚫으며 잘 알고 있는 사이비 교주는,
자신의 탐욕적 사익추구를 위하여 종교집단적인 대중선동을 교묘히 활용하는
사이비 공동체들의 실체 사례들을, 뉴스를 통해서도 자주 확인할 수 있지요.



100여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장로교 정통교회,
종종 조국일보 사설처럼 들리는 설교에 시계를 보며 하품을 참고는 하다가
귀에 박힌 기복주의에다 일천번제헌금 옹호는 망치의 충격처럼 마음에 때렸고,

하루 7시간 기도로 성공한 어느 지점장 사례를 들며 새벽기도, 구역예배까지
독려하는 예수제자훈련 자격증엔 주눅마저 들어 구역질 증세에 한계가 느껴져,
정든 성가대원들에게 성서학당 소개와 “예수의 첫 수업”을 선물로 남겼습니다.

4년 전, 엄마가 또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입원했다는 연락이 온 무렵이었지요.

올해 86세인 엄마의 삶은 교회생활이 거의 전부라 해도 되지 않을까싶습니다.
교회 근처 살며 목숨보다 더 중요한 성수주일, 새벽기도, 전도, 봉사, 헌금 등
종교행위로 만사형통, 무병장수의 복을 받는다는 믿음이 생활을 지배해왔지요.

70대에 멀리 외진 구역담당을 맡게 되어 전철, 마을버스, 한참 걷다 제때식사
거르기 일쑤였고, 상례부에서 5분대기조 출동처럼 열심히 쫓아다니던 즈음,
소리 없이 당뇨가 찾아왔고, 고혈압, 뇌경색에 이어 요실금에 치매우려까지.....

요양원은 내켜하지 않아 자식들이 사는 곳에 가까이 거처를 옮겨주고 오가며
정성껏 돌봤으나, 잠시라도 홀로 두기엔 아무래도 불안하여 노심초사했습니다.

소형평수 동 안쪽 가운데가 길게 뻗은 복도식구조이기에 춥거나 눈비 내려도
왔다갔다 걷기운동이라도 할 수 있어서 엄마 살기에 그만이라는 생각도 잠시,

세월호 참사로 모두들 우울함에 빠져있을 즈음,
자주 집안으로 스며드는 메케한 나무 타는 냄새로, 흐린 날씨에 심할 때는
사나흘 밤낮으로 숨을 제대로 쉬기조차 힘든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 너머 바로 코앞에 내려다보이는 상가건물 지하에 있는 이름도 무시무시한
‘24시 불싸우나’에서 나와, 건물앞쪽 확 트인 방향이 아닌, 건물뒤쪽 아파트와
근접한 반대방향으로 꺾여 연결되어 우뚝 선, 시꺼먼 그을음 찌들은 연통에서
계속 뿜어져 나오는 회색 연기는, 마치 아우슈비치의 굴뚝을 연상케 하였지요.

나만 유난히 예민한 게 아닌가싶어 이웃 10여 집을 방문하여 상황을 알아보니,
주로 노약자들, 장애인, 어린 아이들, 학생들, 먹고 살기에도 바쁜 사람들.......
이미 3년 전에 이 문제로 그 건물에 사는 거주자가 요란스레 항의시위 벌여서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었고, 관리사무소에 민원도 넣었지만 건축율법 상으로
하자 없다며 유야무야되어 방치된 상태로 맥 빠지며 체념한 듯이 보였습니다.

‘아하, 확 트인 건물앞쪽은 외관상 보기에도 안 좋으니 뒤쪽으로 돌렸구나.......’

학식 있고 부유한, 목사님 같은 인상의 업주를 만나, 복잡한 공사도 아닐 테니
연통방향을 건물 앞 확 트인 곳으로 변경하면 연기가 잘 빠질 수 있지 않을까
하소연했지만, 건축율법을 어긴 게 없다며 마치 죄인 대하듯이 싸늘했습니다.

아파트홈피에 글도 올리고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해도 구청과 팩스만 주고받다
건축율법 상으로 하자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는 식의 답변뿐이고,
경찰에 상담하며 도움 받을 길이 없는지도 찾아보았으나 관할이 아니라 하고,
모두들 서로 미리 짜기라도 한 듯 또 귀찮은 것이 출몰했다는 표정들뿐이었죠.

관리사무소조차 연락처를 비공개한 신비스런 입주자대표에게 의견을 들어보려
단지 안쪽 쾌적한 대형평수 집을 몇 번이나 방문해도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가,
경계 눈빛으로 성추행범인 줄 알았다는 말에 황당함밖에는 얻은 게 없었지요.
아마도 부인이 무지 아름답거나, 뭔가 드러나고 밝혀질까 불안했나 싶습니다.

무기력을 느끼며 성령님께 물어보니,.......... “성서학당에서 배운 거 있잖아~!!!”

언젠가 신우인 목사님의 강의내용 중에서 일부가 떠올라 인용하여
고발 내용을 작성하고, 이웃 피해자들의 동의사인을 일일이 받아 첨부하여서
업주를 다시 설득해본 후, 고발이 불가피함에 양해를 구하고 접수시켰습니다.
.......................
누군가가 1분 숨 쉴 때마다 10원씩 받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인간이 자유롭게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생명을 유지할 권리는
하나님이 값없이 보장해주신 은혜이자 가장 중요한 인간의 기본 권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소중한 사람의 생명보다 돈을 더 중요시하며,
생명을 경시하는 폭력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환자 머리맡에서 소란을 피워도, 사람 다리 앞에다 돌을 던져도,
심지어 담배연기를 사람 얼굴에 내뿜어도 폭행죄가 성립된다고 합니다.
하물며, 개인의 이기적인 탐욕으로 다수의 힘없고 소외된 약자들의 소중한
숨 쉴 권리를 희생물로 삼는 거야말로 중대한 폭력행위가 아닐까요?
이를 방조하는 죄 역시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보십니다.
...........................

그렇게 몇 달을 지지고 볶고 씨름하며 지쳐있던 어느 날,
친환경연료를 사용하는 보일러로 교체공사를 2주정도 할 거라는 연락이 왔고,
회색 연기의 메케한 냄새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끝난 게 끝난 게 아니었지요.
새로 개업한 편의점 앞에 근사한 파라솔 테이블 삼형제가 등장했습니다.

노래방도 끝나고 마지막으로 시원하게 목을 축이려는 주당들이 자리를 잡았고,
캔 따는 소리도 소근 소근 대화도 크게 울려 다 들리고, 큰소리로 웃고 떠드는
굉음에 날이 밝았지요.......“ 잠 안 재우는 고문이 제일 쌔다는 거, 맞구나.......”

충혈 된 눈으로 업주에게 사정하며 간절하게 부탁을 드렸으나 싸늘했습니다.
교회 화환을 보아, 빨간 눈 사탄이 역사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싶었지만,
그리스도인이면 다르겠지..........한자락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로 했지요.

이런저런 이유에 맥없이 물리쳐짐 당하기를 수차례..........
구청에 문의해보니, 그 곳은 주차장용도로 허가된 곳이라 주차장율법에 따라서
신고해주면 단속하러 나가겠다고 하네요. 이번엔 칼자루 쥔 갑이 된 셈이지만,

뙤약볕 내리쬐는 대낮에 오가는 사람들에겐 잠시 쉬어가는 오아시스와 같고,
방과 후 학원가는 길에 무거운 가방 내려놓고 숨 돌리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해질 무렵 어르신들 삼삼오오 앉아 막걸리 한잔씩 돌리는 모습이 좋아보여서,
힘들고 지칠 때 한 템포 느리게 여유로움의 쉼터가 되어주는 그늘과 의자들이
고맙게만 여겨져서, 더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밤10시 이후엔 의자들만이라도 들여 놓아, 잠이라도 좀 잘 자고 아침 일찍이
등교하고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도 좀 생각해서 넓은 배려 좀 부탁드릴게요.”

성령님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열어 주리라는 믿음과 소망으로,
잠을 설칠 때마다 거듭 부탁하기를 13여 차례.........새보는 것도 헷갈릴 때쯤,
의자들을 안에 들여놓고 어지럽혀진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지요.

그리고 가끔 들릴 때면, 계산하면서 “ 이제 조용하죠? *^^* ” 에,
“ 네, 덕분에, 고맙습니다.*^^* ” 로 화답하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와중에도, 몸조차 가누기 힘들었고 사람도 잘 못 알아보던 엄마는
규칙적인 식사와 약 복용과 함께 적당한 운동 덕분인지 많이 좋아졌습니다.

주일날만 되면 교회 가서 예배 봐야한다며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한 동안
다녔던 장로교회는 거리가 좀 멀어서 대신에 제일 가까운 감리교회를 택하여
“교회는 다 똑같겠지.” 불안해하는 엄마를 부축이며 함께 몇 달을 다녔지요.
그전에 오래 몸담았던 교회와 분위기가 익숙해선지 마음에 쏙 들어 했습니다.

주보엔 일천번제헌금을 비롯해 여러 헌금종류와 수많은 명단들로 가득하였고,
장로선택헌금은 일천만원이고, 광고 때 헌금봉투내용도 일일이 읽어주었지요.
“새 차 뽑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교인들도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엄마의 교회사랑은 다시 살아나고 몸도 좋아지면서 새로운 일거리도 생겼지요.
여기저기 운동 삼아 걸어 다니면서 버려진 빈 박스를 하나둘씩 모아두었다가
40분 남짓 고물상에 다녀오며 동전들 모으는 재미가 붙었고, 천 원짜리들은
잘 펴서 헌금봉투에 모셔놓았다 주일날을 기다리며 생활에 활력이 생겼습니다.
좋아하는 일이자 활발한 신체활동은 치매예방에도 좋다하여 말리지는 않았죠.

한 동안 그렇게 열심히 혼자서도 넉넉히 교회 다녀왔던 어느 주일날 밤,
신음하듯 흐느끼며 호소하는 기도소리에 잠이 깨서 가만히 귀 기울여봤습니다.
“하나님~, 저더러 교회 나오지 말라고 합니다.~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갑자기 정신이 나간 양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사나흘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예배 후 여전도회에 참석해 앉아있는데, 어느 장로와 권사가 큰 소리로 하도
시끄럽게 웃고 떠들기에 좀 조용히 하라고 말했더니, 전도사가 가만히 불러내
교회 나오지 말라 하며 돌려보내더라고, 멍하니 굳은 표정으로 되새겼습니다.

아마도, 이래봬도 서울 큰 장로교회 오래 다닌 고참권사인데.......라는 생각으로
까칠하게 한 말씀 했다가, 신참이 어디서 감히......조직의 쓴 맛을 본 듯싶지요.

장로가 1,000만원이니 + 권사는 500만원쯤? = 1,500 합체명품과
땡처리 50짜리 명예짝퉁은 바위와 달걀, 아예 첨부터 게임 상대도 아닌데.......


엄마는 교회가 목숨만큼 중요하고 성수주일은 철저히 지켜야하는 율법이기에,
다른 새 교회를 빨리 다시 찾아주어서 엄마를 살리자는 투철한 사명감을 띠고
좀 더 먼 15분 거리의 새 감리교회를 찾아 보디가드로 몇 달을 수행했습니다.

밀월관계산수 1,000 x 12 x 12 = 144,000
‘ 1,000은 맞고 144,000은 틀리다. ’ 라는 어느 영화제목처럼,
‘ 내가 하면 정통, 남이 하면 이단 ’ 이라는 그들의 스캔들이 요즘 화제라지요.

어디에나 있는 일천번제헌금과 ‘신천지 출입사절’ 경고문이 눈에 익숙해지면서
속이 울렁거렸지만, 엄마는 상처가 치유되는 듯 안정되어가며 감사해했습니다.

다시 생기를 되찾으며 폐지 재활용 일도 열심히 하면서 삶의 활력소가 되었고,
주일날을 기다리며 재활용일로 조금씩 모아서 성경책 사이에 끼워놓아 두었던
잘 펴진 천원 몇 장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봉투에 잘 넣어두고, 소풍전야에
설레는 초등학생처럼 목욕재개도 하고 안심한 듯 평안하게 잠자리에 들었지요.

그렇게 예전처럼 다시 열심히 혼자서도 넉넉히 교회를 다니던 어느 주일아침,
교회에 대한 열정이 갑자기 식었음을 감지하여 혹시 무슨 일 있는지 물어봐도
몇 주를 아무 말 없이 덤덤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멍하니 한참 생각만 하더니,

교회 사모가 “ 왜 십일조 안 내느냐? ” 고 하더라며,
......................................................................."교회가 사랑이 없어.”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긴 침묵만 흘렀습니다.

요전처럼 상처받은 마음을 내색하지도, 믿음의 흔들림에 실망하지도 않았지만,
마음속에 품었던 교회가 지워져버리는 쓰라린 몸서리를 견뎌내려는 몸부림인양
주일날에 더욱 재활용 일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달래는 듯 보였습니다.

몇 달 지난 후, 엄마의 마음은 한층 밝아지고 평안해짐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오래 짓눌렸던 얽매임에서 벗어나 비로소 안식을 찾은 듯이 홀가분해보였지요.

늘 하던 “ ......중얼중얼........주시업소서!!!, 할렐루야~~아멘~~!!! ” 기도는
거의 들을 수가 없게 되었고, 식사 전에 하는 주기도문은 점점 씩씩하게 들리고,
운동할 때 핵교 다닐 적 배웠다는 “으찌, 니, 산시........” 를 처음 들어보고,
손뼉 치며 “ 내게 샘물 솟는 평화~내게 강 같은 평화~넘치네~~”도 은혜롭고,
“홍도오야~우지~마아라~, 오빠~아가 이~~있다~~”도 구슬피 멋지게 부르고,
며칠 똑같은 음식으로 고문당해도 싹싹 비우며 또 까칠하게 한 말씀 하지요.
“ 입맛 떨어져야 빨리 죽을 텐데, 맛있는 것만 해주니 오래 살아서 미안하다.”
“ 미안하긴, 엄마 덕분에 나도 좋아졌잖아......”
“ 그래, 처음 올 적엔 홀쭉하더니, 너도 살이 붙었다.”

근처에 사는 자식들도 자주 밑반찬해서 찾아보고 함께 즐거운 외식도 하면서,
엄마만큼 마음들이 점점 넓어지고 따뜻해지며 화기애애함이 날로 두터워집니다.

3년 전에 생일선물로 받아 방안에 상자채로 보관하며 교회 갈 때만 꺼내 신던,
비싸고 좋은 효도신발을 이젠 아끼지 말고 막 신으라며 문 앞에 꺼내놓았어도,
교회 갈 때 신는다며 그냥 놔두고는 조금 낡은 운동화만 고집합니다.

천리마는 달리고 싶다는 듯, 문을 바라보며 가지런히 놓여있는 엄마 신발이
갈 곳을 잃은 주일날인 오늘따라 더욱 쓸쓸하게 보여서,

“고통 없이 잠자듯이 데려가 달라.”는 엄마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
엄마 발에 신겨주어야겠다........ 생각해 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
2017.02.24 뉴스도 마음에 와 닿습니다.

“ 위선적인 신자보다 무신론자가 낫다.
이런 사람들은 신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이중적인 삶을 살며 위선을 저지른 신도에게 심판의 날 내려지는 신의 응답은
나는 너를 모른다가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소위 이중생활을 하는 신도들을 꾸짖었다고 하지요.

2013년에, “ 천국은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신을 믿지 않아도 양심을 따르면 신이 자비를 베풀 것이다.” 라는
발언 이후 이어진 또 다른 파격이라고 하는데, 교황청은
신의 은총은 신자와 무신론자를 차별하지 않으며 모두 함께 선을 행할 것을
촉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올해 89회 아카데미 작품상은
사회적 약자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삶을 돌아보는 'Moonlight' 에 돌아갔지요.

근시안적으로 흑인 동성애자를 그린 영화가 아니라, ‘다름’을 표현하기 위한
소재인 도구를 통해 인간의 삶 전체를 확대하여 들여다봐야한다는 평론처럼,

인간의 자기중심적 자기애(自己愛)는 자칫 타인에 대한 편견과 이기적 시선이
잣대로 규정되며 타인의 삶에 개입하고, 이에 영향과 간섭을 받게 되어 자신의
본래 색을 잃어버리고 타인의 색으로 살아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특히 종교적 절대성의 힘이 작용하게 되면 거대한 괴물의 폭력성마저 보이며,
인간의 창조성, 다양성, 가능성 등의 생명력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지요.

“ 종교에 얽힌 미신, 교리나 율법은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기보다
죽여 버린다. ” - 아브라함 헤셀 -

“ 인간으로 해야 하는 가장 위대한 일은 상대방의 가치를 알아보고
가장 그답게 살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것이다. ” - 마르틴 부버 -

상대방의 가치를 이해하며 그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삶을 응원해주는 것,
차별이 없는 하나님 나라를 향하는 첫 발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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