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정 교수님이 그립습니다.V.3
헨젤&그레텔
2016.03.06
조회 1084

수많은 성서학당 애청자들 마음속엔, 구미정 교수님의 마가복음 강의에서
렘브란트와 고호의 그림을 곁들인 섬세한 설명을 통해, 그 시대의 새로운
소통의 도구에 반영되어 해석되고 표현된 성서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비록 숙달된 조교마냥 기교 섞인 기술적인 강의가 아닌, 약간은 서툴지라도
많은 시간과 공들인 탄탄한 준비물과 함께, 개인적 이해관계를 떠난 진정성과
시야를 보다 넓혀 주고자 한 순수한 열정에, 모두 공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크게 확대 클로즈업된 작품과 설명하는 손놀림을 보며, 문외한이었던 눈이
조금이나마 떠져서 주변에 예수님의 자취를 찾아보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오른 손등에 예쁜 점 2개 있는 사실도 알게 되고, 꿀밤 10대 맞아도 좋습니다.
ㅎㅎㅎ~, 그 만큼 애청자들의 마음에 와 닿는, 좋은 강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한 사례로서,
일반인들이 사석에서나 말할 듯한, 해외여행 중에 관전한 어느 작은 시골마을
오래된 작은 성당벽화에 그려진 무시무시한 지옥의 모습으로써,
마치 스쳐 지나듯 피상적으로 지옥을 간단히 설명하는 작금의 강의내용 현실은
근육질로 단련된 애청자들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애청자들 사고수준을 수천 년 전으로 시계바늘을 거꾸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구역질을 느끼게 하고, 급기야는 부적절한 PK(우리가 남이가?) 망언까지
등장하며, 마치 강사와 패널(Panel) 둘이 짜고 치는 고스톱같은 의도적인 세뇌
작업은, 성서학당 애청자들에게 모욕감마저 주어서, 헐크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사무실 천장에 설치된 패널(Panel)이 깨져 나가서 시커먼 안쪽이 흉측하게
드러나거나, 곰팡이로 오염되어 흉물스럽게 얼룩져 있다면 어찌하겠습니까?
그 해결책을, 상식적인 정상인이라면 어느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성서학당이 수천 년 전 고고 발굴단도 아니고, 종교장사꾼의 광고홍보 방송도
아닐 진데, 애청자들은 결코 어리숭한 호갱님들이거나, 바보가 아닙니다.
강의 세 번 정도 들어 보면, 강사의 진정성과 그 의도를 감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이 있습니다.
공무원의 수는 업무량의 많고 적음과 아무 관계없이 늘어난다는 법칙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속해있는 조직이 커져서 조직원과 예산이 늘어나면, 그만큼
위신과 권한이 커지기 때문에 생리적으로 조직의 비대화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국민입장에서의 필요성보다, 자신의 안정된 호구지책이 우선이라는 의미입니다.

성서학당에도 적용되며 타락하고 있지 않나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 이해타산이 개입되어 성서학당이 종교장사꾼들의 호구지책의 수단으로
이용된다거나, 세상에 전혀 설득력 없는 교리를 앞세워 강조하는 강의내용으로
개인적인 목회성공의 세력발판으로 삼으려함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 자신 본인이 성서학당에 무슨 특이한 편집증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수십 년, 큰 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오래 봉사도 했었고,
성서학당을 알게 된 8년 전,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타 채널도 포함하여
많은 방송설교도 다양하게 집중적으로 시청해보고,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교회에 대한 생각들과 의견에도 귀 기울여 들어보고....등등....
결론은,
성서학당에서 마지막 1%의 희망을 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저의 형제들을 비롯하여, 친지 분들 거의 모두가 교인으로서, 목사 2명에
부목사, 전도사, 선교사, 장로, 권사, 집사 등으로 열심히 교회생활중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종교장사꾼의 종노릇하며 휘둘리고 있거나, 종교장사꾼
집안 그 자체임을 고백합니다. 심히 부끄럽기에 이를 데 없습니다.
제 글들을 읽는다면 호적 파가라며, 심한 충격에 뒤로들 넘어갈지 모릅니다.
저는 당장 내일이라도 길거리에서 노숙자로 방황하며 떠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글들을 올리는 이유는, 목숨을 걸고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절대로 지켜야 할,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서 입니다.


성서학당 2,000회가 중요하고 자축할 게 아닙니다.
성서학당이 점점 변질되어 휘둘리며 흔들리는 나약함이 느껴져 우려됩니다.
성장만큼이나 내면의 질적인 성숙과 변화가 동반되어야 할 줄로 압니다.
일어설 때 넘어질 것을 생각하고,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듯이,
초심으로 겸허히 돌아가서,
성서학당이 현재 어느 위치에 서있고,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가 진짜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성서학당은 종교장사꾼들이 세력 확장용으로 이용되는 놀이터가 아닌,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를 수 있도록,
그 들만을 위한, 그 들만의 성장판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애청자분들이 애정 어린 눈빛으로, 잘 지켜보고 계실 줄로 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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