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음악FM 매일 09:00-11:00 (재) 매일 02:00-04:00
담푸스에서 란드륵까지
2007.04.11
조회 387



사진설명

1.포타나에 도착하자 쿡이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스불앞에 앉아있는 친구가 주방장, 나머지는 도우미들

2.란드륵에 도착하기 직전 마주친 마을 아이들, 춤과 노래로
우리를 즐겁게 했다.

3.란드륵에 쳐 있는 텐트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제2일 : 4/1(일)

현지시각으로 오전 5시 30분, 모닝콜~~

6시까지 내려가서 아침을 먹어야 한다. 카고색은 정리해서 방 밖에 내놓으라는
핀죠의 말을 기억하고...

카고색에 대부분의 짐을 집어넣었다. 큰 배낭보다는 작은 배낭을 메고,
등산화보다는 트레킹용 샌달을 신었다.
첫날이라 왠지 가볍게 출발하는 게 상책일 것 같아서......

(참고로 핀죠는 승려계급의 아들이다. 승려신분을 이어받아야 하지만,
한국에서 오래 생활하기도 했고, 지금은 네팔 카트만두에 작은 식당을 운영하면서 가이드를 한다. 또 네팔-한국어 공식 통역사 일도 하고 있다. 그만큼 그의 한국어 실력은 놀랍다. 모두가 한국사람으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행정처리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상황판단이 빠르다.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는다고 할까...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행동 방향을 빠르게 결정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니 6~8명을 태울 수 있는 작은 밴 3대가 리조트에
와 있었다.

맨 뒤의 밴에 올라탔다. 현지에서 관광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장사장도 동승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공식적인 트레킹 스케쥴이 시작되는 '담푸스'.
해발 1650미터의 지점이다.

장사장은 이곳 담푸스에서 포스코 광고를 촬영했다고 한다.
밧줄에 바구니를 달아 이 쪽 산에서 저쪽 산마을로 물건을 실어나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CF.

자신이 광고회사로부터 의뢰받아서 헌팅을 했는데,,,정작 CF 감독은 그림이 될 것 같지 않은 곳에서 촬영을 했는데...나중에 현실보다 더 멋진 그림으로 영상이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보통은 담푸스 아래쪽에서 트레킹을 시작하는데...권할 만하지 않다고 한다.
가파른 계단길인데다가 무더워서 시작부터 지쳐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니밴은 가파르고 좁은 길을 아슬아슬하게 돌고 돌아서 담푸스에 도착했다.

포터들이 우리들을 맞았다.

이제 본격적인 트레킹의 시작이다.

멀리 눈이 덮인 6천미터급 설산이 웅장한 모습을 구름 밖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모두들....설산을 배경으로 셔터를 눌러댔다.
마을의 꼬마들이 "나마스떼, 스윗"하며 다가온다.

사탕을 달라는 얘기다. 이번 트레킹이 끝날때까지 아이들을 만날때마다
반복적으로 듣게될 말이었다.

사진을 함께 찍으며 '모델료'라며 먹을 것들을 나눠주었다.



썬크림을 다시 바르고, 선글라스를 쓰고, 배낭을 다시 한번 바짝 조였다.
스틱을 꺼내서 길이를 조정하고 출발준비를 모두 마쳤다.

1900미터 지점에 위치한 포타나로 향했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 반,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반으로
조심스레 한발짝 한발짝씩 발걸음을 옮겼다.

선두에는 한왕용 대장과 피디협회장 그리고 장사장이 길을 열고
후미에서는 핀죠와 셀파 대장인 옹추가 뒤쳐지는 사람들을 독려하게 된다.

옹추는 뛰어난 셀파로 여덟차례의 원정대 참여로 정상을 밟았다고 한다.
정확히 어디를 등정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
우리 모두는 후에 인간미 넘치는 옹추의 모습에 모두들 반해버리고 만다.

포타나에 도착하니....포터들이 시원한 쥬스를 한잔씩 따라놓고 도착하는 사람마다 두 손으로 권한다. 첫번째 감동~

그 무거운 짐들을 이고 (포터들은 짐을 등짐을 지듯 하는 자세에서 머리밴드 모양의 머리끈으로 이고 간다. 보통 30킬로미터 정도의 짐을 지게된다)
우리보다 앞서 도착해서 점심 준비를 하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점심은 칼국수....한국에서 먹던 맛과 똑같다.
또 다시 감동의 물결~~

밥도 나오고 반찬도 김치 등 한국음식들인데,,,우리 입맛에 왜 이리 잘 맛는지.

식사를 마치자 "슴늉" "슴늉"하면서 뭔가를 내온다.

숭늉이었다. 이 장면에서는 모두들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셀파들 가운데서도 '쿡'의 위상은 매우 높다고 한다.
원정대장과도 가까와질 수 밖에 없는 위치라 실질적인 파워를 가지고 있고,
원정 때 유일하게 생명을 잃지 않기 때문에(베이스 캠프에 머무르기 때문에) '쿡'은 모든 셀파들의 선망의 대상이라고 한다.

원정대의 국적에 따라 해당 국가의 대원들의 입맛에 맛는 요리를 귀신같이 만들어내는 '쿡'은 높은 보수를 받고 있다고 한다.

포타나에서 식사를 마친 뒤 한 시간 가까이 휴식을 취했던 것 같다.
첫날이라 느슨하게 트레킹을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사흘 뒤부터였다.
첫날의 여유로움으로 모두가 놀러온듯한 기분이었다가
이틀 뒤부터 '큰 코'를 다치게 된다.

포타나에서부터 다음 목적지인 해발 1700미터지점인 톨카까지는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된다.

이 코스도 그리 힘들진 않았다.

농가에서 소를 보았다. 처음으로 산거머리를 보았는데,,
소의 발 사이에 붙어서 피를 빨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의 할아버지는 손으로 거머리를 떼어주었는데...
아주 작은 거머리가 자벌레 모양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작은 약통같은 곳에 거머리들을 잡아서 두껑을 꼭 닫아버렸다.
그렇게 하면 자연히 죽게 된다고 한다.



1565미터 지점인 란드륵으로 가는 길에 비가 한두방울씩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쏟아지지 않았고, 곧 멈췄다.

도대체 몇개의 산을 넘어야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가 나오는 걸까?

이미 열개이상의 산을 넘고 넘은 것 같다.

란드륵 다와서 마을의 어린이들을 마주쳤다.

노래와 춤으로 우리를 매혹시켰는데,,,,
공연료를 주지 않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배낭에 들어있던 대부분의 연양갱과 오린지를 줬는데...
못받은 아이는 우는 연기까지 하면서 매달렸다.

하지만...이 아이들은 앞서 지나간 일행으로부터도
많은 양의 전리품을 챙겼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은 '프로'인 것이다. 하지만, 밉지 않다.


5분 정도 더 가자 란드륵 롯지에 나타났다. 오후 4시 30분경.

그리고 우리가 야영할 텐트가 쳐져있었다.

감동이었다.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는 곳에 쳐있는 텐트들의 모습.

계곡 너머 맞은 편 산에서는 폭포가 흐르고 있었고,
멀리 안나푸르나 남봉과 힌츌리가 보였다.



첫날의 여유로움은 자연스레 저녁 식사후 술자리로 이어졌다.

바로 눈앞에서 보름달이 떠오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밤 11시까지 계속된 술자리는 롯지의 맥주가 동이 나고서야 끝을 맺었다....

주몽을 만든 이주환 피디, 1945의 윤창범 피디가
역시 화제작을 만든 스타 피디의 면모를 보인다.
그들은 늘 대화의 중심에 있게 된다.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어려울 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수많은 스텦들을 이끌면서 일하면서
'나를 버린다'는 자세로 일했다는 이주환 피디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히말라야에서의 첫날밤은 이렇게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깊어갔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쉽지 않은 코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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