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란 권사의 간증을 대하고, 오랜 만에 텔레비전을 보았다. 요즘같이 정보 전달 매체가 발달한 세상에서, TV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아무래도 손해나는 짓인 것만 같아 안테나를 아예 빼버렸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지금 막 <천 번의 입맞춤>을 시청한 후 다시 인터넷을 찾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초청되어 나온 박정란 권사라는 작가의 말을 다시 들으며 중간에 끊어버렸다.
그녀는 일일드라마와 주말드라마를 놓고 어떤 것을 맡아야 좋겠느냐고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했다.
바로 이 부분이 내 성미를 확 돌려놓았다. 하나님은 그렇게 고리타분한 영감이 아니다.
만약에 어린 자식에게 심부름을 시켰는데, "엄마, 고무신 신고 다녀올까요? 아니면 운동화 신고 갔다올까요?" 이렇게 묻는 자식이 있다면, 당신 같으면 과연 거기에 대답하겠는가?
박정란 권사 뿐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들은 이런 과오를 무의식적으로 범하고 있다.
그 어떠한 형식의 드라마든 다 같은 재능(달란트)으로 인해 쓰여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세상에 관여하시는 한계는 거기까지가 아닌가 한다.
나도 작가 지망생이다. 소설쪽으로 더 흥미가 있지만, 아직 어떤 부문이 나에게 더 유리한 줄 나도 확실히 모른다.
나에게 글 쓰는 재능이 있는 것만은 분명한데, 현재의 이 재능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에 쓰여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설>이라는 배를 타는 것이 효과적인지, 아니면 <시>라는 배를 타야 더 나은지. 그것도 아니면......
설사 이럴 경우라도 나는 따로 기도하지 않는다.
구태여 내가 요구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 숨쉬게 해달라고 기도한 후 호흡했는가? 지구를 벗어나지 않는 한 여기에서 떠날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은헤는 그렇게 이미 앞서서내 걸음을 인도하고 계신다!
그런데 어째? 박 권사는 고작 어떤 형태의 드라마를 집필하느나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단다. 부끄럽다.
언제 철이 들려냐?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녀에게 그렇게 대꾸하시는 것 같다는 소리다.
밥상에 차려진 음식을 골고루 먹으면 되지, 밥 한 숟가락 입에 물고, <하나님 이젠 어떤 반찬을 먹어야 하나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의사를 묻는 것을
<기도>라고 착각할 경우가 많다.
내 말에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도>를 이렇게 오해하는 신자 또한 상당수이기에 박 권사님을 핑계대고 내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이 글은 드라마가 아니다.
몇 년만에 보는 드라마인가!
허린
201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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