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길이 좁은 이유.
아브라함.
2003.02.07
조회 229
믿음에도 종류가 많이 있다.
큰 믿음, 작음믿음, 두려워하는 믿음, 책망 받는 믿음,
칭찬 받는 믿음, 역사하는 믿음 등이다.
문제는 어떤 믿음이든지 간에 그 믿음이 크던 작던지 간에
모든 믿음은 역사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베드로는 자기도 물위로 걷게 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주의 말씀대로 물위로 뛰어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베드로의 몸은 물위를 걷고 있었다.
그러나 한 순간 자신의 행위가 너무 신기해서 주변을 보다가
풍랑으로 인해 물에 빠져 들어갈 때
주님은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책망하신다.
놀라운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믿음이 적은자라고 책망을 받아도 물위를 걷는 기적을 일으킨다면
믿음이 큰 자는 어떤 역사를 일으키겠는가?

그렇다.
겨자씨 한 알이라고 하는
별로 눈에도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희미하고 작은 믿음만 가지고 있어도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이 주의 말씀이다.
오늘날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생활하고 있으며 믿고 기도하며 살고 있는가?
그런데 왜 뽕나무가 뽑히어 바다에 던지우라는 말 한마디에
바다에 빠져 심기우는 역사가 일어나지를 않는 것일까?
이것은 아무리 우리가 믿음을 이야기해도 내속에는 사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없다든지 아니면,
믿음 있다는 그것이 전부 잘못된 믿음이든지 아니면
사단이 준 믿음을 갖고 참 믿음인체 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태복음 16:13~28절까지 보면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함께
주님은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면서 땅에서 무엇이든 메거나 풀면
하늘에서도 메이고 풀리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주님은 약속하셨다.
베드로가 그 약속을 받았던 이유는 주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 때문인데
그 신앙고백은 人間의 지식이나 지혜가 아니라
하늘이 가르쳐준 지혜 때문이었다.
즉,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과 믿음은 人間적인 차원이 아니라
철저히 하늘 차원의 삶에서만 나타나야만 하고
그 믿음이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믿음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기적이 안 일어나고 역사가 없다는 것은
답은 간단하다.
하늘이 가르쳐준 지혜와 믿음이 아니라
人間이 가르쳐서 배운 지혜나 지식에 의한 믿음 때문이다.

人間의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여도
성령에 의한 감동 속에서 성령을 통한 대언의 말이 아니면
그 말은 아무리 천사의 소리라고 해도 사단의 소리가 되고 말며
사단이 준 말은 아무리 논리적이고 분명한 말이라도 해도
그것을 믿고 달리는 자는 사단이 준 믿음의 논리로써 살아가게 되기에
그 믿음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를 않는 것이다.
깊이 되새겨보라.
베드로가 한때는 절대적인 믿음이라고 해도
주님은 베드로가 주의 고난을 막을 때에는 일언지하에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신다.
베드로가 그토록 위대한 믿음의 소유를 했다가
어째서 사단적인 믿음이 되고 말았는가?

베드로가 주님의 길을 가로 막았던 이유는
아무리 자기가 생각을 해보아도
절대로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면 안 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베드로의 결정적인 실수는 모든 결정권은 주께만 있는데
제 스스로 주님의 사역에 대하여 엄청난 일을 결정함으로써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 앉아 결정을 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方法대로만 해야 되고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의 결정에만 따라야 한다.
아무리 선하고 도덕적이고 당연지사라고 해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 결정이 나오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주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앞길에 걸림돌을 놓아 넘어지게 하는 일이다.

잊지 말자.
사람들이 아무리 主여 主여하고 믿음의 큰 역사를 일으킨다고 해도
모든 내 삶의 의사 결정을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자기편에서 결정해나가고
人間의 논리나 이성, 도덕을 앞세워 일을 처리해 나가는 것은
사단이 준 믿음이 되고 만다.
큰 믿음의 사람들도 한 순간에 넘어진다.
그런데도 이런 교훈을 보면서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거짓 믿음을 갖고서도 참 믿음인양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제발 착각하지 말자.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분명해도
산이 뽑히고 바다가 마르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아무리 主여主여~하고, 믿습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외친다고해도
믿음 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도
항상 일의 결정을 자기 논리나 형편이나 상황, 도덕, 윤리에 비추어
人間적인 잣대를 갖고 결정을 하여 나가는 자들은
전부 사단이 준 믿음을 갖고 사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거룩한 神的인 역사가 일어나지를 않고 있는 것이다.

정말, 이제는 내 믿음을 진단해보고 점검해 보아야 한다.
역사하지 않는 믿음은 전부 사단에게 속고 있는 신앙이요 그런 믿음이다.
그런 자에게 구원의 역사가 있겠는가?
그래서 구원의 길은 좁은 문, 좁은 길인 것이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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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단 2003-02-19 15:14:25
    당신부터 그런믿음을 보이시요, 산을 옮기는 믿은. 남말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