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음악FM 매일 09:00-11:00 (재) 매일 02:00-04:00
오르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힘들다
2007.04.14
조회 349



사진1:
ABC에서 MBC로 내려오는 중에 만난 안개.
짙은 안개때문에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멋있어 보이긴 하지만, 끔찍하다.

사진2: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 (MBC)에서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찍은 모습
중앙에 작은 점들처럼 대형을 이뤄 ABC로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진3:

ABC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의 모습이다. 구름이 없었다면 보다
멋진 모습이었을텐데....아쉽다.



제6일 : 4/5(목)

정신없이 잘 잔 것 같다. 몸이 한결 나아졌다. 두통도 없고...

오전 5시에 기상해서 짐을 꾸리고....출발준비를 서둘렀다.
오늘은 어제 밀린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쉴 틈도 없을 듯.

코스가 길어진 만큼 저녁 늦게 목적지인 ‘큐미’에 도착하게 될 것 같다.
불안하다. 야간산행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게다가 내리막이다. 무릎 아픈 동료들이 네명이다.
속도가 아무래도 늦어질 수 밖에 없다.

나는 충분한 수면 덕에 선두그룹에서 움직였다.

데우랄리에서 히말라야 ----> 도반 ---> 뱀부 ----> 시누와 ----> 촘롱까지

쉴 새 없이 걸어야 한다.

부산에서 올라온 여성 피디 유PD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ABC는 나보다 빨리 올랐던 깡다구 피디다.
무시무시한 의지. 근데...사실 ABC오를 때 오르는 방법을 보고 걱정이 됐었다.
거의 초인적 의지로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잠시 쉬고, 또 빠르게 걷다가 쉬고..
이러길 반복하는 모습을 봤는데...나는 속으로 ‘저러다 쓰러질 텐데..’했었다.

아닌게 아니라..내려오는 길...두 다리에 힘이 모두 빠져버려 내려가질 못하겠다고 한다.
올라가는 건 어떻게 올라가겠다는데......

대장의 표정도 어두워지고 협회장의 얼굴표정도 무거워졌다.
옹초가 대나무 바구니를 가져왔다. 바구니의 한쪽을 칼로 자르고 접고 대나무 막대로 받침대를 만들고 그위에 방석을 깔았다. 거기에 유피디를 앉히고 등짐지듯이 어깨에 맨다.

쑥쓰러워하는 유피디...
옹초가 먼저 출발했다. 그리고 세명이서 교대로 유피디를 지고 갔다.
도중에 만난 외국인들은 신기한 듯 사진을 찍어댔다.

이것이 안나푸르나 ‘귀족 트레킹’이다. ㅎㅎㅎ

무릎환자 두명 의 배낭은 셀파들이 모두 어깨에 맸다.
셀파들의 헌신적인 희생에 모두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해 내려오는데,,,,
오후 3시 반 쯤....천둥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트레킹 대열은 오를 때와 판이해졌다.
선두그룹과 중간, 후미의 세 파트로 나뉜 것은 비슷했지만,
거리가 한참 벌어졌다.

비는 그칠 줄 몰랐다.
걱정스런 협회장의 얼굴..혹시나 사고라도 날까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뉴 브릿지에 도착했을 때 이미 5시가 넘었다. 여기서부터는 올라올때의 코스와 다르다.
다시 다리를 건너지 않고 반대편 계곡을 따라 바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한 것이다.
지름길이라고 한다.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무릎이 아파서 차라리 내리막 계단에서는 뛰어내려갔다.
뒤로 쳐져있었지만,,,이때까지만 해도 후배 피디와 둘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조금 뒤...내 걸음은 더 늦어졌다. 뒤에 따라 오는 사람들이 아예 보이질 않는데다
길도 샛길이 있어서 잘못하다가는 길을 헤맬것 같다.

뒷사람이 보일때까지 기다리다가 가야할 것 같았다. 그래야 후미가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기특한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는데 나타나질 않는다.

어둠은 더 깊어졌다. 비는 좀 수그러들었지만...
길이 잘 보이질 않는다.

하는 수없이 혼자 걸었다.
처음으로 혼자가 되었다. 약 한 시간을 그렇게 걸었다.
이 한 시간....홀로인 한 시간 동안
안나푸르나의 대답이 들려오는 듯 했다.
환청이든 아니든.......

시원스런 대답이 아니었다.

“방향을 잘 잡기만 한다면.....보일 것 같지 않던 내가 보이질 않더냐?
걷다가 힘들면 쉬었다 가고...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그런데, 방향을 어떻게 잘 잡지?

불안감이 몰려왔다. 미래는 늘 불안하다.

계곡물 소리가 더욱 커진다.
하류가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저쪽 아래 불빛이 보인다. 큐미 롯지인 듯 했다.
이제 다 왔다. 해답은 얻지 못했다.
트레킹은 끝나가고 있다.

반대편에서 셀파 세명이 뛰어온다. 배낭을 달라고 한다.
뒷 사람들을 도우라고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후미는 한시간 정도 뒤에 쳐져 있는 듯했다.

큐미 롯지에는 약 10명 정도가 도착해 있었다.
절반이상이 아직 하산중인 것이다.

롯지에 방이 모자라서 먼저 온 열 사람은 텐트에서 야영하고
늦게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방을 양보하기로 했다.

한시간 뒤 모두 무사히 도착했다.
야간산행. 랜턴에 의지해서 서로 부축하고 내려왔다.

그제서야 협회장의 얼굴이 조금 살아났다.

저녁식사는 많이 늦어졌다.

윤창범 피디가 자기 텐트에서 거머리에게 물렸다고 하자....
모두 불안해졌다.

저녁은 양과 염소 각 1마리씩 잡았다.
맛있는 고기요리를 모처럼 먹었다.

맥주와 럼주를 마음껏 마셨다.
마음 고생한 김환균 협회장의 인사말...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말한다.

한왕용 대장님도 무리한 스케쥴로 여러분을 고생시켜 죄송하다고 한다.
우리는 아니라고.....너무 훌륭한 트레킹이었다고 위로했다.

고난은 우리의 마음을 열었다. 첫날 인천공항에서의 서먹함은 모두 사라지고..
오늘 하산 길의 고생이 모두의 마음을 열게 했다.

11시. 셀파들이 식당에서 잠을 자야한다고 한다.
그제서야 식당을 비어줘야 했기 때문에 술자리는 끝을 맺었다.

후배는 먼저 자고 있었다.

밤 11시.
맥주를 좀 마셨기 때문에 잠이 잘 올 줄 알았는데..그게 아니었다.
1시 수면제 두 알.
머리만 대면 잠들던 내가.......
그리고 날 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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