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만 교회를 다니던 소년이 공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새벽기도를 다니는 학생이 되었다. 새벽 공기의 신선함이 좋았고 말씀을 듣는 것이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슈바이처의 이야기를 읽은 그는 자신도 구강외과를 공부해서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치대 본과 3년에 어머니의 수술을 앞두고 하나님에게 수술이 잘 되고, 5년을 살게 해 주시면 평생 하나님 일을 하다가 죽겠다는 서원을 받으시고 주님은 그의 어머니를 딱 5년을 생존하게 하시다가 불러가셨다.
하나님께서도 약속을 지켜주셨는데,공중보건의로 일을 할 곳을 생각하는 중에 소록도가 그의 눈에 띄었다.
소록도에 간 그의 느낌은 기뻣고, 기대가 되는 곳이었다.
제대로 먹을 수가 없는 소록도 사람들에게 그는 먹는 역활을 해 주어야 했다. 성형수술을 해야하고, 입원환자를 돌보아야 하고, 쉴 사이 없이 바빳지만 진료할 수 있는 것이 기쁘고 행복했다.
처음 그가 소록도에 갔을 때의 그곳 사람들의 반응은 "수고하시겠네요."였다.
그러나 두세 달이 지난 다음부터는 그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
그를 대접한다고 내 놓은 밥에는 파리가 반이나 되었지만 음식물을 앞에 둔 그에게 주님은 말씀이 생각나게 하셨다.
"사람의 안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더럽지 않다."
그래서 그는 즐거운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 음식을 먹을 수가 있었다.
공중보건의로서 1년을 지난 다음,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었다. 떠난다는 것이 배신 같았고, 수술하다가, 당분간 하면서 지내다보니 17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소록도의 1600 명의 한센인들은 오동찬 의사를 붙들기 위해서 하루에 3시간이나 기도를 햇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동찬 공중의를 그곳에 머물 수 있는 마음을 부어주시는 것 같았다.
소록도에서 특별히 기억이 나는 분이 있다면 구강암 말기인 할아버지였다. 너무도 냄새가 심해서 따로 격리를 시켜 놓은 할아버지가 너무도 고통스러워해서 할아버지를 안락사를 시키려는 순간에 지금의 부인이 되는 간호사가 그의 등짝을 후려친 것이었다."너가 뭔데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해하려고 하니?"
그 말에 회개한 그가 주님 앞에 기도했을 때, 2일 후에 주님은 할아버지를 불러가시게 되었다. 주님 앞에 가기 전에 오동찬 의사와 간호사를 불러서 둘의 손을 잡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간 할아버지가 오동찬 의사의 중매 역활을 한 셈이었다.
오동찬 의료부장의 부인인 간호사는 남편보다 5년 먼저 소록도에 가서 봉사를 한 사람이었다. 그곳에서 둘은 소록도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녀 둘을 낳고 현재까지 생활을 하고 있다.
오동찬 의료부장에게 하나님은 이런 분이시다.
힘들 때,
너 힘드냐? 나는 더 힘 들다,
슬플 때,
너 슬프냐?
나는 더 슬프다.
기쁠 때,
너 기쁘냐?
나도 기쁘다.
그는 새소리를 통해서 기쁨을 주시는 분, 저녁 노을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무사하게 지켜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때리시기도 하고, 기쁨을 주시기도 하는 주님은 결코 멀리 게시는 분이 아니고 늘 옆에서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칼을 대기도 하고, 꿰매기도 하지만 환자와 함께 기도하다 보면 몇일이 지나면 깨끗하게 치료가 된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1년에 한번씩 해외진료를 가는 오동찬 의료부장, 그의 두 명의 아이도 치과의사가 되어서 봉사를 하고 싶어한다.
두 아이가 치과의사가 되면 좋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일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오동찬 의료부장, 소록도에서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천국에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이제까지도 오동찬 의료부장을 인도하신 주님게서 앞으로도 선한 인도하심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임 목사님이 오동찬 의료부장의 간증을 들으면서"나는 뭘 하는 존재였나?"라고 하신 것 처럼 제 자신을 참으로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마땅히 알고 관심가져야 할 곳과 주님 앞에 선하게 쓰임 받은 귀한 분을 소개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섬, 소록도-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 오동찬
이동영
201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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