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얼굴
정영숙
2006.12.02
조회 108
얼굴


정영숙


인체의 조직이 과학적이라면 그 인체 중에 가장 예술적이고 신비적인 것이 사람의 얼굴이라고 생각된다. 두께도 얼마 되지 않고 그 안에 들어있는 기관도 그리 많지 않은데 얼굴 하나로 그 사람을 대표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묘한 것인가.
세계의 수십억 인구 중에 똑 같이 생긴 얼굴을 보았는가? 쌍둥이도 제 엄마가 구별하여 부르니 틀린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 다름을 보고 창조주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능력에 감탄을 한다. 만약 얼굴 모습이 같다면 이 지구촌은 무질서의 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점을 미리 아시고 얼굴을 각기 다르게 만들어 알아보게 표시 하셨나보다. 동서양 사람의 얼굴이 다르고, 피부색이 희고, 검고, 누렇게 다르다. 피부로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 구별을 못 할 것 같은데, 그 속의 구조를 보면 알 수 있고, 또 그 구조 중에 눈동자를 보면 더더욱 알 수 있다.
진주알처럼 동그랗고,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바다처럼 깊은 눈동자 안에 <사랑과 미움>을 담고 있는 우물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눈빛을 보면 그 빛 속에 마음의 물을 퍼내는 눈 샘이 있다. 나는 상대의 눈빛을 보며 나에 대한 감정을 관찰한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말없이 앉아있는 거울에게도 미안하다. 왜냐하면 말끔하고 팽팽하였던 얼굴은 어디에 숨고 누렇고, 처진 피부. 앞이마 위엔 흰머리가 송골송골 나타나 있으니 말이다.
화장품을 끊임없이 발라 속이 보이지 않게 더 짙게 가면을 써 본다. 조금 볼만하여 외출을 한다. 아는 사람이 인사로, 얼굴이 훤하고 좋다느니, 하나도 늙지 않았다느니, 예전보다 젊다느니 하고 비행기를 태운다. 그러나 비행기 타는 것이 즐겁지 않다. 왜냐하면, 예전보다 못하여 화장을 하고 나왔는데 더 좋다고 하면 그때는 얼마나 못 생겼을까? 하는 서글픔이 왔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아까운 돈 인줄 알면서 한없이 투자하는 곳이 얼굴이다. 고급 화장품으로 얼굴을 가꾸고, 비싼 옷 입고 잘 먹으면 미인이 되는 것 같아 많은 돈을 죽을 때까지 투자 하지만 깨끗이 씻고 나면 숨겨진 곳이 드러나지 않는 곳이 없다.
나는 오늘 어시장에서 어떤 불쌍한 부자 할머니를 만났다. 그 할머니는 피부도 훤하고 비싼 옷을 입고 있어서 외모로는 떨어짐이 없다. 그런데 더 가까이 가서 눈동자를 보니, 넋을 잃은 듯 초점이 흐리다. 물론 나이 탓도 있겠지만---
내가 “안녕하세요? ” 하고 인사를 했더니 초면인데도 살아온 얘기를 술술 했다. 요약하면, 6.25전쟁 때 월남하여 밑바닥에서부터 안 해본 일 없이 다 하면서 자식들 공부 시키고 부자도 되어 남 보기엔 부러울 것이 없는데, 왠지 아들이 결혼을 한 후에는 돈 필요할 때만 자기 방에 들어와 이야기 하고, 며느리도 어찌나 차가운지 밥하여 주고는 제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고, 손자들도 학교 갔다 모면 인사만 꾸벅 하고 어디론지 가 버리니 도저히 외로워서 빨리 죽는 게 소원이라고 하며 눈물을 닦았다. 그르면서 자기는 <불쌍한 부자>라고 한다. 한숨 돌리고서 하는 말이 “아마 내가 죽고 나면 삼남매끼리 재산싸움 깨나 할 것이요” 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 할머니, 지금까지는 나를 위하여 열심히 살아 오셨지만 이제 남은 생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 보세요. 그르면 인생이 달라지고 살맛이 날 것입니다 ” 라고 했더니 자기는 살아온 것이 억울하여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하며 슬며시 자리를 옮겼다. 스스로 말하는 불쌍한 부자다. 그래서 눈동자의 초점이 흐렸던가?
반대로 나의 어머니는 가진 것이 없어도 매일 즐겁고 얼굴 표정이 밝다. 우리 7남매 기르시며 시집살이에, 가난에 고생도 많이 하셨지만 지금은 자식들의 섬김을 받으며 행복하게 사신다. 자식들이 매월 잡비를 드리면 그 돈을 받아가지고 이 돈은 하늘나라에 저금하고, 이 돈은 손자들 생일과 명절에 선물하고 하시며 즐거워 하신다. 그리고 노인당이나 모임에 다녀오시면 일찍 천국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나는 다시 태어나도 너희 아버지와 결혼해 살겠다” 라고 하시며 깔깔 웃으신다. 나도 어머니의 행복하신 얼굴을 보고 덩달아 웃으며 작은 행복의 순간을 맛보았다.
내 나이가 벌써 칠순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아들딸 결혼 시키고 손자손녀도 보고 이 세상 책임은 다 정리 되었다. 남은 일이 있다면 하늘나라 가는 것뿐이다.
그동안 나는 육신을 위하여 열심히 살고 주님의 일에는 등한시 했다. 오늘이라도 하나님이 오라하시면 복종하고 따라가야 하는 연약한 인간인데 너무나 한 일이 없다. 마음이 조급하다. 주님 앞에 서면 어떻게 못 생긴 내 얼굴을 들지 암담하다. 그래서 변명 같지만 지금이라도 건강을 주시는 그날까지 주의 일 해 보겠다고 다짐하며 내가 받은 달란트대로 봉사의 일터를 가고 있다
오, 주여! 거꾸로 서서 살아온 이 죄인의 허물을 씻어 주시고 내 생명 끝나는 그 날에 주님 앞에 설 때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드는 사람이 되지 않게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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