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애 전도사님의 일생
김미옥
2006.06.02
조회 700
2006년 3월 어느날.
친구의 전화.
요즘 나 새벽기도 한다. 기도중에 왜 자꾸 너에 대한 마음이 쏟아지는 지 모르겠다.
너도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 잘 다녀라.
“그래 나 요즘 애들 데리고 주일 마다 안빠지고 나간다. 걱정마라”
누가 누굴 위해 무엇을 걱정하지 말란 말인가.
친구는 그렇게 서서히 물밑 작업(?)을 시작했다.

2006년 4월 어느날.
친구의 전화.
그렇게도 매매가 되질 않아 속썩이던 학원이 팔렸다.는 기쁜소식과 함께
새벽기도의 결실이 벌써 나타났다며, 또 한번 왔다갔다 눈도장만 찍는 수준의
내 믿음 생활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말을 이어갔다.
박순애 라는 전도사님이 계시는데, 그분의 집회를 따라 포항엘 다녀와야 한다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친구는 주저리 주저리 얘기를 늘어놓는다.
한참을 박순애 라는 한 여인의 대한 얘기를 듣고 수화기를 내려 놓았는데
오지랖 넓은 아줌마의 특성인가 왜 그리 그 여인에 대한 궁금함이 목마르게 느껴지는걸까.

2006년 5월 어느날.
친구의 전화.
28일날 약속있어?
박순애 전도사님 집회가 이번에 우리교회(분당제일교회)에서 시작 하니까
아침에 일찍와서 오전예배부터 함께 보자.
“그래? 그럼 그럴까!”

머릿속에 남편의 표정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집근처 교회에 나가는 것도 탐탁치 않아하는 사람인데. 분당까지 가서 예배보고 온다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못가면 말지 뭐.
“따르릉..따르릉..”
미국에 살고 있는 작은언니다.
하나님 말씀만을 주식으로 살고 있는 믿음 빡쎈 언니에게 대화중에 나온 박순애라는 전도사의 얘기
그리고 언니가 너무도 잘 아는 내친구의 학원매매에 대한 얘기.
대뜸 하는 말
“그래 내가 언젠가는 하나님이 그 두사람을 부르실줄 알았다.(주민관,채송하)
부흥회에 꼭 갔다와라. 최서방(남편)한테는 내가 말해볼게“
“아냐.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내가 다니는 교회 (드림교회) 홈피 자유게시판에 글을 남긴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이번주는 잠시 외도(?)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매매된 학원의 볼일이 있어 온 친구가 우리 큰아이편에 책을 한권 보내주었다.
“찔레꽃 그여자”
책 제목보다. 빨간색띠로 둘러진 “MBC 느낌표 ..어쩌고 저쩌고”
그것이 더욱 책의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읽기 시작한다.

2006년 5월 27일 저녁.
조카 내외가 찾아왔다. 군 재대하고 복학한 조카도 함께(큰언니와 나이차가 많아 조카들이 모두
성인들이다)
일주일 내내 앉아서 핸들과 씨름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우리 남편은 때때옷 입고 싶어 명절날 되기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술이 먹고 싶어 주말을 기다리던 터라, 거기다 술친구들도 찾아왔으니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다 싶은 표정이다.
어느정도 술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살그머니. 내일 예배보러 분당으로 갈거라고, 친구가 태우러 온다 했다고
말을 꺼냈다.
알았어. 갔다가 일찍와
“그러~엄. 바로 올 거야”
그리고는 얼른 다른 대화로 화제를 돌리는 쎈스를 발휘해서 [허락] 그 이외의 답은 듣지 않았다.

2006년 5월 28일
여전히 예쁜 모습으로 친구가 찾아왔다.
10살짜리 큰아이와 3살짜리 둘째를 데리고 호기심에 가득찬 마음으로 집을 나서 차에 탔다.
낯설다.
친구의 학원이 분당에 있어서 몇번 오긴 했지만, 교회는 처음이다.
교회 입구에서부터 모두들 아주 많이 봤던 사람처럼 웃으며 인사들을 하신다.
내 아이들과 나 역시나 웃으며 예배당으로 올라갔다.
11시가 되니 갑자기 불이 꺼진다.
허름한 포장마차 아줌마가 나오시고, 이내 많이 망가진 술주정뱅이 김씨가 친구와
함께 나타난다.
많이 보던 얼굴이다.
선생님들을 꼼짝 못하는 하는 카리스마를 가진 [GnB영어학원]의 주민관 원장이다.
아니 주민관 전도사님이다.
김씨의 회개와 하나님의 높으신 사랑을 충분히 내것으로 받아들이고, 예배를 시작했다.

내가 섬기는 교회의 하나님과 이곳 분당 제일교회의 하나님은 모두 동일 하시다.
예배보는 순서.. 모두 같다.
아무 부담없이 주일 11시예배를 드렸다.
예배 중에 소개되어 나오신 박순애 전도사님을 처음 보았다.
앗. 책의 내용으로 보아 촌티가 좔좔 쏟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다 착각이다. 곱고 예쁘신 분이다.
목소리 도 괜챦고 .이따 오후 부흥회 시작하면, 들어볼 만 하겠다
친구가 대접하는 점심을 맛나게 아니, 세살짜리 작은아이 때문에 어디로 밥을
먹었는지 모르게 , 하지만 배부르게 먹고 다시 예배당으로 들어왔다.

아까의 그 허름한 차림의 주정뱅이 김씨가 멀끔하게 옷을 갈아입고,
젊은 찬양팀을 이끌고 온 예배당이 꽉차도록 힘있게 주님의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눈빛하나만으로도 사랑이 느껴지시는 목사님의 소개와 함께 박순애 전도사님이
등장하신다.
시작이다.
호기심 하나만으로 시작된 그분과의, 만남의 시작이 지금부터다.
어릴때의 살아온 과정-고난과역경
운다. 나도 울고 옆에서도 뒤에서도 그리고 앞에서도 어깨를 들썩이며 연신
수건으로 콧물을 훔쳐내는 뒷모습도 보인다.
엄마의 이야기
성폭행 당한 이야기, 아버지 이야기....
내가 알지 못하는 아픔이건만 왜 그리도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을까.
울지도 않으시고 지난날의 일들을 너무도 정리가 잘 된 원고를 보고 읽듯이,
그렇게 마음속에서부터 토해내신다.
결코 원고는 없다. 성경만이 탁자에 놓여있을뿐
불이 꺼지고 마지막 10분의 통성기도.
내가 아주 어릴적 엄마손 잡고 따라갔던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처음으로
보았던 통성 기도의 현장.
기억이 되살아난다. 옆에서 엄마는 소리지르며 울고불고,,(그때의 표현)
지금은 내가 하고 있다. 내 옆에선 똑같은 느낌으로 나의 딸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교회를 나설때 친구가 박순애 전도사님께 날 소개시킨다.
제 동창이예요.
“기지배, 좀 더 친학척좀 하고 전도사님께 소개좀 더 잘 해주지..”
물론 속으로만.
퉁퉁 부은 눈으로 집에 들어서자, 남편의 큰 눈이 더 커진다.
교회갔다오라그랬지, 누가 울고 들어오라고 했어?
그냥 헤~ 웃었다. 부어올라 형편없는 얼굴로..

2006년 5월 29일
내가 먼저 전화.
“나 가고 싶은데, 퇴근하고 가면 7시까지 못갈거 같은데..!”
알았어, 내가 갈게. 6시30분에 집앞으로 갈게. 이따봐
큰아이 태권도 끝나고 오면 6시 20분 . 작은 아이 어린이집에서 오면 6시 30분.
내가 신세지며 출.퇴근 카풀을 하고 있는 집사님께 최대한 빨리 퇴근 요청을 하면
집에 도착시간이 6시 30분...
아싸. 만사형통이다.
아이들 배고플까봐 치킨이랑 빵을 잔뜩 친구가 사가지고 왔다.
차안에서 먹으며 출발~~~!
친구는 차를 참 험하게 몬다. 거기다가 먹으면서 운전까지.
“은정아, 이모 운전하는건 절대 배우지마라.”
웃음이 지나갔다.
눈물의 축복이 시작된다.
축복의 기도가 넘치고, 울음이 섞이고, 웃음이 간간이 새어나온다.
간증과 함께 은혜가 넘치고, 십일조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치게 하신다.
남편의 업무가 9시 30분이면 끝나기에 데리러 오라고 요청을 해놓고,
내심 걱정이다.
분명 들어와서 볼텐데. 통성기도 하는걸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에라 모르겠다. 주님만이 아신다. 내 기도의 깊이와 간절함을..
누가 손가락질 해도 상관없다. 누가 뭐래도 관심없다.
작은아이를 아빠손에 맏기고, 예배단으로 올라가 두 손을 높이 들로
부르짖으며 기도 했다.
한참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왔다. 내 다리를 붙들고 울며 기도한다.
남편은 모른다. 우리의 이 간절한 기도를...
빨리 함께 할 수 있기를..
아니나 다를까. 차안에서의 한마디.
이단이지? 그게 어디 기도야? 미친짓이지.
또 히죽이죽 웃음으로 떼운다.

2006년 5월 30일
기적같은 축복의 얘기를 하신다.
와~ 축복이 저렇게 다가오는구나.
부럽다. 돈도 많이 벌었겠다.
십일조도 충만히 드릴 수 있었겠다.
특별히 집회기간 중에 제일 많이 웃은 날인거 같다.
울음의 물결보다 웃음의 파도가 더 큰 날이다.
내일은 가족이 함께 들어야 할 시간이라고 하신다.
투표끝나고 어떻게 해서 남편을 데리고 올 수 있을까?
오늘 저녁에 가서 발 마사지라도 해주며 꼬셔볼까?
가슴가득 축복받은 전도사님의 얘기를 안아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남편이 오늘은 반응이 없다.
또 울었구나, 하는 표정으로 날 잠깐동안 바라보다 만다.
오늘도 착한 우리 큰딸은 동생 쫒아다니며, 엄마가 편하게 예배볼 수
있도록 헌신을 했다.
언제나 의젓한 우리 은정이가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인다.

2006년 5월 31일
투표를 마치고, 큰아이 태권도학원에서 개최하는 학부모 참관학습에
갔다. 끝나니 5시다. 함께 있던 학부모님 한팀이 우리에게
저녁식사 같이 할 것을 요청했다.
정중하게 사양.
“선약이 있습니다. 다음에 한번 같이 하시죠”

밖으로 나와서 한동안 분위기 살피다가 얘기를 꺼낸다.
씨도 안먹힌다.
바늘로 바위찌르기다.
몇일 양보해서 밤늦게 태우러 갔었으면 됐지. 쉬는 날까지.
가야되겠어? 이런날은 당신이 좀 양보해야 되는거 아냐?
언성이 높아졌다.
잠시 침묵.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기왕이면 룸미러에서
잘보이는 위치에 앉아서..
“그럼. 데려다만 줄테니까, 올때는 택시타고와”
알았어. 고마워..
도착하니 6시 조금 지났다. 밥은 먹고 들어가라며,
분식집엘 들어가서 아이들 밥챙기느라 정신없다.
운전조심해서 가.
끝나면 전화하고 출발할게.
예배당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은혜가 충만하신 분이 내 옆자리에 앉으신 듯 하다.
기도중에 방언을 하신다.
정말 신기하다.
딸 은정이는 눈만 바쁘게 굴리며 그 아주머니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가희는 3일동안의 집회에 어느새 익숙해져 찬송소리가 하늘을 찌르는데도
코~~ 잘 잔다.
박순애 전도사님의 간증. 남편과의 만남과 좌절 절망.. 미움.
많이 울었다. 그냥 감각없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자고 있는 딸의 얼굴에 떨어졌나보다.
움찔하는 느낌이 전해져 온다.
함께 미워했다. 어쩌면 그런 남자가 있을까.
나였더라도 죽이고 싶었을 것 같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도 반전이였다.
전도사 직분과 함께 열심히 하나님일에 몸바치고 계시는 현재의 남편.
왠지 오늘은 남편을 보여줄 것 같은 기대가 있었는데. 엇..
정말 박수와 함께 앞으로 걸어나오신다.
역시~~
웃지 않으면 말 걸기도 힘들 것 같은 첫인상.
하지만, 그 입에서 주의 찬양이 흘러 나오자
정말 어이없게도 또 한사람의 천사가 등장한 것 같은 착각(?) 이 들었다.
꼭 한번 교회버스를 타고 함께 뽕짝 찬양을 부르며 동행하고 싶어진다.
불을 끄고 통성기도.
기도중에 자꾸 터져나오는 잉태의 기쁨을달라는 부르짖음.
친구의 곁으로 가서 나도 모르게 울부짖었다.
사랑하는 내 친구에게 잉태의 기쁨을 주소서. 주여. 주여.
주전도사님이 우리 둘의 손을 꼭잡고 함께 기도를 해 준다.
눈물을 훔치며 4일간의 부흥회를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제일 늦은 시간이다.
묻기도 전에 집에 들어서자 마자.
“휴~ 이제 다 끝났다. 거기 안가도 돼. 아직 안잤어? 뭐 저녁 간식이라도
차려줄까?“
먼저 선수치며 어울리지 않는 아양을 부렸다.
됐어.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더 이상의 얘기를 안해 주니 고맙다.
계속 여운이 남는다.
찬양소리 기도소리 그리고 조용히 깔리는 박순애 전도사님의 은혜받은 인생 스토리....

2006년 6월 1일
장남감을 가지고 놀던 3살 작은 아이가 갑자기
두손을 높이 쳐들더니, 쭈여. 쭈여. 한다.
하하하하
한참을 끌어안고 뒹굴면서 웃었다.
아빠가 없어서 다행이다.
새벽에 문자메세지 도착.
친구가 보냈다.
아마도 새벽예배마치고 보낸 것 같다.
답장을 날린다.
“아멘. 매일 기도드립니다.”
고맙다. 친구야.
주님의 은총이 항상 너희 부부의 머리위에 빛나서, 더 큰 쓰임받아 사명을
다하길 기도할게.

2006년 6월 3일

찬양부르며 손뼉치길 어색해 하던 내가,
성경을 보면서도 머릿속엔 온갖 잡생각만 하던 내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너로 인해서.
고맙다 사랑하는 친구 송하야.
그리고 그의 남편 주민관 전도사님.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