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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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로스 로메로스 50주년 스페셜 콘서트
비회원
2008.08.22
조회 322

로스 로메로스 50주년 스페셜 콘서트 2008년 9월 5일(금) 오후 8시 1. 클래식 기타의 역사를 새로 쓴 로열 패밀리 ‘로스 로메로스’가 창단 50주년을 맞아 펼치는 2008-2009 시즌 월드투어의 첫 무대 2. 비발디에서 로드리고까지 클래식 기타 최고의 명 협주곡으로만 꾸미는 독특한 클래식 기타 협주곡의 밤! 3. 영원한 고전 ‘아랑페즈 협주곡’을 클래식 기타의 살아있는 전설 페페 로메로의 명연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 클래식 기타 계의 로열 패밀리 ‘로스 로메로스_Los Romeros’가 창단 50주년을 맞아 2008년 9월부터 2009년까지 이어가는 역사적인 기념 월드투어의 첫 무대를 2008년 9월 5일 금요일 오후 8시 고양아람누리에서 마련한다. 클래식 기타 4중주라는 형태를 창조해냈다는 찬사를 들을 만큼 클래식 기타 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로스 로메로스는 1세대 셀레도니오 로메로의 뒤를 이어 1990년부터 함께 연주활동을 해오고 있는 2세대 페페(Pepe)와 셀린(Celin), 3세대 셀리노(Cellino)와 리토(Lito)의 뛰어난 앙상블과 테크닉으로 전 세계 음악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이들은 이번 기념 공연의 레퍼토리로 지난 반세기 동안 3대를 이어 내려온 로메로 가문만의 예술적 감수성을 토대로 이룩한 완벽한 앙상블의 절정을 보여줄 수 있는 협주곡만을 선택하여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서울 클래시컬 플레이어즈(지휘:박영민)와의 협연으로 꾸며질 이번 무대는 스페인 작곡가 로드리고가 이들에게 헌정한 클래식 기타 명곡 ‘안달루자 협주곡’을 비롯하여 영원한 고적으로 사랑받는 ‘아랑페즈 협주곡(페페 로메로 협연)’, 비발디의 ‘네 대의 기타를 위한 협주곡’ 등 클래식 기타의 명실상부한 명작들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초가을의 정취 가득한 9월의 저녁, 영혼을 울리는 기타 연주와 놀라운 음악성으로 무장한 영원한클래식 기타의 명가(名家) 로스 로메로스가 선사하는 기타 협주곡의 밤을 놓치지 말자! 언론 리뷰(Press Review) “로스 로메로스는 세계에서 유일한, 진정한 클래식 기타 콰르텟이다. 아니, 사실상 기타 콰르텟은 이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 뉴욕 타임즈 “이들 중 한 명은 분명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이다. 단 하나 남은 문제는 과연 그들 중 누구를 꼽아햐 되는가 하는 것이다.” - 뉴욕 타임즈 “로메로스 4부자의 화려한 기량은 마치 같은 틀로 찍어낸 것처럼 한결같이 견고하고 섬세하다” - 뉴욕 타임즈 “오페라에 쓰리 테너가 있다면 클래식 기타에는 로메로스가 있다” - 라이프치히거 폭스자이퉁 “로스 로메로스는 어렵게 만들어진 기타의 테크닉을 쉽게 발전시켰다. 그들은 기타의 거장이다” - 호아킨 로드리고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스페인 기타의 명가(名家) ‘로스 로메로스’는 기타 음악가족의 아버지와 아들들로 창단되었다. 당대 명 기타리스트였던 아버지 셀레도니오 로메로(Celedonio Romero)는 재능 있는 그의 세 아들 셀린(Celin Romero), 페페(Pepe Romero), 앙헬(Angel Romero)에게 기타를 가르쳤다. 그 중 페페와 앙헬은 '로스 로메로스'의 멤버이면서 솔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지난 96년 셀레도니오가 타계함으로 셀린 로메로, 페페 로메로, 셀리노 로메로(Celino Remero), 리또 로메로(Lito Romero)로 새롭게 구성되어 클래식 기타 계의 유래 없는 음악가족으로 2대와 3대에 걸쳐 그 명성을 유지해오고 있다. 96년 이후 새로 가세한 셀리노는 셀린의 아들이며, 리토는 앙헬의 아들이다. 기타 4중주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보인 클래식 기타 콰르텟의 창시자 기타는 다재다능하면서도 분명한 몇 가지 특징을 지닌 악기이다. 그 중 하나는 타점이 짧고 또렷하다는 것으로 두 대보다 많은 수의 기타가 함께 연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2중주보다 큰 편성의 기타 중주곡은 거의 작곡되지 않았다. 하지만 로스 로메로스는 가족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절묘한 호흡을 자랑하며 기타 네 대로도 효과적인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은 기타 4중주를 위한 작품을 작곡하기 시작하였다. 스페인 기타의 거장 호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 모레노 토로바(Federico Moreno Torroba), 모튼 굴드 (Morton Gould), 프란시스코 드 마디나 (Francisco de Madina), 로렌초 팔로모 (Lorenzo Palomo) 등의 작곡가들이 로스 로메로스와 함께 기타 4중주 레퍼토리 확장에 기여하였다. 특히 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곡가 로드리고가 로메로 4부자를 위해 작곡한 ‘안달루자 협주곡’은 빅토르 알렉산드로(Victor Alexandro)가 지휘하는 샌 안토니오 심포니(San Antonio Symphonia)와 세계 초연된 뒤 오늘날까지 클래식 기타 최고의 명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전세계 클래식 계를 평정한 로메로스와 네 대의 기타 로스 로메로스는 워싱턴, 뉴욕, 인디아나 폴리스,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리사이틀을 가졌고,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도시에서 초청이 계속되고 있다. 유럽의 베를린, 바젤, 취리히, 빈 등에서 성공적인 투어를 마쳤으며, 2004년엔 홍콩아트페스티벌에 초청되어 페페 로메로의 협연을 포함한 리사이틀과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하여 호평 받았다. 미국에서는 보스턴 팝스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시카고 교향악단,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피츠버그 심포니, 디트로이트 심포니 등과 협연하며 세계 최고 기타 합주단의 명성을 입증했고, 신시내티 오케스트라와 스페인 작곡가 로렌초 팔로모의 ‘씨엔푸에고스 협주곡’을 초연하였다. 2001년 미국 공영방송인 KPBS/PBS에서 란 타이틀로 로메로 가족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 미국 전역에 방송되기도 하였다. 2002년에는 이란 타이틀로 CD를 출시하였으며, 캘리포니아 아트센터에서 개최된 ‘로메로 가족 페스티벌’에서 솔로, 2중주, 4중주 등의 편성으로 5번의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며 그들의 대물림된 재능을 선보였다. 전 세계 VIP들의 총애를 받는 클래식 기타 계의 로열 패밀리 로스 로메로스는 르네상스, 바로크, 로맨틱, 종교, 플라멩코에서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독주, 2중주, 4중주 등으로 전 세계 음악팬들을 감동시켰다.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기묘한 소리와 영감을 이끌어내는 이 음악가족의 예술성은 관객들에게 열광적인 찬사를 아낌없이 받았고, 그 결과 미국 백악관 초청연주, 교황청 요한 바오로 2세 스페셜 콘서트, 영국 찰스 황태자 특별연주회, 스페인의 소피아 여왕을 위한 연주회에 초청되었다. 페페 로메로와 셀린 로메로는 스페인 요한 카를로스 국왕으로부터 스페인 최고 영광인 기사 작위를 수여 받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2002년 11월 남가주 대학에서 축하 갈라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50주년 기념 월드투어, 창시자 셀레도니오 로메로에게 바치는 헌화 로스 로메로스 패밀리의 창시자인 셀레도니오 로메로는 이미 스페인에서는 잘 알려진 기타 연주가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2, 3세의 어린 나이에 기타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7세가 되던 해에는 모두 독주자로 데뷔시켰다. 1957년 그의 가족들은 억압적이던 프랑코 장군 치하의 스페인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 로메로 가족은 의 이름으로 첫 클래식 기타 4중주 무대를 열었다. 당시 셀레도니오의 아들들은 여전히 10대였지만 이들의 미국 데뷔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로메로스 일가는 이때부터 전 세계를 누비며 연 100회 이상의 공연을 가졌다. 1996년 셀레도니오의 사망 이후 셀린, 페페, 셀린의 아들 셀리노와 앙헬의 아들 리토 네 명으로 4중주 활동을 계속 하고 있는 로스 로메로스는 50주년 기념 월드투어를 위해 2008년 9월부터 2009년 시즌까지의 전 일정을 일체의 개인활동 없이 ‘로스 로메로스’로서만 활동한다. “아버지는 팀의 영혼이었으며, 우리의 연주는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던 그들. 2008년 9월 5일 고양아람누리 공연을 시작으로 1년간 펼쳐질 그들의 50주년 월드투어는 3대에 걸쳐 뛰어난 기타 연주자를 배출해 온 로메로 가족의 기념 무대임과 동시에, 이 모든 역사를 시작한 셀레도니오에게 바치는 커다란 추모 화환이며, 기타와 음악을 사랑하는 청중들에게는 이 놀라운 가족의 전통을 보여주고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Program- 로드리고 네 대의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안달루자 협주곡 Rodrigo Concierto Andaluz for 4 Guitars & Orchestra 로드리고 아랑페즈 협주곡 Rodrigo Concierto de Aranjuez(Soloist: 페페 로메로) 비발디 4대의 기타를 위한 협주곡 제10번 b단조 작품3 Vivaldi Concerto No.10 in b minor op.3 Program Note 오케스트라에 맞서는 네 대의 기타를 보며...... 글: 서정실(클래식 기타리스트) 오늘날 협주곡(concerto)이란 하나의 독주 악기를 관현악단이 반주하는 형태를 가진 관현악곡을 말한다. 콘체르토(concerto)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의 “Concertare”라는 동사가 어원이다. 이 단어는 한편으로는 “경쟁하다, 다투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동의하다, 협력하다”라는 정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동사이다. 그 어원으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협주곡은 독주 악기와 관현악단이 때로는 경쟁하며 싸우는 모습으로, 때로는 동의하여 협력하는 모습으로 함께 연주하는 것을 보여주는 연주형태이다. 17세기 초반에 작은 악기군과 큰 악기군이 서로 주고받으며 연주하던 합주 협주곡 (콘체르토 그로소; Concerto Grosso) 양식으로부터 시작된 협주곡은, 17세기후반~18세기전반을 지나며 코렐리 (Arcangelo Corelli, 1653-1713), 안토니오 비발디 (Antonio Vivaldi, 1678-1741)에 의해 점점 관현악단이 독주악기를 반주하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런 독주 협주곡은 음악의 고전 시대(18세기후~19세기초)와 낭만 시대(19세기)를 거치며 독주악기 연주자가 음악적 기교를 과시하며 커다란 관현악단에 맞서는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연주형태로서 자리 잡으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러한 독주 협주곡을 듣는 이는 수 십대의 악기의 소리에 맞서 당당하게 온갖 기교를 다 하여 연주하는 독주자의 모습으로부터 일당백의 위용으로 적진을 누비는 고대의 장수, 혹은 홀홀단신으로 수많은 적을 물리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수퍼 히어로의 영웅적인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이런 이미지에 어울리는 악기로서 작곡가들은 피아노라든가 바이올린 같은, 넓은 음역과 커다란 음량을 바탕으로 고난도의 테크닉을 소화할 수 있는 악기들을 선호하였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협주곡이 눈에 많이 띄는 것에 비해 기타 협주곡이 보기 드문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크 시대 이전의 기타나 류트 등의 발현악기류는 다양한 화성과 선율이 연주 가능한 장점 덕분에 음악 전반에 걸쳐 고루 사랑받는 악기였다. 하지만 더 넓은 음역과 강약폭을 지닌 건반악기 피아노의 출현과, 19세기 즈음의 시대적인 요구에 따른 음악회장의 대형화 등은, 음량과 표현의 한계가 분명한 기타에게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기타는 점점 아마추어들을 위한 규방의 악기, 혹은 지중해안 집시의 민속악기로 업신여기는 인식이 점점 널리 퍼졌다. 게다가 악기의 특성상 기타를 잘 알지 못하고는 기타곡을 작곡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어서, 많은 작곡가들이 기타를 위한 곡을 쓰지 못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오케스트라와 당당히 맞서는 영웅적인 모습의 기타 협주곡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정은 호아킨 로드리고 (Joaquin Rodrigo, 1901-1999)에 의해 달라졌다. 로드리고는 1901년 스페인의 사군토에서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였지만, 불행히도 3살 때 사군토에 유행했던 디프테리아에 걸렸고, 당시의 높은 치사율에도 불구하고 목숨은 건졌지만, 그 대신 시력을 대부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발렌시아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성과를 이루었고, 14세에는 프란치스코 안티치 교수로부터 화성학과 작곡을 배우게 된다. 로드리고의 아버지는 시력을 잃은 아들을 위해 개인 비서를 고용하여 교과서와 악보를 읽어주고 그가 불러주는 곡을 받아쓰게 했다. 발렌시아의 음악원에서 공부를 계속하던 그는, 26세에 프랑스로 유학, 폴 뒤카 (Paul Dukas, 1865-1935)를 사사하게 된다. 프랑스로 유학을 가는 것은 알베니즈 (Isaac Albeniz, 1860-1909), 그라나도스 (Enrique Granados, 1867-1916), 드 파야 (Manuel de Falla, 1876-1946) 등 당시 스페인 국민악파 작곡가들에게는 일종의 전통과도 같은 일이었다. 또한 당시 파리에서는 스페인 출신의 작곡가들뿐 아니라 드뷔시 (Claude Debussy, 1862-1918)나 라벨 (Maurice Ravel, 1875-1937) 등의 프랑스 작곡가들도 스페인 풍의 작품을 활발히 작곡하고 있는 등 스페인 음악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높았다. 이 시기에 로드리고는 당대의 유명 작곡가들, 특히 마뉴엘 드 파야와 친분을 맺었을 뿐 아니라, 당시 파리로 유학 와 있던 터키 출신의 피아니스트 빅토리아 카미 (Victoria Kahmi, 1905-1997)를 만나 1933년 결혼에 골인하였다. 그녀는 이후 평생 피아니스트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로드리고를 내조하는데 일생을 바치게 된다. 1939년 귀국길에 오른 로드리고 부부는 당시 경제적으로도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다. 게다가 첫 임신 중이었던 아내는 귀국 후 얼마 후 유산을 겪게 되며, 로드리고는 심각한 눈의 농양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 완성된 그의 첫 기타 협주곡인 아랑페즈 협주곡 (Concierto de Aranjuez, 1939)은 그런 당시의 어려움을 찾아볼 수 없는 밝고 아름다운 선율과 리듬으로 가득 찬 걸작이다. 레히노 사인즈 데 라 마짜 (Regino Sainz de la Maza, 1896-1981)에 의해 1940년 바르셀로나에서 초연된 이 협주곡은 즉각적이고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아랑페즈 협주곡의 성공은 세고비아 (Andres Segovia, 1893-1987)에게 헌정 된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 (Fantasia para un gentilhombre, 1954)"으로 이어졌고, 셀레도니오 로메로 (Celedonio Romero, 1913-1996)는 그의 아들들 셀린, 페페, 앙헬과 함께 결성한 기타 4중주단 로스 로메로스 (Los Romeros)를 위해 네 대의 기타를 위한 협주곡을 로드리고에게 촉탁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작곡된 것이 오늘 연주회의 첫 곡으로 선보이는 안달루자 협주곡 (Concierto Andaluz, 1967)이다. 1968년 미국의 텍사스 주 산 안토니오에서 로스 로메로스에 의해 초연된 이 곡은 전례를 찾기 힘든 기타 4중주단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협주곡이라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로스 로메로스의 이름을 한층 널리 알리는데 한 몫을 담당했다. 아름답고 풍족한 자연환경과 더불어 깊은 예술적인 전통을 함께 간직한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은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 (Federico García Lorca, 1898–1936), 화가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973), 작곡가 마뉴엘 드 파야의 고향이며, 기타를 중심으로 한 오랜 플라멩코 음악의 전통이 살아있는 고장이고, 또한, 이 곡을 촉탁한 셀레도니오 로메로와 로메로 일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안달루자 협주곡은 이런 풍부한 음악적인 자산을 십분 이용하여 안달루시아 지방의 아름다운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하겠다. 우아한 궁전을 배경으로 한 아랑페즈 협주곡과는 달리 안달루즈 협주곡은 훨씬 더 민속적이고 대중적이며, 플라멩코 기타의 색체를 강하게 띄고 있다. 라스게아도 (rasqueado: 손가락을 튕겨내어 연속적인 화음을 리드믹하게 연주하는 것)는 더욱 열정적이고, 푼테아도 (punteado: 손가락으로 탄현하여 빠른 선율을 연주하는 것)로 연주되는 스케일들은 더욱 장식적이며, 오케스트라는 더욱 과감하게 기타의 소리를 모방하면서도 풍부한 색감의 관현악법을 보여준다. 또한 한 대의 기타로는 들려줄 수 없는 “커다란 기타”로서의 기타 4중주의 소리를 너무나도 잘 들려주고 있다. 이런 형태의 편성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에 이만큼 기타 네 대가 연주해 낼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잘 실현해 낸 로드리고의 천재성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첫 악장은 열정적인 볼레로, 편안하고 서정적인 안달루시아의 민요, 그리고 활기찬 불레리아스의 리듬을 지닌 세 가지 주제로 이루어져있다. 기타들끼리의 선율과 리듬의 주고받음, 그리고 기타들과 오케스트라 사이의 주고받는 음악의 절묘함이 일품이다. 2악장은 하향하는 저음의 인상적인 반주 위에 애달픈 선율이 연주 되는 아다지오 부분을 시작으로 리드믹한 알레그로 부분을 거쳐 기타들만의 카덴자에 이른다. 카덴자는 각 연주자의 기교를 충분히 드러내는 가운데 기타 4중주가 들려줄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루 보여준다. 이어서 다시 아다지오의 주제로 이어지지만, 더욱 장식적인 기타의 선율이 2악장의 끝을, 그리고 다음 악장의 시작을 재촉하는 듯하다. 마지막 악장은 네 대의 기타가 라스게아도로 연주하는 가벼운 3/4 박자 리듬의 세비야나스로 그 문을 연다. 기타와 오케스트라가 주거니 받거니 이어가던 이 리듬은 열정적인 6/8 박자의 자파테아도 섹션으로 이어지고, 그 뜨거움이 절정에 이를 때 다시 세비야나스의 리듬이 등장하며 곡을 마무리한다. 두 번째로 연주 될 곡인 아랑페즈 협주곡 (Concierto de Aranjuez, 1939)은 마드리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스페인 황실의 아름다운 봄철 행궁을 배경으로 한다. 로드리고는 이 곡에 대해서 “귀족적인 고결함과 대중적인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18세기의 스페인 궁정의 느낌을 오늘날에 되살린 음악” 이라며 “아랑페즈 협주곡은 형식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고전적인 것과 대중적인 것의 결합이며, 바로크의 궁정을 둘러싼 정원의 숲 속을 거니는 꿈을 꾸는 것 같은 곡” 이라고 설명했다. 로드리고의 음악은 이같이 바로크 시대의 감성과 스페인 음악의 전통이 그가 어릴 적부터 배운 유럽 주류 음악의 특성과 함께 녹아있는 신고전주의적인 작품들이며, 이러한 경향은 그의 협주곡들뿐 아니라 기타를 위한 독주곡에도 잘 나타나 있어서 세고비아를 비롯하여 많은 현대 기타리스트들이 즐겨 연주하는 20세기 기타 레퍼토리의 중심축을 이루게 된다. 1악장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 (Allegro con spirito, 빠르고 활기차게) 는 스페인의 민속 무용인 판당고를 연상시키는 6/8 - 3/4 박자의 교차리듬이 인상적인 악장이다. 기타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주도권을 주고받는 가운데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모습은 로드리고가 기타 협주곡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우아하게 잘 다뤄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플라멩코 기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스게아도와 푼테아도가 교차하는 기타의 화려한 테크닉을 감상하는 것과 함께, 이를 오케스트라가 어떤 방식으로 흉내 내는지 들어보는 것도 1악장을 듣는 재미를 더해준다. 로드리고의 아내 빅토리아 카미는 그녀의 자서전에서 아랑페즈의 2악장 Adagio (느리게, 편안하게)는 그들의 행복했던 신혼여행의 기억과 첫 아기를 유산한 것에 대한 슬픔을 함께 표현한 곡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악장은 스페인 지방에서 고난주간에 불려지는 사에타 (Saeta)라는 비가(悲歌)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 비가는 처음에 성상(聖像)을 든 행렬의 앞에서 적은 수의 여성 가수가 슬픈 선율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어 점차 모여든 군중이 함께 부르는 곡이라고 한다. 로드리고는 이를 따라서 기타와 잉글리쉬 호른이 주제를 주고받는 것으로 2악장을 시작하고, 기타의 카덴자에 이은 오케스트라 총주로써 장엄한 클라이막스를 이끌어낸다. 마지막 악장 Allegro gentile (빠르고 상냥하게)은 바로크적인 대위법이 스페인 춤곡의 리듬과 민속적인 선율과 함께 어우러진 활기차고 명랑한 곡으로, 2/4 - 3/4 박자의 교차리듬을 사용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들이 기타와 함께 주제를 주고받는 것으로 곡이 진행되어 점차 클라이막스에 이르지만, 마지막에는 마치 나비의 날갯짓 같이 가볍고 섬세하게 마무리된다. 이 곡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2악장 아다지오의 주제 선율이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며 듣는 이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 선율은 재즈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 (Miles Davis)에 의해서 연주되기도 했고, 가사가 붙여져 “아랑훼즈 내 사랑 Aranjuez mon Amour" 라는 제목으로 가수 리차드 앤쏘니 (Richard Anthony)에 의해 불려 졌으며, 그 밖에도 수많은 음악가들에 의해 인용되어 TV, 영화, 광고, 무용음악 등으로 이용되어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70~80년대 TV “주말의 명화” 시간의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되어 더욱 낯익은 음악이기도 하다. 마지막 곡은 시대를 훌쩍 과거로 건너 뛰어 안토니오 비발디의 "화성(和聲)의 영감(靈感), 작품번호 3번 중 10번 네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나 단조" (L’Estro Armonico, Op.3, Concerto No. 10 in B minor for four violins and strings, RV 580)이 장식한다. “화성의 영감”은 각기 1대, 2대, 혹은 4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독주악기(군)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12곡의 협주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1, 4, 7, 10번이 네 대의 바이올린을 독주악기군으로 채택하여 앞에서 이야기한 합주협주곡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들에게 자신의 작품, 혹은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차용하여 다른 편성으로 편곡하거나 그 주제를 이용하여 전혀 다른 곡을 만드는 것은 널리 행해지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오늘 연주되는 10번 협주곡의 경우, 요한 세바스챤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에 의해서 네 대의 하프시코드와 현악합주를 위한 협주곡(바흐작품번호 BWV 1065)으로 편곡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인 전통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은 모습의 기타는 바로크 시대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대신 상당히 다른 구조와 음향을 지닌 바로크 기타가 있었다.) 작곡된 시대의 악기와 연주관습을 사용한 고음악 연주 (일명 “원전연주”)가 일반화 된 오늘날, 현대악기를 이용하여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는 방식의 편곡은 많은 이들이 꺼리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로스 로메로스가 창단 될 1950년대 당시 기타 4중주를 위한 레퍼토리는 전무하다시피 하였으며, 이런 가운데 이미 오랜 편곡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바로크 음악에 주목한 것은 이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협주곡 레퍼토리가 극히 부족했던 그들에게 라틴적인 활기로 넘치는 비발디의 여러 음악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료를 제공했으며, 그들의 초기 음반과 연주회 프로그램에서 비발디의 협주곡들은 주요 레퍼토리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들은 비발디뿐 아니라 바흐나 헨델 (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 보케리니 (Luigi Boccherini, 1743-1805) 등 여러 작곡가의 곡들을 편곡하였는데, 이로써 기타 4중주 음악의 지평을 넓히는데 공헌 한 것이다. 로스 로메로스의 창단이 이미 50년 전의 일이 되었다. 반세기 이전만 해도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형태의 악기편성인 기타 4중주는 이제 세계적으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연주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로스 로메로스의 뒤를 이어 여러 기타 4중주단이 활동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로부터 시작된 다양한 편곡과 작곡 활동으로 기타 4중주는 기타 2중주의 뒤를 이어 가장 인기 있는 기타 중주의 형태가 된 것이다. 이런 모든 일들은 고(故) 셀레도니오 로메로와 그의 세 아들, 셀린, 페페, 그리고 앙헬 로메로의 선구적인 활동이 아니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뜻 깊은 연주단체의 창단 50주년을 맞이하여, 그들을 위해 새롭게 작곡한 곡으로 시작하여 그들의 새로운 활동을 위해 스스로 편곡한 곡으로 끝을 맺는 프로그램 또한 무척 뜻 깊다 하겠다. 또한, 협주곡만으로 이루어 진 오늘의 프로그램을 보며, 거대한 오케스트라 앞에 한 가족이 한데 뭉쳐 연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들이 이 새로운 연주 형태를 위해서 헤쳐 나가야 했을 여러 가지 일들을 떠올린다면 필자만의 지나친 비약일까? 3대에 걸쳐 뛰어난 음악적 성과를 이루며 반세기 동안 활동을 이어온 로스 로메로스의 음악이 이제 다가올 세대에서도 계속 이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 이 공연에 청취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초대합니다' 게시판을 통해 참여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