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대학생 시절에 순종과 사명으로 13살 많은 같은 과 지도교수님과 결혼 후, 방황하는 다음세대를 살리는 <김진희 교감>
꿈조경민
2024.08.22
조회 473
23살, 대학생 시절에 순종과 사명으로 13살 많은 같은 과 지도교수님과 결혼 후, 방황하는 다음세대를 살리는 <김진희 교감>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 팔공산에 있는 기독교 대안학교 '꿈꾸는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간사로 섬기고 있는 21살 조경민입니다.
기독교 대안학교인 '꿈꾸는 음악학교'의 교감선생님이신 김진희 교감 선생님을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 신청합니다.
제가 김진희 교감선생님을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 신청한 이유는 선생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 사명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함께 동행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누고자 출연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1. 김진희 교감선생님의 어린시절
수의사이며, 청송교도소 재소자를 대상으로 교정사역하시는 김신웅 장로님의 둘째 딸이다. 장로님은 주로 흉악범을 대상으로 상담 및 전도를 하셨으며 출감 후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재소자들을 거처를 마련하기까지 장로님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하셨다. 그러한 환경 가운데 자연스럽게 김진희 선생님도 출소자분들과 함께 지내셨다. 선생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자들을 보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셨다.

(+선생님의 아버지 김신웅 장로님은 40여년 전에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신 이후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교정 사역을 지금까지 하고 계신다. 김신웅 장로님은 '날마다 교도소로 출근하는 수의사' 라는 책을 출간하셨다. 김신웅 장로님은 김태촌, 조세형, 신창원 등 흉악범 대상으로 교정 사역을 하셨다.)

*재소자들과 함께 동거동락하며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ex) 유치원 시절 선생님께서 조폭 범죄자들 문신에 색칠하고, 글을 가르쳤다.
'명문교회' 담임이신 이덕진 목사님은 김진희 선생님의 중학교 선생님이셨고, '소망교도소' 소장을 역임하신 박효진 장로님은 김진희 선생님의 주일학교 교사이셨다.

2. 김진희 교감선생님의 대학시절& 결혼
김진희 선생님은 고등학생 2학년 때부터 작곡 공부를 하셔서 계명대 음악대학 작곡과에 진학하셨다. 당시 계명대 작곡 외래교수로 출강하고 계시던 김상신 선생님 (현재 꿈꾸는 음악학교 교장, 꿈꾸는 교회 담임목사)과 23살이 되던 1996년 2월에 결혼하셨다.

김상신 선생님은 고등학생 때 작곡 입시 선생님이셨다. 이후 대학 시절에도 사제지간으로 계속 만나게 되었다. 입학한 대학교에 교장선생님이 강사로 출강 중이 었고 또 많은 음악활동(고아원 봉사 등)으로 두분께서는 자연스럽게 접점이 많아졌다.

*에피소드-(교감선생님의 결혼 기도와 순종, 장로님의 결혼 허락, 교감선생님이 결혼 1년전 꾸신 꿈)
1)교감선생님의 결혼 기도
무척산 기도원에서 1주일 금식 기도를 통하여 확신을 얻고 결혼에 대해 응답 받으셨다.

2)장로님의 결혼 허락
무척산 기도원에서 응답을 받고,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자 말씀 드렸는데 남자친구의 베풀고 나누고 섬기는 것이 일상이 돼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들어 결혼을 허락했다.

3) 교감선생님이 결혼 1년전 꾸신 꿈
교감선생님은 출석하고 계시던 대구 동부교회 여성 중창 단원이셨는데 꿈에 결혼식을 하는 중 여성 중창단이 축가를 부르고 있는데 본인은 없으셨다.
선생님 본인은 신부의 위치에 있으셨고, 축가를 받으시는 중이셨던 것이다.


3. 교감선생님의 어린 시절 꿈& 신혼의 어려움&고난의 시간들
교감선생님의 청년 시절 꿈은 젊은 나이에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그렇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대학시절 결혼하게 하셨고
시댁에서 시집 살이를 하게 하셨다. 23살 어린 며느리는 결벽증이 심한 시어머니와 몸이 편찮으신 시아버지를 모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남편은 성가대 지휘자로, 안수집사로 열심히 다녔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해 혈기가 왕성했다 .이로 인해 가정에서는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하여 자녀들에게는 강압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교육을 시켰다. 결국 역효과로 자녀들은 하나님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또 결혼해보니 남편에게 많은 빚이 있었다. (빚을 3년만에 갚는 과정들) 이런 환경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교감선생님의 그릇을 넓혀 가셨다.

->계속된 고난의 시간들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기도함으로 나아가셨다.

*고난의 시간들 에피소드
1) 남편은 상의 없이 이사를 결정하고, 문을 닫은 학원을 인수하고 운영하게 하였고 그 학원이 번창하였을 때 남편은 상의도 없이 학원을 매매하였다.
남편은 대학 입시 음악전문을 차려서 입시학원을 운영하였는데, 그때부터 하나님은 중,고등생들(다음세대)을 만나게 하신거 같다.

2)시어머니가 암에 걸려 간병을 하면서 하나님이 교감선생님 깊은 마음속에 있던 우울증을 드러나게 하셨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중 폐에 구멍 3개가 있다는 걸 알게 하시고 담임 목사님의 기도로 낫게 하셨다. 그로 인해 영육간의 강건함을 얻게 되었다. 또 이때부터 사제지간으로 시작된 부부사이가 정상적인 부부로 회복되었다. 이후 남편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고, 기도의 사람 눈물의 사람이 되었다. 변화된 남편에게 하나님께서 에스겔 37장의 마른뼈 환상을 보게 하셨다.

기도하던 중 환상을 본 남편은 다음세대를 살리기 위해 무조건 기독 대안학교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교감선생님께서는 학교를 하기 싫으셨다. 잘나가는 입시학원 운영을 통한 안락함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4. 반복되는 실패들 (경남 합천으로 대안학교 이전, 빚을 갚는 과정들)

남편이 시내에 있는 한 건물을 보고와서, 계약금을 달라고 하셨다. 교감선생님은 대안학교에 대한 비전이 없었기 때문에 '만약 대안학교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제 돈 말고 다른 사람이 계약금 200만원 들고 오면 하나님 뜻인줄 알겠습니다.'라고 기도하였다. 그런데 갓 결혼한 제자가 늦은 밤 21시에 축의금 중 남은 200만원을 가지고 옴으로써 대안학교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버텼는데, 그로 인해 교감선생님은 고열에 시달리셨다. 그리고 새벽기도, 밤기도를 꾸준히 나가셨던 중이셨지만 기도의 자리에 나가면 하나님이 학교를 하라고 하실까봐 기도를 나가시지 않으셨다. 고열이 3일째 날 때 죽을거 같이 아프셨다. 하나님께 학교를 하겠다 순종하니 고열이 내려갔다.

방황하는 다음세대를 다른 세대가 아닌 믿음의 세대로 세우는 사명을 받은 남편은 그러한 학생들을 품고 2012년 2월14일 꿈꾸는학교를 개교하였다. 꿈꾸는학교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피난처로, 환난 당한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여들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예를 들면 기숙사에서 점호 시간이 지난 후 학교를 탈출하여 시내를 배외하다가 오토바이를 훔쳐 무면허로 운행하다 경찰에게 불시검문 당하여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선생님께 연락이 오는 등 쉽지 않은 시간이 4,5년간 지속되었다. 한 달에 1000만원 정도의 적자가 났지만 교감 선생님의 개인 사업(방과후 교사)으로 적자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경남 합천으로 학교 이전하려고 했는데, 교감선생님은 이전을 반대하셨다. 결국 교감선생님께서는 혼자 6개월 동안 원래 학교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혼자서 텅 빈 학교에 계신던 중 갑자기 1층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은 하나님께 “이 소리가 무슨 소리인가요”라고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곧 아이들이 이 곳으로 돌아온다”라고 응답해주셨다. 그래서 6개월만에 아이들이 원래 학교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4억이라는 빚과 함께 돌아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꿈꾸는학교’는 ‘꿈꾸는음악학교’로 특성화 되었다. 합천의 이전 그리고 돌아오는 그 기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남편을 낮추시고 연단시키는 과정이었다.


5. 팔공산 꿈꾸는 음악학교
어느날 대구 팔공산에 있는 ‘달구벌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달구벌 고등학교의 별관이 비어 있으니 이전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시어 2017년 이전하게 되었다. 대구 팔공산은 2000여개의 유명 사찰들과 암자 및 신당, 산당, 굿당 등이 있는 귀신 천국이었다. 팔공산은 전국 무당들이 1년에 한번씩 신내림 받으러 오는 유명한 산이다. 꿈꾸는 음악학교가 이곳으로 이전한다 했을 때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다. 꿈꾸는 음악학교 바로 옆에 큰 사찰과, 사찰요양원이 있었다. 그래서 서로가 영적 전쟁이 심했는데 꿈꾸는 음악학교 아이들이 뜨겁게 기도하여 그 결과로 사찰과 요양원이 망하였다.

*꿈꾸는 음악학교에 대한 소개

꿈꾸는 음악학교의 교훈은 '여호와를 경외하라'이며, 매일 1교시를 예배로 드림으로 예배에 목숨을 거는 학교이다.

꿈꾸는음악학교는 방황하는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의 모든 해답을 찾는다라고 가르치는 학교이다. 꿈꾸는음악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가고 이를 통해 회복되어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 교회의 다음세대가 죽어가고 있다. 앞으로 청소년들은 마약과 싸워야 할 시대에 살 것이다. 현재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청소년들도 일주일에 한 번 교회를 나올 뿐이지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아이들을 찾긴 힘들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계속 가게되면 유럽의 교회처럼 교회가 술집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이 교장선생님께 보여주신 것처럼 이 땅에 청소년들은 마른뼈와 같은 존재이다. 누군가는 이 마른뼈와 같은 청소년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교감선생님은 영혼을 살리고 제자를 세우는 사명에 인생을 거셨다.
선생님은 인생을 하나님께 던지니 너무 행복하다고 하셨다.

*교감선생님께 보여주신 환상
꿈꾸는학교 시절 건반 하나와 기타, 드럼 뿐이었을 때 기도중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셨다. 많은 청소년들이 있고 아둘람 찬양팀이 집회 인도를 하고 있었는데 수많은 아이들이 손들고 은혜 받는 장면을 보여주셨다. 그 환상이 현실이 되어 현재 꿈꾸는음악학교 아둘람워십이 온 교회를 깨우는 찬양팀으로 여름과 겨울에, 또 주일 오후예배 사역으로 잠들어 있는 교회를 깨우며 집회를 다니고 있다. 또 지금은 국내를 다니고 있지만 머잖아 온 열방을 다니게 될 것이다.

*꿈학 졸업생 스토리
- 자페 2급 피아노 전공생 이야기
초창기 졸업생 중 자폐 2급 학생이 있었다. 초반기 그 학생은 창문을 두드리며 혼자 노는 친구였고 첫 피아노 레슨을 하기까지 아주 오랜 기간이 걸렸다 (레슨때 피아노에 손 얹기 까지 30분 넘게 걸림) 자폐 특성상 낯을 많이 가리는데 교감선생님은 포기하지 않고 기도와 사랑으로 품어주었다. 교감선생님은 그 학생을 위해 “하나님 이 친구가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연주를 많이 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연주자가 되게 해주세요”라는 내용으로 기도했다. 현재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셔서 지금은 꿈꾸는음악학교 졸업생 중 누구보다 연주 활동을 많이하고 TV에도 출연하는 연주가로 활동하고 있다.

- 캄보디아 선교사 자녀 이야기
캄보디아 선교사 자녀로 캄보디아에서 10여년 지내면서 많은 힘든 일들을 겪어야만 했다. 부모님이 너무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에 대한 분노가 생겼다. 그래서 20살이 되면 교회를 안나갈거라고 깊은 다짐을 하였으나 꿈꾸는음악학교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로, 학교 간사, 아둘람워십의 리더로 함께 사역하고 있다.


6. 2025년 이전 예정, 새로운 군위 캠퍼스
교장선생님이 이제는 학교를 이전할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시면서 계속 기도하며 알아보던 중 최근에 대구광역시로 편입된 군위에 좋은 장소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교감선생님이 꾸신 꿈 이야기
- 교감선생님께서 20년 전 학원이 잘되던 때 어느날 꿈을 꿨다.(선생님은 꿈을 잘 안꾸심) 피아노 학원 원장이셨던 선생님이 큰 나무가있는 학교 운동장을 보고 있었고. 같이 일하던 학원 선생님이 교감선생님을 보고 '교감선생님 저 먼저 갈게요' 라고 말함 (학원을 운영할 때) 그 학원 선생님도 그 꿈 얘기를 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계심, 그 선생님은 현재 목사님의 사모님이시며 꿈꾸는 음악학교의 학부모시고. 일반학교 음악선생님이셨다가 지금은 장학사가 되셨다.

주일 오후에 꿈꾸는교회 전교인이 군위에 있는 이전 예정지에 방문했다. 오래된 폐교임에도 불구하고 음산하지 않았다. 꿈에서 봤던 동상같은 공덕비가 있었는데 그것도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곳이 맞다면 계약금을 주세요” 계약금은 1억 3천만원이었다. 다음주 금요 기도회에서 졸업생 학부모님이 큰 은혜를 받으셔서 계약금을 헌금해 주심으로 계약을 하게 되었다.

교감선생님이 10년 동안 기도한 것이 있는데 “하나님 지금 저희 꿈꾸는음악학교는 임대로 운영 해오고 있지만, 남편이 온유하게 되면 그 때 주의 길로 가 목사가 되게 하시고 땅을 기업으로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 기도가 응답이 되어 군위에 이전지를 허락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계약 이후 또 한가지 기도하신 것은 “다음세대를 주의 군사로 키워내는 훈련의 장소이자 학교를 허락하여 주시고 정말 예쁜 학교를 지울 수 있게 멋진 설계사를 만날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것이었다. 지난 2023년 아둘람워십이 오병이어라는 수련회에 찬양팀으로 섬기던 중 그 곳에서 광야아트센터 음향 담당 최종민 대표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음향 대표님으로만 활동하시는 줄 알고 있었지만 대표님은 건축 업체 대표직도 맡고 계셨다. 그 분이 우리 학교를 도와주시고 싶다고 연락이 오셔서 그 분이 현재 우리 학교 건축 설계를 담당해주시고 계시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응답이셨다.

현재 저희 꿈꾸는음악학교는 더 큰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곳에 ‘꿈꾸는마을’ 이라는 이름으로 더 큰 캠퍼스를 형성하는 것은 물론, 다채로운 문화사역과 나눔사역을 펼쳐갈 공간들까지 이루어내는 것이 저희 학교의 비전입니다. ‘새롭게하소서‘를 통해 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믿음의 다음세대를 세우는 귀한 일에 동참해주기를 바랍니다. 땅에 상급을 쌓지 말고 하늘에 상급을 쌓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