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함께 하신 저의 삶
대구아름다운교회 박기묵 목사
Ⅰ. 미국 유학
1. 유학을 준비하며
∙ 저는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김포공항 인근에서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는 여의도고등학교를 다녔고, 매일 아침 등굣길에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모습을 보며 꿈을 키웠습니다. 언젠가 저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나 박사 학위를 받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의 벽은 높았습니다. 몇 차례 대기업 입사 시험에 낙방한 후, 중소기업에 취직했지만 첫 월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부모님께 “천만 원만 지원해 주시면 반드시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처음에는 반대하셨지만, 결국 허락을 받았습니다.
∙ 유학을 준비하는 동안, 저는 매일 밤 박사 학위를 받는 모습을 상상하며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도 컸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초등학교 시절 몇 개월, 그리고 고등학교 때 6개월 정도 친구를 따라 교회에 다닌 적은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유학을 앞둔 시점에서 불안과 두려움이 커지자, 하나님께 의지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 그 무렵, 청년부 기도회가 2주간 열렸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한 번 만나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확신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며 기도회에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기도회를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 꿈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 방의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통옷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제 머리맡에 서 계셨고, 저는 그 모습을 보려고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꿈속에서 갑자기 기절해버렸습니다. 다시 일어나 보려 했지만 또다시 기절했고, 세 번째 시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순간, 저는 예수님께서 제 삶에 들어오셨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성경 말씀에 나오는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라는 말씀이 제게 이루어졌음을 깨달았습니다.
∙ 유학 준비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난관도 있었습니다.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 발급이 거절된 것입니다. 유학원을 통해 재신청했지만, 두 번째 인터뷰에서도 실패했습니다. 세 번째 기회마저 놓치면 유학이 무산될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간절히 기도하며 비자 인터뷰를 준비했고, 미국인의 추천서를 받아 첨부한 후 세 번째 인터뷰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비자를 발급받았습니다.
∙ 이후, 어머니께서 저의 비자 인터뷰 전날 꿈을 꾸셨다고 하셨습니다. 꿈속에서 교회의 모든 집사님들이 저희 집에 와서 마당의 잡초를 깨끗이 뽑아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꿈을 통해 비자 인터뷰가 잘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셨고, 결국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2. 유학길에 오르다
∙ 1988년 2월, 저는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속에서 부모님께서는 어렵게 천만 원을 마련해 주셨고, 저는 그 돈으로 학업을 마치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먼저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West Virginia University) 행정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하였고, 처음 3개월간은 어학 연수를 받았습니다.
∙ 1988년 8월, 본격적으로 대학원 수업을 시작했지만, 영어 실력 부족으로 인해 첫 수업부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강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료 학생들에게 노트를 빌려 공부하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렀고, 첫 학기 모든 과목에서 A 학점을 받았습니다.
∙ 그러나 유학생활에서 가장 큰 난관은 재정적인 문제였습니다. 부모님께서 주신 천만 원은 첫 학기가 끝나고 1989년 봄 학기 등록금을 낸 후 거의 바닥났습니다. 당장 다음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 이때 저는 교회 목사님께 교회 건물 열쇠를 부탁드렸고, 매일 새벽 교회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한 지 일주일쯤 지나, 대학원 학생들 메일 박스에서 Teaching Assistantship(TA) 모집 공고를 발견했습니다. 순간,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학기 중에 TA를 모집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저는 곧바로 지원했고, 석사 과정 유학생으로서는 최초로 TA로 선발되었습니다.
∙ 하지만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TA 업무는 컴퓨터 실습 수업을 지도하는 것이었는데, 미국 생활이 1년도 채 되지 않은 저에게 영어로 강의하는 일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교수님께 걱정을 전했지만, 이미 총장 승인까지 난 상태였기 때문에 번복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코스를 2학기 동안 이수하는 조건으로 TA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 TA로 선발된 후, 저는 엄청난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이미 낸 학기 등록금이 전액 환불되었고, 학비가 면제되었습니다. 또한, 개인 연구실이 배정되었으며, 한 달에 600달러의 생활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물가를 고려하면 충분한 금액이었고, 다른 석사과정 유학생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좋은 혜택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그대로 응답되었습니다. 1989년부터 지금까지 저는 십일조 생활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3. 박사과정 입학
∙ 석사 과정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또 하나의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박사 과정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입학 허가뿐만 아니라 TA나 RA(연구 조교) 장학금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학교 게시판에서 켄터키 대학교(University of Kentucky) 행정학과에서 박사과정 학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습니다. 지원한 결과, RA 장학금과 함께 학비 면제 및 월 1,000달러의 생활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 1989년 5월, 저는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고, 안정적인 재정 지원이 더욱 절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딱 맞는 환경을 마련해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1990년 8월, 석사 학위를 마친 후, 저는 켄터키 주 렉싱턴으로 이동하여 박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함께한 저의 유학 생활은 끊임없는 도전과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길을 열어 주셨고, 그 은혜로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Ⅱ. 박사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다
1. 박사 과정 입학과 학문적 여정
∙ 저는 1990년 8월, 켄터키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과 박사 과정에 입학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웨스트버지니아주의 몰간타운에서 켄터키주의 렉싱턴으로 이사하였습니다. 몰간타운과 렉싱턴은 자동차로 약 7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었습니다. 당시 렉싱턴에는 한인 교회가 단 한 곳, 렉싱턴한인장로교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교회에 출석하며 새벽 기도에 참석하였습니다.
∙ 박사 과정에서의 학업은 석사 과정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박사 과정에서는 한 과목당 한 편의 짧은 논문을 작성해야 했으며, 한 학기에 총 세 과목(9학점)을 수강하였습니다. 수업은 매주 약 12편의 논문을 읽고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논문을 작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 박사 과정의 첫 학기를 보내며 저는 글을 읽고 쓰는 법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었고, 글을 쓴다는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논문을 창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논문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관련 논문을 20여 편씩 읽었고, 그것을 완전히 소화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루 일과는 아침 6시에 시작하여 밤 12시까지 계속해서 논문 주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었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주차장에서 차를 세울 때도, 식사할 때도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떠올리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도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까지 하루 종일, 그리고 일주일 내내 깊이 생각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 기한이 정해져 있었기에 시간과의 싸움이 계속되었습니다. 한 번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신경성 방광염에 걸리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논문의 주제가 떠오르지 않아 금식하며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금식 이틀째 저녁, 밤 10시부터 자정까지 간절히 울면서 기도하던 중 놀랍게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순간 너무 놀라웠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 이렇게 간절한 기도를 통해 얻은 아이디어로 논문을 완성하였고, 그 논문은 학과에서 최고의 논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한 교수님께서는 이 논문을 다음 해 해당 과목을 듣는 모든 학생이 필독해야 하는 논문 목록에 포함시키셨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저는 논문을 쓰는 법을 체득하고, 글을 읽고 쓰는 깊이 있는 태도를 익히게 되었습니다.
2. 말씀과 성경 공부의 시작
∙ 박사 과정 동안 논문을 읽고 연구하는 습관이 저에게 자연스럽게 배어들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저는 주일 예배에서 설교 말씀을 들을 때도 본문을 읽으며 저자가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시기에, 저는 성령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시는지를 고민하였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는 과정이 점점 더 흥미로워졌고, 본격적으로 성경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당시 한국에서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테이프를 통해 들으며 신앙 서적과 함께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약 3년 동안 꾸준히 성경을 공부하였고, 어느 순간 성경의 숲과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말씀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으며, 성경을 읽는 방식도 변화하였습니다. 논문의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논문을 반복하여 읽고 정독했던 것처럼, 저는 성경 본문도 계속해서 반복하여 정독하였습니다.
∙ 그렇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새로운 통찰과 깨달음이 떠올랐습니다. 마치 논문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처럼, 성경 구절을 깊이 읽고 묵상할 때 새로운 영적 통찰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경험이 오늘날 대구아름다운교회의 말씀 묵상법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 우리 교회의 말씀 묵상법은 설교 본문을 미리 정해두고, 성도들이 그 본문을 일주일 동안 30번 이상 정독하는 방식입니다. 성경을 반복하여 읽고 깊이 묵상하면,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를 더욱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 이러한 성경 묵상법을 통해, 저는 논문을 연구하듯이 성경을 연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오늘날 교회 성도들이 말씀을 가까이하고,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돕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3. 박사 과정 중 아르바이트
∙ 그 당시 저는 웨스트버지니아에서 1990년 4월 첫아들을 얻었고, 이후 켄터키로 이주하여 1993년에 딸을 선물 받았습니다. 당시 학교에서 제공하는 RA 조교 생활비는 월 1,000달러였는데, 딸이 태어난 후 생활비가 다소 부족해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이미 코스워크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일정 부분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신문 배달을 시작했는데,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한 시간 동안 신문을 배달한 후, 한 시간 동안 새벽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신문을 성실히 배달한 덕분에 지역에서 ‘우수 신문배달원(Good Paper Boy)’으로 선정되어 상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 제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신문을 배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인 교회의 집사님께서 본인이 운영하는 한인 마켓의 일을 제안하셨습니다. 그 일이란 매주 한 번씩 시카고에 있는 도매상에서 동양 식품을 받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렉싱턴에서 시카고까지 트럭을 몰고 가 약 16곳의 도매상을 돌며 한국과 일본의 식품 및 재료를 구입하는 일이었는데, 편도 약 8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매주 수요일 새벽 4시에 출발하여 정오 무렵 시카고에 도착한 후, 약 2시간 동안 도매상을 방문하며 물품을 구매하고 오후 2시경 다시 렉싱턴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첫 번째 휴게소에서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곤 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한 번 운행할 때마다 120달러의 수입을 얻었으며, 그렇게 약 1년간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할 수 있었습니다.
∙ 트럭을 운전하는 동안에는 한국과 미국의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 테이프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주 수요일 20시간 가까이 운전하면서 차 안에서 저 혼자만의 부흥회를 갖는 듯한 시간이었습니다. 1년 동안 다양한 목사님들의 설교 말씀을 섭렵하며 깊이 묵상하였고, 신앙 서적과 성경을 읽으며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트럭 운전을 하면서 하나님과 더욱 깊이 교제하는 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4. 트럭 운전을 하면서 경험한 하나님의 특이한 은혜
∙ 어느 날 오후 두 시경, 시카고를 출발하여 렉싱턴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첫 번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을 마친 후, 트럭을 몰고 인디애나폴리스를 지나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차 안에서 찬양을 부르며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 마침 우리 교회의 반주를 맡고 있던 유학생이 한국 방문 후 돌아오면서 ‘주찬양선교단’에서 나온 찬양 테이프 여섯 개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찬양을 들으며 마치 혼자 부흥회를 하는 듯한 은혜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 이마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성령의 불이라 생각하며 더욱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고 믿으며 소리 높여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 그러나 약 한 시간쯤 지나 인디애나폴리스 인근에 도착했을 때, 문득 제 머리 위로 햇빛이 비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순간 ‘혹시 방금의 뜨거움이 단순히 햇볕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에 다소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 그 후 시간이 흘러, 제가 한국으로 귀국하여 모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중이었습니다. 성가대석에 앉아 있던 그때, 다시 한 번 오른쪽 이마가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햇빛이 비칠 만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과거 트럭 안에서 경험했던 그 뜨거움이 단순한 햇볕이 아니라, 성령의 불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저는 하나님을 깊이 생각할 때마다 오른쪽 이마가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기하여 의식적으로 그 순간을 떠올리곤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독특한 영적 체험은 여전히 제 삶 속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깨닫게 하는 특별한 은혜로 남아 있습니다.
Ⅲ.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며
∙ 저는 1988년 2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90년 8월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이후 같은 해 8월부터 박사 과정을 시작하여 1994년 5월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곧바로 귀국하였으며,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지난 6년간의 유학생활을 되돌아보았습니다.
∙ 재정적으로 남는 것도, 부족한 것도 없었습니다. 제가 박사 학위를 마쳤다는 소식을 듣고 본가와 처가에서 비행기 표 값을 보내주신 덕분에 네 식구가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 비용을 제외하고는 수입과 지출이 정확히 0이었습니다.
∙ 유학 생활 중에 저는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아들과 딸을 얻었으며,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이를 떠올리며 깊은 감동에 젖어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절대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분과의 교제가 너무나도 깊었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1. 귀국 후 시간 강사로 활동
∙ 1994년 5월, 한국으로 귀국하였으나 교수 초빙 기간이 지나 가을 학기에 교수 임용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해 한 학기 동안 성균관대학교와 국민대학교에서 시간 강사로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희 가족은 부천시 오정구 오정동에 거주하고 있었고, 저는 본가에서 가까운 대학에서 강의를 하였습니다.
∙ 귀국 후 저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다녔던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1994년 8월부터 1995년 2월까지 노방 전도를 시작하였으며, 그 기간 동안 약 400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이끌었습니다.
∙ 시간 강사로 활동하며 강의 전에 미리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고, 강의 마지막 시간에는 복음을 소개하여 학생들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2. 대구대학교 교수로 임용되다
∙ 1995년 3월, 저는 대구대학교 행정대학 자치행정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35세였습니다. 교수로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첫 시간과 마지막 시간에는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께 있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성경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다행히 학생들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 대구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한 첫해, 저는 "마태복음 강해"라는 현수막을 학교에 걸고 성경 공부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모집하였습니다. 그 결과, 세 명의 학생이 찾아왔고, 함께 성경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매 학기마다 학생들과 성경을 공부하였고, 이 모임이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 이후 성경 공부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것에 대한 의문과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이에 저는 1997년 3월,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신학을 정식으로 공부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당시 대구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M.Div. 과정을 이수하였고, 졸업 후 결국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목사 안수를 받을 계획이 없었으나,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3. 대구대학교에서 기독교 교육을 진행하다
∙ 목사 안수를 받은 후, 2001년경 대구대학교에서 교양 과목으로 "기독교사상의이해"라는 과목을 운영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저는 이 과목을 맡아 성경을 중심으로 기독교의 핵심 사상을 강의하였으며, 학기 말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영접 기도문을 작성하도록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수강생 중 약 2/3의 학생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으며, 한 과목당 약 70명의 학생이 수강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 이후 시간이 흐르며 2009년부터 "기독교 사상의 이해" 과목이 사이버 강의로 전환되었고, 최대 320명의 학생이 수강할 수 있도록 확대되었습니다. 한 학기에 320명, 연간 640명의 학생들이 이 강의를 들으며 기독교의 핵심 내용을 배웠습니다. 강의에서는 로마서를 강해하기도 하고,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 2013년경에는 "기독교역사의이해"라는 새로운 과목을 개발하여, 기독교의 역사도 교양 과목으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이 과목 역시 학기 말 고사 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영접 기도문을 작성할 기회를 주었으며, 통계적으로 수강생의 절반에서 2/3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 기독교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과 말씀을 학생들에게 전할 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학생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도(道)는 강력하고 위대한 진리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4. 대구아름다운교회 개척과 말씀 묵상법
∙ 저는 30년 6개월 동안 교수로서 봉직하며, 이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는 8월을 끝으로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셨음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 2001년부터 학교에서 성경 공부를 하던 학생들이 외부에서도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요청을 하면서, 일반 성도들에게도 성경 공부를 개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성경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성경 공부 모임을 시작하였으나, 주일에는 예배를 드려야 했기에 작은 공간에서 혼자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목사님 부부께서 함께 예배드리기를 원하셨고, 그렇게 2003년 ‘간판 없는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점차 예배에 함께하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교회 건물을 이전하게 되었고, 현재는 100명 이상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
∙ 저는 대구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기에 겸직이 불가능하여 목회를 자비량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경 공부 방식은 성도들에게 설교 본문을 미리 제공하여 집에서 최소 30회 이상 정독한 후 예배에 참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본문을 충분히 숙독한 후 그룹별로 모여 나누고, 이후 설교를 경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 제가 발견한 가장 귀한 영적 원리는 다윗이 실천했던 말씀 묵상법입니다. 저는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일주일 내내 해당 본문을 깊이 묵상합니다. 이는 과거 박사과정에서 논문의 아이디어를 찾을 때처럼, 기도하며 말씀을 붙들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성령께서 본문을 통해 새로운 통찰과 깨달음을 허락하십니다. 저는 이렇게 받은 영감을 그대로 전하는 방식으로 설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말씀을 조명해 주시지 않으면 설교할 수 없는 존재임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성령님께서는 언제나 말씀을 허락하셨습니다.
∙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깨달음 중 하나가 ‘무지개 언약’에 대한 것입니다. 무지개 언약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사람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이를 묵상하던 중 한 가지 통찰이 떠올랐습니다.
∙ 홍수 이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면서 네피림이 태어났고, 그로 인해 인류는 타락하며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통해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인류의 타락 이후, 제사법을 통해 셋의 계보를 잇는 자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지만, 인간은 여전히 육적인 아름다움에 끌려 다시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죄성은 단순한 제사법만으로 해결될 수 없었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아 홍수 이후 무지개 언약을 통해 인간을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이 언약이 단순히 다음 심판이 ‘불’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의 본질 자체를 변화시키시겠다는 약속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이 깨달음이 주어졌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무지개 언약’은 단순한 자연적 현상을 넘어, 하나님께서 인간의 본성을 새롭게 변화시키시겠다는 선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구속의 역사를 시작하셨으며, 그 계보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즉,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저는 이처럼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깨달음을 얻곤 합니다.
∙ 또한,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을 묵상할 때도 특별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흙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기신 후, 그것을 맹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서 씻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묵상하며 ‘왜 예수님께서 굳이 흙을 이겨 바르셨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던 중 성령님께서 한 가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안식일의 규례를 깨뜨리신 것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흙을 개거나 무언가를 빚는 행위가 노동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를 공공연히 행하심으로써, 유대인들의 전통적 안식일 법을 정면으로 깨뜨리신 것입니다. 이는 안식일의 규례에 얽매인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을 타파하시려는 의도였습니다.
∙ 이러한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 큰 기쁨이 넘쳐남을 경험합니다. 묵상이란 단순히 성경을 읽고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깨닫게 하시는 진리를 깊이 누리는 과정임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됩니다.
Ⅳ. 마무리 말
∙ 저는 현재 대구아름다운교회에서 목회하며 말씀 묵상법을 전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평신도들이 이 말씀 묵상법을 익혀 영적으로 깨어나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날 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목회가 어려워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이는 목회에 대한 개념이 올바르게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회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성도들에게 바르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을 많이 모으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목회의 목표가 교회의 양적 성장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신학교의 지원율 저하와도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 한국 교회의 침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 젊은 목회자들이 종종 저에게 목회 상담을 요청하시는데, 저는 그분들께 설교를 위해 강단에 서기 전 반드시 성경 본문을 50번 이상 정독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올바른 목회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회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스스로 목회를 이끌어 가려고 하면 오히려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목회자를 통해 친히 역사하실 때 비로소 온전한 목회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 우리 교회에서 실천하고 있는 말씀 묵상법이 널리 전파되어, 오늘날 침체된 한국 교회가 다시금 영적인 활력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저의 삶
샤론2025
2025.03.18
조회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