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남성합창단 “돈 코사크” Don Kosaken Chor Wanja hlibka <공연정보> 공 연 명 : 전설의 남성합창단 ‘돈 코사크’ 내한공연 일 시 : 2008년 4월 17일(목) 오후 8시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코사크인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죽지 않고 살아있다" 러시아의 이 오래된 경구는 돈 코사크 합창단에서 비롯되었다. 천둥번개와도 같은 그들의 음성!! 최고의 음악성과 완벽한 퍼포먼스가 곁들여진 공연!! ‘새로운 돈 코사크’는 ‘예전의 돈 코사크’를 뛰어넘는 기량!! 돈 코사크 합창단은 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 티링길 포로수용소에서 조국에 대한 향수와 불안정한 현실을 잊기 위해서 시작되었지만 여러 나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실력은 진가를 발휘하여 많은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세계 투어를 하였다. 러시아 특유의 열정이 가득한 남성합창단을 선보이며 많은 활동을 하였고, 특히 창단 지휘자 ‘세르게이 자로프’는 뛰어난 편곡능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레퍼토리를 개발하여 당시 러시아 민요를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번 첫 한국 공연은 창단 지휘자 세르게이 자로프의 후계자인 반야 흘리브카 Wanja Hlibka (테너) 지휘아래 16명의 돈 코사크 합창단원들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또 하나의 전설이 될 것이다. <돈 코사크 합창단 창단 유래> 돈 코사크 합창단의 첫 리허설은 1921년 러시아 혁명 중 적군에게 패배한 억류자 수용소에서 시작되었다. 합창단은 조국에 대한 향수와 불안정한 현실을 노래로 승화시켰으며, 이들이 불가리아로 이송될 무렵에는 이미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위치한 러시아 공사관의 교회에서 일요일마다 노래를 할 수 있었고 이 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들의 콘서트를 기획한 Völkerbundes와 계약하였으며 호프부르크 궁에서 열린 공연이 바로 돈 코사크의 첫 공연이었다. 오스트리아 투어를 기점으로 영국, 프랑스, 미국, 스위스 등지에서 공연하기 시작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 1939년까지 이들은 베를린에서 거주하였으며 그 후 미국공연에 대한 제안을 받고 방문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적인 기계문명의 나라 미국에서 투박하고 흙냄새 물씬 풍기는 러시아 민요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합창단의 우려와 예상을 깨고, 뜻밖에도 미국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계기로 전 단원은 미국의 시민권을 얻어 영주하게 되었다. 이 후 2차대전이 끝나던 1945년, 연합군을 위한 공연을하기 위해 다시 독일로 돌아왔으며, 약 1만회의 공연 끝에 1979년 해단하기까지 ‘돈 코사크 합창단’은 서방 세계의 황궁과 가장 저명한 홀에서 공연하였다. <라흐마니노프와 살리아핀의 전폭적 지지> 미국에서 망명 중이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는 요양차 방문한 스위스에서 매년 세르게이 자로프를 만나 음악적으로 지도한 바 있으며, 금세기 최고의 베이스인 ‘표도르 살리아핀’ 또한 이들 합창단에게 열렬한 지지를 표한 바 있다. 오페라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텔레스 배역의 전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살리아핀은 런던에서 열린 돈 코사크 합창단의 공연을 관람한 후 세르게이 자로프를 방문하여 포옹과 한담을 나누고는 하였다. <합창단의 재설립> 합창단은 해단 후 12년 만인 1991년, 당시의 오리지날 멤버였던 바냐 흘리브카와 게오르그 팀첸코에 의해 재설립되었다. 이들은 본래 합창단의 고전적인 레퍼토리에 더해 새로운 창립자들의 훈련 아래 새로운 음색과 폭넓은 레퍼토리를 갖추게 되었다. 가벼운 악기같은 음색으로 시작되는 솔로 파트부터 오케스트라와도 같은 장대함까지, 광범위한 소리의 스펙트럼으로 오리지널 팀의 진정한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적인 아카펠라 합창단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들은 함부르크 뮤직홀과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프랑크푸르트의 홀 등에서 라이브로 공연하며 그 외에도 매년 250개의 대성당과 콘서트홀에서 공연하고 있다. 독일 국영방송인 ZDF와 오스트리아 공영방송 ORF, 네덜란드 종합방송국 RTL,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방송국 RBB 등을 통해 이들의 공연이 방영된 바 있다. § 창단 지휘자 소개 - Sergei Jaroff 세르게이 자로프 (1896.3.20-1985.10.9)§ 세르게이 자로프는 다섯 살 때부터 이미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는 합창단의 뛰어난 리더들과 성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스크바의 시노달 음악원에서 1917년까지 11년간 전액 장학금을 수여받았다. 졸업하던 해에 세르게이 자로프는 모스코바 알렉산드르 군사 아카데미에 파견되었고 1917 년 8월 대위로 승진, 러시아 혁명 동안 백러시아의 돈 코사크 여단에서 싸웠다. 적군 의 승리 후 자로프와 그의 군대는 대부분의 포로가 수용된 터키로 이동하였다. 여기서 그는 장교의 명령으로 돈 코사크 합창단의 기초를 세웠다. 자로프는 지휘자로서 뿐만 아니라 편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어 그의 손에 거쳐 편곡된 많은 곡들이 온 세계의 남성합창단에 의해 애창되고 있다. § 지휘자 소개 - Wanja Hlibka (테너)§ Wanja Hlibka는 1948년 독일계 러시안 가정에서 태어났다. 17살 때 이미 그의 개인 초연을 가졌으며 2년 후 세르게이 자로프와 계약하였다. 1967년 첫 순회공연 후에 그는 함부르크에 있는 음악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투어 휴식 중에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슈타른베르크에서 Josef Metternich 교수에 의해 받은 수업은 그의 목소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Wanja Hlibka는 팀이 해산되기 전까지 돈 코사크 합창단의 단원이었으며, 공식적인 최연소 솔로 연주자로서 스스로 새로운 돈 코사크 합창단 지휘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세르게이 자로프의 음악적 후계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재결성된 돈 코사크 합창단은 그의 지휘 아래 오리지널 팀의 레퍼토리에 더하여 더욱 폭넓은 레퍼토리와 정교한 음색을 갖추게 되었다. < Press Reviews > Leipziger Volkszeitung 라이프치히 폴크스차이퉁 돈 코사크 합창단은 게반트하우스에서 가진 8번의 공연을 모두 매진시키며 관객들로부터 열정적인 찬사를 받았다. 통상적인 독일과 일본, 영국 합창단의 사이에서 합창단만의 고유한 음색과 스타일, 레퍼토리를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시대에 있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세르게이 자로프 시절 전설적인 앙상블의 전통을 훌륭히 이어가는 바냐 흘리브카의 돈 코사크 합창단 앞에 경의를 표한다. München 뮌헨 뮌헨의 헤르쿨레스 홀은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찼다. 마지막 곡
이번 주 초대 공연을 안내합니다.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시고 월~금 생방송 도중 #9390(50원 유료문자)으로 신청해주세요.
추첨을 통해 당첨자 분들께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마감]남성합창단 '돈 코사크' 내한공연
비회원
2008.03.25
조회 253
전설의 남성합창단 “돈 코사크” Don Kosaken Chor Wanja hlibka <공연정보> 공 연 명 : 전설의 남성합창단 ‘돈 코사크’ 내한공연 일 시 : 2008년 4월 17일(목) 오후 8시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코사크인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죽지 않고 살아있다" 러시아의 이 오래된 경구는 돈 코사크 합창단에서 비롯되었다. 천둥번개와도 같은 그들의 음성!! 최고의 음악성과 완벽한 퍼포먼스가 곁들여진 공연!! ‘새로운 돈 코사크’는 ‘예전의 돈 코사크’를 뛰어넘는 기량!! 돈 코사크 합창단은 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 티링길 포로수용소에서 조국에 대한 향수와 불안정한 현실을 잊기 위해서 시작되었지만 여러 나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실력은 진가를 발휘하여 많은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세계 투어를 하였다. 러시아 특유의 열정이 가득한 남성합창단을 선보이며 많은 활동을 하였고, 특히 창단 지휘자 ‘세르게이 자로프’는 뛰어난 편곡능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레퍼토리를 개발하여 당시 러시아 민요를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번 첫 한국 공연은 창단 지휘자 세르게이 자로프의 후계자인 반야 흘리브카 Wanja Hlibka (테너) 지휘아래 16명의 돈 코사크 합창단원들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또 하나의 전설이 될 것이다. <돈 코사크 합창단 창단 유래> 돈 코사크 합창단의 첫 리허설은 1921년 러시아 혁명 중 적군에게 패배한 억류자 수용소에서 시작되었다. 합창단은 조국에 대한 향수와 불안정한 현실을 노래로 승화시켰으며, 이들이 불가리아로 이송될 무렵에는 이미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 위치한 러시아 공사관의 교회에서 일요일마다 노래를 할 수 있었고 이 후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들의 콘서트를 기획한 Völkerbundes와 계약하였으며 호프부르크 궁에서 열린 공연이 바로 돈 코사크의 첫 공연이었다. 오스트리아 투어를 기점으로 영국, 프랑스, 미국, 스위스 등지에서 공연하기 시작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 1939년까지 이들은 베를린에서 거주하였으며 그 후 미국공연에 대한 제안을 받고 방문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적인 기계문명의 나라 미국에서 투박하고 흙냄새 물씬 풍기는 러시아 민요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합창단의 우려와 예상을 깨고, 뜻밖에도 미국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계기로 전 단원은 미국의 시민권을 얻어 영주하게 되었다. 이 후 2차대전이 끝나던 1945년, 연합군을 위한 공연을하기 위해 다시 독일로 돌아왔으며, 약 1만회의 공연 끝에 1979년 해단하기까지 ‘돈 코사크 합창단’은 서방 세계의 황궁과 가장 저명한 홀에서 공연하였다. <라흐마니노프와 살리아핀의 전폭적 지지> 미국에서 망명 중이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는 요양차 방문한 스위스에서 매년 세르게이 자로프를 만나 음악적으로 지도한 바 있으며, 금세기 최고의 베이스인 ‘표도르 살리아핀’ 또한 이들 합창단에게 열렬한 지지를 표한 바 있다. 오페라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텔레스 배역의 전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살리아핀은 런던에서 열린 돈 코사크 합창단의 공연을 관람한 후 세르게이 자로프를 방문하여 포옹과 한담을 나누고는 하였다. <합창단의 재설립> 합창단은 해단 후 12년 만인 1991년, 당시의 오리지날 멤버였던 바냐 흘리브카와 게오르그 팀첸코에 의해 재설립되었다. 이들은 본래 합창단의 고전적인 레퍼토리에 더해 새로운 창립자들의 훈련 아래 새로운 음색과 폭넓은 레퍼토리를 갖추게 되었다. 가벼운 악기같은 음색으로 시작되는 솔로 파트부터 오케스트라와도 같은 장대함까지, 광범위한 소리의 스펙트럼으로 오리지널 팀의 진정한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적인 아카펠라 합창단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들은 함부르크 뮤직홀과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프랑크푸르트의 홀 등에서 라이브로 공연하며 그 외에도 매년 250개의 대성당과 콘서트홀에서 공연하고 있다. 독일 국영방송인 ZDF와 오스트리아 공영방송 ORF, 네덜란드 종합방송국 RTL,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방송국 RBB 등을 통해 이들의 공연이 방영된 바 있다. § 창단 지휘자 소개 - Sergei Jaroff 세르게이 자로프 (1896.3.20-1985.10.9)§ 세르게이 자로프는 다섯 살 때부터 이미 교회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는 합창단의 뛰어난 리더들과 성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스크바의 시노달 음악원에서 1917년까지 11년간 전액 장학금을 수여받았다. 졸업하던 해에 세르게이 자로프는 모스코바 알렉산드르 군사 아카데미에 파견되었고 1917 년 8월 대위로 승진, 러시아 혁명 동안 백러시아의 돈 코사크 여단에서 싸웠다. 적군 의 승리 후 자로프와 그의 군대는 대부분의 포로가 수용된 터키로 이동하였다. 여기서 그는 장교의 명령으로 돈 코사크 합창단의 기초를 세웠다. 자로프는 지휘자로서 뿐만 아니라 편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어 그의 손에 거쳐 편곡된 많은 곡들이 온 세계의 남성합창단에 의해 애창되고 있다. § 지휘자 소개 - Wanja Hlibka (테너)§ Wanja Hlibka는 1948년 독일계 러시안 가정에서 태어났다. 17살 때 이미 그의 개인 초연을 가졌으며 2년 후 세르게이 자로프와 계약하였다. 1967년 첫 순회공연 후에 그는 함부르크에 있는 음악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투어 휴식 중에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슈타른베르크에서 Josef Metternich 교수에 의해 받은 수업은 그의 목소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Wanja Hlibka는 팀이 해산되기 전까지 돈 코사크 합창단의 단원이었으며, 공식적인 최연소 솔로 연주자로서 스스로 새로운 돈 코사크 합창단 지휘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세르게이 자로프의 음악적 후계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재결성된 돈 코사크 합창단은 그의 지휘 아래 오리지널 팀의 레퍼토리에 더하여 더욱 폭넓은 레퍼토리와 정교한 음색을 갖추게 되었다. < Press Reviews > Leipziger Volkszeitung 라이프치히 폴크스차이퉁 돈 코사크 합창단은 게반트하우스에서 가진 8번의 공연을 모두 매진시키며 관객들로부터 열정적인 찬사를 받았다. 통상적인 독일과 일본, 영국 합창단의 사이에서 합창단만의 고유한 음색과 스타일, 레퍼토리를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시대에 있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세르게이 자로프 시절 전설적인 앙상블의 전통을 훌륭히 이어가는 바냐 흘리브카의 돈 코사크 합창단 앞에 경의를 표한다. München 뮌헨 뮌헨의 헤르쿨레스 홀은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찼다. 마지막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