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 할 줄 아는 사람
각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은 그 가치가 부를 갖는 소유에 있는 것 보다 존재 가치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가치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존재의 가치도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적의 의한 원칙도 또한 따르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세우시고 둘째 계명을 주신 말씀으로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은 영원불변이 되는 하나님의 법으로 정하신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목적대로 살게 하신 것은 존재의 가치가 상승되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각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달란트가 있습니다. 그 달란트는 첫째 각 사람마다 좋아 하는가? 둘째 바르고 올 바른가? 셋째 잘 할 수가 있는가?
하는 이 세 가지의 대한 문답으로 달란트를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그 첫째는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 바르고 옳은 것으로 받아드리는 행실을 잘 할 수 있는가 하는 문답으로 주신 달란트가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첫째 계명을 주셨습니다. 둘째 계명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달란트로 주신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되는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둘째는 그와 같으니 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달란트로 주신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좋아하고 올바르게 잘하게 하신 것은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좋아하지도 않고 올바르게 알지도 못하여 잘 하지도 못하는 사람은 오직 세상으로부터 부여받는 달란트를 받아 간직하고 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으로부터 달란트를 화려하게 받았다 하여도 다시금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달란트를 간절히 소망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세상으로부터 얻는 달란트를 화려하게 받았어도 다 배설물 같이 여기고 다시금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달란트를 다시 받기 위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늘에 상을 받기 위하여 다시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사도 바울도 돌이키기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한 괴수 이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 모두가 마음이 애통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달란트를 부여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때입니다.
마태복음 5:4~5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시편 37:34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
시편 37: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시편 37:22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
시편 37:29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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