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장교회 세습으로 쫓겨난 목사의 간증
예일
2025.02.07
조회 42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CBS 기독교 방송에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예일교회 담임목사 DANIEL.BAE(배왕건)목사입니다.
저의 간증을 제작하여 유튜부에서 소극 방송을 했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의 간증을 통하여 은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CBS새롭게 하소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의 병패 현상인 교회세습의 문제점과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직접경험한 장본인으로
저의 간증이 한국교회를 개혁하고 정화하는일에 용기를 내어서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검토후 방송을 삼가 부탁을 드립니다.
유튜부체널명 : 40번가의기적
간증했던링크: https://youtu.be/LJ6ngQkJ0og?si=74dt_RaQFS6AoR5X
사회자 : 안녕하세요? 저는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제1회 사회를 맡은 ○○○입니다.
코로나 시대에 교회 문화가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 예배를 드렸는데 코로나가 끝이 난 후에도 불구하고 교회 현장예배에 돌아오지 않는 성도님들이 70%나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코로나 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교회 안 나가!”, 가나안 교인들이 늘어 났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큼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유명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보다 일반성도들의 간증을 기독교인들이 더 많이 시청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목사님들의 신뢰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교육자이며 역사학자 신학자인 토인비는 “성경 말고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또 다른 길이 있다면 간증과 경험”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라는 새로운 간증 채널을 통해 코로나로 지치고 추락한 신앙을 되찾고 식은 신앙을 한층 더 끌어 올리는 은혜로운 방송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패널분을 두 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한영대학교 김윤제 (전)교수님과 국민대학교 사회교육원 한영실 교수님. 첫 번째 간증자로는 Daniel. BAE 목사님이십니다.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오늘은 목사님과 함께 간증을 나눠 보겠습니다
목사: 안녕하십니까? 예일 교회 담임목사 다니엘 배입니다
패널 1. 저는 유튜브 방송에서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를 검색하다가 목사님의 설교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일마다 시청하고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이 시대에 맞는 역동적인 설교입니다. 보통 목사님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설교와 달리 성경의 바탕 위에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에 따라 설교를 하시기에 들을수록 빠져들고 은혜가 됩니다. 사도 시대에 베드로의 기탄 없는 설교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사회자 : 아 이 시대에 새로운 설교자로 떠오르는 목사님이라 그런 뜻인가요?
지는 별이 있으면 떠오르는 별이 있다는 것입니다. 침체한 한국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인가요?
패널 1. : 네 그렇습니다.
사회자 : 오늘은 배 목사님의 간증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교수 : 저도 참 궁금합니다. 제가 권투를 좋아해서 권투경기를 자주 보거든요 아마추어는 링 위에 올라와서 온 힘을 다하여 싸우지만 5회까지 밖에 못가고 경기가 끝이 나지만 챔피언은 12회를 지구력 있게 끌고 가잖아요. 아니면 초반에 멋지게 K.O로 경기를 마무리 하거든요.
목사님은 연단과 훈련을 통하여 이미 한국교회에 새롭게 떠오르는 챔피언 목사님이 아닐까 생각이 되어 더욱 간증이 궁금해집니다.
사회자 : 목사님은 언제부터 신앙생활을 하셨습니까
목사 : 저는 모태 신앙입니다.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못된 신앙에 빠져 영원히 못 나오게 될 뻔 했습니다.
저희 할아버님 할머님께서 선교사님에 의하여 전도를 받았습니다.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불교신자였고 사찰을 건축하여 부처님께 봉양한 터라 예수 믿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 어떤 질병에 걸리셔서 굿도 해보고 병원에도 다녀보았지만 아무 효험이 없던 차에 감리교회 어떤 전도사님이 예수를 한번 믿어 보라고 선교사님을 모셔왔습니다. 그 선교사님께 방 한 칸을 내어 드리고 1년 동안 숙식을 제공하며 우리 가정을 주님께로 이끄셨습니다.
사회 :그래서 선교사님에 의하여 복음을 받아 들이게 되셨네요.
패널 1 : 신앙이 평소에 있던 것도 아닌데 선교사님을 집에 모시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것인데요. 목사님의 가정 형편이 넉넉했나요.
목사: 그건 아닙니다. 그때는 모두 살기가 어려운 시절입니다. 세월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선교사님을 보내셨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여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먹고
살기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콩 한 쪽도 나누자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후에 아버님이 교회의 장로, 어머니는 권사가 되셨고 마을의 90%를 전도하여 예수를 믿게 하였고 전도를 받았던 사람 중에는 대학교수 3명 장로 3명 목사 8명을 배출했습니다. 목사님들 중에는 중·대형 교회에서 목회를 잘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먹고 살기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콩 한쪽도 나누자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회자 : 목사님은 언제부터 주님을 영접하게 되셨습니까?
목사 : 그것이 알고 싶다 이 말이죠? 저는 사실 어릴 때부터 강압적인 기독교 교육에 짜증이 나고 싫었죠. 매일 저녁 1시간씩 가정예배를 드립니다. 주일날 주일학교를 안 가면 밥을 안 줍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4형제인데 누구 하나가 교회를 불출석하면 싸릿가지로 매를 맞았습니다. 항상 회초리가 5개 정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이면 교회에 간다고 하고 강가에서 놀았습니다. 그걸 그냥 넘어갈 리가 없죠. 아버님이 주일학교 선생님께 확인하고 매를 때렸습니다.
그건 그렇고요. 군대에 갔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해군본부에서 군대 생활을 했습니다. 함께 사관학교를 졸업한 동료 장교가 저에게 너무 잘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군에 있는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사실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 가톨릭 신부님과 토요일에 만나서 술 먹고 대화를 하였고 교회와 목사는 수준 이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OUC 기독장교회 모임에서 부흥 집회를 하니까 교회가 가자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갈 맘이 안 생겼습니다. 동기가 지금까지 잘 해주었으니까 한 번 가볼까 하다가 맘을 고쳐먹고 기왕에 교회를 가니까 주님을 어떻게든 만나 보자는 생각에 금식하기로 했습니다. 금식하면서 하나님을 한번 만나 보자 하여 금식후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강사로는 감리교회의 부흥강사인 최홍석 목사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죠 설교시간에는 항상 졸았고 안 졸려고 노트를 했는데 그때는 첫날부터 설교가 들어왔고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성경과 설교를 믿지 않았거든요?
사회자 : 여기서 잠깐 목사님께서 성경과 설교가 안 믿어지는 사연이 있었다고요. 목사님께서, 책을 많이 읽으셨다고 하셨는데 그것 때문에 설교가 안 들어 온 것이 아닐까요? 사도바울이 지식이 너를 망하게 했다고 한 것같이 저도 이해가 갑니다. 저도 설교를 들을 때 비교하고 분석을 하거든요 그냥 액면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판단을 하는 습관이 있거든요. 그런데 목사님은 어떻게 책을 많이 읽으셨나요.
목사 : 초등학교 때 서울에 계셨던 큰아버지께서 어느 날 책을 한 차를 싫어 다가 우리 집에 부려놓았습니다. 호기심이 많아 이책 저책 빼서 읽다가 중국무협소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너무 재미가 있어서 밥을 먹을 때도 책을 끼고 먹었습니다. 그때부터 집에 있는 책을 모조리 읽었고 사서삼경 논어 맹자 삼국지·전 세계대표작가가 쓴 책 등등 책을 읽다가 중학교 가서는 학교 앞 서점의 책의 90%를 읽었습니다. 우리 아버님께서 약국을 하셨는데 약학 전서 국어사전의 도배되는 책도 읽었습니다. 일은 안 하고 늙은이처럼 책만 읽는다고 아버님께서 책을 마당 위로 던진 적도 있습니다. 중학교 동문 중에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은 저하고 한 중학교 항해 선배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법원 공무원이 되었고 저는 대학교수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패널 1 : 약학 전서는 생소하고 딱딱할 텐데 그것을 뜻을 알고 읽었나요.
목사 : 뜻도 모르고 무조건 읽었습니다. 중국소설을 읽은 후에 책에 대하여 재미를 붙여서 그런지 호기심이 많아서 시간만 있으면 책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책들을 많이 읽었기에 성경은 소설책도 아닌 어떤 몽상가가 저술한 일 책으로 여겼기에 설교가 안 들어 왔단 것입니다. 지식이 천국 문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사회 : 아 이제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부흥 집회에 참여했을 때는 말씀이 들어왔다고 하셨습니다.
목사 : 네 그때는 부흥회를 1주일 동안 했습니다.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주님을 만나면 교회를 나갈 것이고 못 만나면 교회는 완전히 등지겠다는 각오를 한 거죠. 그래서 금식하면서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패널 1: 목사님 주님을 영접하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주님을 만나셨나요. 물론 쉽게 만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목사님같이 금식하면서 힘들게 만난 사람들도 있거든요.
목사님 궁금합니다.
목사 : 마지막 금요일이었습니다. 그 날이 D대이죠. 통성기도 하기 전에 말씀이 살아서 큰 글자가 되어 네 입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땅에 떨어질까 봐 꼼짝하지 않고 받아먹었습니다. 말씀을 듣는데 온몸에 빛이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강사 목사님께서 통성기도 하기 전에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만 인수하겠다고 하면서 역도 선수들이 메는 벨트를 매시고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금식을 했던 차라 기도할 기운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목이 터 저라 하고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서 다섯째 줄에 앉았기에 목사님의 안수가 차례가 안 왔습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있는데 목사님께서 지나가는 것이 보였고 목사님이 지나갈 때 이상한 바람 같은 것이 저에게 불어왔습니다. 구름같이 몰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몸이 떨리기 시작을 하였고 입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나왔습니다. 중국어 같기도 하고 영어 같기도 하고 저는 방언을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우리말이 안 나오고 방언이 터졌습니다. 손을 들었을 때는 강력한 힘이 왔습니다.
패널 1: 목사님의 그런 모습에 함께 간 친구도 놀랐겠네요.
목사 : 그 친구는 열심히만 다녔지 성령을 체험하지 못했기에 제가 걱정되었답니다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성령이 임하니까 500여 명의 장병이 다 빠져나가고 친구와 저만 남았습니다. 그때 저는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주님이 떠난 적이 없습니다.
김 교수 : 그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궁금합니다.
패널 1. 저도 궁금합니다.
목사 : 그때부터 전도자의 기를 가게 되었고 사병 부사관 장교 할 것 없이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중령 부인이 폐암 말기였는데 기도하니까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소문이 해군본부에 퍼져서 많은 군인이 상담을 왔고 군대가 아니라 교회로 변한 것입니다. 장성급들도 전도했습니다. 과장 중령이 기독교인인데 보직을 유지하고 한쪽에 상담사무실을 만들어주어 보직에 영향이 안가는 한도에서 상담과 전도사역을 하게 했습니다. 주 1회 이상을 전도와 상담 일로 외출을 했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찾아가 기도해주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다가 핍박도 많이 받았습니다.
사회자 : 신학은 언제 하시고 박사학위는 언제 받으셨나요.
목사 : 장교들은 위탁 교육을 받을 권한이 주어집니다. 대학원에 입학하여 신학. 교육학·지휘 세 코스를 공부했습니다. 신학은 내가 받은 은사와 성령이 맞는 것인지 알기 위하여서 했고 목사가 될 생각에 한 것은 아녔습니다. 지휘는 음악과 찬양을 좋아서 했고 교회 성가대 지휘를 하기 위해서 공부했고 교육학은 교수가 되려고 했습니다.
교수 : 한가지 전공도 쉽지 않은데 3가지씩 공부를 할 수가 있었나요.
목사 : 그때는 은혜를 받았기에 영적인 의욕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은혜를 받고 나니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사회 : 아 네 목사님은 모든 일에 열정이 있으셨습니다. 목사님들은 다방면에 알아야 하고 박식하여야 교회를 이끌고 갈 수가 있는 지도자가 될 수가 있다면 그것도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연단과 훈련과정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목사님께서 걸어오신 사연이 많아서 시간을 주려서 대화를 해보겠습니다.
고급장교로서 스타가 될 수 있는 길을 접고 대학교수로 빠졌다면서요.
목사 : 네 저는 아메리칸 문화에서 살았기에 군인이 체질에 맞지 않아서 대학교수로 빠졌습니다. 대학교수로 빠진 그것은 역시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후진을 양성하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니까 목사안수를 받을 자격이 주어져서 목사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교수 : 대부분에 목사님 같은 분들은 사관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별을 바라보고 군으로 은퇴를 하지잖아요. 다른 직업으로 전향하지는 않잖아요.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목사 : 저는 자유로운 영혼이라서 군대는 24시간 긴장입니다. 정신적으로 억눌립니다. 구속받고 긴장하고 매여 있어서 싫어서 좀 자유롭게 활동할 것이 없는가 하여 교수 되기 위해서 준비했고 결국 교수로 전향했습니다
사회 : 목사님께서는 은혜를 받으시고 해군에서 많은 사람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셨다면서요 하나님 나라에서는 전도가 가장 큰 상급이잖아요. 전도가 그렇게 쉽지 않잖아요. 어떻게 전도를 하셨나요.
목사 : 은혜를 받고 전도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도해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탔습니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전도를 생각하게 되었고 군대는 황금어장입니다. 계급 사회이고 군인들이 순수하여서 전도를 잘 받아들였습니다. 한 사람이 주님을 영접할 때 그 기쁨은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회: 목사님의 전도 열정도 주목을 받을 일이지만 교회를 11개를 세웠다면서요. 평생 깨우치게 하나를 주님께 드리기도 힘들 것인데 11개의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하셨다고요.
목사 : 은혜를 받고 전도하는 일과 교회 세우는 일은 구별이 안 되었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교회 하나를 세우는데 6개월에서 1년 걸렸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5-10명이 되면 교역자를 보시고 저는 또 다른 지역으로 가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때 세운 교회들이 오늘날까지 존재하고 부흥이 잘되고 있습니다.
교수 : 교회를 세우는 남다른 달란트가 있으신 것 같아요. 교회를 세울 때 만만치 않은 돈이 들 것인데요.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셨나요. 그리고 계속하여 교회를 세우실 건가요
목사 : 제가 좀 재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로 안보 강사로 수입이 있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스펀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세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은 나이가 들어 그럴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11번째 교회를 마지막으로 건축했습니다. 이제는 한 교회를 잘 섬기는 거로 더 교회를 세우지 않겠습니다.
패널 1. 목사님은 교회를 세울 때 가족이 반대하지 않았나요.
목사: 그것이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정신이 나갔다고 했습니다. 계속하니까 가족들이 지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짜자 없으셨습니다. 우리 자녀에게 엄청난 복을 주셨습니다. 제가 학원을 10년 했는데 학원에 물질을 쏟아부어 주셨고 하나님께서 상당한 물질을 주셔서 양주시 신도시 부근에 경관이 좋은 최고의 전원 마을에 성전을 건축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사회 : 목사님께서 안보 강사로 인기 강사였다면서요. 한동안 반공이 국시로 되었던 군사독재 시절이 있었죠. 그때는 안보와 소양은 초·중과 대학·육·해·공. 군 판·검사·민방위·회사 등 필수교육이었잖아요. 어떤 계기로 인기 안보 강사가 되었나요.
패널 1 : 목사님은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셨네요.
목사: 제가 군대 보직이 정훈이었습니다. 정훈장교들이 하는 것이 교육·정보·공보입니다. 이걸 나눈다면 안보·소양입니다. 그야말로 정신교육이죠. 대학교수로 보직을 바꾸는 과 동시에 안보 강사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있게 잘한다고 소문이 나니까 여러 계층에서 저를 불렀습니다. 황수관 박사가 신바람 건강강의로 히트했다면 저는 신바람 안보강의였죠 그런데 민선 대통령 김영삼 때 반공교육이 없어졌습니다. 그때부터 강의를 못 하게 되었습니다. 사법연수원에서 2년 동안 강의했습니다.
교수: 사법연수원 판검사들 말이죠.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셨겠네요.
목사 : 강의가 끝이 나야 밥을 먹었죠. 워낙 똑똑하고 명석한 계층이니까요
사회: 이제는 화제를 바꾸어 세습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 볼까요 한동안 한국의 기독교가 세습이 교계의 쟁점이 되었고 세습 때문에 한국교회가 피멍이 들었고 사회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습니다. 배 목사님께서 관련이 있는 목사님이시라고 하여 놀랐습니다. 목사님께서 한국의 장로교회를 대표하는 대형 교회에서 세습의 희생양이 되었다고요. 목사님의 신앙과 삶에 큰 충격적인 것을 경험했겠습니다. 세습을 법으로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습을 강행하여 교계와 사회에 비난을 자초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거든요.
교회가 하나님의 공교회가 아니고 개인의 사유 재산입니까? 명성교회 광림교회 임마누엘교회 왕성교회 충현교회 등등 내로라하는 교회들이 세습하지 않았습니까?
목사님께서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 가신 교회가 대형 교회였고 총회장을 역임한 교회였다면서요.
목사 : 네 총회장을 역임한 교회에 청빙 절차를 거쳐 갔습니다.
사회: 목사님께서 대형 교회에 가셔서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패널 1: 그러면 배 목사님께서 교회 세습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건가요. 사연을 직접 들어보고 싶습니다.
목사 : 14년 전 아기입니다. 14년 전에 장로교회에서 가장 큰 교단 총회장을 역임한 교회에 후임자 1순위로 선정이 되어갔습니다. 그 총회장님은 평상시 제가 연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존경했던 분입니다. 그런데도 세습의 단칼에 3개월 만에 쫓겨나가 된 것입니다.
이유인즉 총회장님 사위가 목사였는데 병원 원목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병원 냄새를 못 맡아 사역할 수가 없으니 저를 내보내고 사위를 후임자로 해달라는 사위 애절한 간청으로 사건이 발생이 되었습니다. 사위가 음모를 꾸민 거죠. 그리고 총회장님은 사위의 음모에 넘어간 거고 총회장님은 이미 담임목사의 절차를 거쳐서 왔기에 반대했죠. 그러나 사위는 매일같이 총회장 사모님을 찾아와 설득하였고 결국 목사님이 교회 설립자이기에 권한이 장로님과 교회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장 총회장님께 있었기에 장로님들이 반대한다고 되는 것은 저를 휴가를 보내고 장로님들과 야합하여 저를 해고한 겁니다
사회: 흘러가는 강물을 막은 격이네요. 선지자의 가는 길을 인간의 욕심으로 막았네요. 이런 일들이 교회에서 일어나는 흔한 현상일까요?
교인들에 의하여 투표하고 담임목사님을 청빙을 했다면 이를 그렇게 맘대로 뒤집을 수는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사회: 정치인들 같이 말을 뒤집고 약속을 파기하고 하는 것을 볼 때 교회도 정치판이네요. 교회도 불교에만 있는 이판사판이 존재하네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위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행태가 교회가 사유 재산인가요 교인들의 헌금으로 이루어진 교회라고 한다면 교회 설립자 맘대로 할 수가 있는 것은 아니고 공회의 의견을 딸 리야 되는 것이 아닌가요. 교화가 독재입니다. 교회가 사유 재산이라면 맘대로 할 수가 있을 것인데.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욕심에 의하여 저버려도 괜찮은 건가? 의구심이 갑니다.
목사 : 힘들게 일으킨 회사를 아무도 모르는 사람에게 주기보다는 친인척에게 주는 것이 났다는 세상의 논리를 따르지만, 북한 김정은의 세습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자세습으로 북한은 망한 것입니다. 독재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을 죽였잖아요. 교회세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대하는 수많은 교인을 교회에서 쫓아냅니다. 이것은 한 심령을 찬 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예수님의 정신에 반합니다.
사회: 설립자 목사님이 그만두라고 했다고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은 교인들이 반대할 수가 있잖아요 반대했다 할지라도 절대권력을 사위에게 물려 준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실까요? 교회가 밥벌이 수단인가요
목사 : 세습이 범죄라는 끔찍한 일이 발생을 했습니다.
패널 : 끔찍한 일이라면 어떤 일입니까
목사: 총회장이 사위를 합법화로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 구실을 만들었죠. 사위에게 20일 금식을 명하고 장로님들께 금식하니까 후임자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패널 : 1 담임자를 쫓아내고 사위가 교회 후임자로 오는 것을 위하여 금식한다면 그 금식기도가 주님께 합당한 금식일까요? 아니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이런 금식을 하라고 하나요 다른 교인들이 투표로 뽑은 목사를 거리로 내몰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일까요? 한국교회는 세습이라는 말기 암에 걸려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각증상을 못 느끼고 자성 능력도 상실한 것 같아요.
교수 : 고신대학교 손봉호 교수님은 한국교회는 세습의 진흙탕 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고 했고 세습은 범죄행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습으로 전도의 문이 막힐 거고 한국교회는 쇠퇴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인들도 반대하고 신학도들과 교수들과 교단에서도 반대했습니다. 교단 헌법은 세습을 금하고 있습니다. 세습을 금한 것은 세습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행위라고 할 수가 없는 상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습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 육체로 마치는 것이고 가룟 유다의 전 절을 받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회 : 저도 교수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목사님 그러면 사위가 후임자로 부임하는 것이 성공하였나요? 그리고 그 사위가 목회를 잘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목사 : 사위는 20일 금식을 채우지 못하고 15일 만에 돌연사한 것입니다.
패널 1. ; 정말 그것이 사실인가요? 하나님의 심판을 죽어서만 받는 거로 생각했는데 살아서 받았군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목사 : 이것이 교계에 뜨거운 감자가 되었고 총회장님의 명에는 땅에 떨어지고 부끄러운 퇴임이 된 것 조
사회 : 목사님은 억울하셨겠습니다. 교회가 어떤 대책을 세워주었나요. 총회장이니까 또 다른 교회 후임자로 보내준다든지
목사 : 아닙니다. 제가 총회장 교회에 가기 위하여 시무했던 교회에 후임자를 파송하고 저를 담임자로 오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회에서 나올 때 전별금과 퇴직금을 받지 않았습니다. 몸만 빠져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책을 세워주었어야 합니다. 총회장은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는 사람이라 자신은 퇴임하면서 교회로 부 상당한 금액의 퇴직금을 챙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후임자에겐 그 어떤 대책을 세우지 않았기에 저와 가족은 공중에 뜬 그것이 되었고 거리에 낳은 상황이 된 거죠. 저는 여기서 한국교회의 민낯과 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억울하고 분하여 밤잠을 자지 못하고 배신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셨습니다.
패널 :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셨다고 하셨는데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목사 : 후임자를 몰아낼 하만같이 음모를 꾸몄던 총회장 사위를 제거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증오가 풀렸고 총회장을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교수 : 회사에서 해고해도 해고 수당과 두 달 치 급여는 주던데요. 아무것도 없이 내보낸 것은 사랑을 외치는 참다운 교회라고 할 수가 없겠네요.
사회 : 목사님은 큰 상처를 받았겠습니다.
목사 : 저는 아버님이 장로님이고 어머니가 권사님이라 주의 종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참으로 부모님같이 섬겼습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변하여 배신의 칼을 뽑았을 때 실망했고 큰 상처를 받았고 한국교회의 원로목사들이 노욕이 생겨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고 있구나 하고 한국교회의 만났을 환하게 보였습니다. 그 후 터 한국교회의 목사들이 원로들이 강도로 보였습니다
한국대형교회와 목사들이 손바닥 안에 클로즈업되었습니다.
사회 : 그래서 충격을 받으시고 목회를 접으셨나요.
목사 : 다른 교회에서 청빙이 왔지만 사양하고 학원 복음화를 하기로 맘을 먹고 학원 복음화를 시작했습니다
사회 : 학원 복음화라니요. 어떤 것을 말씀하시나요.
목사 : 저는 어릴 때부터 악기를 접할 기회가 많아서 웬만한 악기를 다루었습니다. 그것이 달란트였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색소폰이라는 악기의 매력에 빠져서 프랑스까지 갔다가 왔습니다. 그런 후 대학교수를 하면서 음악을 부전공하며 음악학원을 시작하였습니다. 돈 벌려고 시작을 한 것은 아니고 전도하려고 시작을 했습니다. 전도하여 교회로 보내는 못자리 목회였습니다. 원생들에게 색소폰도 지도하고 전도하고요
사회 : 음악학원도 많고 음악인 재들이 좀 많지 않습니까 경쟁이 심하여 살아남기가 얼을 땐데 음악학원을 하셨나요.
목사 : 제 친구도 1억을 들여 음악학 운을 했는데 2년 만에 1억이 날아가고 빛만 졌습니다. 그런 것을 알고도 했습니다.
목사 : 지금은 양주시가 신도시가 되어 뒤집혔지만 9년 전만 하더라도 양주시 시골 변두리 역전주변에 학원을 시작했습니다. 모두 농경지가 대부분이고 수준이 안되어 색소폰을 배울 사람이 한정되었으니 시작을 말라고 주변에서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시작을 했습니다. 3개월 후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을 했고 25평에 연습실 8개에 연주실 1개가 고작 간판도 없이 현수막 한 장 걸고 3년을 했습니다. 월 60명씩 몰려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저보다 실력이 장장 한 연주자도 교수들도 많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시니까 가능했습니다.
교수 : 저도 목사님이 학원을 할 때 현장을 가보았습니다. 시설도 열악하고 학원 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확장을 시도하였고 3년 후 전문예술법인을 만들었고 6년이 지난 후 전국에 25개의 지부를 운영하는 대표가 된 것을 보고 놀았습니다. 배 교수님은 저를 가끔 이렇게 놀라게 합니다. 법인은 만든다고 하기에 법인은 꿈도 꾸지 말고 지부를 운영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교수들의 제2의 꿈이 법인을 만들어 교수 퇴임 후 또 다른 직업을 갔기를 원하는 거든요 그렇지만 법인을 만든다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관악기에는 하나밖에 없는 법인을 만드셨습니다.

사회 : 그렇게 힘들게 만든 생명 같은 법인이사장에서 물러나셨다고요
목사 : 재작년에 몰아닥친 연단의 한파로 미련 없이 던져버렸습니다. 후임에게 이사장 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사회 : 아 대단한 결단을 하셨네요. 목사님 이제는 분위기를 바꾸어서 교회로 화제를 돌려볼까요? 목회를 14년 동안 쉬고 있다가 2년 전에 목회로 돌아오셨다면서요.
교수 : 저도 목사님께서 뒤늦게 목회로 전환하신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을 건데 어떻게 돌아오시게 되었는데 궁금합니다
목사 : 저는 목회는 안 하고 전도만 하려고 했습네 하나님께서 제가 가는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길이 막혀서 더 갈 수가 없었고 하나님께서 저의 숨통을 조여왔기 때문에 항복했습니다.
교수: 요나같이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연단을 하셨네요? 사명이 있는 분들은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지 안 텐데요 무슨 일이 발생했나요.
목사 : 2019년에 정기건강검진을 하다가 의사의 실수로 위 천공이 되었습니다. 네 군데가 뚫렸습니다. 밥이든 물이든 먹을 수가 없었고 수액 링거에 의존했고 중환자실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의료사고로 수많은 사람이 죽지 않습니까? 진료한 병원은 나 몰라라 하고 다른 병원에서 응급상황이 되었습니다. 6개월 동안 지옥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몸무게가 15kg 빠졌습니다. 거기에다 공황장애와 우울증까지 왔습니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병원에서 퇴원하여 아침에 걷기로 했습니다. 걷다가 죽자 매일 아침 8시면 집을 나와서 개천을 걷는 것입니다. 걸으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데려가 주세요. 주님께 서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살려주시면 목회 길로 돌아가겠습니다.
사회: 목사님 위기 중에 주님께서 응답하셨습니까
목사: 네 살려줄 테니까 목회를 다시 하겠느냐? 그래서 아멘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나이에 개척은 못 합니다. 땅을 사서 교회를 건축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은 저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래 땅을 사서 건축하게 할 거니까 목회를 다시 할 거냐 라 '아멘'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목줄을 조이시기 때문에 더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교수: 그 무렵에 또 다른 목회자의 길이 열렸다면서요.
목사: 네 제가 출석하던 교회가 대형 교회였습니다. 무리한 대출로 교회건축을 하였었는데 이자를 갚지 못하여 경매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해당 노회는 그 교회가 이단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월 4천만 원의 이자를 대처해주는 사항이었습니다.
패널 1. 그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목사: 통합 측 교단교회로 동두천에서는 가장 큰 교회였습니다. 5천 명 정도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교회를 건축하면서 1000명 정도 남았습니다. 교회가 시험이 들면서 200명으로 교인들이 줄었고 경매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운영하던 학원에 그 교회의 장로님께서 출석했었습니다. 그 교회에 누구도 오려고 하는 목회자가 없었고 온다 할 지리도 채무를 감당할 수가 없는 최후의 경지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사회: 그러면 목사님께서 그 교회에 간다고 하셨나요.
목사: 네 제가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목숨을 걸고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장로님께 장로님들을 소집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 교회 가면 2년 안에 교회 채무를 따갑겠습니다 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장로님께서 결사반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오시면 고생하니까 맘을 접으라고 했습니다. 시무장로님 중에 한 분이 저를 잘 아시는 장로님이 계셨는데 그 장로님께 뒤늦게 들은 아기인데 그 장로님께 말씀했다면 그 일이 성사되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장로님께서 결사반대하여 일이 이루어지질 않았습니다
저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교회를 가려고 했지만 안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신 거죠
교수 : 그 일이 있고 두 달이 지난 후 좋은 소식이 왔다면서요.
목사 : 14년 전에 제가 목회를 하다가 접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저에게 자기 아들이 불치의 병에 걸렸었는데 안수기도를 받고 병이 나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후 꾸준하게 연락이 되었고 그 권사님의 지인이 위암 말기인데 병원에서 더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하니 목사님 기도해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위하여 3개월 동안 주 2회를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사회 : 기도의 효험이 있었나요.
패널 : 저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목사: 네 3개월 만에 깨끗하게 치료가 되었습니다. 기도를 받고 화장실을 갔는데 검은 암 덩어리들이 쏟아져나왔고 그 후 음식을 먹기 시작하셨고 병원 가서 검진을 받았는데 사방으로 퍼져있던 암들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사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암 환자의 치유와 교회와 어떤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목사: 네 어느 날 그 남편으로부터 한 통의 전회가 왔습니다. 저도 놀랐죠. 또다시 재발한 것이 아닌가 하고 그건 아니고 통장 계좌번호를 불러달라는 것입니다.
계좌번호는요? 자신의 부인같이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써달라고 돈을 조금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교회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헌금이라는 용어도 모르고 돈을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통장번호를 알려 주었습니다.
사회 : 씨를 뿌리고 거둘 때가 있나 봅니다. 얼마가 왔나요. 목사님께서 질병 중에 성전을 건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으니까 그 정도의 건축자금이 왔나요.
목사 : 방송이라 헌금의 금액을 밝히기는 좀 그렇습니다. 헌금한 분의 권익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땅을 살 정도의 금액입니다.
사회 : 땅을 살 정도의 금액이라 하면 상당한 금액이겠습니다.
목사 : 네 그렇습니다.
패널 : 네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하셨습니까 교회에다 공식적으로 헌금을 한 것도 아니고 목사님께 개인적으로 보냈으니까 돈의 권한은 목사님께 있었네요. 그 돈으로 무엇을 하셨나요.
목사 : 그 돈으로 무엇을 하겠으니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영혼을 구원하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쓰기로 하고 성전부지를 사들였습니다. 용지는 샀지만, 건축비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9년 동안 학원을 정리하고 살던 집 정리하고 모자라는 것은 대출받아 양주신도시 주변 전원주택지로 가장 주목받는 동산 위의 경관이 좋은 땅을 매입 사 작년 10월에 성전건축을 했습니다.
패널 1; 할렐루야입니다. 시험당했던 교회에 목숨 걸고 가시려고 했던 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또 다른 길로 인도하셨네요.
사회 : 그야말로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기도를 속히 응답하셨고 하나님께서 목회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사회 : 코로나 시대에 목사님은 교회를 건축하시고 중단없는 전진을 거듭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코로나 시대에 교회는 건축했다고 하지만 교인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사: 학원을 할 때도 학원생들과 함께 예배는 드렸습니다. 코로나와 관계없이 전도는 계속하였었고 전도가 된 학원생들이 주일 말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드리는데 한 번도 공무원들이 오지 않았고 신설 교회라 리스트에 뜨지 않았던 것 같아요. 코로나에 감염되어 고생하는 교인들도 없었습니다. 초심자 불신자들을 전도해서 그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사회 : 그러면 출석 교인이 얼마나 됩니까
목사 : 25명 정도 매 주일 출석합니다.
사회 : 목사님 코로나 시대에 급성장하는 교회입니다.
목사 : 아직 교회 성장 시스템을 계획은 했지만, 시스템을 적용하여 움직이지 못하고 준비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모든 매체를 가동하여서 한다면 교회는 성장하리라고 믿습니다.
교수 : 배 목사님은 교계에 알려진 신학자입니다. 그리고 대학교수입니다.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도 추진력과 도전정신과 창의력이 있어 다른 사람들이 못 하는 일들을 잘하시는 것 같아요. 상상력을 초월하는 일들이 발생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나 만들 수가 없는 전문예술법인을 만든다든지 60대가 넘어서 성전을 건축한다든지 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배 목사님은 준비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이 시대에 준비된 목사라고 생각합니다. 영어 실력도 대단합니다. 미국 강해 설교로 유명한 갈보리 체 풀 척 스미스 목사님께서 한국에 오셨을 때 배 목사님이 통역하셨습니다. 그때 저도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사회 : 목사님은 목회자 적인 인품을 소유한 분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일반 목사님들과 달리 요건과 교육계의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실은 그런 지성인들이 은혜를 받기는 어렵고 그런 경우도 없지 않습니까 화려했던 길에서 목회로 회전 포인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거든요.
목사님 또 다른 비밀의 간증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볼까요? 목사님께서 의료사고로 건강이 안 좋았다는데 목회를 하시는 데 지장이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건강해야 목회도 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목사 : 의료사고로 7개월 동안 고생을 했고 환난 중에 만날 도움이 되셨던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셨고 은혜가 오면서 건강이 차쯤 좋아졌고 위 천공도 다 낳았고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위암 환자가 고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아침에 낳았습니다. 지금은 건강하고 아픈 대는 없습니다
패널 : 사도바울의 경우 겸손하게 하시려고 가시는 남겨 두셨는데 목사님은 가시까지 거두어갔으니 교만해질 이유는 없겠습니다. 아픔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거두어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환난 중에 만나주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그것이 목사님의 가증이겠습니다.
사회 : 성경 욥기서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나오리라는 말씀같이 하나님께서 DANIEL. BAE 목사님을 이 시대를 위하여 연단을 시켰고 교회의 타락과 코로나로 침체한 한국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지렛대가 되고 목사님의 목회철학이 제3의 물결이 되어 한국교회의 부흥과 회복을 기대하면서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첫 번째 손님의 간증을 나누었습니다.
김윤제 교수님 간증이 어떠셨나요 ?
한영실 교수님 간증이 어떠셨나요 ?
오늘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첫 번째 손님으로 초대된 배 목사님 간증으로 많은 은헤를 받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영대학교 김윤제 교수님 국민대학교 한영실 교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