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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훈DJ의 세 번째 칼럼 - '리얼'과 '환상' 사이
201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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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8일(금)
조선일보 一事一言


'리얼'과 '환상' 사이

주말에 TV를 틀면 대부분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나온다.
유명 연예인들이 출연해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게 콘셉트다.
단순히 오락 차원을 떠나 휴머니즘을 전달하기도 한다.
시청자들은 그런 연예인의 민낯을 보면서
'저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연예인 역시 리얼 버라이어티 출연을
이미지 반전의 계기로 삼는다.

내게도 리얼 버라이어티 섭외가 들어온다.
감사한 일이지만, 선뜻 승낙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나는 그간
'배우는 무대 위에만 존재하며 관객에게 환상을 심어줘야 한다'고 배웠다.
대학 시절, 연극을 하다가 분장한 상태로
극장 로비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가
선배에게 걸려 호되게 혼난 기억도 있다.
"배우는 공연 전후에 분장한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배우는 작품 속의 인물로만 존재해야
관객이 극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맞는 얘기다.
배우들이 리얼 버라이어티에 나와 보여주는 실제의 모습은
때로 독이 된다.
'일반인'으로서의 배우가 시청자에게 인상적으로 각인되면,
작품 속에서의 열연이 되레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배우의 영역은 어디까지여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시대 흐름에 따라 예술 사조(思潮)는 바뀌어왔고,
당대의 트렌드는 매번 변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 트렌드에 맞춰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좋은 배우는 좋은 작품이 만든다고 믿는다.
지금의 사조가 '리얼'이라고 해서 모든 배우가 리얼 버라이어티에 나가
아우라를 내려놓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배우에 대한 환상은 여전히 중요하다.


김석훈·배우·FM 라디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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