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의 활동은 모세의 안수로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의 神이 임하고 나서부터이다.
주의 神에 이끌리면 능치 못할 일이 없고, 못 갈 곳이 없다.
빌립이 주의 神에 이끌리니 한 순간에
사마리아에서 광야 길로 옮김을 받았고 엘리야는 불 병거 타고 승천한다.
성령에 이끌린 삶은,
주를 부인하다가도 돌이켜 다시 주를 위해 순교도 하게 되고
성령의 감동에 휩싸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불타올라
예레미야처럼 주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못 견딘다.
힘들고 어렵고, 병들고, 가난하고, 실패해도
제발 고집 피우지 말고 주의 神의 인도를 받기를 애를 쓰자.
다 버리고 아무것도 없고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서
더 어쩔 수 없는데 무슨 자존심이 필요한가?
현재의 아픔을 보지 말라.
결국에 내가 가야 할 곳은 주의 품이요, 주의 나라이다.
내가 맡고 있는 양떼를 한 명도 낙오시켜서는 안 된다.
주일 학교 교사들, 학생회 교사들, 청년부 교사들,
한 교회의 담임목사들은
내게 주어진 양떼를 정확하게 인도 할 수 있도록 주의 神의 인도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성령을 이야기하고 기도의 깊이를 말하면
모두가 기도하고 있고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다고 항변하는데
열매는 왜 이다지도 썩고 부패하고 작고 없는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고는 하는데
왜 人間의 냄새가 나고 버릴 것 버리지 못하고
끊을 것 끊지 못하고 지켜야 할 것은 기본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인간의 근본이 바뀌고
인간의 종자가 바뀌어 지고 체질이 바뀌어 진다.
따라서 아무리 성령 받았다고 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고 해도
육체의 욕심을 버리지 않았으면
그는 사람의 영을 따르는 자이지 성령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
사람의 영은 사람을 높이고,
사람의 방법을 취하고 人間의 논리와 상식에 기초한다.
그 나무는 그 열매로 알듯이 영의 사람도 그 열매로 알 수가 있다.
열매란 항상 마지막에 열린다.
자랄 때도 모른다.
꽃이 피어오를 때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열심과 헌신과 뜨거움이 꽃을 피우고 있고
잎은 무성한데 겉만 보고 사는 자들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육의 결과는 언제나 갈등과 분열과 실족이요,
다툼이요, 원망이요 배반이요 은혜를 저버림이다.
사람의 영에 성령이 역사를 하지 못하면
미혹의 영, 사단의 영이 지배를 한다.
일의 결정을 항상 자기 멋대로 하고 자기 판단으로 하는 자들은
항상 사단의 영, 더러운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라도
人間적인 프로그램을 짜서도 안 되고 욕심을 내어서도 안 된다.
양떼들이 상품도 아닌데 왜 그렇게도 욕심을 내는지 알 수가 없다.
기도의 영이 죽어지고 자기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말씀에 의심이 들고 진실이 먹혀들지 않고
정직이 서로 통하지 않을 때 한 쪽은 반드시 거짓이다.
그런데 사람의 영, 더러운 영, 미혹의 영에 걸리면
자기가 그 영에 걸린 것을 모른다.
순수한 것도 보이지 않고 바른 것도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결국은 일의 방향을 엉뚱한 길로 털어 버린다.
마태복음 7장 21절 이하에서 그렇게도 많은
주의 이름을 부르며 큰일을 해놓고도 그날에 버림받는 자들을 기억하라.
왜 평생을 주를 위해 일해 놓고도 그 날에 버림받는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자기의 의로써 일을 했기 때문이다.
즉 아무리 주의 일을 많이 했다고 해도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한 것은 주와 상관없는 것이라는 결론이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자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진리의 영을 따르면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내속에는 정말 진리만 사모하며, 그 진리를 배우며
그것을 위해 성령의 충만을 꿈꾸며
철저하게 주의 영의 인도를 받기를 애쓰는 열매가 있는가?
성령을 받았으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맺혀 자라나고 있는가?
성령의 열매가 없으면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았다고 해도 그는 절대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절대로 잊지를 말자.
내가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리고 내가 무슨 영의 인도를 받고 있는지는,
지금 내 삶의 결과에 따라 내가 맺는 그 열매로 알 수가 있다.


성령에 이끌려라. 2
아브라함
200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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