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호흡기로 숨쉬는 삶 공기한모금도 감사
공기한모금도감사
2025.12.17
조회 202
(소개) 안녕하세요 출연 신청합니다, 저는 올해 만으로 49세이고, 지금도 인공호흡기로 숨쉬면서 오른쪽 다리가 절단된 중증 척추 손상 장애인입니다.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1. 가정 배경 -저의 집은 유교와 불교를 섬기는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농부와 토목 목수 생활을 30년간 하셨고, 어머니도 농부셨습니다.

2. 성장배경 - 시골에서 비전이 없다고 저의 아버지께서 판단 하셔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큰집에 보내어 대구로 전학을 갔습니다.(경북 성주와~대구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다사라는 동네 산에서 공사 중인 건물들을 보고 어린 저는 신기해 했습니다.)추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기독교 학교인 계명대학교 건물이었습니다.

3. 사춘기 약간 방황- 크게 사고, 치거나, 그렇다고, 뛰어난 학업의 능력도 없지만,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낮선 환경에 약간 방황합니다.

4. 결국 실업계 졸업 후 버스 회사에 취직했고, 군대를 갔습니다.( 하지만, 군대 내에서 성추행을 당했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제대 한달 남기고, 방언을 하고 정신병원에 입원됩니다.) 다행히도 계명대학교 동산 병원 정신과에서 치료 잘 받고, 군대도 다시 돌아 가서 만기 병장 전역하였습니다.(동산병원 정신과 병동에서 가시 왕관 쓰신 예수님 사진을 보게됩니다.- 사진보고 예수님이 계신지 약간 의문을 가집니다.)

5. 군제대 후 국가 부도 IMF 오다- 요즘도 청년 실업이 많지만, 그 때도 제가 제대 후 갈 곳이 아무곳도 없었습니다. 저는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생활을 했고, 친구의 소개로 소개팅을 어느 날 하게 되었는데, 그 아가씨와 눈이 맞아 동거를 시작하였습니다.

6. 동거 중에 뒤늦게 수능 쳐서 합격 후보150등 쯤 되었지만, IMF로 입학금을 못 내서 학업 포기 하는 학생이 많았고 주님의 은혜로 계명문화대학교 건축과에 합격하였고, 배 속에 아이가 임신되었습니다.

7. 계명대학교 재단는 기독교 학교라 채플 과목이 의무적인데, 어느 날 채플 교수님 리포트 발표 시간에 "저는 지금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제 마음의 평안만 있으면 하나님을 믿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발표 했더니, 갑자기 저를 안아주셨는데, 같은 과 친구들은 그 장면을 보고 모두 웃었습니다.( 그 때, 이후 딸이 태어났고, 육아가 서툰 젊은 초보 부모인지라 딸이 급성 신우신염에 걸려서 대학병원에서 입원 하는 일도 있었고, 저는 야간전문대학을 다녔는데, 낮에는 공사장과 저녁에는 수업 들으면서 공부했고 집에서는 가장 역활까지 하고 있어서 찌들인 삶에 마음의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졸업 할 때까지도 제가 결혼을 했고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사실을 과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침묵으로 말할 힘과 여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8.학점 위기- 2학년 1학기 때 구조 역학 시험에서 F학점 맞았고, 그 교수님께서 성적 정정 기간에 찾아갔더니, 본인 교회에 출석하면 - D로 바꾸어 주시겠다고 제안 하신 일이 있습니다.(그 때는 저는 그 교수님께서 돌아이교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지금 생각은 그 교수님께서 그 때 진리를 인도하시려고 하셨고, 가르쳐 주셨는데, 어리석은 저는 그 당시 몰랐습니다.

9. 교회에 출석 하고 하나님을 이용하다.-저는 고열로 입원 중인 딸을 위해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그 교수님께서 다니시는 교회 출석 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지금 형편이 녹록치 않으니, 지금보다 형편이 좋아지고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10,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도 들어주심- 저는 졸업 후,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을 했고, 물탱크 청소, 내장 목수, 학습지 판매원, 대기업 건설 회사 관리직에 취직 등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10년 동안이나 집에 돈 걱정 없이 해 주셨습니다. 물론 가족들도 건강하게 잘 크고 있었습니다.

11,하나님 아버지 경고와 잃어버린 양을 주께서 찾으심- 하나님 아버지께서 일용할 양식을 계속 주셨지만, 돈과 재물을 함께 섬길수 없다고 하셨듯이 집도 마련 했고 둘째도 생겼고, 자동차도 샀지만, 저는 교회에 전혀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기도 응답의 하나님 권능만 이용했고, 일요일 조기 축구 다니기 바빴고, 하나님 아버지를 떠났고 , 같은 아파트에서 전도 하시는 사람들을 보내 주셨는데 몇번을 거절했고, 결국 저는 죽을 고비를 세번 정도 맞이 합니다.
(죽을 고비 및 고난)
첫번째는 물탱크 청소 도중 전기 감전 되는 사고로 그 일을 그만두었고, 내장 목수 일 할때 화물차와 교통사고로 핸들이 배를 밀고 들어오는 사고, 세번째는 아파트 공사 중 폼에서 떨어졌지만, 매달려서 살아난 일(-세상 죄를 다 짓고 있던 저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경고 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 알고 계셨고 그 때까지도 정신을 못 차리고 제가 쉽게 죽지 않는 것은 완전 제가 타고난 행운아라고 착각했습니다.)

12.심판대에 서다. 지옥 문 앞에서-2009년 10월 15일 만으로 33살 때, 저는 초등학생인 아들이 다니는 합기도 도장에서 퇴근 후 취미로 1년 정도 운동을 함께 배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네번째 생명 위기를 맞이하는데 그 날 낙법도중 목이 부러지는 큰사고를 겪고,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에 급하게 실려갔고, 의식을 잃고 죽음과 사후 세계를 경험 했습니다.(중환자실에서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사후 세계가 그냥 꿈인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기독교 병원인 동산병원에서 기적적으로 한번더 살려서 기회를 주십니다. 오직 주님께서 생명을 관여하십니다.

13,서원 기도-중환자실에서 기도삽관으로 목소리는 잃었고, 목이 부러졌지만, 폐렴으로 수술도 불가 상태에서 눈 뜰 힘도 없었고, 처음 의식이 약하게 돌아왔을 때는 일제 시대 731부대 생체 실험실에서 생체 실험 하는 악몽인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희미한 의식으로 부모님과 직장 동료, 친척, 친구들이 면회 오는 것을 보고, 현실임을 알았고, 하나님 아버지 계시다면 저의 모든 것을 드릴테니, 목숨만 살려달라고, 수백번 마음 속으로 서원 기도를 했는데, 의사선생님께서도 가족들에게 장례식 준비를 말했고 치료도 거의 포기 했기에 너무 절박했습니다.

14. 혹독한 주님의 훈련과-덤으로 사는 삶-저는 사고 나고, 기도삽관으로 목소리를 1년간 잃었고, 매달 수천만원의 병원비중 산소로 숨쉬는 비용을 지불해 가야 했고, 중환자실에서 욕창이 생겨서 추후 여러 군데 10년을 욕창으로만 투병했었는데 시술과 수술 합쳐서 8번 정도 했었고,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된 나병 환자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2년전에는 오른쪽 대퇴부가 골다공증으로 부러졌는데 결국 폐혈증 쇼크도 왔었고, 괴사가 되어서 절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15.주님 영접-예수님을 만나다. -2011년 재활병원에 있을 때, 병원에 전도하시려 오신 김태양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되고 베데스다 연목에 못 들어가는 38년된 나병 환자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셨듯이 욕창으로 썩은 냄새가 진동하던 저에게 교회에 갈수 없던 저는 병실에서 흰 십자가 가운을 덥고 물을 뿌리고 예수님께 교만하고 자만했던 제가 회개하고 자기가 주인인 줄 알았던 교만을 반성하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예수님 영접하였습니다.

15. 가족 갈등 - 가정 붕괴 - 욕창이 재발했고 병원생활이 다시 길어지고, 아내와 갈등이 극에 달하게 되었고, 저를 돌보시던 아버지께서는 췌장암에 걸리셨습니다. 저의 전재산은 다 날아갔고, 아버지께서는 췌장암으로 어머니는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갔습니다. 사고 났을 때 초등학생인 아들은 고등학생 때는 3층에서 떨어져서 자살 시도를 합니다. 첫째딸은 집에 돈이 없다고, 입시포기 하게 되었습니다.

16. 회복 기도- 2009년 사고 나고, 16년이 흘렀습니다. 부보님 두분께서 저 때문에 돌아가신 것 같아서 죄책감 큽니다. 아내와는 이혼 했고, 결혼 중 간음한 아내를 지금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그 용서도 죄인인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저의 가족을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른들은 다 돌아가셨고 집 안의 믿음의 1세대인 저 뿐입니다,

17. 주님께서 고난 가운데 기도 응답으로 축복하신 일-
사고 나고, 1년 뒤에 기도절개를 막고 밥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말도 할수 있게 해 주셨는데, 의식이 돌아와서 간증 할 정도의 체력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감당 가능한 고난만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이주님의 은혜입니다. 10년 동안 10군데 넘는 욕창으로 살이 썩어 등뼈가 다 들어나서 마약성 진통제 노스판 붙이고 버티고 견디었는데, 수술 없이 온전히 영양적인 음식으로만으로 지금은 완전히 완치 시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대구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등록금을 오륜교회를 통해서 주셨고 숟가락을 물고 노트북과 스마트폰에 자판을 치며 공부해서 2016년 졸업할수가 있었습니다. 졸업 후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완전히 알수 있었고, 그 원인은 다른 누구탓도 아니고, 바로 저 였습니다. 사고 나고, 욥처럼 건강과 가족과 재산도 다 잃었지만, 지금은 LH 임대 주택과 성남시에서 101만원에 입찰한 장애인 콜택시인데, 제 명의의 자차가 다시 생겼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등록금이 없어서 입시를 포기한 딸은 지금은 대기업을 다니고 영남대학교 3학년에 함께 다니고, 있고 저의 부재로 자살 시도와 학교 폭력으로 불안 우울을 겪었던 아들도 뒤늦었지만 전문대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한 때는 생명과 삶을 포기했는데, 주님 안에서 버티고 견디니,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되었지만, 대한민국의 복지가 좋아서 자녀들이 대학교 장학금 받아서 감사드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대해서 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숨쉬는 공기 한모금이 천금보다 귀하고 소중합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고, 고맙습니다. 비록 기초생활수급자이지만 매달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조금씩 도움을 주고 있어서 주님께감사드립니다. 중환자실에서 벗어나서 생활을할수 있도록 기적을 행하신 주님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입니다. 아멘(더 세세한 간증은 글보다는 말로 해야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빌립보서 4장 6절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