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십자가
김진영
2006.05.20
조회 99
돌아온 십자가

아내는 명동 지하철역에서 작은 십자수 가게를 한다.
아내는 십자수에 빠져 산다. 그래서 십자수 가게 하는 것도 즐겁단다.
이렇게 십자수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단골도 많다.
오랜 단골손님은 고등학교를 거치고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해서 아기를 엎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들 자기만의 취미와 재미로 행복하게들 사는 사람들이다.
이 십자수를 취미 삼아하는 사람들은 하얀 천위에 색실로 낙원을 만들어가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내는 이런 취미를 가진 단골들과 친해서 서로 음식도 나누어 먹고, 선물도 주고받고 할 정도로 가까운 이들이 많다.
어떤 이는 친척같이 서로 경조사를 챙기는 사이로 변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내와 단골과 같은 자리에서 십자수를 놓으면서 방송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이 십자수를 하는 것을 보는 경우도 있다.
“저 탤런트 좀 보세요, 손등에 십자수 쿠션을 들고 있네요”
“그러내요, 저분은 성격이 괄괄할 것 같은데, 참한 여자처럼 십자수를 하는 군요. 귀여워라”
“귀엽기는요, 시집갔어요”
“시집가도 귀여운 것은 귀여운 거예요, 돈 안들이고 십자수 선전해 주잖아요. 호 호 호 ”
“아줌마도 참! 하 하 하”
이 십자수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그림바탕에 한 칸씩 한 칸씩 사랑의 실로 메워나가는 것이기에 다른 취미나 예술작품과 사랑과 정성이 있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이렇게 정성들여서 십자수를 다 놓으면 쿠션도 만들고, 비개, 잠시실례 주차쿠션, 아기신발, 액자 등을 만들어서는 자기가 소장하기보다 사랑하는 그 누군가에게 전달된다.

단골 중에 매일 출석하던 얼굴이 예쁜 직장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밝게 웃는 얼굴로 혼자 가게를 찾아오던가, 아니면 연인과 함께 찾아와서
“아줌마 저 왔어요” 하며 명랑한 기쁨을 안겨주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슬픈 얼굴로 혼자 다녀가고, 오가는 일도 뜸하다가 나타나면
“요즈음 자주 안보였어요?”
“직장을 그만 두었어요”하며 쓸쓸하게 말했다.
“애인은?”
“헤어졌어요”
“아니 이렇게 예쁜 사람을 두고 어딜 간 거야, 내가 돌아오라고 기도 할게요”하며 아내는 그녀가 숨기고 싶은 것을 캐물은 미안함에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아줌마”하면서 그녀는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가게를 뛰쳐나갔다.
그 후 몇 달이 지난 뒤에 아내의 기도가 하나님께 잘 전달되었던지, 그녀가 애인과 나란히 가게로 찾아왔다.
그녀는 전보다 몸은 비록 바삭 마르고 수척해진 모습이었으나, 애인과 함께 행복한 모습과 희열에 찬 음성으로
“아줌마 부탁이 있는데요”했다.
“그래요, 뭐든지” 아내는 애인과 다시 만난 것을 축하하는 기분으로 무슨 일이든지 들어 주고 싶었다.
“실은요, 제가 시어머니를 드리려고 놓다가 가져온 십자가 모양을 받으시고, 저기 벽에 진열된 것과 바꾸어 주시면 안 될까요, 사례는 얼마든지 할게요, 오늘이 시어머니 생신이셔서요”
“안 될게 뭐 있어요, 진열된 십자가도 가져가시고, 놓다가 만 십자가도 가져가서 다 놓아서가져 오세요, 그리고 어머니 잘 모시고요” 하면서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아마도 그녀는 결혼 대상인 애인의 어머니 마음에 들어야 할 일을 꼭 해야 하는 듯했다.
아내는 십자가가 수놓인 액자를 포장해 주면서 행복해하는 그녀의 얼굴을 돌아다보고 축하해주었다.
“아줌마 고마워요, 일주일 뒤에 가져다 드릴게요”
“그래요, 청첩장도 보내 주시고요”
“예" 하고 한 쌍의 젊은이들은 즐겁게 돌아갔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일년이 두 번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여보 그 아가씨 안 오는가 보다”
“십자가 들고 간 일이 잘 된 일인지 저도 궁금하네요”
“2년이나 됐어”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게 안으로 아기를 안은 그녀가
“아줌마 저 왔어요” 하면서 돌아왔다.
“아니 이게 누구야, 그간 소식도 없더니”
“우리 신랑과 외국에서 살아요, 그래서 오고 싶어도 못 왔어요, 아줌마 정말 미안해요. 제가 마무리한 십자가 받으세요”
“아니 십자가를 수놓은 것은 이제 안 돌려 주어도 되는데...”
“아니요, 늦었지만 약속대로 제 십자가를 받아 주세요.”
“하여튼 고마워요”
“다른 것도 아니고 십자가 액자라서요”
“십자가가 돌아 올 줄 알았어요, 행복하세요, 호 호 호”
“아줌마도요, 후후후”
[김진영: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2083 성저마을 603동 104호 전화 ***-****-****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