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원 교수의 아버지는 기자 출신으로서 맞춤법은 물론이고 띄어스기도 정확한 분이셨다. 딸에게도 손자, 손녀에게도 편지를 써서 다정한 마음을 표현하시던 그 아버지가 어느날 외손녀에게 쓴 편지에서 맞춤법도 이름도 잘 못 쓴 것을 보고 신혜원 교수는 아버지에게 찾아온 치매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럴 수 만은 없어서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면서 치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봤지만 치매 어르신을 위한 프로그램은 전무한 상태였다.
영하 20도까지 내려간 날, 아버지는 얇은 옷을 입고 나가셔서 밤새 돌아오지 않으셨다. 이튿날 어떤 택시 기사의 도움으로 집으로 오신 아버지는 그후 3년 동안 누우신 채로 한 마디의 말도 하지 못하신 채로 계시다가 주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신혜원 교수의 아버지는 이런 글을 남기셨다.
나의 인생은 가을 하늘처럼 높고 푸르게 살고 싶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내 아내는 예쁜 편이다.
전화번호가 바뀌었다.
신헤원 교수는 치매환자도 나름 대로 자기의 세계가 있다고 말을 했다.
신혜원 교수가 치매환자를 위한 놀이치료 전문가가 되었던 것은 아버지를 위한 프로그램을 찾으러 다니면서부터였다. 치매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을 발견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황폐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되었다.
치매 어르신들의 이지능력은 5-6세의 어린이 수준이라고 말 합니다. 신혜원 교수는 박사과정까지 5년에 마치면서 치료프로그램뿐 아니라 에방프로그램까지 만들었고,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는 인력을 양성하는 프로로그램까지 만들어서 활동을 하고 있다.
돌아가실 때까지 한 마디의 말씀도 하지 못하셨던 아버지를 임종 당시에 품에 안고서 "아버지의 딸이어서 행복했다.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딸의 말에 눈을 끔벅이면서 눈물을 흘리셨던 아버지는 표현만 하지 못하셨을 뿐 의식없는 분은 아니셨다.
치매 어르신은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돌보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지나다 보면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도 지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쁜 감정을 품게 되고 따라서 죄책감을 갖게 마련이다.
신혜원 교수는 자기 자신에게 있었던 상처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감을 깨닫고 그 일을 함으로써 치유를 받게 되었다고 말 한다.
아버지를 통해서 치매 어르신을 품을 수 있게 된 신혜원 교수는 치매 어르신들을 품을 수 있고, 사랑스럽게 볼 수 있는 가슴을 가지게 되었다.
신혜원 교수에게는 20대의 젊은이들, 퇴직 후에 봉사하기 위해서, 사회복지사 등등의 많은 사람들이 치매 어르신들을 보다 잘 돌보기 위해서 찾아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신헤원 교수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건강과 지혜를 달라고,
더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더 많은 인력을 양성하게 해 달라고,
그래서 그 분들을 통해서 치매 어르신들이 행복하게 해 주세요.
아버지의 치매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명을 발견하신 신혜원 교수님에게 주님이 늘 힘과 지혜를 주셔서 교수님을 통해서 모든 치매 어르신들과 가족들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노인 놀이치료전문가 신혜원 교수
이동영
201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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