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 패널의 교체를 건의드립니다.
헨젤&그레텔
2016.03.24
조회 1030
성서학당이 어느덧 2,000회를 돌파하며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제작팀의 많은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그 성장을 바라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우려되는 아쉬움과 옥에 티라고 할까,
일부 패널은 여전히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구태의연의 모습을 보임으로서,
적잖은 8년 세월을 함께 동행해온 많은 애청자들의 단단해진 근육만큼이나마,
애청자들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함에 가슴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패널의 역할은 강사와 호흡을 맞추며, 성서내용이 진실하고 활기차며 원활하게
애청자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해주는, 윤활유 같은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패널 분들도 배우는 학생 입장이기에, 서툴고 미숙한 모습이 드러나는 건
자연스런 현상으로, 각각의 독특한 개성에 따라 비록 그 변화정도나 진도차도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일지라도, 지속적인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부족함을 채우며
모난 부분은 잘 다듬어진 모습이 보여 질 때, 이해와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즐겨듣는 음악프로에서 이런 멘트로 시작하더군요.
“어느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은 자신의 책 ‘나는 1학년 담임입니다’ 에서,
1학년 교실의 풍경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장작불위에 걸어놓은 팥죽 솥단지처럼 하루 종일 온갖 사건 사고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곳으로서, 아이들이 잘 커보겠다고 얼마나 기를 쓰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라고 말이죠.
잘 커보겠다고 애쓰는 아이들과, 하루를 잘 살려고 애쓰는 어른들,
서로를 이렇게 이해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못 할 일이 어디 있을까?”
(# 패널을 1학년 초등생으로 비유함은 절대 아니니, 오해 말기바랍니다.^^ )
제가 말하고자하는 건 이러한 경우가 아닙니다.
위의 경우와는 별개의 사안으로서 결코 간과되어선 안 될 문제는,
일부 패널의 경우, 자신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개인적 이해득실의 계산이 깔린
의도적인 발언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향해 상황을 조작하려는 행태를 보이며,
정직해야 할 패널로서의 공적인 위치를 악용하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과 시청자간에 관계된 진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인위적인 가식이
개입함으로써 왜곡 변질시키는 악의적인 발상이라 볼 수밖에 없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중벌이니, 가중처벌이니 하는 말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죄질이 그만큼 나쁘다는 의미이겠지요.
예를 들어, 조OO 패널의 경우 2가지 사례를 들자면,
사례 1 : 민수기12강 (레위인의 정결식 : 37분~ 참조)
앞서 올린 글 제목 ‘돈 없으면 교회도 못 다닌다.’ 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강사가 먼저, (성막=교회=하나님 나라) +(제사장=목사=제물을 먹을 권리)라는
결과를 유도하기 위해서, (하나님 명령 +성막 +제사장 = 제물을 먹을 권리)를
기본선택으로 설정하여 설명하고 이어 (교회 +목사 +하나님 나라)를 언급하며,
직설적이지는 않되 강한 뉘앙스를 은근하게 주며 교묘히 반복적으로 주입하면,
“교회는 성막이자 하나님 나라이므로, 하나님 명령에 따라 목사는 제사장으로서
제물을 먹을 권리를 가진다.”는 혼합된 인식을 시청자들에게 세뇌시키게 됩니다.
이어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위계질서가 분명하게 구분되니, 레위인은 제사장을
잘 섬기며 성막에 잘 봉사하라는 뜻이다.’라며, 오늘날의 우리도 레위지파로서,
제사장인 목사를 잘 섬기고, 성막과 같은 하나님 나라인 교회를 섬기는 빛의
역할로 하나님께 봉사해야 한다는 의미의 뉘앙스를 주는 언급을 이어갑니다.
그 후에, 패널들에게 그들도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물어
그 반응을 보면, 특히 패널가족이 목사일 경우에 자신의 환경과 심리적 요인에
의해, 자신도 목사와 같은 제사장 신분이라는 착각(?)으로 편향되며 의도적으로,
“우리도 제사장으로서 하나님 말씀대로 열심히 살면, 먹을 거 입을 거를
제사장처럼 채워주실 거”라는 맞장구로, 앞선 강사의 설명을 확대시켜줍니다.
이를 종합하여 풀이하자면,
“교인들은 레위인으로서 제사장인 목사를 잘 섬기고, 교회 봉사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생계문제를 다 해결해준다.”라는 의미로서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입 안 가득 차 볼이 불룩해 보이는 듯합니다.
이는, “우리들 자신이 성전이며,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과는
정면 반대된 내용으로서, 애청자분들은 무엇이 진실인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성서학당에서라면,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토대로 하여 고민하고 토론하며,
애청자들을 향한 수준 높고 진실한 강의로 꾸며져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사례 2 : 민수기13강 (이스라엘을 대신한 레위지파 : 처음 부분 참조)
조OO 패널은 세상의 빛이 되는 길을, 교회 봉사활동 경험으로써 설명하는데,
이는 세상에 널린 종교장사꾼들 교회 설교와 광고에서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었던, 저차원적으로 편향된 극히 편협한 시각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성서학당에서라면, 교회봉사 이전에 그 교회가 과연,
“세상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빛의 역할을 다하고 있느냐?” 아니면,
“종교장사꾼의 개인왕국으로서 세상으로부터 외면을 받으며,
오히려 세상에 길고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어둠의 집단이냐?” 인가 여부를
먼저 깊이 고민하며 따져보는 것이 우선으로 전제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곡된 강의내용이 패널의 가식적인 맞장구와 함께 만나 잘 버무려지게 되면,
마치 전체나이 관람등급의 호러무비의 경악스러운 마녀들 장면처럼 연상되고,
금칠한 빈 깡통이 요란스럽게 구르는 잡음으로 밖에 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패널분의 부모가 현재 목회 중으로, ‘팔은 안으로 굽는다.’ 속담처럼
파킨슨의 법칙이 적용되어, 성서학당 본래의 모습을 훼손시킬 소지가 있는 경우
패널을 교체하여, 애청자분들이 패널로 인해 불편함이나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은혜롭고 평안한 마음으로 시청할 수 있도록, 조치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잖은 8년 세월만큼이나, 많은 애청자들의 눈과 귀, 영의 근육들도 통통해져,
척 보기만 해도 무엇이 똥인지 된장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성서학당을 만나는 경우들도 많을 줄로 압니다.
그들에게 설득력 있는 공감을 주고, 쉽게 접근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도록,
진실한 강의내용들로써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성서학당으로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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