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사랑한 파란 눈의 오대원 목사
이동영
2011.08.09
조회 373
매일 읽어도 성경 속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오듯이 오대원 목사님의 간증은 다시 들어도 새로 듣는 것 처럼 은혜스럽다. 대학선교에 뜻이 있었던 오대원 목사님 부부가 한국에서의 4.19 사건을 보면서 한국 대학생들의 열정을 보고 하나님을 위해서 큰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한국은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는 오대원 목사님, 그는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광주에 내려가서 2-3년, 서울에서 학원선교를 하면서 마음을 다해서 주님의 일을 했다. 그러나 수고에 비해서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안식년을 보내면서 그는 그 원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10년 동안의 사역 가운데서 열매가 풍성하지 못했던 것은 거듭 나기는 했지만 성령이 주도하는 사역을 하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그 원인을 알고 난 다음 성령충만해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주님은 시간 낭비를 했다는 자책에 빠지지 않도록 만나야 할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해 주셨고, 회복하는 역사를 하셨다.

오대원 목사님이 주님의 사람으로 다시 쓰여지기까지는 대천덕 신부님의 10년 간의 기도가 있었다. 강팍한 사람을 깨뜨려달라고 기도한 지가 7년이 되어도 변화가 없자 그만 두려고 했으나 주님은 오대원 목사님이 변화될 때까지 10년을 기도하게 만드셨다. 그리고 대천덕 신부님은 오대원 목사님의 좋은 멘토가 되셨다.

예수전도단은 한국교회에 가스펠을 처음 부르게 한 단체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전도단은 찬송가보다 복음성가를 많이 부르는 것처럼 알고 있으나 실상은
찬송가를 더 많이 부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예수전도단을 통해서 많은 이적이 나타났는데 그 중에 한가지는 이동철 학생의 일이다. 미신과 귀신이 작용하는 고향 당에서 이동철 학생은 두 마리의 개 죽음을 통하여 귀신들이 나가는 것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자기 가족은 물론이고 20여명의 사람들을 전도하게 된 것이다.

오대원 목사님은 올림픽이 있기 전 1986년에 한국을 떠나달라는 통고를 받게 된다. 처음에는 혼돈,좌절, 분노 가운데서 머뭇거리는 그에게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닫고 뉴욕으로 간 그는 그 일을 통해서 세계를 좀더 크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뉴욕은 일선'이라고 말 하는 오대원 목사는 복음으로 하나된 한국이 전세계를 향해서 아름다운 선교의 도구로 쓰여질 것을 믿고 기도하고 있다.
기도 중에서 북한에 있는 26 명의 어린이들의 이름을 가르쳐 주신 주님께서 저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다.

한국에 오셔서 사랑을 배우고, 기도를 배우고, 관용하고 기다리는 것을 배웠다는 오대원 목사님, 그는 교회에서 팀웍을 만들어서 1만명의 선교사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쉬시지 못하도록 기도하고 싶어 한다.

오대원 목사님과 엘렌 사모님이 더욱 건강하시고 성령충만하셔서 주님이 더 많은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전세계의 선교지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특집을 통하여서 다시 은혜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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