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응답을 받고 싶으면 반드시 기도하는 자가 거룩해야 한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과 만나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룩해야 한다.
거룩치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나 뵙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다.
기도란 무엇인가?
거룩한 자들끼리의 서로 마음이 통하는 교감이다.
따라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려면
항상 거룩한 장소를 찾아야하고
거룩한 행실과 거룩한 언어가 늘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기도하려는 자들은 복잡하고 소음이 있고 다툼이 있고
문제가 많은 곳에서부터는 반드시 탈출해야만 하고 벗어나야만 한다.
그래서 정말 기도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 뵈올 수 있는
거룩한 장소와 거룩한 시간을 반드시 가진다.
예수님께서도 기도를 하실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란한 곳,
냄새나는 곳을 피하고, 힘든 시간까지 피해서,
자기만의 기도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가졌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들이라면서도
자기만의 기도 장소와 기도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그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는 답을 알 수가 있다.
그러면 왜 기도의 시간과 기도의 장소가 중요할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려면
반드시 기도의 징검다리를 통과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과 대면하려고 몸부림을 친다.
응답받는 기도를 하는 자들을 보라.
저들은 환경의 지배를 이겨나가려고 몸부림을 치고
깊은 기도의 영을 간절히 구한다.
무슨 일에도 그러하지만 기도하는데도
기도의 영이 임해야 되며 기도의 神에 사로잡혀야 한다.
똑같이 힘들고 어렵고 피곤한데도
어떤 이는 그 가운데서 기도하여 하늘의 힘을 구하는데
어떤 이는 외로움과 힘듦 속에서
그냥 보통의 사람처럼 그 외로움과 힘듦을 人間의 불평으로 지나간다.
분명히 말하지만 극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자들과 만나지 못하는 차이점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냐, 아니냐하는 것으로 결정이 난다.
하나님의 사람은 깊은 아픔과 힘듦, 외로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아픔 속에서 평안을 누린다.
따라서 아무리 주여, 주여 라고 말해도
아픔이 아픔으로만 남고, 고통이 고통으로만 남는다면
그리고 그 주위에 남은 자가 人間적인 소리를 하는 자만이 있고
주님의 권면보다는 사람의 소리에 더 민감한 자는
결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기도의 응답자는 극한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일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을 만날 기회로 생각한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의 소리를 끊고 외부의 연락을 끊고
접속할 상대, 대화할 상대를 하나님만으로 정해 버린다.
그래서 힘든 시간들이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이 되기에 오히려 행복해 한다.
오늘날 이 시대는 기도의 소리가 줄어들고 있는 시대이다.
교회마다 기도의 소리가 줄어드니 찬양소리, 예배소리가 클 수가 없다.
어떤 이는 기도를 무슨 은사를 받거나,
영적 체험을 갖기 위해서 혹은
개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도를 한다.
그래서 대개 기도 응답자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기도 중에 들은 하나님의 음성이나 입신, 환상, 예언을 이야기하고
기도 후에 일어난 어떤 문제 해결이나 사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다.
그러나 기도는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기도를 하면 안 된다.
반드시 기도에는 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는지
나를 통한 어떠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지에 대하여
답을 찾는 것이 되어야하고
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방해세력을 제가하기 위한 하늘의 힘을 받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기도란 내 아버지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자들은
자신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다.
그래서 기도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며
어떤 결과가 주어져도 철저히 순종을 한다.
우리 주님을 보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기도를 했기에
그 결과는 그에게 십자가의 죽임이 주어져도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시는 길이었기에 순종을 했고
바울 역시 자기 몸에 사단의 사자 같은 육체의 가시가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에 족하게 여기며,
심지어 자기가 약할 그 때가 가장 강한 때라고 고백을 한다.
왜냐? 人間的으로 보면 웃기는 모습, 초라한 모습이지만
그 모습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는 가장 귀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예수 믿는가?
교회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 만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가?
기도하지 않아서 그렇다.
기도하고 싶어도 거룩함이 상실되었으니
기도의 영이 임하지 못해 기도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이는 하나님을 기도하여 만나
그 상황이 축복으로 바꾸어지는데
어떤 이는 죽어라고 그 문제에만 집착을 하여
하나님께 은혜도 감사도 평안도 없이 굳어진 심령으로 살아가는가?
제발 기도의 은혜를 구하라.
거룩하신 장소에서는 신을 벗어라.
기도의 영에 휩싸인 자가 되어라.
문제가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외로워지고 고독해져라.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나라.
이것이 분명치 않으면 평생을 예수 믿고도
예수와 상관없는 불신자가 되고 말며
기도를 하여도 그의 기도는 주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기도의 은혜를 구하라.(1)
아브라함
200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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