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민,최순실 입김이 머무는 곳?
장효성
2016.11.18
조회 412

요즘 연일 터져 나오며 반복되는 뉴스들에 의하면,

최태민 목사는 원래 큰 무당에서 기독교, 불교, 천도교 교리를 합한 영세교라는
신흥종교를 창시하여 주위의 목사들 100명을 모아서 구국 선교단을 만들었고,
1975.6.21에 “ 구국 십자군 ”을 창건하였는데,
평소에 최면 거는 데에 큰 능력과 기술을 가지고 이용하였다고 하지요.

자료화면에는, 많은 이들이 모인 앞에서 최태민 목사가 설교도 하고,
그 때나 지금이나 두 손을 쳐들고 하늘을 향해 부르짖으며 기도들도 하고,
십자군의 전도용사들의 복종의 맹세 의미가 담긴 용어들이 반복 나열되면서
심금을 울리는 감성적인 멜로디에 실린 주술과 같은 군가도 아마 불렀겠지요.

아무튼 그건 그렇고, 송태근 목사님의
갈라디아서 20강 마지막 부분에서 함께 부른 노래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난 지극히 작은 자, 죄인중의 괴수
무익한 날 부르셔서 간절한 기대와 소망 부끄럽지 않게
십자가 전케 하셨네.
어디든지 가리라 주 위해서라면
나는 전하리라 그 십자가, 내 몸에 베인 십자가
그 보혈의 향기로 온 세상 채울 때까지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사나 죽으나 난 주의 것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의 소망
내안에 주 만 사시는 것.............
--- 갈라디아서 20강 “예수의 흔적을 가지라” 중에서 ---

예수의 흔적을 가지는 거.........??? 좀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느낌이 들어서,
그 의미는 잘은 모르겠으나, 의도는 감이 잡히는 듯........하며 뭔가 떠오릅니다.


그런가 하면 2016.11.17 뉴스에 의하면,
종교학의 세계적 석학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자라이나대학교)가
서울대학교 암연구소 삼성암연구동에서 열린 한국종교발전포럼에서,
오늘날의 종교가 맞이한 위기상황을 아래와 같이 강연하며 진단하였다고 하지요.

“ 표면만 훑는 ‘표층 종교’가 아닌, ‘심층 종교’로 나아가야 ”

21C 탈현대 사회에서 재래식 전통 종교는 그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삶에 공헌한다고 여겨지던 종교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역기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랑과 화해와 평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던 종교가 오히려 분쟁과 갈등,
심지어 전쟁의 불씨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기복신앙 일변도의 전통 종교나 정치화ㆍ기업화ㆍ귀족화ㆍ폭력화된 종교는
본질에 다가서지 못한 채 겉돌며,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게 하는 원인이 되어서
오늘날 종교가 쇠퇴의 길을 걷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크게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각 종교는 겉보기에 크게 다른 듯하지만, 심층에서만큼은 서로 통합니다.
표층 종교는 “ 무조건적인 믿음 ”을 강조하는데 반하여,
심층 종교는 “ 이해와 깨달음 ”을 강조하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불교에서 ‘붓다’란 ‘깨달은 이’를 뜻하며,
깨달음이 없는 불교는 빛과 열이 없는 태양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에도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는 구절이 있는데,
변론이란 “ 이성을 쓰자는 것 ”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경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표층 종교,
문자 너머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심층 종교로 봅니다.

‘성경에 쓰인 대로 온 우주가 6일 만에 창조됐다고 믿는 것은 표층 종교’ 이며
‘심층 종교는 그 너머의 속내를 보고자 한다.’는 점이 비교됩니다.

‘있는 그대로 표층적 의미를 진리라고 하는 종교가 곧 근본주의’이며,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성경무오설(聖書無誤說)을 비판하며, 표층 종교의
문자주의는 다른 신념체계를 배척하는 배타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 불도의 깨달음은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므로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다.’ 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불교는 표피적인 문자 표현의 절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문자가 필요하지만 진리 자체는 아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밖에 심층 종교의 특징으로
이기심에 물든 나가 아닌 참된 나를 찾으려는 태도,
다원주의와 남을 위한 행동을 강조합니다.

종교가 이런 심층 차원에 이를 때 종교의 부작용을 없애고
인간의 영적 다급함을 채워줄 수 있으며 종교 본연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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