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서 Jubilee해, 반세기를 Atlanta, GA 에서..
wookyungjin
2026.04.12
조회 35
제목에서 제가 은혜를 받네요.
먼저 저의 한글이 중2때의 수준이라 양해와 상상력을 동원해서 같이 읽어주세요.
Everybody 가 반세기를 살면 누구나가 한 story들 있잖아요.
저와 가족들의 이야기는 함께 roller coaster 타시면서 이야기해볼게요~
GA 에서 50년 살았으면 집안에 한두명 정도는 의사,변호사,박사 중 ‘사‘자 붙은 title 이 나와서 중앙일보 기사에 실릴만도 한데요 but, 그러나 박사는 커녕 세상적으론 박살 난 case 네요.

1976년 4월20일, 포항제철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당시41세)와 엄마(40) 저(14) 여동생들(11,8) 남동생(5)들이 아~무도 모르는 광야, Atlanta에 취업이민으로 도착했어요. 엄마는 쌀도 이민가방에 넣어 오셨어요. 저희들은 신바람나는 미국으로 부모님 손잡고 왔어요.

아버지가 1953년 공군에 계실때 Helicopters mechanic 교육받으시러 배타고 한달걸려 태평양을 건너 Chicago에 6개월동안 교육받으신후 언제간 훗날에 식구들을 데리고 지상천국같은 미국으로 오리라고 꿈을 꾸셨대요.
Atlanta에 도착후, 아버지는 낮엔 mechanic 으로 엄마는 APT에서 한시간 떨어져있는 바느질공장에서 일하셔서 차가 한대이니 아버지가 새벽일찍 엄마 drop off 하고, 일 마친후 pick up 하시고, 저녁밥 후딱 드신후 또 밤에 악기들 우그러진것들 피러가서 졸며 일하시다 오히려 우그려뜨려져 얼마못가 그만두시게 됬어요. 엄마는 힘들게 벌으신 세금후 금액 $76을 어떻게쓸까 하시다 몽땅 헌금하셨어요.
이런 모습으로 계속 사시다가 하나님이 2006년에 오라고해서 가셨어요. 엄마가 저희 집안에 ‘Law & Order’ 이셨는데 천국에 가시니 기둥이 무너지는것 같았어요.
아버지가 포철에서 일하실때 주일날 일하러 오라고 했을때 엄마가 반대하시고 짤리면 엄마가 식구들 먹여살리신다며 아모레화장품을 아기수레에 싣고 남동생 (3)살 데리고 이골목저골목으로 화장품 파셨어요. 얼마후 아버지가 연수원으로 발령나셨는데 토,일도 쉬게되시고 월급은 올라갔었다고 훗날에 간증하셨어요.
아버지가 일하시던 회사에서 계약기간이 만기된후 엄마의 뜻이 LA 로 이사해서 ‘죽으면 죽으리라‘ 작가, 안이숙 사모님교회에서 신앙생활 하고 싶다고하셔서 아버지가 LA 가셔서 pool cleaning job 을 구해서 식구들이 짐싸서 가려는데 여기 교인들이 밤낮으로 와서 울며 우장로네 어디로 가느냐며 계속 매달리며 한성도분이 채소가게 함 해보라고해서 다시 Atlanta에 오늘날까지 살게됬네요.

그때부터 채소가게에서 저희식구들, 동생들과 주말에도,방학동안도 아주 열~심히 일했어요.
가게를 계속늘리게되어 3개 하며 제일장로교회 여러 학생들이 토요일에 arbeit 같이 했어요.
8년째에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신후, 엄마가 저더러 대학공부 잠시 중단하고 집안일 도와야겠다 하셔서 새벽에 제가 big truck 운전하고 엄마와 같이 채소와 과일 한가득 실고 가게로 와서 일하게됬어요. 7년에 걸쳐 공부한후 졸업할때 엄마가 제일 기뻐하셨어요.
그후 한집사님 소개로 숲속이였던 땅에 개발자가 상가를 짓는다고해서 엄마가 덜커덕 맨땅에 세탁소를 계약하셨어요. 은행에서 loan 받아 세탁소 기계 set up, 주위에 광고지 날리고, 한주에 천불주고 한달동안 training 받고, 세탁물 받아 cleaning, pressing, begging 하고 3개월후 조금씩 바빠지면서 저녁식사후 동생들에게 그다음날 나갈 옷들을 세탁하고 다림질 training 했어요. 그후 아버지가 점차 나아지시면서 세탁소 나오셔서 일하시고 엄마는 옷수선하셨어요. 두째동생이 대학졸업후 (piano전공, 부모님이 4개교회 개척도우시는데 반주자가 필요하다고) 유학생남편 support 하느라 세탁소에서 부모님이 retire 하신후 동생부부가 계속맡아서 거의 40년동안 세탁소했네요. 총강도 3번 당하고요.
개척하실적에 교회자금이 부족하여 세탁소수표로 목사님 사례드리곤 했어요.
부모님 retire 하신후에 자비량 연변선교사로 고아원을 수년 섬기시면서 거기서 엄마가 원고지에 깨알같이 써서 보낸 한편지로 제가 수많은해, 같이 수고한것을 건축,선교하셔서 늘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이 편지로 하나님이 저희들 heart 를 바꿔주시더라고요. 굶주린 동포들이 두만강을 목숨걸고 건너오면
항상 머리에 이고갈 조그만 보따리에 곡식을 준비해놓으셨대요. 또 그물쳐서 고기낚은것으로 끼니를 잊곤한대요. 어느아침에 두어린 형제가 두만강을 건너다 꼭 껴안고 죽어있는 그물을 건졌다는 소식에 많이 충격받고 지금도 글쓰면서 눈물이 나네요..
그 고아들이 커서 몇년전 자기네들 어릴때 저의 부모님 사진과 함께 보내며 감사편지를 받았을때 감동이었어요. 그네들이 커서 의사,목사들이되어 다시 이북으로 가서 봉사하는이도 있대요.
저희들도 틈틈이 Africa, Mexico 선교동참하고 있어요.

저는 하는 business 마다 우째 , 졸업후 대한항공 sales office 에서 4년일한 경험으로 여행사 12년차,
2001년에 9.11 사건으로 접고, 2010년에 financial crisis 로 7년째 하던 country buffet 식당접고,
2020년에 Corona 로 인해 office building 안에 snack corner 가 매상이 바닥을치니,, 참나,
친구말에의하면 지는 돈이 따라다니고(하는 사업마다 대박침) 나는 돈이 피해다닌다나요,,

아들이 셋인데, 큰아들은 high school 때 까지 공부는 잘하지만 이상한 친구들과 어울려 하지말아야할것은 다하고 다니고 대학가서도 전공을 3~4번 바꾸더니 9년째 Aviation school 에 가서 비행기 mechanic 공부하고 얼마전 졸업하고 National test 준비중이고, 두째, computer 전공한 아들 하나가 GA Tech 졸업후 계속 interview 는 하는데 job을 아직 못찿고 있네요.
세째는 초등학교부터 힘들게 졸업하더니 그래도 대학졸업후는 철이 들랑말랑 하네요.

매년 Easte에는 모든 식구들이 모여 부모님 산소가서 가족예배드리고 Thanksgiving, Christmas 모일적마다 가족예배 드리고 다음세대도 계속 믿음이 전수되게 하는것이 저의 사명인줄 압니다.
교회는 부모님따라 한국교회 작년까지 다니다 담임목사님은퇴 하실때 왁자지껄 하는통에 올해 미국교회 나가서 많은것을 배우고 있어요. 특히 중요한건이 생기면 모든 성도들이 바닥에 무릎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작년 선교헌금을 $ 63.5 million 한 뜨거운교회이고 또 일년동안 매주의 로마서강해는 매주일을 기대하며 기다리게 만들었어요.

희년, Jubilee 를 맞아 세째동생이 30년 일하던 회사에서 한국에 3년동안 출장나가서 저희들이 이번여름에 함 나갈예정이예요. 저희 동생들의 각자 story 들의 이야기보따리들이 가득있는데 책으로 써도 ‘미나리‘ 만큼이나 흥미로울것 같아요. 저도 retire후 하나님이 보내시는곳에 가서 영어도 가르치고 또 복음도 share 하고 싶어요.

저희들의 American Dream 은 부모님들의 신앙이 3,4대 아니, 천대에 이르기까지 전해 내려가는것 입니다. 이제껏 두서없이 생각나는대로 적어 보았어요.

God bless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