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에서 나를 살리시는 하나님, 이제는 찬양하며 시골 교회를 도우며 살아 가고 싶어요
덜룩이
2025.03.18
조회 41
안녕하세요. 저는 38살 남자 홍현민이라고 합니다. 일반 성도로 살다가 목사님 딸과 결혼하여, 목회자 가정이 되었는데 제 어렸을 때 이야기가 우여곡절이 많아 간증거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소개해드리고 싶고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사용하시려 계획이 있으시다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사연을 남기게 됩니다.

[희망이 없는 10대 이 집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하나님]
어렸을 때의 기억은 출장을 갔다가 1달에 한번 돌아오시는 아버지 그리고 그걸 기다리며 집 앞에 도로에서 주차 자리를 지키기 위해 엄마, 누나, 저와 돌아가면서 집 앞에 노상 주차 자리 경비를 했던 기억들이 많이 납니다. 행여 그 주차 자리를 뺏길 때면 아버지는 집에 와서 어머니께 뭐라 하시고 그리고 손찌검을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트럭을 몰고 스포츠 유통업을 했는데, 한번 출장을 가면 한달~두달정도 가셨고 생활비를 전혀 주지 않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아버지가 나갈 때는 길을 막고 "생활비를 주고 가라" "애들 두명을 돈 한푼 없이 어떻게 키우냐" 하면서 실랑이를 하였고 그때마다 싸움이 발생 하였습니다.
그렇게 돈을 안주고 출장을 가버리면 어머니께서는 저를 엎고 누나는 손을 잡고 돌아다니면서 공병을 주우면서 저희를 키우셨고 제가 초등학교 1~2학년때쯤 이혼을 하셨습니다.

그 이후의 삶은 더욱 더 힘들어졌는데 이혼 후 아버지께서 양육비를 전혀 주시지 않았고 저희를 키우시던 어머니는 술을 자주 드시며 저와 누나를 자주 때렸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수화기를 제 귀에 대고 "아빠한테 양육비 달라고 해" "욕하면서 양육비 달라고 해"라고 자주 그러셨고, 그렇게 말을 하지 못하면 마구 때리시면서 다시 전화해서 욕하면서 양육비 달라고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상황을 1주일에 2~3번은 겪어야 했고, 친 누나는 그걸 버티지 못해서 고등학교때 가출해버렸습니다. 누나가 나가자 그 학대는 저에게 오게 되었고, 정말 매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집만 아니면 됩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미성년자이고 약자인 저는 살아갈 곳이 없어서 성인이 될 때 까지 지옥 같은 집에서 버티며, 그렇게 성인이 되어 대학교를 입학하자마자 집에서 나와 지냈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20대 나를 살리신 하나님]
저는 집을 나와 대체로 혼자 지냈습니다. 아버지와 가끔 같이 지내기도 했는데, 결국엔 불편 점이 많아 혼자 지내게 되었습니다. 20살이 되자마자 혼자서 산다라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제 20대 때 별명은 알바몬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제가 공부를 너무 못해서 뒤늦게 공부를 시작 했는데, 많이 울었습니다. 기초 지식도 많이 부족하고 남들 보다 더 많이 공부를 해야 했는데, 그 때 마다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대학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드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울과학기술대학교를 입학 하였습니다. 근데 고난의 시작이라고 해야되나요? 그때부터 제 삶은 더 힘들어지기 시작 했습니다. 학비와 생활비를 제가 직접 벌어서 내야 하다보니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습니다. 건축 막노동, 편의점 카운터, 아웃백 홀 서빙, 패밀리 레스토랑 주방, 건축 모형 회사, 식자재 납품 알바, 건축물 안전 진단 알바, 카페 바리스타, 선술집, 치킨집 주방, PC방 알바, 초밥집, 옷집, 영어학원, 고기집 등... 정말 많은 알바를 하면서 학교를 다니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지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학교를 다니는 건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일을 많이 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항상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학교를 가고 싶다고 제가 부족하니 하나님의 힘으로 가게 해주세요 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제가 원하는대로 해주셨는데 저는 그때 남들처럼 학교만 다니면서 공부하고 싶은데 저에게는 왜 그런 환경을 안주시나요? 라고 불평 불만을 많이 했습니다.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교 수업을 마친 후에 집에 가는 길에 교통 사고가 났는데 다음 날 보니 차가 완전히 찌그러져서 있었고 그 사고를 수습 하던 분이 저에게 말씀하시길 너는 원래 죽었어야 했는데, 하나님께 감사하고 살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참 신기하게도 차가 다 찌그러져서 폐차를 시키고 사고 현장은 엉망이 되었는데, 저는 멀쩡히 병원도 안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리셨는데 궁금 했습니다. 나를 왜 살리셨을까? 하고요.

[굶어 죽어가는 과정에서 나를 살리신 하나님]
여전히 알바몬으로 살아가는 중 압구정에 있는 무이무이 라는 카페에서 일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시급이 4500원이었는데 강남 압구정에서 일을 하면 6500원씩 주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곳은 매우 유명한 카페였고 연예인들도 굉장히 많이 오는 곳이었습니다. 정우성, 이정재, 유인나, 하희라, 이수근 외 정말 많은 연예인이 오는 곳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곳에는 외국인 유학생들도 많이 왔는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쟤들은 뭔데? 방학 시즌만 되면 외제차 끌고 와서 여기 와서 와썹 와썹 거려?" 했습니다. "저들을 보니 저도 유학이라는 걸 가고 싶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돈 한푼도 없고 갈 형편도 안되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 교환 학생 가고 싶어요. 저는 왜 매번 아르바이트만 하게 하시고 매일 공부도 제대로 못하게 하시는거에요? 너무 불공평해요. 이런 마음을 가득 가지고 있었는데, 기존에 없던 프로그램인 건축 교환 학생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지원을 했고 합격 하게 되어 돈 한푼도 없지만 일본으로 공부를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돈이 거의 없이 갔기 때문에 가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야 했는데, 어딜가나 코리아 타운은 있더라고요. 근데 자존심은 있어서 코리아 타운에서는 일을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왜냐면 거기서는 일본어를 사용 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했고, 생활이 굉장히 문란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현지 식당에서 일을 하겠다 라고 다짐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구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1달 동안 아르바이트를 구해도 구할 수 가 없었고, 마트에 가면 99엔에 3개 들어있는 야키소바가 있는데 나중에는 돈이 없어서 그거만 먹으면서 버텼습니다. 정말 여기서 죽을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고, 하나님 저 여기서 죽는건가요? 저 살려주세요. 먹을 것이 없어요. 아르바이트 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학교 다닐 수 있게 해주세요. 왜 자꾸 저한테만 고난을 주세요? 저 여기서 죽이시는거에요? 살려주세요. 라면서 기도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면접을 보고 안되면 코리아 타운에서 일해야겠다 했습니다. 면접을 보러 간 식당 점주가 저에게 "일본어가 서툴러도 좋다. 나는 유학생들과 일을 많이 해봤는데, 특히 한국인들은 성실해서 너무 좋다. 너와 일하고 싶다." 라고 했고, 제가 감사하다고 하면서 돈이 없어서 밥을 제대로 못먹고 있다고 하니, 밥을 먹으러 와서 밥 먹고 식당의 메뉴얼을 공부하라고 해서, 다행이도 아르바이트도 구하고 밥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이 지친 나의 투정을 들어주시는 하나님]
교환 학생도 잘 다녀오고 대학교도 잘 졸업하고 취업하는데 1년정도가 걸렸지만, 좋은 건축 회사를 취업했습니다. 알바 할 때는 이 학자금 대출을 언제 갚나..? 언제쯤이면 옷이나 한번 제대로 사볼까? 먹고 싶은 건 먹어 볼 수 있을까? 했는데.. 회사 취직 후 첫 월급을 받는데, 학자금 대출을 금방 갚겠구나 했습니다. 쉽지 않은 회사 생활이었지만 10~20대의 삶이 너무 고단했기에 회사 생활은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잊고 여행도 자주 가고, 캠핑도 하고 등산도 하고 서핑도 하고 그랬던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냥 조용히 윗 상사들 말 잘 듣고 회사를 다니면 될 것을.. 사탄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일을 좀 잘한다고 교만해지고 사람 무시하고 주식과 어떤 아파트가 좋다 라는 이런 자본주의에 쪄든 저를 발견 했습니다. 월급을 받으며 맛있는 것 먹고 하고 싶은 일 하면 되는 건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는지 더 많은 부를 취하고 싶고 더 욕심 내고 회사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싸우고 밟고 스트레스 주고 상처 주고 그러면서 내가 내 자신을 잃어가는 것을 알았고 중학교 동창 친구에게 얘길 했습니다. "나 너네 교회 가고 싶다. 어렸을 때 이후로 너무 오랜만에 가는 교회인데 나 같은 사람도 가도 되니?" 라고 얘길 했고 그 교회를 가서 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제가 마음이 많이 망가진 것 같아요. 사람을 미워하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해요.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사람을 무시하고 그래요. 제가 많이 망가진 것 같아요. 제가 그러지 않게 해주세요.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 방법을 모르지만 그 방법을 알려주세요." 라고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
회사를 다니다 너무 과도한 스트레스로 결국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했습니다. 원두를 로스팅해서 판매하는 일입니다. 매일 매일 매출이 걱정이었지만 스트레스도 없고 혼자 일하니 나와 잘 맞는구나 했습니다. 어느 날 연합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연합 성가대의 찬양을 처음 본 날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아름답고 찬양을 들으며 멍하게 보게 되었고, 성가대 활동을 하고 싶어서 말씀을 드리고 1년 뒤에 성가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성가대 들어갔을 때 그날도 연합성가대로 찬양을 드리는 날이었는데, 다른 성가대 사람이 저희 성가대 실을 들어왔다가 휙 하고 나가는 겁니다. 3부 예배 솔리스트 선생님인데, 뭐지? 저 사람은? 왜 우리 성가대실을 들어왔지? 했습니다. 그러고 시간이 지난 후 제가 교구 목자가 되었을 때 그 저희 성가대실을 들어왔던 솔리스트 선생님이 저희 목장으로 배정이 되어서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목사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버님의 첫 사역지로 인해 제주에서 태어났다.라는 이야기부터 어렸을 때 어렵게 지냈던 이야기 좋은 회사를 다니다가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명을 갖게 되었는지부터 듣게 되었고, 저는 머리를 한대 쿵 맞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불평 불만에 비교하고 왜 나는 이렇게 불행하게 하시는거에요? 라면서 따지고 그랬는데,
그 분은 하나님만 보고 찬양 드리며 사는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나 자신을 다시 보게 되었고, 원래 창업을 해서 부자가 되고 싶었지만 저 또한 다시 기도를 드리며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이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했고, 시골 교회를 하나씩 섬기며 도와드리는 일을 해야겠다 라고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형편이 좋지 않아 남양주에 있는 작은 교회에 매달 커피를 보내드리고 있는데, 더 늘리고 싶은 마음이 있네요.

글로 쓰니 뒤죽박죽이네요..ㅎㅎ..이게 간증거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한번 적어봤습니다. 저희 장인어르신도 목사님이고 어렵게 목회를 하셨고 그러다 보니 앞으로 시골 교회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유튜브 채널입니다. 와이프랑 저랑 찬양을 위해 만든 채널인데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고 싶어서 만들었으니 구경오세요!
와이프가 소프라노라 발성교육을 제대로 합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qB5pq-khbyBpaWc-Hgvdsg

아 제 와이프에 대한 러브 스토리도 재밌는데 그건 사연 채택해주시면 알려드릴께요^^
항상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그럼 고생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