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자의 하나님
꿈을 꾸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잠언29장18절말씀)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두 번 떨어지고, 결국 난 공교육이 아닌 대안교육으로 진로의 방향을 정했다. 가난한 형편에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기약도 없는 고시 공부를 하면서 나의 젊음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내가 입사한 학교는 경북 김천에 있는 위드림학교이다. 가출, 절도, 임신, 게임중독, 학교폭력 등 다양한 삶의 굴곡이 있는 40여명의 중고학생들이 모여 아가피아 독서교육을 중심으로 검정고시를 하는 학교였다. 기독교 대안학교다 보니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서 큐티로 하루를 시작하였고, 수요일에는 수요예배, 금요일에는 금요기도회가 있었으며, 주일 오전예배와 저녁예배는 무조건 참석해야 했다. 교사라기보다는 사역자처럼 그렇게 20대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렸다.
100만원의 박봉이었지만 첫 예물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렸고, 십일조를 뺀 나머지 돈으로 생활하였다.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힘들었던 시간이었지만, 돌아보면 물질에 자유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나를 드리고 내 삶을 맡기는 귀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워낙 생활이 어렵다 보니 1년이 지나고 함께 입사했던 교사들이 모두 퇴사했다. 학교 운영에 있어서 리더십의 우유부단함과 불명확한 회계행정이 문제가 되었다. 마음이 어렵고 힘든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다.
‘하나님 어떻게 하지요? 함께 했던 교사들이 모두 떠나갑니다. 마음이 어렵고 힘듭니다. 맡겨진 아이들만 보고 마음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이 가라고 할 때까지 저는 있겠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시편 46편 10절의 말씀을 찬양을 통해 음성으로 들려주셨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열방과 세계 가운데 주가 높임을 받으리라’
어려운 순간이었지만 나를 이곳에 보내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자리를 지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아이들을 만나고 수업하고 상담하고 놀아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난 주임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중간 리더십으로 교장선생님과 교사들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했다. 계획에 의한 학사일정과 투명한 회계처리를 위해 힘썼다. 또한 교사들의 복지와 처우 개선을 위해서 노력하였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학교를 세워 가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소명개발교육원 신동열목사님을 초빙하여 수업으로 아이들의 소명과 진로에 대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수업을 마치고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모셔다드리는 차 안에서 목사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오선생님은 어떤 소명을 가지고 계신가요? 아이들을 보면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어요. 선생님은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수업 때 아이들하고 했던 비전선언문을 기도하면서 작성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생님을 더 크게 사용하실 거에요. 선생님은 충분한 그릇이 되십니다. 저도 기도할게요.”
어떠한 교사가 될지, 그리고 10년 뒤 난 어떤 모습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 날 저녁, 난 비전선언문을 작성했다. 이 땅의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교사, 말씀 앞에 정직한 교사, 기도하며 눈물로 아이들을 기다려 주는 교사. 그리고 이 꿈을 이루기 위해 10년 뒤 나이 사십에 난 나만의 학교를 설립해서 투명하고 깨끗하게 운영하는 멋진 교장이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예쁜 종이에 출력해서 코딩하고 책상 앞에 붙여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꿈이 생겼다. 하나님이 주신 꿈. 외롭고 힘들었지만 꿈을 꿀 수 있어서 행복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늘 자기 전에 기도하며 10년 뒤 학교를 운영할 나를 상상했다.
중보기도의 힘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태복음18장19절말씀)
결혼을 하게 되면 학교에서 약속한 처우가 있었다. 관사와 급여의 인상이었다. 하지만 학교 재정의 어려움으로 말이 계속 바뀌고, 난 학교를 퇴사하기로 결심했다. 결혼에 대한 재정적인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학교의 이야기만 믿고 결혼 날짜를 잡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나님은 내가 가정을 꾸리기에 앞서 준비하기를 원하셨다. 단순히 물질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어떤 가장으로 어떤 부모로 가정을 세워나갈지를 생각하게 하셨다. 결혼하기까지 5개월정도의 시간이 있어서, 새벽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나의 결혼과 다음 근무지를 놓고 기도하였다.
학교 앞에는 작은 시골 교회가 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하고 6시에 학교로 돌아와서 큐티를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작정 새벽기도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계속 새벽을 깨우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첫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학교 앞 교회가 새벽 예배를 하는 줄 알았는데, 교회 문만 열려있고 예배는 없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어차피 골방에서도 기도하는데, 마음을 다잡고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나의 답답함을 토로했다. 결혼이 두렵기도 하고 새로운 학교를 찾는것도 염려되었다. 얼마나 내 삶이 원망스러웠는지 모른다.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텐데, 차라리 조금 더 고생하더라도 임용고사를 합격해서 더 축복받는 결혼을 하면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았을텐데’ 등등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화나게 했다. 울며 하나님께 나를 드렸다.
한참 기도 중에 눈앞에 무언가 아른거려 눈을 뜨니 새하얀 옷을 입은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순간 나는 천사인 줄 알았다. 하얀 런닝에 사각팬티 차림의 아저씨 한 분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머리에 양쪽 팔은 문신을 했고 인상도 험상궂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님이셨다. 청년 시절 동네에서 개망니로 살다가 뒤늦게 하나님을 만나고 신학을 공부해서 고향으로 내려오셨다고 했다. 2년정도 되었는데 마을에 성도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예배는 근처 장애인시설에 계시는 분들이 오셔서 드리는 것이 전부였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강대상 아래에서 전기장판을 깔고 밤중 내내 기도하며 등록 성도 1명을 위해서 기도한지 1년 만에 내가 왔다고 하시면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시골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목사님은 나의 새로운 직장과 신혼집을 위해서 새벽에 만나서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구하였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중보기도의 힘을 경험했다. 힘이 났고, 기대가 생겼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다음 학교를 찾았고, 기도 한 달 만에 일산에 있는 한국기독국제학교에 기숙사 사감으로 학교를 정할 수 있었다. 지금도 하나님께 가끔 물어보지만 영어 한마디 못하는 내가 어떻게 국제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는지 하나님의 은혜이다.난 기도의 응답이고 중보기도의 힘이라고 믿는다. 내가 미처 구하지 못한 기도의 제목까지 하나님이 아시고 중보자들을 통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예비하신 길을 인도하셨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출애굽기9장5절말씀)
기숙사 사감은 참 재미있었다. 기숙형 대안학교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보니 어려움 없이 빨리 적응했다. 다만, 수업으로 아이들을 만날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계속 기도하며 때를 기다렸다.
‘하나님 다 좋은데 그래도 교사라면 수업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일이든 할 테니깐 제발 수업 좀 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교실에서 수업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들이 정말 부러웠다. 몰래 창문 밖으로 교사의 수업을 엿보기도 하고, 아이들의 반응을 창문 너머로 들으면서 수업에 대한 외로움을 달랬다. 틈날 때마다 국어와 중국어 수업을 연구하고 수업안을 작성하며 내가 만나야 될 아이들을 기대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나와 함께 하실 거라는 믿음도 서서히 지쳐갈 때쯤, 와이프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 사감으로 낮과 밤이 바뀐 생활 속에 출산을 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기도하며 하나님이 보여주신 길이었는데, 4개월 만에 다시 염려가 찾아왔다.
수업도 안하고 있었던 터라 나는 하나님의 시그널이라고 믿고 다른 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학기 중이라 새로운 교사를 뽑는 곳은 없었다. 수업에 대한 마음이 컸던 때라 난 이직을 결심하고 사표를 들고 교장실로 향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겠지. 하나님만 믿습니다.’
그런데 문득 교장실 문 앞에서 사임이 아니라 ‘보직변경을 요청드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의 마음이었다.
‘하나님 저의 입술을 주장하여 주시고 교장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여서 보직이 변경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무것도 없이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일산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셔야지요.’ 간절한 마음으로 교장선생님을 면담하였다.
“교장선생님, 와이프가 임신을 해서요. 제가 사감으로 일을 하는 것은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사감 빼고는 다 하겠습니다. 청소든, 운전이든 낮 근무로 보직을 변경해 주시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어떻게 안될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간곡히 부탁을 드렸다.
교장선생님은 당황한 얼굴로 나의 얼굴을 쳐다보며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5분가량 침묵 속에 계속 서 있었다. 교직원을 선발할 때 학벌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라 지방대학 출신에 영어가 안되는 나를 사감이 아닌 다른 보직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운영 효용차원에서 상당한 모험이며 리스크를 안고 가야되는 부분이었다.
“미친놈.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임신을 빨리해서 학교를 힘들게 해? 마침 행정실장이 공석이니깐 내일부터 보직 옮기고 원어민들 행정관리는 자네가 해. 틈틈이 영어 공부하면서 학생들 만날 준비도 하고, 기숙사 사감 구할 때까지는 힘들어도 같이 겸업하면서 신경 안 쓰이게 해 알았어? 나가봐.”
꿈의 사람 요셉이 생각났다. 창세기 41장 39절에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었던 요셉은 명철과 지혜로 노예에서 총리가 되었다. 만약 사표부터 내밀었다면 아마도 바로 퇴사 처리가 되었을 것이다. 문제 앞에 기도하며, 하나님께 내 문제를 맡겨드리니 하나님이 해결해 주셨다.
행정일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일이 많았다. 꼼꼼한 내 성격과 잘 맞아서 자료를 잘 정리하고 구분하면서 학교 행정의 기틀을 잡아갔다. 또한 국어와 중국어 수업도 개설하여 수업으로 아이들을 만났다. 하루를 정말 바쁘게 보냈다. 그렇게 난 단시간에 국제학교에 적응하였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교장, 교무부장 다음으로 높은 위치에 올라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훈련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앓이라.” (로마서5장3절-4절)
학교가 성장하고 학생 수가 늘어나게 되면서 더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 시간이 될 때마다 땅을 보러 다니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을 찾아 다녔다. 은행별로 지점장들을 만나며 대출도 알아봐야 했고, 행정서류도 준비해야 했다. 인테리어와 이사문제도 계획을 세우고 동시다발적으로 학교 이전을 준비했다,
학교 건물을 이전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기존에 임대하여 사용했던 건물의 건물주가 사전에 구두계약을 문제 삼아 자동 연장하게 되어 2년 동안 월세가 발생하니 보증금 1억 5천을 돌려 줄 수 없다는 내용을 학교로 보내왔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을 맡았다. 법적으로 논란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최악의 경우 학교가 감당해야 되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학교를 이전하고 대출을 많이 받았던 터라 문제가 될 경우, 새롭게 이전한 학교도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었다. 변호사를 고용하였지만, 결정은 나의 몫이었다. 세 번의 조정 때마다 교장선생님은 결정을 나에게 미루었다.
최종결정의 순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지혜를 주세요. 제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으로 해결되게 해 주세요. 분명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면 제가 책임져야 할 텐데 하나님 도와주세요. 저의 결정이 아닌 하나님의 결정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않는 곳으로 합의를 보고 합의서에 사인을 했다. 다음날 리더십 회의에서 이 내용을 보고하였고, 결국 난 평교사로 좌천되어 책임을 져야 했다. 이 일로 나는 마음의 큰 상처와 병이 생겼다. 하나님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기도할 때마다 예배할 때마다 왜 내가 법정 다툼에 대리인으로 나가야 했는지 그리고 책임져야 했는지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때 욥기 말씀을 많이 묵상했던 것 같다. 욥기를 통해 욥이 위기 가운데 어떻게 승리했는지 묵상하였다. 읽고 또 읽고 이해되지 않는 나의 상황을 욥에 대입시켜 하루하루 버텼다. 감사하게도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동료들이 있었다. 스쿨버스 장로님, 주방 권사님, 기도해 주는 선후배 교사들이 있어서 마음을 잘 지켜나갈 수 있었다.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시편32편8절말슴)
이사 나온 건물에 다른 국제학교가 들어왔다. 500M거리에 비슷한 국제학교가 두 개가 생긴 것이다. 새로운 학교의 간판이 올라 간 그 날, 난 학교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났다. 그리고 일반 학교 기관제 교사로 자리를 옮겼다. 대안 교육기관의 다양한 청소년들은 많이 만나왔지만, 일반학교 경험은 처음이었다. 긴장되고 설레고 내가 꿈꿨던 자리였기에 기뻤다.
하지만 실상 수업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만나보니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30명 가까이 되는 교실에 내 수업을 듣는 친구는 고작 3명밖에 없었다. 잠을 자거나, 영어수학 문제를 풀거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설계하고 만들어 갔던 나로서는 너무 치욕스럽고 당황스러웠다.
전체 교실을 돌아다니며 다른 수업도 확인해보니 별 차이가 없었다. 일산에서 그나마 인문계로 공부를 한다는 학교였는데 씁쓸한 마음이 컸다. 학교를 출근하는 게 힘들었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나 자신에게 제일 많이 물어봤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교회 중고등부 아이들과 1박 2일 수련회를 하게 되었다.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고 있었는데 저녁 집회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찬양과 말씀을 통해 정말 많이 울었던 집회였다. 하나님과의 약속이 떠 올랐다. 가난하고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위한 비전과 소명을 주셨는데, 난 평안한 자리와 돈을 더 사모했던 것이다. 기도하며 나의 진로를 고민하다가 짧은 두 달의 기관제교사를 마치고 계약을 포기한 체 다시 대안학교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처음부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이사야30장26절말씀)
학교를 알아보던 때라 시간이 많이 남았다. 집에서 할 것도 없고 틈틈이 교회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교회에서 예배하며 기도하며 지난날 교만했던 나의 마음을 회개하고 상처받고 아팠던 마음들을 돌아보며 회복해갔다. 미래가 불투명하여 불안했지만, 하나님께 내 삶을 전적으로 드리기로 하고 새로운 학교를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에 파주 적성에 위치한 시골 대안학교로 출근하게 되었다. 집에서 차로 1시간이상 걸리는 곳으로 군부대가 바로 옆에 있어서 수업 중에도 포탄 소리와 총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학교에는 아픈 친구들이 많았다. ADHD, 조현병, 조울증, 분노조절장애 등 내가 처음 경험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수업 진행에 어려움이 있었다.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치료와 관련된 논문이며 책들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지식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것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보는 교사가 되기를 원하셨다. 마음의 회복이 먼저 되어야 배움도 할 수 있다는 것과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성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때 우리 가족의 가장 큰 기도 제목은 맞벌이로 인해 한별이가 늦게까지 어린이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제일 큰 걱정이었다. 아침 7시에 어린이집에 가서 밤 8시쯤 찾아오는 것이 아이에게 넘 죄스러웠다. 아내도 일을 하기 시작했던 터라 고민이 깊어가면서 다시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집과 가까운 학교로 다시 옮겨주세요. 급여, 근무시간 모두 신경 쓰지 않을게요. 가까운 곳으로만 보내 주세요. 한별이가 넘 힘들어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다. 주변에 중보기도를 부탁하고 본격적으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며칠 뒤 1년 전 학교 건물 소송으로 법정에서 보증금반환을 놓고 싸웠던 건물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법정 싸움으로 인해 책임을 지고 퇴사를 했던 터라 좋은 감정은 아니었지만, 왠지 한번은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일을 정해 만났다.
이 건물주는 100억 자산가로 자수성가했는데 건물이 통째로 비워지게 되면서 결국 본인이 국제학교를 인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교육과 관련하여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지금 있는 교장과 교감이 자신을 무시해서 자기가 자리 잡을 때까지 함께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정중히 거절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마음에 앙금이 여전히 있었던 것 같다. 그 사이 우리 부부는 서로 지쳐갔다. 한별이가 집에 오면 거의 밤 9시가 넘었고, 씻고 자면 10시에 반복되는 일상들이 힘들었다. 누가 우리 애를 봐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양가 부모님에게 부탁드리기도 어려운 상황에 육아는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하나님 이거 기도 응답 맞죠? 그런데 왜 자꾸 저는 마음이 힘들까요? 하나님 우리 가정을 하나님 두 손에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그 길을 저에게 보여주세요. 제 마음에 확신이 들도록 그런 음성을 들려주세요.’
며칠이 지나니 거절을 부탁한 것이 후회로 밀려왔다. 기도의 응답이었는데 내 감정이 앞서서 거절했다고 생각하니 가족에게 더욱 미안했다. 기도할 때마다 마음은 참 평안했는데, 그때뿐 이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오면 불안하고 걱정되고 염려되었다. 지금까지 인도하셨던 것처럼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을 기대하며 아내와 기도하였다.
그리고 한 달 뒤 또 다시 건물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다니는 학교보다 더 높은 연봉에 직책, 그리고 자유로운 출퇴근을 보장할테니 8월말까지 마무리를 하고 학교로 오라는 것이었다.
난 두 번째 부탁도 거절했다. 하나님께 기도했고 기도의 제목에 모두 부합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하나님.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라면 제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을 보여주세요.’
다음날 막무가내로 학교에 찾아온 건물주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네가 학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네. 만약 자네가 조정에 합의하지 않았다면, 결과론적으로 학교는 최악의 리스크를 감당해야 했네. 그때 자네의 선택은 옳은 결정이야. 오랜 시간 자네를 옆에서 지켜봤네. 내가 사업을 하면서 누군가를 세 번 찾아와서 부탁한 건 처음이야. 자네가 나를 뒤에 두고 학교를 운영해 보는 건 어떻겠나? 나에게는 일머리를 아는 사람이 필요하네. 나와 함께 학교를 새롭게 만들어 보세.”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었던 상처들이 한 번에 회복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구한 것보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 그렇게 하나님은 나를 다시 국제학교로 보내셨고, 학교를 운영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약속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히브리서6장14절말씀)
다시 국제학교로 돌아왔다. 교무부장을 2년하고 교감 자리에 올랐다. 이사장(건물주)은 나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영어가 부족한 나에게 이중언어를 하는 교포선생님을 통역으로 쓸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고, 학교의 성장을 위해서는 어떠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차츰차츰 학교는 성장했고 30명의 학생이 120명으로 순식간에 늘어났다. 초기 5명이던 교사들은 20명 가까이 증원되었고 5년의 시간동안 학교는 새롭게 성장해갔다. 내 돈을 들이지 않고 실제로 학교를 운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섭게 일했던 기억이 난다. 잠을 자면서도 잠꼬대로 학생과 상담하고 부모와 전화통화를 할 정도로 학교에 푹 빠져 있었다.
비전선언문의 약속이 거의 이루어져 가는 것 같았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교사, 말씀 앞에 정직한 교사, 기도하며 눈물로 아이들을 기다려 주는 교사. 그리고 이 꿈을 이루기 위해 10년 뒤 나이 사십에 난 나만의 학교를 설립해서 투명하고 깨끗하게 운영하는 멋진 교장’
매일 상상했던 나의 학교를 더 빠른 시기에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 마음에 교만이 찾아왔다. 기도하지 않고 나의 경험을 더 의지했으며, 예배드리지 않고 물질과 환경을 더 사모했다. 하나님의 방법보다는 세상의 방법으로 타협하며 점점 괴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교사들을 만나는 것도 부모들을 만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없이 정신없이 달려온 결과였다.
‘하나님 쉬고 싶어요. 넘 지치고 무기력합니다. 쉬고 싶어요. 쉬고 싶어요.’ 기도할 때마다 쉬고 싶다는 말이 입버릇처럼 나왔다. 스트레스로 인해 불면증이 왔다. 허리가 아프면서 며칠 집 밖을 못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지쳐갔다.
학교를 다니면서 이직 준비를 했다. 파주에 6개의 학원을 관리하는 부원장 자리가 나서 학교에 사표를 내고 퇴사를 했다. 일주일 정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아내에게 온전히 일주일을 쉴 수 있도록 부탁을 하고 그날 밤부터 나를 위한 시간으로 보냈다.
사표를 쓴 그날, 심야 영화를 보았다.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핸드폰을 켰는데 장문의 문자가 와 있었다. 학원 내부사정으로 인해서 입사가 취소되었다는 문자였다. 구두상 합의한 계약이었기에 계약서도 없었다.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또 다시 불안하고 걱정과 염려가 찾아왔다. 밤 11시에 갈 곳도 없고 무작정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불 꺼진 호수공원을 그냥 걸었다.
‘하나님. 뭐죠? 학원으로 인도하셨던 거 아니에요? 이제 내 사업하라고 예비해 둔 길 아니냐구요? 하나님 약속하신 거잖아요.’
묻고 또 물었다. 오랜만에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이었다. 한 시간쯤 걸었을 때, 마음속 깊은 곳에 뜨거움이 올라왔다.
‘상종아, 쉬고 싶다며, 너 맨날 기도할 때 나보고 쉬게 해달라며..쉬어라..그냥 쉬어.”
한번도 온전히 쉬어본 적 없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마음 한켠에는 늘 나의 계획과 나의 방법이 먼저였다. 그런 나를 하나님은 더 낮은 자리로 보내셨고, 당신을 더 찾고 신뢰하게 하셨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마태복은 6잘 26절말씀으로 위로해주셨다. 하나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며 두 손 드는 순간이었다.
‘그래 쉬자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지. 만나와 메추라기로 광야 40년을 굶주리지 않게 하셨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안식년을 주셨다. 건강을 돌아보게 하셨고, 전체적인 삶을 돌아보게 하셨다. 신앙을 점검하게 하셨고, 가정을 돌아보게 하셨다. 6개월의 시간 동안 정말 잘 쉬었다. 하나님이 왜 쉼을 주셨는지 깨닫고 하나님을 더 신뢰하는 시간이었다.
실업급여를 받는 6개월 안에 난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또 다시 기도가 시작되었다.
‘하나님. 이제는 정말 학교는 아닌거 같아요. 다른 경험을 하고 싶습니다. 저의 경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세요.’
실업급여 종료 1주일을 앞두고 강남에 위치한 다문화 사단법인에 입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린도전서2장9절말씀)
면접을 볼 때의 일이다. 정말 특이한 면접이라 의아했다. 면접관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외워보라고 하였다. 눈을 감고 천천히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외웠다. 그리고 제일 자신 있는 찬양을 1절만 불러 달라고 요청하였다. 나는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이라는 찬양을 손뼉치면서 찬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혈액형을 물어보았다. 난 O형이라고 답했다. 그렇게 면접이 끝났다. 이상했고 신기했다. 무엇보다 회사 출입구 쪽에 신앙서적이 10건 비치돼 있었는데 6개월 쉬면서 읽었던 신앙 서적 6건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합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다문화학교를 건립하는 일에 원서를 썼는데 다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고 기독교와 관련된 질문만 받았던 것 같다.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합격통보를 받았다. 도대체 어떤 회사이기에 이렇게 면접을 보는지 의심스렀지만 믿음으로 출근하였다.
알고 보니 재단의 이사장은 여의도순복음교회 권사로 일주일에 한번 반드시 예배를 드리고 다문화 사역이 교회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의 전문성보다는 충직한 기독교인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이사장님을 처음 대면하였을 때, 이 재단을 위해서 통성으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셔서 그 자리에서 재단과 이사장님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하였다. 밤마다 부르짖어 기도한 효과를 톡톡히 보는 순간이었다. 어쩜 이렇게 기도를 잘하는지 내가 봐도 흐뭇할 정도였으니 듣는 사람은 더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난 마지막 시험도 통과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님 이제 학교는 안 갑니다. 교장도 안 합니다. 여기에서 다문화 사역에 집중할게요.’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재활용을 쓰레기를 버리는 날. 10년 가까이 수업교재로 활용한 교재와 노트들을 모두 버렸다. 오랜시간 책상에 붙여놓고 기도했던 비전선언문이 보였다.학교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했고, 연줄이 있어야 했고, 나를 믿고 보내야 되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있어야 했는데 난 아무것도 없었다. 비전선언문을 버리면서 학교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내 주제에 무슨 학교 설립이야. 교장하려면 박사 학위도 받아야 하고 어느 정도 사회적인 지위도 있어야 하고 지금까지 온 것도 하나님 은혜지. 상종아 더는 욕심이다.’
처음으로 나는 교사가 아니라 과장으로 출근했다. 오과장이라는 직함이 참 어색했지만 이내 적응했다. 다문화 사단법인에서 내가 맡은 일은 1년에 5억 가까운 예산을 계획하고 주무관청인 여성가족부와 조율하여 행정일을 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또한 법인의 정관과 운영회의 등 실무적인 일도 도맡아서 했는데 처음 하는 일이라 재미나게 배워가며 일을 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예배 시간도 좋았고, 유명한 목사님들의 얼굴을 직접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학교에 있을 때는 계획만 세우고 집행은 행정실에서 모두 처리하였기에 사실 행정과 관련된 일들은 너무 부족했는데 엑셀을 배우고 행정처리 시스템을 직접 배우는 시간이었다. 1년 반 동안 내가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났다. 연예인, 국회의원, 목사님, 대학총장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좁은 시야를 넓히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문화 아이들을 만날 기회도 많았는데 피부색과 언어는 다르지만, 한국에서 다양한 편견과 싸워가며 자신들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이었다. 포천, 양주일대에 정말 많은 다문화인이 있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국 정착과 자녀들의 진로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새롭게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보는데 가슴이 뛰었다. 다시 아이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이들을 직접 도울 수 있을지 정책도 보고 지원사업도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지역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지만, 홍보의 부족으로 인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친구들이 적어서 직접 만나 연계하여 상담과 교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주었다.
하나님의 은혜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창세기37장6절말씀)
내가 일했던 사단법인은 재단법인으로 더 큰 목적사업을 수행하기 원했다. 법인에서는 행정사를 고용해서 재단법인으로 승인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주무관청인 여성가족부는 코로나로 인해 2년간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장 무리해서 재단법인으로 가기보다는 목적사업을 충실히 수행하기를 원했고, 최종적으로 재단법인 승인은 불허되었다. 재단법인 승인의 책임자였던 나는, 또 한번 사표를 써야 했다.
어느덧 나이는 사십이 되었고,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던 중에 영등포에 위치한 미디어 예술학교인 꿈이룸학교에서 나를 불렀다. 신생학교다 보니 학교의 체계를 잡을 경력교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학교의 행정 기틀을 세우고 외부사업을 운영하면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다양한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며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꿈이룸학교에서의 2년은 지난 15년의 교육경험을 돌아보고 다시 재정비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리더십을 도와 학교의 기틀을 잡고 부족한 것을 세워나가는 시간이었다.
6년간 일하셨던 교장선생님께서 영등포 청소년 상담복지센터로 자리를 옮기시면서 교장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법인 내규에 따르면 기관의 장이 공석일 경우 외부공모를 통해 투명하게 경쟁하여 선발하는데 한 달의 시간 동안 복잡한 절차를 진행해야 했다. 1차는 지원자의 5배수로 서류 통과자를 선발하고 2차는 3배수의 면접자를 통과하여 3차에 최종 1인을 선발하는 규정이었다.
2022년 12월 15일에 급하게 공석이 생기면서 15일 안에 새로운 교장을 임면해야 했다. 2023년부터 주무관청이 서울시에서 서울시교육청으로 변경되면서 15일 안에 교장을 세우지 못하면 서울시교육청에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내규대로 하자니 일정이 맞지 않았고, 외부에서 초빙하여 일정을 맞춘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는 상황에서
내부 승진으로 결정하여 내가 교장으로 추대되었다. 카톨릭 법인의 특성상 만장일치가 되어야 교장으로 재가가 나는데 교육경력과 꿈이룸학교에서의 2년의 근무평가를 인정받아 교장으로 임면을 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참 놀라웠다. 나를 위해 내규도 바꾸시고, 주무관청도 바꾸시고,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셔서 나를 리더로 세우신 하나님. 난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임을 안다.
2022년 12월 31일 난 교장이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만 나이 통일정책으로 인해 비전선언문에 작성한 40살에 정확하게 꿈을 이루었다. 서울시 교육청에 등록된 대안학교 58개 중에 최연소 교장으로 학교를 운영하며 가난한 청소년들의 교육복지와 꿈을 응원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창세기20장2절-3절)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일생을 보면, 참 많은 위로와 힘을 얻는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하나님은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셨다. 많은 기적과 역사를 보이셨지만, 여전히 지금도 믿음이 약해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앞에 온전히 나를 드리지 못할 때가 많다.
‘상종아,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이 너랑 똑같단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좌절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다시금 일어나서 세상 가운데 승리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단다.’하나님은 믿음의 가정을 주셨고, 기도하는 아내를 주셨다. 중보하는 공동체를 주셨으며, 기독교 학교에서 일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게 하셨다. 청년시절 2년의 시간을 매일 같이 경건의 시간으로 보내게 하시고,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셨다. 기숙사사감으로 행정직원으로 학생부장으로 교무부장으로 교감으로 다양한 보직에서 일하게 하시고 훈련 시키셨다. 사고뭉치 아이들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 치료와 치유가 필요한 아이들, 외국인, 다문화 자녀들까지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게 하셨다. 또한 다양한 직업군의 부모들을 만나게 하셨고, 어떻게 응대하며 상담해야 하는지도 배우게 하셨다. 주무관청별로 어떻게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예산을 받아서 운용해야 되는지 경험하게 해 주셨다. 5천만원부터 5억까지 단계별로 재정을 맡아서 투명하고 깨끗하게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훈련 시키셨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늘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넘어질 때마다 나를 일으켜 주셨으며 나의 궁핍함을 아시고 늘 좋은 길로 안전한 길로 인도해 주셨다. 10년전, 어느날 밤에 나에게 주셨던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주셨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할 때 하나님은 나의 손을 들어주셨다. 지금까지 나를 지키시고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아이들을 위해서 부모들을 위해서 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겸손히 섬기는 교장이 되기를 다짐한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난하고 힘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며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아멘.
낮은자의 하나님 - 하나님의 때의 꿈을 이루시는 기적의 역사
비회원
2024.04.15
조회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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