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안테나가 꺼졌다고 표현한 것에 불쾌하셨다면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예수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덜 되신 듯하여....
나도 님과 같은 의견을 가진 울나라 기독교의 문젯점을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조상님들의 훌륭한 선비 정신이 있었기에
우리 민족이 우수한 민족이 될 수 있었다는 것도 잘 알지요.
동아시아 문화권에 있는 민족들이 훌륭한 사상가들이 많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유식하고 교육열도 치열합니다.
그러나 그 서양신이 서양 사람들만의 신이 아니라는 거지요.
예수님이 오셨을 때 로마에는 이미 플라톤,소크라테스 ,아리스토 텔레스, 등등 우월한그리스
철학자 ,수학자,들이 많은 사상과 철학이 번창하던 때 박학 다식한 이곳으로 오셨어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 그 나라가 지배하는 때에 더는 무슨 사상과 철학이 더 필요해서 예수님이 나셨을까요?
그분이 십자가에 죽음으로 이방인인 우리에게 까지 십자가 사랑을 전해졌잖아요.
그사랑은 땅의 사랑이 아닌 인간으로서는 할수도 없는 원수를 향해 몸을 내어주는 지극한 사랑 이지요.
조상님들의 철학은 우리의 인격을 업그레이드 시켜 성인 군자가 되기까지는 하지만 영원한 생명의 안식처인 그곳으로 인도하지는 못하잖아요.
그리고 깨달아 부처가 된다는 가르침은 훌륭한 철학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대오각성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부처가 되면 더는 오욕칠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육신을 지닌 사람이 된다는 건가요.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는 데 중생이 깨달아 부처가 되고나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밥벌이를 하기위해 사투를 하게 되지요.
이과정에서 억울한일 ,분노 좌절 사기를 당하거나 할 때도 부처로서 전혀 흔들림이 없는 건가요?
깨달음 충만할땐 부처가 되겠지만 깨달음 소멸 또는 상실같은 세상사 번민 번뇌에 사로 잡힐 텐데 그때도 부처로서의 깨달음은 여전히 유효한 건가요?
깨달음을 지속하기 위해 생업을 버리고 수도승처럼 벽면 수도한다면 현실 도피 아닌가요? 이론은 그럴 듯한데....
얼마전에 어느 주지스님들이 룸싸롱 호텔에서 수억원대의 도박판을 벌인 일이 있었지요. 이 스님들도 한때는 깨달음 충만한 부처 일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불교 대학을 나오고 스펙 만으로 주지가 되진 않았을 거라구요.
육신의 쾌락을 제어할 절제의 브레이크가 고장난 탓인데
깨달아 부처가 된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그죄책감은 어케 되는 건가요?
대자대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용서해 주시는 건 아니고 업보라고 무거운 형벌을 짊어지게 할텐데 그무거움은 어찌하지요.
"부처가 되긴 쉬워도 부처를 유지하긴 어려워라 "(꽃이 피긴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정호승시처럼)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깨닫고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할땐 부처였다가 "닭이 울기전에 나를 세번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경고에도 십자가에 달리실 주님을 세번 부인 했는데
베드로가 깨달을 땐 부처였다가 예수님 배신 때릴 땐 짐승으로 윤회하거나 형벌이 기다려야 하는 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또 고기잡는 베드로 찿아갑니다.
그리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십니다.
어느 사랑이 더큰가요?
큰 빛을 발견한 사람은 사소한 빛에는 그리 관심이 없습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