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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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국립오페라단 <살로메>
비회원
2008.09.17
조회 237

국립오페라단 마이 넥스트 오페라(MNO) 두번째 시리즈
R. 슈트라우스 <살로메>
Richard Strauss “Salome”
2008년 10월 2(목)-10월 5일[일] LG 아트센터

국립오페라단은 20세기 현대 오페라의 대표적인 공연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Salome>를 오는 10월, LG아트센터에서 올린다. 이번 공연은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지 않는 희귀 레퍼토리를 소개하는 국립오페라단 ‘마이 넥스트 오페라(My Next Opera)’의 두 번째 무대다.

마이 넥스트 오페라는 국립오페라단의 제작 노하우를 계발하고 현대 오페라 관객과 잠재 관객이 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 레퍼토리를 소개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더불어 흔히 “흥행하는 오페라” 레퍼토리에 조금은 지루함을 느낄 관객들에겐 더 없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는 무대에 잘 올려지지 않는 작품을 선정하고, 의상과 무대 디자인 역시 작품이 가진 현대적 감각에 맞춰 연출한다.
2007년 첫 ‘마이 넥스트 오페라 시리즈’로 선보인 오페라 <보체크>(2007년 6월, LG 아트센터)는 탁월한 작품성에 비해 관객 흥행에서 저조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기존 오페라 관객층보다 젊은 관객이 주를 이루며 객석 점유율 82%로 그 반응 또한 뜨거웠다.

이번에 공연될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 역시 이미 외국에선 바그너나 푸치니의 작품만큼이나 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이지만, 음악과 선정적인 내용 때문에 한국에서는 그랜드 오페라로써는 초연인 작품이다. 특히 주인공 <살로메>역은 연기와 노래가 연극적인 요소가 강해 아티스트에게는 매우 부담이 되는 작품이라, 성악가들에게는 인기 없는 배역으로 도 유명 하다.

이번 살로메 역은 오페라 계에서 “끼 있는 아티스트”로 정평이 난 “한예진”과 ”이지은” 두
배우가 맡아 국내 관객들에게 미래의 오페라를 들려주게 된다.

또한 이번 오페라 “살로메”는 독일의 젊은 연출가 카를로스 바그너(Carlos Wagner) 가 총 지휘를 맡았다. (http://www.carloswagner.com)
유럽무대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그는, 자극적이며 독특한 해석. 그리고 깔끔한 미장센으로 유럽무대를 주름잡고 있는 젊은 연출가이다.
무대 또한 주목할만 하다.
이번 살로메의 무대는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 코너 머피(Conor Murphy) 가 맡아 한국을 찾는다.
실험적이며 표현주의적인 강렬한 무대로 주목받은 오던 코너 머피는 2005년 프랑스 몽펠리에르 극장 프로덕션 오페라 "살로메" (연출: 카를로스 바그너)를 거쳐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초연 작품 오페라 “Powder her Face”의 성공으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일약 스타 무대디자이너로 부각되었다.
코너 머피, 그리고 카를로스 바그너가 함께 작업한 살로메 무대는, 프라하에서 4년마다 열려 “무대인들의 올림픽” 이라고 불리는 “콰드레니얼(Prague Quadreninal)” 축제에 전시되고 있다. 올해로 11회째를 맞는 콰드레니얼 축제는 44년의 역사를 지닌 축제로써, 세계 50여 개국이 참가하는 국제적인 행사이다. 세계 최고의 명성과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무대미술품들이 전시되며, 이 축제를 통해 세계 무대 미술계의 동향을 알 수 있다고 하는 대규모 박람회다.
이 밖에 젊은 지휘자 이병욱(Christopher Lee)이 TIMF 앙상블과 엘렉톤으로 호흡을 맞추며, 엘렉톤을 보강하기 위해, Hiromi Akatuka 도 직접 내한해 엘렉톤 코치로써 음악을 만들게 된다.

인간 욕망의 광기와 에로티시즘의 절정 ‘일곱 베일의 춤’
‘침수된 요한의 목을 들고 키스를 퍼붓는’ 살로메의 불가사의한 매력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를 한마디로 정의 하자면 “엽기적인 오페라”다.
헤롯 왕과 그의 의붓딸 살로메, 예언자 세례 요한의 비정상적 사랑이야기를 그린 살로메는 뇌세적, 관능적, 욕망적인 스토리라인으로 꽤 까다로운 연출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다.
성경 마태복음 14장 3절~12절에 묘사된 여인 살로메는 중세 이후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미술과 음악, 문학 등에서 다양하게 표현되었을 정도로 극적인 드라마적인 요소가 곳곳에 녹아져있다.
이 중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를 대본으로 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는, 살로메 라는 관능적인 여인을 중심으로 인간 욕망과 감정의 충돌, 그로부터 비롯되는 광기와 에로티시즘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인 살로메가 요한의 머리를 얻기 위해 헤롯 왕 앞에서 몸에 걸친 일곱 개의 베일을 차례로 벗으며 추는 ‘일곱 베일의 춤’, 은쟁반 위에 놓인 죽은 요한의 머리에 마치 살아있는 듯 키스를 하는 장면 등, 신약성서에 나오는 살로메와 요한의 이야기는 도발적인 시도이며, 당시 종교적으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오페라 <살로메>는 1905년 12월 드레스덴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초연 당시 서른 번의 커튼콜을 받는 대성공을 거뒀지만 빈과 베를린, 뉴욕에서는 ‘음란공연’으로 낙인 찍혀 공연을 중단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고전오페라와 현대 오페라의 기준을 나누는 중심점이 된 작품이다.

음악적으로도 <살로메>는 대담한 불협화음과 무조(無調) 음악에 가까울 정도로 근대적 수법을 구사하면서도, 후기 낭만파 특유의 요염하고 아름답고 감미로운 선율을 노래하고 있으며 관능적이고도 매우 정밀하고 화려한 명곡이다. 같은 조성에서 Major와 minor가 연결 고리 없이 급격하게 전조되는 부분이 많으며, 그러한 부분들의 조화가 긴장감과 광기 어린 공포의 효과를 잘 묘사하고 있다.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 (1864-1949)

후기 낭만파 음악의 거장인 그는 근대 독일을 대표하는 최대의 작곡가이며 표제음악과 교향시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의 아버지는 뮌휀 궁정 가극장에서 혼을 부는 단원이었는데, 슈트라우스는 아버지에게서 최초의 음악 교육을 받았다.
4세 때부터 재능을 보인 그는 6세에 피아노곡과 가곡을 작곡하였다.
16세 때 교향곡 d단조 등 작곡에 진전을 보였다. 그의 아버지는 모짜르트, 베토벤 등의 고전 음악을 숙독시켰는데, 점차 19세기 말의 낭만파 작품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1882년 그는 뭔휀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 미학, 문화사 등을 공부하였다.

1883년 그는 베를린에서 그 당시 미술가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1885년에 유명한 피아니스트이며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에게 인정을 받아 마이닝겐에서 뷜로의 보조 지휘자 겸 합창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그 곳에서 브람스, 베를리오즈, 바그너, 리스트 등의 새로운 음악을 알게 되었으며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을 하였다.

1886년 뮌헨 가극장의 제3악장이 되었고, 1889년 바이마르 궁정 지휘자가 되었으며, 1894년에는 다시금 뮌휀, 1898년에는 베를린, 1919년부터 5년 동안은 빈 국립 가극장의 지휘자
로 활약하였다. 1923년에 남 아메리카로 가서 재차 미국을 방문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1932년 나치스 정책은 유대인을 배척하였으며 음악가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그는 처음에 나치스 정권에 협조하여 정부가 설치한 음악국의 총재로 있었는데, 얼마 후 유대인이었던 멘델스존의 작품 [한여름 밤의 꿈]을 말살하고 대신 새 제목으로 작곡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예술가의 입장에서 이를 거부하고 유대인 츠바이크의 대본에 희극 [침물의 여자]를 작곡하였다. 그로 인해 당국으로부터 미움을 사서 1935년에 총재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1945년에 독일이 패망하자 나치스 협력자의 혐의로 비난을 받아 작품은 악계에서 매장되어
곤란한 때도 있었다.
그리고 생활을 위해 80여세에 런던, 빈 등지에서 지휘봉을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84세의 탄생일을 맞이하는 해에 그는 나치스 숙청 재판소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았
다. 그는 다시금 햇빛을 보게 되어 85세 생일 때는 그를 축하하는 음악회가 각지에서 개최되었고 작품도 연주되어 절찬을 받게 되었다.
그는 인간적으로 신경질이 있는 반면 완고한 사람이며 정력적인 활동가였다. 그는 어느 파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고 시대에 따라 환영되는 것도 믿지 않았다. 형식에 중점을 둔 고전주의적인 작곡가였고 젊었을 때는 주로 교향곡과 실내악을 작곡하였다. 다시금 그는 베를리오즈와 바그너의 표제음악의 영향으로 음악을 형식적인 구성에서 해방하고 음을 수단으로 시와 극과 이야기 등을 표현하려 하였다.
그의 표현력은 대단한데, 라이트 모티브(Leitmotiv)의 기법과 변주법에 의한 기량은 놀랄 만하며 관현악법의 능숙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만년에 이르러 고전에 대한 애착심에 의해 만들어진 그의 소편성에 의한 기악곡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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