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된다
2007.04.15
조회 379
사진1: 카트만두 시내 상점거리에서 후배와
사진2: 그 유명한 치즈가게에 치즈는 없었다.
맛보기로 조금씩 얻어먹고 돌아서는 일행들.
사진3: 마지막날 오전 쇼핑. 노랑머리 행상도 보이고..
맨 좌측은 윤창범 피디, 그뒤에 젖병을 든 여인, 그리고 가운데 선글라스 여인네는 귀족트레킹의 주인공
제8일 : 4/7(토)
오전 8시 20분 기상. 바삐 씻고 2층 식당에서 식사를 마쳤다.
9시 30분에 핀죠의 인솔아래 쇼핑을 해야 한다.
야크 젖으로 만든 치즈를 단체로 구입하기로 했는데,
아주 싸다고 한다. 한 대장의 말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사려고 핀죠와 함께
치즈가게를 찾았는데, 동이 나고 하나도 없다고 한다.
아이를 안고 우유값을 달라는 여인들이 아침 나절에 왜 이리 많은지..
계속 우리를 쫓아왔다.
전통악기를 파는 행상도 우리를 쫓아왔다. 나는 Jews harp를 하나 샀다.
2달러.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니 11시 40분. 체크아웃하고 한국식당으로 이동했다.
김치찌개를 먹고 나니 옹초와 두 명의 셀파가 인사하러 와 있었다.
연한 금빛의 머플러 ‘가다’를 하나씩 목에 걸어주었다. 티벳식 작별법이라고 한다.
“타시델리”라고 작별인사를 한다.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길”이란 뜻이라고 한다.
나도 “타시델리! 단네밧”이라고 인사했다. 단네밧은 ‘감사합니다’라는 뜻.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다. 검색은 까다롭고 불쾌했다.
짐을 부치는 동안 일행들은 명함을 교환했다.
2시 45분 탑승을 마쳤다.
이륙이 40분 지체됐고, 3시 30분이 넘어서야 이륙을 시도했다.
고도를 높이는 동안 기체가 심하게 흔들린다.
기류가 불안정하다. 만 피트에 도달해서야 안정을 찾았다.
기내에서는 TV뉴스를 보여준다. FTA 소식이 톱 뉴스다.
이제 서울 소식에 익숙해져야 할 때.
모두들 신문을 뒤적이고...마침 중앙일보에 히말라야 관련 소식이 나있어서 관심을 끌었다.
산행일기를 정리했다. 정신없이 이틀을 보내다보니 기억이 희미했다.
예전에 혼자 융프라우와 몽 생 미셀, 깐느를 여행할 때도 기록을 남긴 적이 있었지만,
다시 정리하지 않았더니 기억이 흐물거렸다.
기억이란 것.
예전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기억이 나의 삶을 구성한다는 생각을 올초에 하게 되면서
열심히 기록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무리 기억해내려고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 두려워졌었다.
이제 나이도 그럴 때가 됐고.
내 삶을 뒤돌아보는 일이 더 많아질 나이가 되어 가고 있다.
앞을 내다보는 일은 두렵고, 불안하다.
방향을 잘 잡는다면 어찌됐든 그 곳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방향을 잘 잡은 것인지 스스로 확신할 수 있을 것인지.
확신을 갖는 것과 갖지 못하는 차이.
그것이 두려움의 실체일지도 모른다.
확신을 갖는다면 적어도 잘못된들 후회하지는 않을 수 있다.
이번 트레킹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길 것 같다.
예술영화를 보고난 뒤 오래도록 여운이 계속 되고 순간의 깨달음이 하나씩
머리속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홀로 하산 길에서 마음 아파했던 시간에 대한 두려움.
시간은 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상상하는 것이 괴롭다. 무얼 준비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지금 문제는 무엇도, 어떻게도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 시급하다.
삶은 계속된다.
하지만, 확신이 없는 삶은 고통스럽다.
단순해지려고 해봐도 체질 상 잘 되질 않는다.
하기사 그간의 삶도 확신이 있었기라기보다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 말고는 다른 삶을 선택할 이유도,,,그럴 수도 없었다.
그냥 가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이제 많은 것이 흔들린다.
스베틀라나의 ‘나 홀로 길을 걷네’를 흥얼거리면서 비 내리는 산길을 걷던 한 시간.
이런 생각들이 끊이질 않았었다.
심플맨...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세월은 너무 가혹하다. 이제 고민하고 살기엔 주변의 삶이 허락지 않는다.
믿음을 잃지 않는 의지력과 스스로 희망을 키우는 것. 그리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방향은 그렇게 세워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걷는 것. 후회 없이. 삶을 원망하지 않고.
밤 12시 30분경.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수화물을 찾는데 30분. 비교적 빨리 공항을 빠져나왔다.
기사님(마나님)들이 공항에 마중 온 사람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공항 로비에 모였다.
피디협회장과 한왕용 대장의 마지막 인사말.
그리고 한 사람 한사람과 아쉬운 작별의 악수를 나눴다.
칼 리무진을 타고 마포까지 후배와 함께 와서 각자 택시를 잡아타고 집을 향했다.
이제 모든 일정이 끝났다.
아당은 안녕할까?
새로운 한주를 준비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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