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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김영미 – 오페라 30년, 벨칸토 30년
비회원
2008.02.24
조회 216
김영미 – 오페라 30년, 벨칸토 30년
공연개요
- 일시: 2008년 3월 8일(토) 오후 8시
-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출연: 소프라노 김영미, 테너 김남두, 바리톤 고성현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오따비오 마리노)
극히 서정적이면서도 선율미가 뛰어난 벨리니, 도니제티, 로시니 류의 오페라와 베르디, 푸치니 같은 인간 내면의 깊이를 동시에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성악가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그리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은 벨리니, 로시니, 도니제티 같은 작곡가들의 오페라를 ‘벨칸토 오페라’로 구분하면서 이를 부르는 가수들을 따로 전문화시키는데 이들은 베르디나 푸치니 같은 작곡가의 다소 무거운 작품들은 거의 소화하지 않는다. 자신의 특성에 맞는 곡들만 부르는 것이 요즘 성악계의 추세이긴 하나 과거 진정한 벨칸토의 대가들은 로시니, 벨리니, 도니제티, 베르디, 푸치니를 가리지 않고 이 모두를 잘 소화할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세기의 소프라노’ 라고 불리는 마리아 칼라스이다. 실제로 마리아 칼라스는 벨칸토를 부활시킨 장본인이란 평을 받았다. 한국의 김영미 역시 진정한 벨칸토 창법을 구사하는데 파바로티는 김영미를 가리켜 ‘동양의 칼라스’라 극찬하였다.
세계를 무대로 한국 성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최초로 세계무대에 우리나라 성악을 알린 소프라노
김영미가 <김영미 – 오페라 30년, 벨칸토 30년>이란 제목으로 오페라 데뷔 30년 기념 공연을 갖는다.
벨칸토는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며 이는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갈 수 있는 명징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창법을 일컫는다. 벨칸토는 로시니, 벨리니, 도니제티 같은 작곡가가 활동하던 시기에 가장 왕성했다. 벨칸토 창법은 오페라를 부르는 가수로 하여금 완벽한 테크닉을 갖추도록 요구하였고 그 결과 성악은 황금기를 맞게 되었다. 그 후 ‘오페라’라는 장르가 벨칸토 창법 덕분에 눈부시게 발전하게 된다. 이처럼 벨칸토는 17, 8세기에 융성하기 시작한 오페라와 역사를 같이 한다. 즉 벨칸토의 역사는 오페라의 역사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성악계에서 벨칸토가 차지하는 위상이자 자부심이며 김영미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영역이기도 하다.
이번 <김영미 - 오페라 30년, 벨칸토30년>은 김영미라는 한국 성악계의 거대한 산맥이 이루어놓은 성과들, 즉 완벽한 호흡, 풍부한 성량, 절정의 기교, 목소리만 듣고 있어도 감정이입이 되는 연기 등 성악 예술의 최고 진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이번 공연에는 역시 이탈리아에서 유학하고 김영미와 더불어 진정한 벨칸토 창법의 진수를 구사하는 성악가로 유명한 바리톤 고성현과 테너 김남두가 우정 출연해 무대를 더욱 빛낸다. 30년의 진지한 탐구와 결실의 무대, 그리고 더불어 우정이 함께 하는 <김영미 - 오페라 30년, 벨칸토 30년>은 김영미의 오페라 인생 30년을 축하하는 무대이자 세계 무대에 진출한 한국 성악의 축하 무대이기도 하다.
Program
P. Mascagni Intermezzo < Cavalleria Rusticana > - 서울시향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G. Puccini ‘Donde lieta’ from < La Boheme > - 소프라노 김영미
푸치니 <라 보엠> 중 ‘미미의 작별인사’
G. Puccini ‘In un coupe’, ‘O Mimi, tu piu non torni’ from < La Boheme>
- 테너 김남두, 바리톤 고성현
푸치니 <라 보엠> 중 ‘오, 미미 그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구려’
U. Giordano ‘Un di all’azzurro spazio’ from < Andrea Chenier > - 테너 김남두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 중 ‘언젠가는 푸른 하늘 아래서’
U. Giordano ‘Nemico della Patria?’ from < Andrea Chenier > - 바리톤 고성현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 중 ‘조국의 적’
G. Donizetti ‘Regnava nel silenzio’ from < Lucia di Lammermoor >- 소프라노 김영미
도니제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주위는 침묵에 잠기고’
G. Donizetti ‘Chi mi frena in tal momento?’ from < Lucia di Lammermoor >- 한국예술종합학교 제자들
도니제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이 순간 누가 나를 막는가?’
G. Verdi ‘Di sprezzo degno se stesso rende... Alfredo, Alfredo, di questo core’ from < La Traviata > - 소프라노 김영미, 테너 김남두, 바리톤 고성현 외 한국예술종합학교 제자들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중 ‘이 무슨 수치스러운 일인가.. 알프레도 어찌 당신께 이 마음속 깊숙이’
Intermission
이영조 ‘청산리 벽계수야’ < 황진이 > - 소프라노 김영미
이영조 ‘지가 뭔데’ < 황진이 > - 한국예술종합학교 제자들
G. Bizet Overture < Carmen >
비제 <카르멘> 서곡 - 서울시향
G. Bizet ‘Toreador’ from < Carmen > Baritone, Chorus - 바리톤 고성현 외 한국예술종합학교 제자들
비제 <카르멘>중 ‘투우사의 노래’
G. Puccini ‘Coro a bocca chiusa (Humming Chorus)’from< Madama Butterfly>한국예술종합학교제자들
푸치니 <나비부인> 중 ‘허밍 코러스’
G. Puccini ‘Un bel di vedremo’ from < Madama Butterfly > Soprano - 소프라노 김영미
푸치니 <나비부인> 중 ‘어느 갠 날’
G. Puccini ‘Nessun dorma’ from < Turandot > Tenor - 테너 김남두
푸치니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
G. Verdi ‘Pace, pace, mio Dio’ from < La forza del destino > Soprano - 소프라노 김영미
베르디 <운명의 힘>중 ‘평화를 주소서’
G. Verdi ‘Libiamo ne' lieti calici’ from < La Traviata >
- 소프라노 김영미, 테너 김남두, 바리톤 고성현 외 한국예술종합학교 제자들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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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무대로 한국 성악의 새 지평을 연 소프라노 김영미
서울 예원 중고를 거쳐서 유명한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학위를 받은데 이어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소프라노 김영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는 1977년 이탈리아 베로나 콩쿨 1위를 시작으로 1979년
이탈리아 푸치니 콩쿨 1위, 1980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마리아 칼라스 국제 성악 콩쿨 1위, 1981년 루치아노 파바로티
인터내셔널 성악 콩쿨 1위 등 권위있는 국제적인 콩쿨에서 1위를
휩쓸어 왔고 파바로티 콩쿨 우승으로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여주인공 아디나로 발탁되어 파바로티의 상대역으로 세계 무대에 한국 성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국내에서도 난파 음악상, 보관훈장 등을 수여받는 등 국내외적으로 그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화려한 수상경력보다도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그의 쉼없는 왕성한 연주 활동 경력이다. 뛰어난 기량 못지 않게 연기력을 겸비하고 있는 소프라노 김영미는 수많은 오페라 대작들의 주역을 도맡고 있다. 그중 주요 작품으로는 국립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루치아(1981), 필라델피아 오페라 도니제티 "사랑의 묘약"의 아이다 역으로 파바로티와 공연(1982), 이듬해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와 "나비부인", 1984년 공연 당시 관객들의 열렬한 기립박수로 공연이 잠시 중단된 일화를 낳으며 공연의 질을 한 차원 높였다는 최고의 극찬을 받은 뉴욕시티 오페라 "라보엠"의 미미 역, 이어 올란도 오페라 "나비부인"초초상 역(1985), "사랑의 묘약" 아디나 역(1987), 같은 해 "투란도트"의 리우 역, 오마하 오페라 "카르멘"의 미카엘라 역(1988), 서울 시립오페라 "아드리아나 루크르베르(1989)", 로얄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역(1992), "라보엠"의 미미 역(1993), KBS 심포니 정기연주 오페라 "오델로(1997)", 이태리 로마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오페라 "마탄의 사수(1998)", 한국오페라 초연 창작 오페라 "황진이(1999)", 예술의 전당 오페라 페스티벌 "나비부인" 등을 꼽을 수 있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한층 왕성한 공연을 하고 있는데 도쿄 신국립 오페라극장 "라트라비아타", 예술의 전당 오페라 페스티벌 “나비부인”, 부산 그랜드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트라비아타에 이어 8월에는 중국 북경 창작 오페라 "황진이"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외에도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내셔널 심포니의 헨델 "메시아(1987)", 모차르트 "레퀴엠(1991)", 사크라멘토 심포니 오케스트라 말러 심포니 2번(1991), 콜로라도 심포니 오케스트라 말러 심포니 2번(1991), 바스티유 오케스트라 오페라 하이라이트(1995), 세계를 빛낸 한국 음악인 대향연(1995), 제1회 수원국제음악회 "7 Singers Concert(1999)", KBS 교향악단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2000)" 협연 등을 하였다. 김영미 개인의 기량을 총 망라한 리사이틀을 가져왔는데 뉴욕 링컨 센터 독창회(1980), SBS 리사이틀(1992), 사랑과 꿈의 밤(1995), 사랑과 찬미의 노래(1997) 등 다수의 독창회에서도 감미로우면서도 파워풀한 목소리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황금빛 트럼펫 같은 목소리의 테너 김남두
이태리 아퀼라 국립음악원을 졸업하였고 Nicola Martinucci 콩쿨,
C.E.D.J.A 콩쿨에서 입상하였다. KBS교향악단과 오페라 “오텔로”로
한국무대에 데뷔한 테너 김남두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오텔로” “아이다” “운명의 힘” “가면무도회” “나부코”
“시몬 보카네그라” 베르디 “레퀴엠” “투란도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잔도나이 “로미오와 줄리엣”
현제명 “춘향전”, 황철익의 “불꽃 아리랑”과 같은 많은 작품에
출연하였다.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동경 오차드 홀 10주년 기념음악회,
“오텔로”, 실내악콘서트인 “7인의 음악회”, 수원국제음악제 등
다수의 음악회 출연을 통하여 꾸준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현재 한국과 유럽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동 중이며 전주대 객원교수로서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활화산 같은 열정의 바리톤 고성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이태리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바리톤 고성현은 푸치니 국제콩쿨, 밀라노 국제콩쿨, 나비부인
국제콩쿨, 슈투트가르트 오페라 극장 국제 콩쿨 1위에 입상하였고
난파 음악상, 젊은 음악가상, 옥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이태리를
중심으로 전 유럽과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세계 유명극장에서
연출의 거장 프랑코 제피렐리, 세계 최정상급의 성악가 호세 쿠라,
로베르토 알라냐, 블라디미르 갈루진, 니콜라 마르티누치, 쥬세페
자코미니, 게나 디미트로바, 마리아 굴레기나, 인바 뮬라 등과 함께
오페라 “리골렛토”, “아이다”, “토스카”, “나부코”, “안드레아 셰니에”,
“팔리아치”등에 출연하였다. 베를린 필하모니 초청으로 G. Verdi 서거 100주년 기념 독창회 및 베를린 오페라 극장 초청으로 A.I.D.S 퇴치 자선공연 출연하는 콘서트에도 다수 출연하였다. 이탈리아의 대가 레나토 브루손과 레오 누치의 뒤를 잇는 진정한 리골레토로 유럽 오페라 무대의 러브콜을 받고 있으며, 이미 2010년까지 모나코, 오랑주, 빈에 이르는 유럽 오페라 극장 공연이 계약돼 있을 정도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젊은 음악가의 넘치는 열정 지휘자 오따비오 마리노
오따비오 마리노는 1974년 이태리 팔레르모에서 출생하였다.
18세의 나이로 팔레르모 국립음악원에서 피아노과 최고점(10점 만점)과
명예의 졸업상을 받고 졸업한 뒤, 이태리 이몰라 아카데미에서 피아니
스트 거장 마에스트로 스칼라, 리살티, 롱귀치, 베르만 등에게 사사했다.
1995년 "Città di Mazara del Vallo" 국제 피아노콩클에서 입상을 시작으로
수많은 독주회와 협연을 하였다.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수제자인 마에스트로 피에로
벨루지에게 지휘를 사사하였고, 동시에 작곡과 첼로전공도 겸하며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23세의 나이로 이태리 피사의 "G. Verdi" 극장 주최
국제 지휘콩클에서 100 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하여 오페라 "카르멘"을 지휘하며 이태리 오페라무대에 성공적인 데뷔를 하였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이태리가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마에스트로 안토넬로 알레만디의 부 지휘자로써 이태리 피사의 Verdi극장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 "루치아 디 람메르무어", 독일 쾰른 국립극장 "라 트라비아타" "카르멘",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극장 "라 트라비아타", 프랑스 마르세이유 오페라 극장 "라 트라비아타" "카르멘" "투란도트" "탄크레디" 등의 작품을 지휘했다.
2001-2002 시즌 프랑스 니스 국립극장 "휘가로의 결혼"/ 이태리 Teatro G.Verdi "돈 카를로" , 2002년 이태리 Teatro G.Verdi "신년 음악회" , 2002-2003 시즌 이태리 루카의 Teatro del Giglio"와 피사의 Verdi 극장 "카르멘", 2003-2004 시즌 이태리 리보르노 Teatro Goldoni 극장과 피사 Verdi 극장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명랑한 과부", 2004-2005 시즌 이태리 앙코나 Teatro delle Muse 극장 (아레나 디 베로나 뉴 코 프로덕션)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를 지휘했다.
이후 현재까지 이태리 트리에스테 Verdi 극장 오페라 "카르멘", 스페인 빌바오극장 오페라 "나부코", 이태리 피사 Verdi극장 오페레타 "박쥐", 프랑스 파리를 포함한 5개 도시 "라 트라비아타" 순회공연(10회), 그리스 아테네 국립극장 헨델의 오페라 "알치나"등의 작품들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각종 언론에 주목 받은 바 있다.
또한 그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페스티벌 "Santander" 페스티벌에 도니젯티 오페라 "몽유병 여인"을 비롯 이태리 라벤나 페스티벌 ,독일 멕렌부르크 페스티벌, 프랑스 마르세이유 페스티벌 등 세계 유수의 음악 페스티벌의 지휘자로도 초청받아 호평 받았다.
심포니 지휘자로도 수많은 공연을 하였는데, 대표적 협연 오케스트라로는 이태리 아르투로 마스카니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이태리 토리노 레죠극장 오케스트라, 시칠리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팔레르모 심포니 오케스트라, 프랑스 마르세이유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등이다.
2005 서울 예술의 전당 시즌작품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로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던 오따비오 마리노는 이어 2005 성남아트센터 개관기념 페스티벌 오페라 "파우스트"와 2006 예술의 전당 오페라 "돈 죠반니" "돈 카를로" 를 지휘하여 탁월한 지휘자로 수차례 인정 받았으며, 예술의 전당 "2006 교향악축제"와 "제267회 인천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를 통해 그는 "심포니 지휘자"로도 한국클래식 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하였다.
우리나라 교향악단의 새로운 역사 서울시립교향악단
세계적 교향악단을 목표로 2005년 6월 재단법인으로 새롭게 태어난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마에스트로 정명훈을 예술고문으로 영입하여 오케스트라의 기본과 방향을 새로이 정립하고, 단원 전면 오디션을 통해 최고의 기량을 갖춘 연주자들로 조직을 재구성했다. 또한, 전문 기업경영인 출신의 이팔성 대표이사와 10여명의 국내외 전문 인력으로 사무국을 구성하여 공연 전반에 걸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활동의 기반을 마련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역사는 1945년 계정식, 현제명, 김성태를 중심으로 설립된 고려교향악단에서 연원한다. 1945년 10월 계정식의 지휘로 창단연주회를 가진 고려교향악단은 1948년 10월 제26회 정기공연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한편, 1948년 1월 김생려를 중심으로 창단된 서울교향악단은 김성태의 지휘로 창단 공연을 가진 후 롤푸 자코비와 김생려가 지휘봉을 들었다. 1949년 <필하모니>라는 음악잡지까지 만들었던 이 교향악단이 사라지게 된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다. 그러나, 1950년 11월 해군은 해군정훈음악대를 조직하여 이 명맥은 이어졌고 시 공관에서 제1회 연주회를 개최하게 된다. 이 오케스트라는 1954년 해군교향악단으로 개칭되었고, 결국 1957년 8월 1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창단되기에 이른다.
김생려가 초대 상임지휘자로 재직한 1957년부터 1961년까지의 시기의 서울시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당시로서는 실험적인 레퍼토리와 훌륭한 연주를 통해 한국 교향악단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2대 지휘자 김만복(1961-69)은 미국에서 지휘를 전공하고 돌아온 전문 지휘자로서 수많은 작품을 한국 초연하는 한편, 국내 창작곡도 공연하는 등 많은 공로를 남겼다. 3대 지휘자 원경수 이후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정재동은 1974년부터 1990년까지 오랜 기간동안 서울시향과 호흡하면서 안정된 앙상블을 선보였으며, 이후 박은성(1991-92), 원경수(1994-96), 마르크 에름레르(2000-2002) 등의 지휘자가 서울시향과 함께 하였다.
서울시향은 넓은 레퍼토리와 세련된 앙상블을 자랑한 정기연주회 이외에도 많은 공연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사랑받았다. <범세대음악회>를 통해 국내작곡가에게 곡을 위촉, 초연함으로써 국내 창작곡의 기반을 넓히는 한편 세대를 뛰어넘어 호흡할 수 있는 음악을 관객들에게 제공하였고, 서울시향이 한국에 정착시킨 <팝스 콘서트>는 여름의 무더위에 지친 시민들에게 시원한 청량제를 제공하였다. 56년부터 시작된 <소년소녀 협주회>는 정경화, 백건우, 정명화, 이경숙, 강동석에서 최희연과 양성원, 장한나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들 대부분을 배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서울시향은 많은 해외공연을 통해 한국의 교향악 수준을 널리 알렸는데, 특히 1982년과 1986년 미국 순회연주, 1988년 유럽 16개 도시 순회연주 등을 통해 음악의 본고장에서 인정받았다.
세계무대에 우리민족의 예술성과 저력을 확인시키며, 세계적 문화도시 서울의 상징으로, 나아가 대한민국의 자부심으로 자리매김할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최고의 기량과 완벽한 앙상블, 그리고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정성과 마음으로 항상 시민과 함께, 국민과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이다.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함께 대한민국 교향악단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이름이다.
** 이 공연에 청취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초대합니다> 게시판을 통해 참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