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주님의 평안이 CBS와 늘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전 마흔 일곱의 늦깍이 소설가입니다. '빛의 크레파스'라는 전자책을 2017년
에 출간했고 얼마전 출판사와 계약해지를 하고 <네이버 웹소설 첼린지리그
>에 무료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열 일곱에 대인공포증에 걸렸고, 스무살 때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
정신병원에 입원한 횟수를 열 번 정도 헤아리다 너무 많아 남들에게는
'열 번'정도 입원했어요 라고 말 할 정도로 많은 입퇴원을 했습니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어머니, 형에게 많은 상처를 받아 대인공포증에 걸려
치료를 받고 그런 가정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가지 않을 수 있었던 군대
를 갔지만 소대에서도 왕따였습니다. 다행히 중대장님이 뼈속까지 군인인
'육사'출신이라 장갑차 부대에서 혹독한 훈련으로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
어 탈영이나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지나고 보니 다행이었습
니다.
스물 여섯에 왼 손목을 커터칼로 끊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성바오로병원으
로 후송되어 긴급수술을 받고 3일만에 깨어나 고려대안암병원 정신과 폐
쇄병동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왼 손의 엄지와 검
지 그리고 중지와 손바닥 절반이 감각이 50%만 회복되어 지금도 글을 씀
에 있어 잦은 오타가 납니다.
30대 중반, 지방의 교도소 같은 정신병원에 입원 할 당시 계속 마음속에
"글을 써라"라는 마음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지만, 자존감이 낮았던 전,
'내가 무슨 글'이라며 무시했었습니다.
회상해보니 초등학교 때도 그리고 고등학생 때도 글을 잘 쓴다는 칭찬과
표창을 많이 받았었지만, 당시는 난 쓰레기 같았고, 가족들조차 면회도 오
지 않는 버림받은 사람이란 생각에 그런 기억도 나중에 제가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더랬습니다.
자살시도 후, 온 집안이 정맥이 끊어지며 흘린 피로 범벅이 되어 마당에
쓰러져 있는 걸 이웃들이 목격해서, 제가 고려대병원에 입원해 있는 기간
에 부모님은 집을 급매로 싸게 팔고 하계동으로 창피했는지 이사를 갔고,
퇴원해서 생경한 하계동의 아파트에 오니 모든 것이 낯설었고, 아버지, 어
머니, 동생이 오전에 일터며 학교에 가고난 후론 홀로 정신과 약으로 겨
우 안정을 찾으며 우두커니 시간을 보내다 어느날 베란다로 나가 창밖 풍
경을 보던중 우축을 바라보았는데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전 어렸을 때 성당을 잠시 다닌적이 있었는데, 당시 토요일에도 미사가
있어서 달력을 보니 그날이 토요일이었고, 그래서 그곳이 성당인지 교회
인지 모르고 무작정 무언가의 이끌림에 간 것이 신앙의 시작이되었습니다.
교회 쳥년예배를 시작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오랜시간동안 주님께서 저의
상처를 조금씩 조금씩 치유해 주셨고 전 교회 생활 1년 정도 된 시기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마치 시냈물이 돌돌돌 흐르는, 세상의 어떤 성우의 목소리도 비교할 수 없
는 음성을 들었지만 온 뼈가 요동을 치듯 떨렸고 두려웠습니다.
그때 "두려워 말라"라는 음성이 들렸고 신기하게 떨렸고 두려웠던 것들이
평안으로 바뀌는 체험과 갑자기 혀가 마치 참기름을 입안에 가득 머금은
것처럼 지맘대로 움직이더니 이상한 말이 나와 손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나중에야 그것이 방언이었으며 "두려워 말라"라며 이어진 말씀이 이사야
서의 말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후 잠시 세상것과 다른 엄청난 평안을 두어 달 가량 느끼다
저의 습관적인 죄성에 빠져 곧, 다시 원상태가 되었습니다.
각설하고, 지금은 주님께서 분명하게 제게 글을 쓰라고 말씀하셔서 반신반
의하고 서울에서 춘천에 내려가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 전자책으로 '빛의 크레파스'라는 작품이 나왔습니다.
물론, 얼마전 다시 재고와 탈고를 하여 세상에 내놓기 위해 출판사와 계약
해지를 했지만, 열 번까지 해아리다 말 정도로 아무런 꿈도, 아무런 희망도
없던 제게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마음에 일었던 "글을 쓰라"는 음성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음성이었으며, 앞으로도 상처입은 이들을 위해 그리고
꿈과 소망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위로와 희망을 주는 글을 쓰려
주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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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j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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