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장애인과 비장애인 행복한 삶
정민석
2007.04.09
조회 51


행복한 우리가정
“우나기”(장어)라고 하는 일본 영화가 국내에 소개가 되어 많은 사람을 울린 적이 있다. 영화 내용은 평범한 회사원 야마시다(야꾸쇼 교지 분)가 우연히 아내의 불륜을 알고 아내를 죽인 후 경찰에 자수하여 장기 수용생활을 하다 모범수로 인정받아 출소를 하였다. 출소 할 당시 뱀장어 한 마리를 들고 출소하여 사람들과 단절하며 살아가는 동안 많은 상처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 한 여성을 알게 되어 그녀를 죽도록 사랑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는 “우나기”(장어)주인공처럼 “살고 싶어요.”

필자는 1남 2녀를 슬하에 두고 부족함 없는 가운데 치과병원에 근무하며 충실한 삶을 임하던 중 1985년 4월 아내의 춤바람으로 인하여 단란했던 가정이 하루아침에 풍지 박산이 나고 말았다.

춤바람은 정신질환자
춤바람……그 것은 사람의 혼을 빼앗아 제 정신이 아니게 만드는 불치의 병이라 하고 싶다.
아내의 잘못을 용서하면서 “지금까지 얌전하게 애들을 키우며 열심히 살아온 당신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고 좋은 말로 수차 사정도 해 보았지만 제 정신이 아닌 아내는 가정 생활하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아내는 가끔 외박을 하여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는 애들이 말이 아니고 때로는 애들이 나면을 끊이다가 손, 발이 데어 고생을 하는 것을 보고 아빠로서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듯 아파 애들을 안고 목을 놓고 울 때가 무기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필자가 출근을 하자말자 아내는 어디론가 외출을 하고 주위에 있는 아주머니들이 애들을 도와주었다는 주위 아주머니들의 말을 듣는 순간 너무나 기가 막혀 온 가족이 함께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바람난 아내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고생하고 있는 가정은 말이 아니고 피자는 날마다 술로서 괴로움을 달래며 살아가던 중 어느 날 오후 늦게 집에 들어와 보니 아내는 없고 아이들은 울고 있다.
애들에게 “엄마 어디 갔느냐” 물어보니 “오전 일찍 외출하여 아직 들어오지 안했다” 는 말을 듣고 갈만한 곳을 수소문하여 풍문에 들었던 카바레를 가보았더니 어둠 속에서 낯선 남자와 춤을 추고 있는 아내를 보고 너무나 화가나 눈이 뒤집혔으나 주위의 사람들도 창피하여 춤이 끝날 때까지 꾹 참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춤을 다 추고 나가는 것을 뒤를 따라가 보니 근처의 여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여관 주인에게 필자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더니 주인도 화가 난 듯이 “경찰을 불러드릴까요” 하면서 “305호실에 있다” 고 말 하여주었다.

한번 선택 잘못하여 사형선고
필자는 조용히 해결을 하려고 주인에게 부탁을 하여 305호실 문을 열어달라고 하였다. 주인이 노크를 하니까 남자는 팬티만 입고 문을 열어주는 것을 필자의 눈으로 확인하고 곳 바로 방에 들어가 보니 아내는 벌거벗은 그대로 이불 속에서 있는 것을 보는 순간 감정이 폭발하여 옆에 있는 석유난로를 던져 급기야 큰 방화의 사고가 컸고 사고로 인하여 아내는 사망하고 원치 않은 방화치사의 죄명으로 법정에 서게 되어 1심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

교특(교통사고)으로 들어온 전도사님을 통하여 주님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1심 재판에서 판사가 사형을 준 무시무시한 형을 2심 판사는 사형을 깨고 무기라는 형을 선고하게 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시다.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을 내린 판사도 아마 장로가 안니가 ?
하나님은 판사님을 통해 살려주신것이다는 것을 등등....

피고 ! 하나님을 믿는가 ?
나도몰래 예 대답을 하였다. 대답한 이유는......
판사는 "하나님 믿고 열심히 살아요 무기로 감형한다" 등등.....

신앙으로 고뇌를 인내하면서 수용생활 열심히 하다가 지금의 아내를 알게 되었고 필자의 생활하고 있는 것을 교도소 직원들이 종은 점수 을 주어 모범수로 인정받아 17년 만에 2000년 8월 15일 귀휴(휴가)를 나와 지금의 아내(1급 지체장애우)와 옥중 결혼을 하고 결혼 한지 만 1년 만에 지난 2001년 8월 15일 광복절 특사로 사회에 복귀하였다.

주님이 나의 구주
처음 교도소에 입소했을 당시에는 미래의 삶을 완전히 포기한 상태로 수용생활을 엉망으로 하였는데 늦게나마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을 감사하면서 수용생활을 하는 것을 당소 직원들이 알고 광주 한빛교회 소속 밀알 여 전도회장 민옥만 전도사님 외 회원 자매들과 결연을 맺어주시어 그분들을 통해 더욱 주님을 열심히 믿게 되었고 그분들의 따뜻한 사랑으로 매월 두 번씩 교도소를 찾아 주시어 필자의 마음을 서서히 신앙인으로 변하게 하여 죽은 아내의 잘못보다 필자의 잘못에 대하여 깊이 회개하게 되었고. 보다 밝은 미래의 삶을 위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타인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야지 해가 되는 일은 하지를 안 하여야지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 하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에 몰두하였다.

남은 인생 장애우들을 위하여
무기수의 몸이지만 언젠가는 사회에 나가 장애 우들에게 봉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배우게 되었다. 4평정도 되는 좁은 공간 속에서 10여명이 함께 생활하며 부족한 재료로 공부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움이 많아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이곳에서 쓰러지면 마지막이라는 각오 하에 어려운 역경을 신앙으로 인내하며 지난날의 어지러워 던 마음을 정리하고 열심히 그림 공부에만 몰두하였다.
새로운 인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밤 10시까지 그림을 배우고 지난날의 과오를 뉘우치며 하루하루를 기쁨과 희망 속에서 생활하면서 노력한 댓 가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및 도전. 민전 등에 출품하여 입상도 여러 번 수상하였다.
기약도 없는 무기수라 하지만 세월이 길고 짧은 것도 생각 여하에 달렸고 세상사 모든 일들도 보고 느끼기에 따라 다르니 그 요체가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마음이 한가롭게 비어 있으니까 “티끌 속에서도 우주를 보듯” 욕심을 없애고 또 없애어 집착을 끊고 마음을 비워 필묵과 더불어 “유유자적” 한 세월을 보내니 항상 기쁜 마음으로 생활을 하게 되고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때때로 괴로울 때마다 화선지를 펴놓고 “열심히 그림을 배워서 사회에 나가면 장애우 들에게 그림을 지도해 주어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면 마음은 거울처럼 밝아오고 모든 잠념이 없어진다.
밤에는 졸음과 피로를 이기지 못하는 나약한 육신을 징계하기 위하여 바늘로 살을 찔러가며 밤 세워 그림을 그리면서 동료들의 잡담을 피하기 위하여 바둑알을 입에 물고 동료들과의 대화도 단절 한 채 벙어리가 아닌 벙어리가 되어 그림 공부를 하였다.
고뇌의 길이지만 특히 예술의 길은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요 정성과 혼이 담겨야만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열심히 그림 공부에만 몰두하였다.
7, 8월 폭염 속에서 바람 한 점 없는 4평의 좁은 공간에서 10여명의 동료가 함께 공부를 하려면 줄줄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수건으로 닦아 내며 삼복더위와 불굴의 정신으로 싸워야 했으며 겨울엔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 속에서도 동료들은 모두 자는데 새벽까지 공부하다 보니 손과 귀에 동상이 걸리는 것은 예사이었으며 문 쪽에 있는 왼쪽 팔은 추위로 인한 신경통으로 고생을 많이 하면서도 “사회의 나가 장애우 들에게 그림을 지도하려면 이 정도의 고생은 참아야지” 하며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자신을 창조 또는 진정한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면서 열심히 그림 공부에만 몰두했다.

기독교인은 죽음도 무서하지 않으다
사형집행을 당하는 형제님이 있었다 집행당시 판사가 집행자에게 묻는다 "소원이 뭐냐" 고.....
집행자는 말한다. "나는 행복합니다 왜냐면 당신들보다 나는 천국에 뭔져가니까 등등

사랑하는 아내를 알게 된 동기
틈이 나는 대로 일반서적. 종교서적 등을 읽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람 있게 보내는 중 1992년 12월 종교서적을 읽어보다가 지금의 아내 오동심(1급 지체장애우)집사님의 시를 읽게 되었다.
시 내용은 장애의 몸으로 삶에 대한 애착이 없는 구절이 왠지 모르게 “동병상련” 의 심정을 느껴 조금이나마 위로의 지금의 아내에게 글을 다음과 같이 보냈다.

사랑하는 자매님 !
우연히 자매님의 시를 읽고 미약한 몸이지만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리고자 감히 펜을 들었습니다.
장애의 몸으로 심신이 얼마나 고생을 하십니까. 여자의 몸으로 그런 엄청난 장애 을 갖고 고생을 하신다니 제 마음이 너무나 아프군요. 저 또한 한 여성을 생명을 읽게 만든 죄인 이로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매님께 위로의 글을 감히 드립니다.
이 세상은 자매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좋은 세상을 평생을 보지도 못하고 어둠 속에서만 사는 사람이 있고. 한 쪽 팔과 두 다리도 없이 엉덩이에 타이어 조각을 붙이고 손 수례를 끌고 다니면서 사람 모이게 위하여 마이크를 입에 대고 노래를 부르며 비누. 타월. 빨래집게 등 을 팔고 있는 장애우도 있습니다. 그런 장애우들에 비하면 자매님은 아주 행복한 분입니다.
행복이란 나보다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면서 삶에 임하면 “나는 행복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이런 곳에서 생활을 하지만 자매님을 도와 드릴 수 있다면 뭐든지 기쁜 마음으로 행하겠습니다. 등 등…….
편지를 보낸 후 15일이 지나 답장이 다음과 같이 왔다.
선생님께 !
어려운 역경 속에서 보잘 것 없는 한 여성의 시를 읽고 편지해 주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그 동안 많은 편지를 받아 보았습니다만 그 중에 선생님의 편지를 가장 뜻 깊게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좋으신 말씀에 더욱 깊이 깨달은바 있고 열심히 예수님 믿고 말씀대로 살아가겠습니다. 선생님께서도 하루속히 수용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주님의 말씀대로 삶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등 등…….

편지 한 통이 아내가 될 줄이야
첫 편지를 보낼 당시만 해도 어려움 속에서 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한 여성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역경에 이겨 희망과 소망을 잃지 말고 열심히 신앙생활에 열심히 하면 우리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위로의 편지일 뿐이었는데.......
인간만사가 “새옹지마” 라드니 세월은 8년(당시 2000년)이 흘렀고 2.000여 통의 편지가 오고 가고 하였다.
장애의 몸으로 교도소 면회를 매월 1회 씩 다니는 순간 사랑의 싹이 띄게 되어 2.000년 8월 15일 옥중결혼을 하여 제 아내가 될 줄이야…….

하나님은 교도소 소장도 감동시켜
1주일에 7~8통의 편지가 오고 가고 한 편지 구절구절마다 사랑이 풍성한 내용을 하나님께서 교도소 소장님께서 보시게 하여 소장님이 감동을 받아 법무부장관님께 필자의 부부 사정을 상세히 보고를 하시어 법무부 장관이 옥중결혼을 허가해 주시어 2000년 8월 14일부터 19일 까지 5박 6일 특별 귀휴(휴가)를 내보내 주시어 2000년 8월 15일 옥중결혼을 하였다.

신혼여행은 장애인 봉사
신혼여행은 마치 전국 밀알 선교 단에서 주최한 장애인 캠프가 강원도 평창으로 3박 4일간 있어 아내에게 의논하여 장애인 자원봉사 겸 신혼여행을 장애인 캠프에 따라갔다.
난생처음 600여명의 장애인과 합동으로 3박 4일간 생활을 하면서 너무나 많은 은혜를 받으면서 하남님의 능력과 모든 감사함을 알았다.
평생을 고개를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생활하는 장애우. 양손이 없는 장애우. 양다리도 없는 장애우. 뇌성 마비로 육신이 뒤틀려 말 한 마디만 할여고 하여도 육신 천체를 움직이는 장애우 등 들이 모두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아 나는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3박 4일 신혼여행을 뜻 깊게 지내고 집에 와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 첫날밤을 지냈다.

눈물의 작별
휴가 5박 6일은 근방 지나가 교도소를 다시 들어가야만 했다.
아내는 떨어지기가 싫어 필자를 안고 울면서 “여보 ! 이제가면 언제나 오나요.” 하며 울어대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듯 아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내와 떨어지기가 싫어도 다시 교도소를 들어 가야만이 하는 처지인지라 발길을 띠면서 아내가 볼 까봐 몰래 눈물을 닦으며 떨어지지 않은 발길로 돌아서면서 “여보! 조금만 기다려요.” 하고 방문 밖으로 나오는데 아내는 필자를 보면서 “여보 ! 배웅도 못해 미안해요” 하며 나오지도 못하고 울면서 손만 흔드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 순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내의 옥바라지 정성으로 출소
아내는 매월 1회~2회 정도 면회를 다니면서 대통령. 법무부장관. 교도소 소장 등에게 “내 남편을 내보내 주셔요. 라는 내용을 담긴 민원을 수차 보냈고 필자를 출소를 시키기 위한 구민운동(각 기관에 민원)을 열심히 하여 옥중결혼한지 만 1년 만에 2001년 8월 15일 광복절 특사로 출소하였다.

차라리 교도소가 좋을 듯
17년 만에 사회를 나와 보니 너무나도 세상은 많이 변하였고 속칭 전과자라는 것이 걸림돌이 되어 사회가 받아주지를 아니하여 무척 마음고생이 많았다. “사회에 출소하면 당신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행복하게 해 주겠다” 는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아파트 경비라도 하여 사랑하는 아내에게 약속을 지켜주고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경비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였는데 전과자라는 이유 하나로 경비도 못했다.
아내는 1급 지체장애 필자는 나이가 많아 일을 할 수가 없는 처지인지라 기초생활보호대상이 되어 정부 혜택을 받게 되었다. 2인 가족 생계비 410.00원 장애연금 100.000원 도합 50여만 원으로 아내와 살아가기가 너무나 어려워 경비라도 해서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하게 살면서 장애우 들을 위하여 봉사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하였는데 “전과자니 안 된다” 는 소리를 듣는 순간 세상이 싫어져 죽고 싶었고 차라리 교도소가 오히려 낳지 않을까 생각도 하였다.

주님과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와 8년이란 긴 세월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교제하며 2.000여 통의 편지를 보내고 받으면서 “당신의 손과 발이 되어 주고. 행복하게 해 주겠다“ 는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로 마음을 위로 삼으면서 아내 몰래 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내는 필자가 힘들어한지 알고 “여보 미안해 나 때문에 고생이 많죠?” 하면서 필자의 얼굴을 만져주며 목을 꽉 안아 줄 때 피로하고 괴로운 마음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아내가 더욱 사랑하고 삶에 힘이 생긴다.
집안일은 필자의 몫이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 요 등 정리하고 방 청소. 아내의 대. 소변을 한 요강 비우는 것도 필자의 몫이다. 그뿐만 아이고 밥 짖고 김치 담그는데도 이젠 능숙하다.
처음엔 밥이 타서 못 먹을 정도이고 찌개를 끓이면 짜고 매워 못 먹었는데 이젠 “필자가 끓인 찌개나 담은 김치를 먹어본 사람은 모두가 맛이 있다” 고 하면서 “김치를 담아 달라” 고 까지 한 자매들도 있다.
나도 할 수 있다
금요일은 필자의 집에서 장애우 4~명을 13시부터 16시까지 그림. 서예를 지도하는데 “나도 할 수 있다” 는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배우는 장애우 들이 너무나 기특하고 고맙기가 그지없다. 장애우 들이 그림을 꼭 배우로 오는 것 보다 방에서 징역이 아닌 징역을 살면서 1주일에 한 번 나들이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오전 일찍이 필자의 차로 대리고 와 점심 한 끼라도 함께 하려고 김치도 새로 담그고 찌개도 끓여 대접을 한다. 그림도 배우고 서예도 배우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며 필자가 만든 음식을 장애우 들이 맛있다고 하면서 먹는 것을 보면 정말 기쁘고 고맙기가 그지없다.
봉사 하면서 기쁨
밤 10시나 자정이 넘어서 전화가 온다. “정집사님 ! 병원에 좀 가야 하는데 도와 주셔요. 라고 급한 전화가 오면 자다가도 가야만 한다. 길이나 알면 다행인데 길을 모를 때에는 너무나 당황하고 고생을 많이 할 때도 있다.
환자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찰 및 치료하고 나면 새벽 3~4시가 넘어서야 집에 와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아내는 “왜 이제 오는 거야” 애교 있게 말하면서 필자의 목을 꽉 안아 주면서 팔베개를 해 준다. 필자도 아내를 꽉 안아주면서 “여보 ! 사랑해” 하며 볼에다 뽀뽀해 주었다.
이삭 장애인 선교회
중증장애우 들을 세상 나들이를 시켜주기 위하여 자원봉사자 10명들이 회비 및 후원 2-3만원을 걷어 장애우들 30여명을 월 1회 정도를 세상 나들이 및 매월 1회 특별음식을 필자가 직접 만들어 대접을 한다.
장애 우들이 필자가 직접 만든 김치찌개 및 홍어무침 또는 장애 우들의 건강을 위하여 삼계탕 및 보신탕을 가끔씩 철 따라 해주면 너무나 좋아하면서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필자의 마음이 기쁘다.

힘이 들 땐 기도
40여명이 나들이 및 회식을 할 때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내는 적은 후원금으로 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움이 많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성경말씀 중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린 것이니” 의 말씀을 의지하면서 다시 기도하고 다음 장애우 들을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힘을 낸다.
약속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과 약속합니다. 필자가 하늘나라 갈 때까지 아내를 사랑하며 장애우 들을 위한 봉사하면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부족한 필자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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