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사 온 집
정영숙
2008.05.03
조회 55
작년에 이사 온 집 나의 집은 마산시 창동에 있다.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창동 거리를 다녀보면, 서울 명동거리의 인파속에 내가 걸어가고 있구나 하는 으쓱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인구의 이동으로 창동 거리는 추억의 거리가 되었다. 이 추억의 거리 안에 재래시장이 있고 그 재래 시장의 안 골목에 50년 된 한옥(韓屋)이 한 채 있다. 이 한옥을 막내 동생이 리모델링 하여 어머니와 나를 새 기분으로 살도록 이사를 시켰는데 오늘이 1년 하고 몇 일된다. 아파트 생활 27년 만에 한옥으로 옮겨보니 감정이 사뭇 다르다. 이곳 주위에는 한복을 만드는 아주머니들이 방방이서 일을 하고 있다. 바느질 한뜸한뜸에 따라 매무새가 달라지기 때문에 신경을 집중시키며 옷을 지어내는 아주머니들은 식사시간 외는 거의 침묵이다. 바깥에 뇌성번개 벼락이 처도 놀라지 않고 바느질에 몰입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할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70세 가까이 음악과 함께 살아온 내가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거나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치면 깜짝깜짝 놀라, 덩치는 큰데 간담은 콩알보다 작다는 가족들의 비아냥거림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우리 집 마당에는 겨우3평(?)정도 되는 화단이 있다. 이 화단 안에는 크고 작은 꽃과 나무들이 심겨져 있다. 어머니와 나의 유일한 즐거움은 꽃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꽃에 물을 주시며“ 아이구! 예쁜 꽃들아 너희들은 꼭 내 자식 같고 꽃밭은 우리 가정 같구나. 내가 남들처럼 호의호식(好衣好食)은 못 시켰어도 하나님 믿고 기도 한 덕분으로 잘 자란 것처럼, 너희들도 내가 물만 먹여도 쑥쑥 자라나라. 그런데 나처럼 늙지는 말아라! 아이구나 예쁜 꽃아--- ” 어머니는 이런 말을 꽃을 볼 때마다 하신다. 그런데 꽃은 말을 할 줄 모르고 화사하게, 방긋이, 새치름하게 웃고만 있다. 어머니는 화단을 가정, 꽃들을 자식들이라고 비유 하셨지만, 나는 화단을 세계에서 제일 작은 여인국이라고 생각하고 말한다. “ 연산홍아, 백합화여, 동백꽃아! 너희들은 공주. 작은 꽃들은 백성이다” 라고-. 또 6월 중순에서 8월초까지 피는 능소화를 보고는 여왕이라고 부른다. 능소화는 그 피고 지는 것이 너무나 깔끔하여 마치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Cleopatra) 를 연상케 한다. 능소화 피는 어느 날 <오! 나의 능소화여! >라는 가곡 시(歌曲 詩) 한 수를 써서 인터넷 <내 마음의 노래>사이트에 올렸더니, 뜻밖에 중앙대학교 박이제 교수님이 작곡을 해 주어서 지금 열심히 부르고 있다. 우리 집 대문은 꽃피는 달이 오면 이웃 사람들이 누구나 찾아와 보도록 대문을 열어놓는다. 내가 만일 꽃이라면 눈물 나도록 감격하겠다. 바느질 하는 아주머니들,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 일부러 오는 사람들 마다마다 얼굴을 만져주며 예쁘다는 칭찬을 하는가하면, 향기를 맡으며 키스를 해 주니 이 얼마나 자신 만만하리! 창조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식물과 계절에도 공평하신 분이다. 아이 때가 있는가 하면 늙어 가는 때가 있고, 꽃이 활짝 필 때가 있는 가하면 시들어져 떨어질 때가 있고, 봄이 왔구나 하고 좋아서 돌아다닐 때가 있는가 하면 겨울이 와서 방안에 움츠리고 있을 때가 온다. 나는 이런 겨울을 한번 이 집에서 보냈다. 작년에 이사 온 이집은 어머니와 나처럼 오로지 하늘의 부르심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적격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지리산 산골 같이 고즈넉하고, 나가면 재래시장이 있어서 편리하다. 한발자국 더 걸으면 그래도 몇 년 전의 자존심이 남아있는 창동 거리가 있다. 오늘도 어머니와 나는 마당을 쓸며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멀리 살고 있는 자녀들의 전화와 자주 찾아오는 형제들을 기다리면서. 글쓴이-정영숙(사랑이 샘솟는 집 운영위원장. 마산성막교회 전도사)
오! 나의 능소화여!


정영숙 시 / 박이제 곡/ 소프라노 유미자


작은 뜰에 높이 핀 능소화여! 그대는 여왕 그대는 여왕 나 그대의 몸을 휘감고 올라가는 황금빛 드레스와 붉은 날개깃을 바라보니 유월을 안고 그대 앞에 엎드리고 싶소. 오! 나의 여왕 나의 능소화여 그대는 이 여름의 여왕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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