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기도응답을 받고 인생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사랑의예언
2024.11.07
조회 55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버지니아 주 패어팩스 카운티에 거주하는 홍 아리엘입니다. 저는 올해 8월부터 미국 패어팩스 카운티의 공립학교인 South County Middle School 스패셜 에듀케이션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학교안에 기도모임을 만들고, 수업시간에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새롭게 하소서' 를 통해 더 많은 분들께 전하고 싶습니다.

*출연신청을 하며 간략한 간증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1) 2007년 10월 31일 새벽예배를 마친 후 기도할때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무속신앙을 믿고 둘째 언니가 무당인 집안인지라 믿음의 뿌리가 약했던 저는 제대로 된 신앙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의지할 곳이 없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혼자 살아갈 길이 막막하고 어려움에 처해있던 저는 생전 안 가던 새벽기도회에 가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만약 제 아버지이고 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전지전능하다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나의 인생을 바꿔 달라고 매일 울며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정말 응답해주실꺼란 생각은 하지 못했었습니다. 기도를 제대로 할 줄도 모르던 저는 8개월간 매일 새벽에 "내가 어떻게 살길 바라세요?" 라는 말만 반복하며 울었습니다. 2007년 10월 31일 새벽 예배를 마친 후 하나님께서 제게 찰나의 순간에 나의 지나온 시간을 영화필름처럼 보여 주시고 한 마디 음성이 마음속에 들렸습니다. "국제 컨벤션 기획사다". 저는 그 순간 너무 놀라서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근처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국제 컨벤션 기획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횡단보도에 서서 파란 불이 켜지길 기다리며 하늘을 보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하나님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께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체험한 그날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저는 하나님을 매일 매일 더욱 사랑하길 원하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2)2007년 12월28일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국제 컨벤션 기획사가 무슨 직업인지 알지 못했던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날부터 이 직업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일본이나 미국에 가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큰 컨벤션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니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1월에 열리는 전시회였습니다. 그당시 나는 여권은 있었지만 미국 비자는 없었는데 미국 비자가 잘 나오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특히, 아이의 아빠가 소천하시고 없는 상태에서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 하나를 데리고 미국에 방문하겠다는 아이엄마는 더 미국비자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친분이 있던 여행사에서마저 비자 대행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접 비자를 신청하고 인터뷰를 해서 미국 비자를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비행기표를 사야 하는데 연말이라 비행기표 가격이 비쌌습니다. 그때 여행사에 근무하는 지인이 연락이 와서 환불이 되지 않는 단체 티켓이 있는데 왕복 100만원에 살 수 있다고 사겠는지 물어봤습니다. 비자는 신청만 했지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환불되지 않는 비행기표를 사는 것은 제게는 모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확신이 있었기에 아들과 저의 비행기표 두장을 샀습니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며칠을 앞두고 비자가 나왔습니다. 제가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고, 믿음 없는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꿈을 꾸게 해 주셔서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저와 제 아들이 입을 크게 벌리고 서 있는데 손만 보이고 그 손이 우리 둘의 입 속에 초록색 리트머스 종이 같은 것을 넣어 주었습니다. 저는 그 꿈속의 종이가 무엇인지 몰랐고, 미국에 사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초록색이면 미국 영주권 색깔이 초록색이니 미국에서 살게 될꺼라는 암시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비행기표를 살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정말 미국에 와서 영주권을 받고 시민권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가 성경을 읽는데 갑자기 그 꿈이 생각났습니다. 영주권일수도 있지만, 그 꿈은 하늘나라 시민권을 주시는 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꿈이 눈에 선하게 떠오를때마다 하늘시민권자로 살아가는 기쁨에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3) 2010년 6월 친정어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저는 제 1회 북미주 미시즈 코리아로 입선하였습니다.
이 과정에 엄마의 구원 간증이 있습니다. 어느날 낮에 잠깐 졸았는데 꿈을 꾸었습니다. 한국에 계시는 친정어머니께서 조그만 보따리를 들고 택시에서 내려서 미국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며 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살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꿈에서 깨서 이게 무슨 꿈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내용은 나와 함께 살고 싶다고 미국에 와도 되냐는 것이었습니다. 친정어머니는 태어날때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이 태어나서 은진미륵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신 분이며, 평생 미신을 믿는 샤머니즘에 심취한 분이셨습니다. 교회에는 한번도 발을 들여 놓으신 적이 없으신 어머니가 미국에 오시게 되니 저는 전도를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다 출석하는 교회까지 어머니가 다니실만한 교회로 옮기고 어머니를 모시고 갔습니다. 어머니는 70세에 생애 처음 교회에 출석하신 후에 새신자를 환영하는 식사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딸 얼굴 한번 보고 죽을려고 왔는데,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죽지 말고 살아서 자식들 위해서 기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 그렇게 말씀하신 어머니는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2주만에 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2주간 함께 계시는 동안에 20킬로그램이상 살이 쪄 있는 저를 보고 놀라셔서 제발 살을 빼라고 성화를 하셔서 마침 신문에 난 제 1회 북미주 미시즈 코리아 선발대회 참여를 목표로 삼으면 살빼는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신청을 했습니다. 40일 정도의 기간에 17킬로그램을 감량했지만 대회에 출전한 분들은 20대 초 중반의 젊은 미시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회 당일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남편이 그래도 신청한 것이니 꼭 참석을 하기를 권했습니다. 대회에 가는 길에 저는 기도를 했습니다. 우습지만 "하나님 예쁜 사람들 다 집에 돌아가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대회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집에서 온 전화들을 받고 하나 둘씩 예쁜 사람들이 돌아갔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기도응답으로 저는 선이 되었습니다. 재밌는 에피소드라 자주 간증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도 응답해주실 줄 저는 몰랐지만, 정말 이루어주신 하나님 은혜로 저는 지금도 제 곁에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성령님의 임재를 매순간 느끼며 살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3) 2011년 3월 4일, 만 38세의 나이에 아들 셋을 집에 두고 미국 육군에 입대해서 RESERVE로 8년을 복무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잘 믿고 싶은데 믿음이 없으니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는 저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믿어질때까지 믿음을 부어주겠다" 는 약속을 지켜 주시며 일상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적들을 중요한 순간 순간마다 보여 주셨습니다. 만 38살의 나이에 미국 군대에 들어가는 과정에 온 교회가 아는 간증을 포함하여 그 외 그 간증들이 많습니다. 군대에 들어갈 당시 저는 중학생 세 아들의 엄마였고 미국에 온 지 3년이 될 무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아래 만 38살이던 제가 3월 4일에 군대 계약을 맺고 6월에 훈련소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 갑자기 3월 26일로 바뀌어서 곤란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해주셨는데 결국 저는 3월 26일에 군대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건강상의 이유로 2주 후에 다시 집으로 보내져서 6월 6일에 군대로 돌아오라는 명령서를 받고 돌아와보니, 4월 1일부터 군대 입대할 수 있는 나이가 만 35세로 바뀌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군대에 가는 것을 결정하게 된 계기도 하나님이 보여 주신 첫 환상이었고, 그때 믿음이 없던 저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게 맞다면 남편에게도 같은 말씀을 해 주시면 믿겠다고 했는데 이틀후에 남편에게 분명하게 제가 본 환상과 똑같은 지도를 보여 주셨습니다. 남편과 저는 하나님이 보여 주신 대로 미국 버지니아주로 이사를 와서 환상에서 본대로 군대에 가게 된 것입니다. 군대에서는 저의 별명이 '마마 홍' 이었습니다. 만 17세의 동료 병사가 자기 엄마와 나이가 같다고 마마홍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다른 친구들도 마마홍이라고 따라 불렀습니다. 내무반에서 9주간 함께 생활하는 동안 밤시간에 유일하게 불을 켤수 있는 화장실에서 성경을 읽고, 군대에서 보는 시험 공부를 했습니다. 화장실에서 성경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을 보게 된 군인들이 제게 와서 기도를 부탁하거나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교관들은 우리 내무반에서만 다툼이나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격려와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9주간의 훈련을 마칠 때는 팔굽혀펴기를 하나도 하지 못하던 제가 40개를 하고 만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이는 많고 영어는 못하는 동양인 아줌마라도 무시를 받지 않고 않고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4)2017년 10월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의 어린이부 전도사로 사역하는 중에 만난 예수전도단 하와이 코나 DTS 팀들을 보고 하와이 코나에 DTS 를 갔습니다. DTS를 마치고 유럽 아웃리치를 몇개월하면서 다음세대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DTS를 마친 후 바로 구세군교회의 청년부 전도사로 사역을 했습니다. 그때 코로나가 시작되어 마스크와 생필품과 식료품을 나누어주는 일들과 노숙자들을 돌보고 함께 일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코로나 초기에 코로나에 걸려 심하게 아픈 기간에 처음으로 코로나에 걸렸을때 셀프로 치료하는 방법에 대한 유튜브를 올렸습니다. 옷장안에서 마스크를 쓴채로 숨이 가쁜 상태로 15분짜리 유튜브를 핸드폰으로 올린 것이 저의 첫 유튜브 업로드 영상이 되었습니다. 그 후 코로나로 인한 합병증으로 하혈이 계속되어 건강상의 이유와 막내 아들의 홈스쿨링을 위해 교회 사역을 내려 놓고 온라인 선교사역을 하였습니다.

5)2021년 1월 GBS글로벌복음방송의 제작, 진행자가 되었습니다. ( GBS/스마트 선교사/인생약방)
온라인 선교사역으로는 GBS글로벌복음방송 라디오방송을 2021년 1월부터 제작,진행하고 있으며, 방송 사연을 모아 출판한 저서 '향기가 되어' (쿰란출판사) 가 2024년 3월 16일에 출간되었습니다.
2021년 9월에 FMnC 기술과학전문인 선교회에서 스마트선교사 훈련을 받고, 랜선 아웃리치를 (터키) 하고, 온라인 교육 컨퍼런스를 주관하고 치유와 회복, 성경교육을 위한 다양한 강의을 진행했습니다. (선교사 자녀 스피킹파트너 영어 매칭, 마더와이즈, 파더와이즈,성경적성교육, 선교사들을 위한 경제세미나 등등 )
온라인안에 챗팅방 인생약방을 개설하여 (2022.2. - 현재)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STS (별이 별에게) 를 코로나 기간에 2년간 운영하며 온라인 찬양예배와 선교사님들 자녀들의(탄자니아, 터키 등 10개국) 영어 교육을 지원했습니다.


6) 남편과 아들 넷 - 재혼 가정의 하나됨의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남편 박모세 전도사님과의 재혼으로 크리스찬과 좐은 3개월 차이로 첫째와 둘째가 되었고 셋째 대니엘과 막내 아브라함은 13년의 나이차가 납니다.
군대에서 훈련을 마칠 무렵 넷째 아브라함을 임신하였습니다. 이과정에도 간증이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자세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2년전에 하나님께서 이름을 먼저 주셨습니다.
남편에게 두 아들이 있었고, 제게 한명의 아들 그렇게 세 아들을 키우다가 우리 가정에 넷째 아들 아브라함을 주셨는데 모두 의좋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 27, 27, 26, 12 살인 크리스찬 좐 대니엘 아브라함 4형제와 우리 부부가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고 신생아일때 한겨울 새벽 40일 특새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하여 받은 트로피가 있습니다. 제가 전도사로 교회학교 사역과 여름캠프를 할때마다 아들들은 물론 며느리까지 함께 도와주었기 때문에 부족한 제가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저를 먼저 신학공부를 마치고 사역을 하도록 해 주었고, 지금 남편은 신학대학원 MDV 과정의 마지막 학기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다문화선교에 마음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7) 2024년 8월 미국 패어팩스 카운티 공립중학교의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2024년 4월 예일신학대학원 주최의 어린이,청소년 멘탈 컨퍼런스에 다녀오는 길에 참담한 학생들의 현실에 6시간을 울며 기도하며 내려왔습니다. 육체적 장애가 아닌, 정서적 장애와 학습 장애 학생들이 급속하게 늘고 있는 현실에서 크리스찬 영적 리더들이 무엇을 해야 할까 기도할때에 학교에서 다시 성경을 읽게 하고 기도하게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글로벌 모임 (예맘글로벌) 을 시작했습니다. 단 한가지 주제 자녀를 위한 기도를 하는 모임입니다. 막내 아들 아브라함의 가방에 성경을 넣어주고 학교에 가서 읽기를 권했습니다. 학교 현실을 더 잘 알기 위해서 학교의 SUB TEACHER 라는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이 직업은 한 학교에서 근무하지 않고 원하는 학교를 지원해서 매일 다른 학교를 갈수도 있고 원하는 날만 근무할 수 있는 유연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패어팩스 카운티에 있는 초중고등학교들을 돌아다니며 상황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는데 지금 근무하고 있는 사우스 카운티 미들스쿨 교감 선생님께 이메일이 왔습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라는 제안이었습니다. 교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대학원 교육비가 전액 지원되고 보아야 하는 테스트들이 마침 그달에 사라졌습니다. 그만큼 특수교육 교사 자리는 힘든 자리라 교사가 부족한 상황이고, 저의 이력서를 카운티 공식페이지에서 보고 연락을 해 온 것이었습니다. 올해 8월부터 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선생님들과 친분을 쌓아가며 기도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시작되는 두개의 기도모임이 앞으로 더 많은 숫자로 늘어나고 우리 학교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들까지 확산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의 간증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CBS 새롭게 하소서 의 제작진과 함께 하시는 분들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더 많은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믿음이 더하여지길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좋은 동역자로 함께 하시는 귀한 분들께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샬롬.



홍아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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