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음악FM 매일 09:00-11:00 (재) 매일 02:00-04:00
석훈DJ의 두 번째 칼럼
201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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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1일(금)
조선일보 一事一言


더 이상 파란 하늘을 볼 수 없다면


최근 고(故) 신상옥(1926~2006) 감독의 영화
‘성춘향’ (1961)과 ‘폭군 연산’ (1962)을 볼 기회가 있었다.
원로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역량도 뛰어났지만
내 마음을 먼저 사로잡은 것은 영화 속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단오절 그네 뛰는 성춘향보다 더 예뻤던 것은
그네 너머로 펼쳐진 말간 하늘이었다.
‘폭군 연산’ 에서도 경복궁을 감싸 안은
북악산과 인왕산 위로 펼쳐진 한양의 하늘이 아름다웠다.
전북 남원이든 서울이든 1960년대의 하늘은 더 없이 청아했다.

얼마 전 이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서울을 내려다봤다.
도시는 황사와 미세 먼지로 가득 차 힘겨워 보였다.
밑에서 숨 쉬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니 덩달아 내 가슴도 답답해졌다.
생각에 잠길 때 흔히 쓰는 ‘먼 산을 바라본다’ 는 말도
곧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눈으론 먼 산이 잘 보이질 않으니 말이다.

지금의 하늘을 카메라에 담는다면 어떤 색일까.
영화나 드라마 촬영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분위기 탓이다.
미세먼지주의보가 내려진 날,
남녀의 달콤한 데이트 장면을 찍는다면
그 장면의 맛은 반감될 게 분명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든 영화 ‘블레이드 러너’ (1982)에서 보이는
2019년의 하늘은 우중충한 잿빛이다.
애니메이션 ‘월E’ (2008)에서는 쓰레기로 뒤덮인 지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영화 속 이야기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달 28일엔 서울 기온이 107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서울 벚꽃이 3월에 핀 건 1922년 벚꽃 관측 이래
처음이라는 신문 기사도 봤다.

봄이 빨리 왔는데, 기분이 께름칙하다.
하늘이 자꾸 병드는 느낌 때문일까.
이런 추세라면 모든 드라마와 영화에서,
예전의 맑은 하늘을 표현하기 위해
CG(컴퓨터 그래픽)를 써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김석훈·배우·FM 라디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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