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새롭게 하소서 제작진 여러분
저는 미국 교포로 현재 뉴저지 밀알 동산 교회를 21살의 발달 자폐가 있는 아들과 함께 섬기고 있는 이한창이라고 합니다. 평소에 CBS의 '새롭게 하소서'를 미주 교포분들중에서 크리스찬들은 유튜브를 통해서 많이 신청하고 있고, 저도 그 사람들 중에 한명입니다. 저는 경남 하동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제사와 무당만 섬기는 가난한 농부집에 태어나 저가 5살되던 해에 아버님은 위암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홀로 7남매를 키우셨고, 저는 분교를 초등학교 때 다니다, 부산으로 이사를 해 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병무청에서 말단 국가 행정직 9급으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 국방일보에 요미우리 신문 장학생을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일본 정부가 과거사를 속죄하는 의미에서 장학금을 주면 그 돈으로 야간대학을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응모를 했는데, 알고 보니 일본에서 신문을 돌려야만 주는 일종의 근로 장학금이였습니다. 하지만, 차라리 한국에서 대학을 못 갈 거면 일본에서라도 대학을 신문을 돌리면서 갈 수 있다면야 하는 생각으로 1991년 동경으로 건너갔습니다. 집안에 기독교인이 없었지만, 저가 살고 있던 부산의 산동네 모퉁이에 작은 교회가 있었고, 저는 일본을 건너가기 바로 전날 생의 처음으로 교회를 찾아가 혼자 기도를 하며 저의 앞날을 지켜주시라면 혼자 텅빈 교회 예배당에서 기도를 하고 나왔습니다. 그것이 저와 하나님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 당시 무슨 마음으로 그 교회를 찾아갔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신문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독학으로 게이오 대학교 상대와 대학원을 졸업하며 7년을 보낸 후, 한국에 귀국하기 보다는 미국에 가서 저가 전공한 금융을 더 공부하고 가능하다면 월가에서 취업을 하고 싶은 젊은이로서의 욕심으로 1998년 미국 뉴욕으로 당시 IMF로 나라가 어려웠지만 학업을 하면서 조금씩 저축한 돈으로 미국유학을 시작해 맨하탄에서 NY Vocational School을 졸업한 후, 현재의 직장인 Bloomberg에서 애널리스트로 25년째 맨하탄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다보니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질 즈음에 하나님은 2살 위인 딸 다음에 얻은 아들에게 발달 자폐라는 장애 아들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현재 21살이지만, 인지 능력은 3살 정도로 아주 낮습니다. 교만한 저를 치실려고 그리고 세상의 어려운 가정, 장애를 가진 가정들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록 해 주실려고 주신 저의 아들을 통해 다시 하나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하면서 미국 내의 교포 가정중 장애 자녀를 둔 가정과 세계 여러곳의 선교지에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을 돕고 있는 귀한 사역을 하나님께서 평신도로서 허락해 주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현재, 카톡방을 "전미 장애 자녀 부모방" 모임을 만들어 방장으로서 미국의 한인 장애 자녀를 둔 800여명의 가정이 모여서 서로 정보 교환과 연방 정부에 저의 소수 민족이면서 소외되기 쉬운 저희와 같은 가정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 어려운 이민 환경이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서로 도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연대하고 있습니다.
저의 정상 자녀인 23살 딸은 어려서부터 외교관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 부터 아시아 타이거 아빠들처럼 언어교육을 열심히 시켜 현재 5개국어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대학을 진학할 때 즈음, 하루는 저에게 울먹이며 말하더군요. "아빠 내가 미국 외교관 되서 외국에 나가면, 엄마 아빠가 하늘나라 가고 난 다음에는 누가 돌봐?, 그래서 나 외교관 포기하고 특수 교육 전공할래.." 딸의 꿈이 저의 꿈이었는데, 그 딸의 말을 들을 때, 난생 처음으로 "원망"과 "기쁨"이 교차되는 미묘한 감정을 받았습니다. 딸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장애를 둔 남동생 때문에 딸이 꿈을 스스로 접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저 자신에 대한 원망,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남동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꿈까지도 포기하려는 딸의 성숙한 마음에 아버지로서 대견하고 기뻤습니다.
현재, 딸은 특수 교육을 전공한 후, 올 1월부터 미국 정부가 파견하는 평화봉사단 (Peace Corp)로 가난한 동유럽의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나라에 가서 2년간 의 계획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의 10의 1을 남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딸을 보면 부모로서 총기가 허락되는 그 나라에서의 생활에 걱정이 앞섰지만, 이런 도전을 선하시 하나님은 저의 딸과 우리를 향한 계획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아무리 성경책의 말씀을 말해도 인지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어떻게 하면 창조주 하나님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작년에는 아들과 함께 히말라야를 등반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인 저희가 저희를 위해 만드신 아름다운 설산을 보여주면서 아들에게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만드셨단다"라며, 산봉우리에서 찬송가 "주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함께 찬송했을 때 흘려던 뜨거운 눈물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보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함이었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37년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해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위와 연결해 튜빙을 하며 37년을 하나님만 의지하고 키우고 아들을 작년에 하늘 나라로 보낸 저의 이웃의 장애인 어머니가 40년 동안 한국을 가 본 적이 없었는데 겸사겸사 이번 4월 초에 그 분과 저의 아내와 아들 이렇게 한달 일정으로 고국을 방문합니다. 2주간은 저의 회사 서울 지사에서 근무하고 2주간은 모처럼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있을 예정입니다. 이 한국 체류기간에 기회가 닿아 CBS의 "새롭게 하소서" 에 출연이 가능하다면, 장애에 대한 차별, 소수 민족에 대한 편견등 인간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얼마나 축복을 많이 주신 하나님인지 함께 나누고 싶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온 저의 간증을 통해 좋으신 우리 하나님은 진정 살아계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거하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뉴저지에서 이한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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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골 분교에서 미국 월가로 인도해 주시며 장애 아들을 선물해 주신 하나님
이한창
20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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