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위해 살렵니다
요나
2011.05.09
조회 777

지금까지 지켜주신 주님의 은혜 감사드립니다.
좌절과신음하고 있을때에
너는 네것이라 명하신주님.
죽음의골짜기를 헤매이고 있을때에
널위해 내가 죽었다 하신주님.
배고픔과외로움에 떨고 있을때에
들의 백합화를 보라하신주님.
삶에 지쳐 낙심하고 있을때에
기도하라 하신주님.
가족들과친구에게 버림받고 괴로워못견딜때
욥의고난을 기억하라하신주님
눈물흘리며탄식하고 있을때의
꼬옥 끌어안으시고
네가 울때 나도 울어쓰며
네가 아파할때 나도 고통스러웠다 하신주님.
감사합니다.
가족 세상인들 다버릴찌라도
내주님은 포웅해 주신는
한없는 주님의 사랑 전하게 하옵소서.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

저는1969.11.21일 4남3녀중 차남으로 전남영광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지100일만에 감기를 앓았습니다.몇일이 지나자 더욱 심해져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부모님께서는 병원으로 달려가셨지요.
그러나 깨어나지못하고 삼일동안 의식을 회복하지못했습니다
그후 깨어났지만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후에도 계속 혼수상태에 빠졌다 의식이 돌아왔다 그랬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전국의 병원을 돌아다니시며 저를살리려 애를태우셨습니다.
결국엔 목숨만은 건질수 있었습니다.집으로 돌아와 작두타는굿과 칼굿을
많이했습니다.어머님께서는 신앙인이었습니다.집에 돼지가 새끼만 낳아도
죽고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부모님께서는 제에게 걷는연습을 시키셧습니다
심지어는 마당에 파이프를 양쪽으로 만들어놓고 시키셨습니다.
각종 부흥성회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그러나 생활고로 인하여 부모님께서는 갖가지 일들을 시작 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남의 논과밭에 농약을 해주고 돈을받았으며 어머님께서는
비가오나눈이오나 섬으로 육지로 행상을 하셨습니다.그러던어느날.농약을
하시던
아버님께서 쓰러지셨습니다.농약중독에 걸리셔셔 많은고생을 하셨지요.
또한번은 방아를찧어오시다가 딸딸이에서 떨어지셔셔 죽을고비도 넘기셨습
니다
집안에 안좋은 일 있을때마다 저를붙들고우셨습니다.저 어렸을때의 일입니

사람이그리워 동네어귀에 나가있으면 돌을던지는 애들 때리고도망가는 애들
아버님께서이를 보시고 애들을 때리고 와서 저에게도 꾸지람을 하셨지요
나가지말라면 나가지말지 왜 나가서 속상하게만드냐고........
제가 아홉살때 초등학교를 입학했습니다.입학씩때 어머님께서 저를 업고 학
교로
가는중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학교가는날이 일년에 반이상은 가
지를못했습니다.3학년때는 큰누나가 자전거로 등하교를 시켜 주었는데
넘어져서 상처도 많이 났습니다.큰누나의 취직으로 사촌형이 등하교를
시켜 주었습니다.그러다 사촌형도 도시로 가버려 학교를 거의 가지를 못했습니다.
너무외로워 울어도 보았고 찬송도 불렸습니다.이렇게 청소년기

지났습니다.18살때 방황하기시작했습니다.제몸의 대해 회의를 느꼈고
인생을 살면서 순수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술을먹고 부모님앞에서 울었고
형수님집에오시던날 술에취해 왜 날 낳았냐고 부모님께 술주정을 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술주정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제앞길이 암흑뿐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절망 안개와같은 인생이었습니다.그러던 어느날 주님은 저를 일으켜 세우셨
습니다.
기선아 네옆에 내가있고 네 외로울때 나도 외로웠으며 네 슬플때 나도같이
슬퍼했단다.털고 일어 서라.저는그때부터 찬송과기도했습니다.교회목사님께

주일학교와중고등부교사를 하라고 권유하셧습니다.저녁마다 학생들을 교회
에데리고가
기도와찬양을햇습니다.아버님께서 장애인용 오토바이를 사주셨기에 가능햇
습니다.
재미로 기도회에 참석했던 학생들이 변화를받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주님

열심히 섬기겠노라 다짐했습니다.모두다 성령춤만하여 세상으로 나아가 전
도하기
시작했습니다.농촌교회요.원불교 성지가 있는곳이라 온갖 우상을 섬기던 고
장이었습니다
학생들 부모님들도 예수믿고 축복받는 놀라운 주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했습
니다.
저희중고등부에서는 청소년 찬양대축제를 계획했습니다.청주CCC크로스나이
프찬양선교단을
섭외하고 한달간 작정기도와찬양연습을 했습니다.기도회를마치고 집으로 돌
아가던
어느날 불의의 사고가 저희들을엄습했습니다.길을가던 자매가음주운전자에
치어30미터를
날아갔습니다.학생들은사고당한자매를 그대로놓아둔채 기도했습니다.주님저
희교회 어떻해요라고요
수습하여 병원으로 후송하여응급실로 갔습니다.검사결과 내일까지 지켜보야
야 한다햇습니다.
주님은 저희들을 붙드셨습니다.허리치료만 하면된다 햇습니다.찬양축제때
교회자리가 부족해
현관까지 찼습니다.너무나 은혜스럽고 구원의밤이었습니다.이렇게 신앙들
이 무르익어갔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걸을수있는 기회를주셨습니다.제가 20살때여수애양재활병원엘 갔습니
다.
의사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집에가서 기다리세요.온몸의 힘이빠지는걸
느켰습니다.
세번을 찾아가 애원한끝에 수술날짜를 잡았습니다.수술받기전날 의사선생님
께서 각서를
쓰라하셨습니다.수술이힘들어 수술중에 죽을수도있으며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있다 했습니다.
다시한번 생각해보라했습니다.
전 의사선생님께 죽어도 좋으니 수술을 해달라고 애원 했습니다.
전 각서를쓰고 다음날 아홉군데의 대 수술을
받았습니다.
마취가 풀리자 저는 악마로 돌변했습니다.악을쓰며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완전미친사람마냥 울부짖으며 차라리 죽여달라고 소리쳤습니다.의사선생님
오실때는
손을붙들고 다리를 잘라버리라고 애원햇습니다.15일동안을 고통속에 보냈습
니다.퇴원을 한후 집에 있는데 저녁에 수술부위에서 피가 폭포수 처럼 흘렸습니다
구급차를 불러 인근 큰 병원에 가니 동맥이 터졌다며 수술한병원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2시간여를 달려 여수애양재활병원에 도착하여 검사를 받는결과 나쁜피가 고여
터졌다고 했습니다
삼개월후 기부스를 풀고 물리치료실에 가니까 이번사람을 왜보냈느냐고 햇
습니다
억지로 자리를잡고 일어서는연습을 했습니다 수술부위가 터져버릴듯한 고통
을 참으며
하루만에 일어서서 걸었습니다.열심히 아주 열심히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런데 수술전보다 약간 좋아 졌습니다
의사선생도 놀랐고 환자들도 놀랐습니다.10
일지나야 설수있는데
몇시간만에 일어섰으니말입니다.모두 힘찬박수와 격려를 보내주었습니다.오
일만에 퇴원 했습니다.
부자유하지만 걸을수있게되었습니다.
저는 전자기술을배워 동생과 미래전자라는상호로 노래방음향기기 대리점을
1995년1.21일개업을
하게 되었습니다.처음엔 고전하였지만 주님께서축복하셔셔 성장케 하셨습니
다.
거래처 노래방공사를 갔다가 주님의오묘하시고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신의딸을 주겠노라고 놀러온손님이 그러더군요.그래서 그냥지나가는말로
그래요장모님
그런후로 몇년이지났습니다.어느날갑자기 그분이 딸을 데리고 제 가게로 왔
습니다.
그해겨울12.18일 눈이엄청 오는날 축복의 결혼을 했습니다.제예쁜딸 지혜,
지은이를 선물로주셨지요.
1999년 어느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셨는데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형제들이 다 마음 아파 했습니다
그런데 더 큰문제는 어머니께서 중풍까지 와 가지고 더 힘들어 하셨습니다.
큰 형님께서 서울로 어머니를 모셔 운동시키시고 하셨지요
3년뒤 섬에서 노래방 공사를 하는데 형수님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어머니께서 위독하시어 시골로 모시고 가고있다고 했습니다.
조금뒤 큰누님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우시면서 어머니께서 돌아 가셔셔 시골로 모시는 중이라고....
일을 마무리하지못하고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집에 모여 계셨고 방으로 들어가니
하얀천으로 어머니를 ............
사랑스런 나의 어머니
일평생을 저를 위해 새벽마다 눈물로 새벽기도를 하셨던
나의 어머니께서는 그렇게그렇게 주님곁으로
가셨습니다.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업을 무리하게 세군데 확장하여 결국엔2002.2.21일 부도를내고 가족들도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아버지재산 처갓집재산모두다 날렸지요.나와서 이틀에 한번 컵라면으로 끼
니를떼웠습니다.
형제들도 가난하여 연락도 못했으며 처 하고도 연락을 못햇습니다.7월에 처
한테 연락하여 만났습니다.저는 서울로 부산으로 대구로 광주를 돌아다니면서
방황의 시간을 보냈습니다.2006년11월시골 아버님 집으로 내려와 생활을 하였습니다.
처와애들은 처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또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 날아 왔습니다.
제 아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는것입니다.
정신과로 큰병원을 다녀 보았지만 차도가 없자 처가에서 제 아내를 제게 보냈습니다.
기도도 해주고 찬양도 불러 주었습니다.
때론 바다로 산으로 데리고 다니며 낳기를 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주일 아침 음독자살을 ..................
주님 왜 저에게 이렇게 가혹한 시련을 주십니까?
나의 발이 되어주었고 나의 손이 되어 주었던 나의 천사를 데려 가시나요.
전 또 다시 술과방황속에 허덕여습니다.
매일 술을 먹으며 떠나버린 아내를 불렸고 그리워 했습니다.
주위에서 딸들을 위해서라도 정신 차리라고 했습니다.
2009년9월MBC에글을 보냈던게 채택이 되어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3일간에 촬영이 끝나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후 뼈를 깎는 고통이 엄습해 왔습니다.
회복기후 물리치료를 열심히 받았습니다.
지금은 목발을 하고 걸을수 있습닏다.
이제는 주님을위해 간증 하며 살렵니다.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사나죽으나
주위해 살렵니다

cjstktkfkd120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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