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왕이 다윗을 잡으려고 선지자의 무리들이 있는 곳에 갔다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강한 영에 이끌려
저들과 함께 방언하며 예언을 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사울왕도 저들 선지자들과 같다고 생각을 하여
사울의 일이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추종한다.
압살롬의 수려한 용모에 이스라엘은 마음을 빼앗겨
다윗을 배반하는 사태를 일으키면서도 그것이 반역인 줄을 모른다.
거짓 선지자들도 귀신의 힘을 입어 얄팍한 이적이나 표적을 보이니
저들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는 줄 착각을 한다.
바로왕의 술객들이 지팡이로 뱀 만들고, 물을 피로 만드니까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자기들도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세가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예언하며 가르칠 때
아론과 미리암도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모세를 거스려 대적할 때
많은 이스라엘이 동조하여 일어섰고,
예수님의 기적과 표적을 보고서도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도 그렇게 한다고 평가해 버렸다.
왜 오늘날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보면서도
그 속에 숨어 있는 영적 심각성을 모르는 것일까.
그런데 사단은 바로 이 문제를 노린다.
하나님만이 아니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영적 문제에 대한 일의 심각성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인데
여기에 하나님의 사람들 거의 모두가 이런 일에 걸려들어 허우적거리다가,
주를 믿으면서도 주와 상관이 없는 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단의 계략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곧 죽을 것 같고 망할 것 같은 문제가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고서도 낫거나 해결되는 것을 볼 때
그렇게도 하나님 없이는 안 된다고 방방 뛰던 자들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그와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약 먹고 치료받으니 좀 낫기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 만나서 자문을 받은 것이 효과가 있고
사람들의 도움이 실질적으로 힘이 되니까
슬슬 그릇된 자신감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이런 문제는 하나님께 죽으라고 메어 달리지 않고
절대 순종치 않아도, 몸부림치며 기도를 하지 않아도
하나씩 호전이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홍수가 나면 더 크게 제방 쌓고
미리 준비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암에 걸려도 방사능 치료나 항암 치료하니까 낫는다는 생각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님과 의논을 하는 일보다
더 크게 자신에게 부각된다.
즉 사단의 거짓 표적이나 일에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절대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제발,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 회복되자.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자는 매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겸손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사단이 주는 세상의 지식은 하나님의 능력은 상대화시켜서
하나님께 자신을 낮출 기회를 빼앗아가 버린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내가 어떤 지도자를 만나서
어떤 가르침을 받느냐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내가 사느냐 죽느냐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영적인 지도자들을 만나면 영안이 열리고 하늘이 보이지만
어두운 지도자를 만나면 육의 눈이 밝아 세상의 처세술은 보일 찌라도
하나님의 일하심과 하늘의 능력은 결코 보이질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탄은
거짓 교훈과 표적으로 자석처럼 우리들을 끌어 당겨 버린다.
세상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자신이 분별이 안 될 때, 일의 심각성을 잃어버리게 할 때
제발 거짓에 끌려들지 말자.
비록 온 세상이 거짓으로 판을 쳐
참이 하나씩 사라져 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속에서 참과 진리를 가진 소수를 가려내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결국은 그 남은 참과 진리의 도를 지키는 자를 통하여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시고
하늘나라의 주인공으로 만드시는 것이다.
제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표적 주실 때에 감사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참이라고 가르칠 때
그것에 순종하는 자가 되자.
모든 문제의 답은 하나님께만 있기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자가 최고의 복된 자이다.
사단의 미혹에 속지를 마라.
눈에 보이는 것이 절대로 참과 진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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