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숙님글에 대한 반론
조성호
2012.07.23
조회 528
사과한다 하면서 할말을 다하신 듯.
그럼 이제부터 박진숙님의 논리의 모순을 조목조목 짚어드리겠읍니다.
>"그러나 대오각성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부처가 되면 더는 오욕칠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육신을 지닌 사람이 된다는 건가요."-ㅡㅡㅡ육신을 지닌 부처가
되는것이지요 예수님처럼.
> "조상님들의 철학은 우리의 인격을 업그레이드 시켜 성인 군자가 되기까지는 하지만 영원한 생명의 안식처인 그곳으로 인도하지는 못하잖아요 ".-ㅡㅡㅡ궁극에는 업그레이드도 없고 영생천국도 없고 진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는 데 중생이 깨달아 부처가 되고나면,
"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밥벌이를 하기위해 사투를 하게 되지요"ㅡㅡㅡㅡ부처가 되고나면 밥벌이 안하죠 부처님도 출가해서 탁발하고 살았고 예수님도 광야에서 나오셔셔 돈벌로 다니셨나요 아니잖아요.
>" 이과정에서 억울한일 ,분노 좌절 사기를 당하거나 할 때도 부처로서 전혀 흔들림이 없는 건가요? "ㅡㅡㅡㅡ불심으로 극복할 시련이자 수행의 한 과정이죠.
기독교에서도 구원받았다고 현실이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아니잖아요. 만약 그렇다면 그건 잘못된 복음입니다.
>"깨달음 충만할땐 부처가 되겠지만 깨달음 소멸 또는 상실같은 세상사 번민 번뇌에 사로 잡힐 텐데 그때도 부처로서의 깨달음은 여전히 유효한 건가요?"ㅡㅡㅡㅡ그러한 번뇌로부터 해탈극복하기위해 깨달음을 추구하는거 아닌가요. 당신말은 깨달음 따로 현실 따로군요 그딴게 무슨깨달음인가요 현실도피 자포자기지.깨달음의 진리란 우리의 변심과는 상관없이 존재하는것이죠. 마치 물에 비친 달처럼.기독교에서도 우리의 행위와는 무관하게 십자가의 은혜가 선행하는것처럼.
>"깨달음을 지속하기 위해 생업을 버리고 수도승처럼 벽면 수도한다면 현실 도피 아닌가요? 이론은 그럴 듯한데..."ㅡㅡㅡㅡ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란 말이 있어요.
나 하나의 깨달음은 온 인류의 깨달음이요 부처와 중생 출가와 속세가 둘이 아닙니다. 나아가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이죠. 시작이 끝이요 끝이 시작입니다. 깨닫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다 수행이라고나 할까요.
마치 예수님도 하나님사랑 이웃사랑하러 십자가를 지셨듯이 말입니다.오히려 자기 마음을 봐야 하니까 현실을 직시한다고 봐야겠죠. 한마디 더하면 깨달음을 위한 과정이나 깨닫고 난후의 과정이나 같다고 봅니다. 제 생각엔 출가하지 않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 더 옳고 어려운 길입니다. "이론은 그렇듯한데"가 아니라 기독교든 불교든 그럴 듯 하게 잘못 알고 계신 것같습니다. 기독교라도 제대로 알고나 행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주지스님들이 룸싸롱 호텔에서 수억원대의 도박판을 벌인 일이 있었지요. 이 스님들도 한때는 깨달음 충만한 부처 일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불교 대학을 나오고 스펙 만으로 주지가 되진 않았을 거라구요.
육신의 쾌락을 제어할 절제의 브레이크가 고장난 탓인데
깨달아 부처가 된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그죄책감은 어케 되는 건가요?"ㅡㅡㅡㅡ깨달아 부처가 된 자라니요.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뿐입니다.성경에서도 구원받고 죄저르면 어케되는건가요.똑같은 질문입니다. 더구나 기독교계 성직자들은 어떻구요. 말씀 좀 해보세요. 얼마 전 인천 기독교계회장님J목사님이 주기적으로 간통하다가 상대남편이 들어오자 베란다 난간 붙들고 있다 떨어져 천국 가신 사실 . 최근 교계리더 목사님중 삼일교회 J목사님이 추악의 도를 넘어선 각종성추행으로 걸려 사임하시고 홍대근처에서 다시 개척해서 몇백명교인이 다시 나가는데 과거 일에 사과 한마디 없어서 교계가 반성중이라는 사실. 또 2011년 7월 피디수첩에서 다룬 교회 몇 개씩이나 대충 만들어 팔아먹고 물어본 즉은 하나님 교회가 아니라 내 교회라면서 교회 사유 재산론을 부르짖던 목사. 그 목사님이 강원랜드로 자주 날아가셔셔 자주 자리를 비워 취재하기 어려웠다지요.또 금년 5월까지 705번 강원랜드가신 카지노 김목사님도 계시지요. 10억이상날리고 여자불륜복잡하고.. .여기까지는 인터넷 검색 치면 다 나오는 자주 회자되는 다 아는 사실,인터넷 검색 목사비리치면 김홍도목사 헌금횡령에서 시작해서 머리털보다도 더 많은 비리가 쏟아져나오고 심지어 '도가니'란 영화까지 나오겠어요. 이것까진 정통교파라는것들이고 사이비 이단까지 합하면 사회악입니다.뿐만 아니라,은퇴전별금으로 수십억씩 챙기는 목사님들. 천주교는 아예 입막음용으로 거액의 예산을 집행하고 있읍니다. 빙산일각들일 뿐이지요. 뭐묻은 개 뭐묻은 개 나무라는 우를 범하지맙시다. 예수님도 자기눈에서 대들보를 먼저 빼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깨달음과 구원은 라이센스가 아닙니다.
>"대자대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용서해 주시는 건 아니고 업보라고 무거운 형벌을 짊어지게 할텐데 그 무거움은 어찌하지요 "ㅡㅡㅡㅡ부처님 십대 제자중 한 분이 얼마나 미남이었든지 한 노파가 딸을 시집 보내려고 재주를 부려 관계를 맺게 했읍니다. 그걸 안 제자가 자살을 하려하자 부처님께서 구해 주시고 공한 도리를 들어 그 죄책감에서 해방시켜준 일화가 있읍니다. 부처님은 심판하시는 신이 아닙니다. 스스로 깨우침을 갖도록 인도하는 선배이자 스승이죠. 더구나 대자대비한데 앞뒤가 안맞는 논리적모순이군요.
>"부처가 되긴 쉬워도 부처를 유지하긴 어려워라 "(꽃이 피긴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정호승시처럼)"ㅡㅡㅡㅡ얼핏보면 정호승이 잘못 본 것같은데 자세히 보니 당신이 틀렸어요.부처가 되는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깨달음과 부처되는 것도 다르다고 볼 수 있고 어쩌면 깨달을 것이 없다는 걸 깨닫는 것이 진짜 깨달음이 아닐까요.꽃이 피는 것이 부처가 아니라 꽃이 피면 지는걸 알아야 진짜 깨달음이지요. 생이 있으면 사가 있는법.부처란 애시당초 되는 게 아니라 원래 되어져 있는 거지요.잘못 알고있는 기독교인들처럼 구원받기는 쉬워도 유지하기 어려워라가 맞는 말이지요.예수천당 불신지옥 영생복락처럼 단순흑백논리가 아닌 과정이 중요한거죠. 잘못 갖다 부치셨어요.기독교에도 구원이 있으면 성화가 또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논리도 하나님 입장에선 아닙니다.이 대목에선 여기까지.

>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깨닫고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할땐 부처였다가 "닭이 울기전에 나를 세번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경고에도 십자가에 달리실 주님을 세번 부인 했는데
베드로가 깨달을 땐 부처였다가 예수님 배신 때릴 땐 짐승으로 윤회하거나 형벌이 기다려야 하는 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또 고기잡는 베드로 찿아갑니다.
그리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십니다. ㅡㅡㅡㅡ베드로가 깨닫고 부처였다는 얘기는 여기서 처음 들어요. 막 갖다 붙이는 데는 귀재시군요. 이런 걸 보고 아전인수, 우물안의 개구리, 장님코끼리만지기라고 하지요. 하지만,여기에는 이미 위에서 이해될 만큼 언급했으므로 재론하지 않겠읍니다.
>"어느 사랑이 더큰가요?
큰 빛을 발견한 사람은 사소한 빛에는 그리 관심이 없습니다"
ㅡㅡㅡㅡ진리가 하나지 둘이 아닌데 큰빛 작은빛이 따로 있을수 없읍니다.
마지막으로, 불교를 또 하나의 신으로 본다면 그것은 정신병입니다.
오직 마음이 부처라는 쉽고 심오한 진리는 접근론 자체부터가 다릅니다.
부디 성불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참고로 박진숙님은 불교를 육신적 율법적 한계로 가둬 놓으시려 하시든가
아니면 본인 스스로 그 한계속에 갇혀계시군요.
그걸 해탈했기 때문에 부처라고 한답니다.
꼭 기적을 베풀고 신이라 자처해야만 믿는 건 수준이 좀 낮은 단계라고
보여집니다.
더구나 깨달음을 개념화 하시는데 깨달음이란 이론적인 것 아니죠.나아가
도를 깨닫지도 않은 사람이 깨달음의 세계를 어찌 알며 상대가 깨달았는지 안 깨달았는지를 어찌 알겠소. 기독교도 지식구원이라는 게 있지요. 불교에서도 구두선이라 하는데 교리상으로 교리문답만 달달 외면 소도 말도 다 구원받았다고 깨달았다고 떠들고다니는 게 그런 거겠죠. 한마디 더하면 법등불 자등불法燈佛 自燈佛 기독교에서도 말씀과 성령외엔 가르칠 스승이 없다잖아요. 이제부터는 진리 보고믿지 사람보고 믿지 마십시오.




박진숙(silk7855)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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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안테나가 꺼졌다고 표현한 것에 불쾌하셨다면
>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 다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예수의 마음으로
> 바라보는 훈련이 덜 되신 듯하여....
>
> 나도 님과 같은 의견을 가진 울나라 기독교의 문젯점을
>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
> 우리 조상님들의 훌륭한 선비 정신이 있었기에
> 우리 민족이 우수한 민족이 될 수 있었다는 것도 잘 알지요.
>
> 동아시아 문화권에 있는 민족들이 훌륭한 사상가들이 많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유식하고 교육열도 치열합니다.
>
> 그러나 그 서양신이 서양 사람들만의 신이 아니라는 거지요.
> 예수님이 오셨을 때 로마에는 이미 플라톤,소크라테스 ,아리스토 텔레스, 등등 우월한그리스
> 철학자 ,수학자,들이 많은 사상과 철학이 번창하던 때 박학 다식한 이곳으로 오셨어요.
>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 그 나라가 지배하는 때에 더는 무슨 사상과 철학이 더 필요해서 예수님이 나셨을까요?
> 그분이 십자가에 죽음으로 이방인인 우리에게 까지 십자가 사랑을 전해졌잖아요.
> 그사랑은 땅의 사랑이 아닌 인간으로서는 할수도 없는 원수를 향해 몸을 내어주는 지극한 사랑 이지요.
> 조상님들의 철학은 우리의 인격을 업그레이드 시켜 성인 군자가 되기까지는 하지만 영원한 생명의 안식처인 그곳으로 인도하지는 못하잖아요.
>
> 그리고 깨달아 부처가 된다는 가르침은 훌륭한 철학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 그러나 대오각성하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부처가 되면 더는 오욕칠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육신을 지닌 사람이 된다는 건가요.
>
>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는 데 중생이 깨달아 부처가 되고나면,
>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밥벌이를 하기위해 사투를 하게 되지요.
>
> 이과정에서 억울한일 ,분노 좌절 사기를 당하거나 할 때도 부처로서 전혀 흔들림이 없는 건가요?
>
> 깨달음 충만할땐 부처가 되겠지만 깨달음 소멸 또는 상실같은 세상사 번민 번뇌에 사로 잡힐 텐데 그때도 부처로서의 깨달음은 여전히 유효한 건가요?
>
> 깨달음을 지속하기 위해 생업을 버리고 수도승처럼 벽면 수도한다면 현실 도피 아닌가요? 이론은 그럴 듯한데....
>
> 얼마전에 어느 주지스님들이 룸싸롱 호텔에서 수억원대의 도박판을 벌인 일이 있었지요. 이 스님들도 한때는 깨달음 충만한 부처 일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 그들이 불교 대학을 나오고 스펙 만으로 주지가 되진 않았을 거라구요.
> 육신의 쾌락을 제어할 절제의 브레이크가 고장난 탓인데
> 깨달아 부처가 된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그죄책감은 어케 되는 건가요?
>
> 대자대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용서해 주시는 건 아니고 업보라고 무거운 형벌을 짊어지게 할텐데 그무거움은 어찌하지요.
>
> "부처가 되긴 쉬워도 부처를 유지하긴 어려워라 "(꽃이 피긴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정호승시처럼)
>
>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깨닫고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할땐 부처였다가 "닭이 울기전에 나를 세번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경고에도 십자가에 달리실 주님을 세번 부인 했는데
>
> 베드로가 깨달을 땐 부처였다가 예수님 배신 때릴 땐 짐승으로 윤회하거나 형벌이 기다려야 하는 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또 고기잡는 베드로 찿아갑니다.
> 그리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십니다.
>
> 어느 사랑이 더큰가요?
>
> 큰 빛을 발견한 사람은 사소한 빛에는 그리 관심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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