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듣거나
똑같은 사건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태도는 두 종류로 나누어지는 것일까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
그 자리에 신을 벗고 종의 자세로 들어가는데
바로는 그렇게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도 머리를 숙일 줄 모른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장관만 만나도 머리를 숙여 엎드리는데
여리고성 요단강물 갈라짐의 사건을 보고서도
아간은 겁 없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한다.
엘리야는 단 한번 하늘에 작은 구름만 떠도
축복의 장마 비가 내릴 것을 알고 준비하는데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바알 선지자들의 목이 떨어져도 아합은 돌이킬 줄 모른다.
결국 이런 현상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해도
영적으로 사는 자와 육적으로 사는 자는
어느 날 똑같은 사건을 앞에 전개될 때
완전히 알곡과 쭉정이로 양분되어 나타나는 열매의 현상들이다.
사도들의 말에 가슴이 찔리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민중들은 회개하는데 종교 지도자들은 점점 마음이 강퍅해진다.
오늘날 믿는다는 자들 가운데서도 대개의 사람들은
세상의 힘과 지혜와 권력을 가진 명예가 높은 자는 두려워하는데
세상에서는 별 볼일 없고 가난한 자는
아무리 기도에 깊고 영성이 깊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잘못된 신앙은
자기 교회, 큰 교회, 유명한 분들의 목소리를 청종하는데
작은 교회 주의 종들을 우습게보거나 소외시키는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하는 자, 말씀이 있는 자를 두려워해야 하고
세상이 힘 있는 자를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자기보다 못한 자에게 머리 숙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가당찮게 여긴다.
제발, 나도 모르게 숨어 들어와 있는 교만을 벗어 버리자.
내 보다 못 사는 자. 힘없는 자의 말을 우습게보거나
하나님의 일보다 인간의 상황에 더 마음을 주고
자기를 무시하면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고
항상 제 욕심과 자기 유익으로 주의 일을 판단하는 자들은
반드시 그 결과는 망하고야 만다.
그 사람이 얼마나 교만하고 완악한지는 그가 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와 기도생활을 통하여 나타난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떨어져도
그 말씀에 감동이 없거나 덤덤하고,
정곡을 찔러주는데도 반응이 없다는 것은
이미 그 마음은 황무지가 되고 굳은 돌 짝밭 같이 되어 버린 자이다.
하나님이 아무리 간섭하셔도 그 간섭이 눈에 안 보이고
하나님이 내게 주변의 사건을 일으켜서 내게 말씀하셔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듣고, 알면서도 돌이키지 못하는 것은
그가 가진 무지와 완고함과 고집과 교만 때문이다.
결국 망하는 자들을 보면
그가 망할 때는 하나님이 몇 번이나 경고하고 가르치고 말씀하셔도
끝까지 거부하고 못 듣게 되므로
나중에는 재앙이 주어져도
그것이 심판인 줄 모르고 있다가 한 순간에 망하여 버리고 마는 것이다.
발람의 길을 보라.
몇 번이나 하나님이 막아도 끝까지 고집하다가
3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경에는 짐승보다 못한 자라고 지정되어 있고
부자청년은 주의 말씀에 심한 갈등과 혼란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거절하다 자신도 모르게 영생의 길에서 이탈되어 간다.
제발, 봄비가 내리고 겨울비가 내리기만 해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말씀을 보고 들으며
내 마음속에 합당한 채소를 내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는 자가 되자.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있고
그 분의 존재를 확실하게 믿는 다고 하여도
내가 열심히 주를 위해 산다는 말이나
남이 인정을 하는 행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안이 열려 항상 하나님의 작은 간섭과 작은 소리라도 듣고
어느 때라도 돌이킬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고
항상 주의 일과 영적 문제는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풀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겉모습의 성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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