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가성 우물가에서 옥합을 깬 마츠코
장효성
2016.02.24
조회 600

1947년 후쿠오카에서 장녀로 출생한 마츠코에겐
선천적인 병으로 인해 누워 지내야만 했던 여동생이 하나 있기에,
온 가족의 표정은 늘 굳어있고 아버지는 동생에게 주로 관심이 쏠려있었다.

마츠코는 그런 아버지가 활짝 웃으며 자신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길
갈망하며, 이처럼 우스꽝스런 표정을 습관처럼 지어 보이곤 하였으나,
아버지의 굳어버린 근심어린 표정은 좀처럼 풀려지지가 않았다.

마츠코의 유년 시절은 무거운 분위기속에서도 밝고 명랑함을 잃지 않았고,
동화속의 멋진 왕자님을 만나는 주인공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중학교 교사가 되나, 파란만장한 삶의 잔혹동화로 바뀌는 일이 벌어진다.

23세, 수학여행 중에 제자(류)의 절도사건이 발생, 그를 설득하여 자백하는
자리에서 류가 오히려 마츠코에게 누명을 씌우자, 당황하여 아무 말 못한 채
반사적으로 습관이 된 그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는 바람에 그만 해고당한다.

제자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그 혐오스런 표정의 원인인 동생에 대한 원망과
절망에 빠진 마츠코는 가출, 가난한 작가지망생A와 동거생활을 시작하나,
돈에 대한 열등감으로 폭력에 시달리고, A는 철도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24세, 그 동거남A의 친구B는 안정된 월급쟁이지만 평소 글재주에 대한 열등감
으로 마츠코와 노획물처럼 불륜사이가 되나. 아내에게 들켜 그녀를 버린다.
25세, 성인마사지 C의 창녀가 되어, 악착같이 업소의 매상 여왕이 된다.
26세, 동거 중이던 기둥서방D에게 배신당한 분노로 살해하고 도쿄로 도망,
자살미수로 만난 이발사E와 동거 중 체포되어 8년형 선고받고 교도소행.
미용사 자격증을 쥐고 출소, E를 찾았으나 그는 이미 가족을 이룬 후였다.

36세, 야쿠자가 된 제자였던 류와 운명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
비록 마츠코의 삶에 지울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준 그였지만 용서하고
동거를 시작하나, 류는 체포당해 교도소에 수감된다.
40세, 출소한 류를 기다렸던 마츠코는 또 버림받고, 류는 다시 교도소행.

55세, 마츠코는 홀로 폐인처럼 다 허물어져가는 집에서 이웃들에게
'혐오스런 마츠코'라 불리며 세상 삶을 포기한 듯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간다.
문득 그리운 여동생을 떠올리며 자신의 손으로 머리를 예쁘게 손질해주고
싶은 마음에, 미용사로 재기할 수 있는 마지막 불씨를 되살리려 일어선다.

심야에 강가 벤치 부근에 버려졌던 교도소 동료 연락처를 찾아오던 중에,
자신의 제자와도 같은 중2 얘들에게 씩씩하게 귀가를 훈계했다가 그만.......
며칠 후 근처 강변에서 한 장의 명함을 움켜쥔 채 사체로 발견된다.

류는 출소하여 마츠코를 애타게 찾았으나..........
절규하는 그의 손엔 신약성서가 쥐어있었다.

험난했던 삶의 짧은 여정을 마친 마츠코를 맞이하는,
그녀 아버지의 돌처럼 굳어있던 입가엔 비로소 환한 미소를 띠게 된다.



마츠코의 인생은 동거남들의 폭력, 불륜, 매춘, 살인 등 불행의 연속이었다.
쓰레기 밑바닥의 험난한 삶이었지만, 모든 게 끝나버린 절대 절명의 순간에도
죽을힘을 다해 사랑을 주려고만 했던 열정이 그녀의 삶을 지탱해 주었다.
에로스라기보다는 무조건적 자기희생의 아가페적인 사랑이 아닐까........

지난 토요일 우연히 강렬한 색조에 끌려 본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다소 무거운 주제의 내용이었지만 코믹 뮤지컬로서, 밝고 화려한 동화처럼
시작하여, 불륜에 이어 삼류 매춘, 살인, 야쿠자 조폭영화로 치닫는가 싶더니,
“수가성 우물가에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을 씻기는 마츠코”로 맺는,
오늘날 바로 우리 자신들과 주변의 실제 삶인지도 모르는 모습들을
진화 발전되어 확장된 소통의 도구들에 담은 성서 이야기라는 걸 깨닫는다.

하나님은 주파수가 맞아 잘 작동할 수 있는 재능 어플들만 깔려있다면,
그 도구들을 바라만 보며 그냥 지나칠 한가한 분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리라.

Richard Cocciante는 응답하라!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와도
같은 멋진 뮤지컬로도 재현됨을 상상해보며,

창밖 저 너머로 은행나무의 앙상한 가지들 사이 위로
세상 어디에나 폭포수같이 쏟아져 내릴 밝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긴 겨울을 보낸 까치 한 마리가 새끼를 낳을 둥지를 손보고 있는 중이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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