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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바비 맥퍼린 내한공연
비회원
2008.01.16
조회 260
바비 맥퍼린 내한공연
Bobby McFerrin concert in Korea
2008년 1월 25일(금), 27일(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한국에 “Don’t Worry Be happy”라는 곡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바비 맥퍼린이 2004년
첫 내한공연에 이어 4년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경이로운 목소리의 보컬리스트 바비 맥퍼린은 목소리만을 이용해 모든 장르의 음악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1인 아카펠라로 오케스트라를 능가하는 표현력으로 고음에서 저음까지 팝, 재즈, 클래식을 넘나들며 맥퍼린은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해왔다.
1950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노래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성악가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맥퍼린은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를 구성, 음악 투어를 시작했다. 한때 라운지 밴드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던 그는 70년대 후반 뉴올리언즈에서 “Astral Project” 그룹에서 노래하면서 보컬로 변신했고 2000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와 10여 차례의 그래미상 수상 등 이 시대의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자리 매김하였다.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던 80년대 그는 갑자기 레너드 번스타인, 세이지 오자와의 레슨을 받으면 진지하게 지휘공부를 시작했다. 결국 그는 1990년 40번째 생일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이어 베를린 필, 빈 필, 뉴욕 필 등 세계 정상의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그 만의 음악경력을 완성해 나갔다.
이번 공연에서는 첼리스트 송영훈, 바로크 음악 전문 연주단체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 가야금 연주자 고지연이 그와 함께한다. 맥퍼린이 지휘와 보컬을 맡아 요요 마와 함께한 크로스오버 앨범인 ‘허쉬’ (HUSH)를 중심으로 ‘허쉬 리틀 베이비’, ‘왕벌의 비행’, 비발디의 ‘두 대의 첼로를 위한 협주곡 사단조’을 선보이며 맥퍼린 솔로 즉흥 연주, 가야금 즉흥 협연과 관객과 함께 노래하며 교감하는 무대를 시도한다.
재즈의 즉흥성과 클래식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감성으로 ‘소리의 마술사’답게 사람의 목소리 하나만 가지고 무대를 장악하는 바비 맥퍼린. 팝, 재즈, 클래식을 오가며 자유롭게 자신을 최고의 악기로 끌어올린 바비 맥퍼린의 무대에 매료되어 보자.
PROGRAM
Tradtional Hush Little Baby
민속음악 허쉬 리틀 베이비
J. S. Bach Musette
바흐 무제트
Rachmaninov Vocalise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Rimsky-Korsakov Flight of Bumble Bee (from Tsar Saltan)
림스키 코르사코브 왕벌의 비행
Jean Barriere Allegro Prestissimo from Sonata for Two Cellos
바리에르 두 대의 첼로를 위한 소나타 中 알레그로 프레티시모
Bobby with Gayagum
바비와 가야금
Bobby Solo
바비 솔로
Bobby with Audience
바비와 관객
Antonio Vivaldi Concerto for Two Cellos in g minor RV 531
안토니오 비발디 두 대의 첼로를 위한 협주곡 사단조
바비 맥퍼린
Bobby McFerrin
바비 맥퍼린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보컬 비르투오조이다. 열 번의 그래미 상 수상자인 그는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보컬 혁신자이며 즉흥 연주자이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클래식 음악계의 지휘자이고 최근 20세기의 가장 인기있는 곡들의 작곡자이며 음악교육의 열정적인 대변자이다. 그의 레코딩들은 2천만장 이상이 팔렸으며 요요마, 칙 코리아,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허비 행콕과의 연주들은 그를 클래식 음악과 재즈의 세계의 대사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굳히게 했다. 그러나 맥퍼린의 손길은 음악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그는 배우 잭 니콜슨, 브로드웨이 뮤지컬 안무가 새비언 글로버, 코미디언 로빈 윌리암스와 빌리 크리스탈, 그리고 전세계의 청중들과 함께 공연했다.
4 옥타브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목소리와 화려한 보컬 테크닉을 지닌 맥퍼린은 더 이상 단순한 가수가 아니다. 그는 음악의 마지막 진정한 르네상스 맨이며, 재즈, 포크, 그리고 합창, 아카펠라, 클래식 음악들의 총체적 월드뮤직의 요소들을 그만의 표현으로 적절히 소화한 보컬의 개척자이다. 지휘자로서 그는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모든 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통해서 그의 기존 영역을 넘어서 더 무궁무진한 영역에서 그가 노래할 수 있는 것들을 확장시켰다. 예를 들면, “Round Midnight”과 같은 정통 재즈에서의 트럼펫에 영감을 얻은 부분을, 또는 포레나 비발디의 작품들에서 플루트나 첼로 파트의 연주 부분을, 완전히 새로운 사운드로 창조하여 노래하는 일들이 그것이다.
바비 맥퍼린은 1950년에 뉴욕에서 오페라 가수인 부모님 슬하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로버트 맥퍼린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노래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자 성악가였고, 1958년에 그가 영화 포기와 베스의 시드니 포이티에르 역으로 발탁 되어 그의 가족은 헐리우드로 이주했다. 어릴 적 맥퍼린은 클라리넷에 관심을 가졌지만 치아교정으로 인해 리드악기 연주자로서의 꿈을 접고 피아노로 전공을 바꾸었다. 십대를 보내면서 성직자가 되고픈 열망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음악적 열정이 너무나 강해 이내 그 꿈을 접었다. 맥퍼린은 고등학교 시절 “The Bobby Mack Quartet”을 결성해 순회 공연을 하기도 했고, “아이스 폴리스"라는 보컬그룹의 멤버로, 라운지 밴드의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며 그의 음악적 영역을 넓혔다.
1977년 맥퍼린은 보컬리스트로서의 그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 피아노 연주자에서 벗어날 결심을 하고, 1978년 그는 뉴올리언즈에서 그룹 “Astral Project”와 함께 노래를 시작했으며, 그 후 전설적인 재즈 보컬리스트인 존 헨드릭스와 투어를 돌며 음악활동을 했다. 그는 또한 재즈 보컬리스트에서 음악 사업가로 전향한 린다 골드스타인을 만났는데 그녀는 그의 매니저가 되어 1979년 이후 종종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의 즉흥 솔로 콘서트에서 영감을 얻은 맥퍼린과 골드스타인은 솔로 보컬리스트로서의 혁신적인 경력을 발전시킬 계획을 하게 된다. 빌 코스비의 주선으로 1980년 플레이보이 재즈 페스티벌에서 첫 무대를 가지었고, 일년 후 맥퍼린은 뉴욕에서의 쿨 재즈 페스티벌에서 기념비적인 공연을 하였다. 그 후 바로 맥퍼린은 그의 첫 앨범을 발표했지만 반면 즉흥적인 솔로 콘서트를 한다는 그의 목표를 잃지 않고 공연을 했다. 1983년에 그는 무반주 보컬리스트로서의 첫 유럽 투어를 진행했다. 청중들은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그 후에는 완전히 압도 당했다. 그의 콘서트들은 “The Voice”란 앨범으로 만들어 졌으며 그것은 독일 음악 비평가들에 의해 “Stimmwunder” (환상적인 목소리, wonder voice)라 불리우는 레코딩이 되었다.
1980 년대를 통해, 맥퍼린은 그의 놀라운 솔로 즉흥 연주와 청중과의 교감을 계속해서 발전시켰다. 맥퍼린은 코메디언과 같은 타이밍 감각과, 억제되지 않은 광대기질, 그리고 모든 음악 장르에 관한 사랑으로 새로운 형식의 콘서트를 창조했다. 그것은 “연주”일 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공유와 성찬이었다. 동시에 1985년 맨하탄 트랜스퍼와 함께 “Another Night In Tunisia”로서 첫 그래미 상을 수상하며, 그는 여러 연주자들과의 교류를 넓혀갔다. 더욱이 1986년엔 “Round Midnight”으로, 1987년에는 “How The Rhinoceros Got His Skin”으로 잭 니콜슨과 함께 그래미상을 다시 수상했다.
1988 년 그는 헐리우드 보울에서 카네기 홀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의 주요 콘서트 홀을 돌면서 그의 무반주 즉흥 콘서트 무대를 가지었고, 하나의 음악적 현상으로 취급될 만한 명성을 쌓았다. 그리고 그는 그의 앨범 “Simple Pleasures”를 발매했는데, 그것은 1960년대의 음악에 대한 그의 경의를 표한 것이었다. 녹음실에서 즉석에서 작곡된 하나의 즐거운 곡이 경이적인 히트를 기록하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Don't Worry, Be Happy”이다. “Simple Pleasures”는 1988년 “올해의 앨범”으로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Don't Worry, Be Happy”는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했다. “Don't Worry, Be Happy”는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1위를 석권한 점으로 보아 소위 “10년간의 최고의 노래”라는 찬사를 들어도 마땅할 듯 싶다.
솔로 보컬 연주에 근거한 그의 경력이 시작할 즈음에 발생한 예기치 않은 팝계의 스타덤의 맛을 본 그는 갑자기 방향를 바꾸었다. 급작스런 인기에 의해 그에게 가져다 준 수 많은 콘서트들을 응하지 않고 휴식을 가지기로 결심하며 레너드 번스타인, 구스타프 마이어, 그리고 세이지 오자와에게 지휘 공부를 시작하였다. 맥퍼린은 그의 솔로 공연에서 보여진 음악에 대한 열정, 환희, 기교들로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역시 관객과의 교감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1990년, 그의 40세 생일, 그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기회를 얻었다. 또한, 그는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명망있는 첼리스트 요요마와 “Hush”를 녹음했고, 그것은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서 무려 2년 이상이나 머무르는 대기록을 세웠다. 1994년까지 맥퍼린은 세인트 폴 챔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지휘자로서 그의 첫 앨범인 “Paper Music”을 발매해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시카고 심포니,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비엔나 필하모닉 등 세계 정상의 교향악단을 지휘하며 그 실력을 인정 받았다.
최근 그는 지휘와 즉흥 연주로 그의 보컬 부분을 더욱 확장 시키고 있다. 맥퍼린의 솔로 콘서트는 항상 청중들의 참여가 포함되어왔다. 맥퍼린은 그들을 “노래를 부르기 위한 사람들”일 뿐 아니라 또한 그 순간에 음악을 만드는데 진정으로 동참하는 조력자로서 바라본다. 그의 철학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만든 보컬 앙상블 ‘Voicestra’와 함께 꾸준히 “Medicine Music”과 “Circlesongs” 음반을 발매했으며, 또한 작곡가 Roger Treece와의 협력을 통한 합창 작품들의 프로젝트들에서 그 재능을 발휘했다. 맥퍼린 이전에는 솔로 즉흥 보컬의 아이디어는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이제 비평가들은 일상적으로 재능있는 새로운 보컬리스트들에게 “차세대 Bobby McFerrin”으로 칭하곤 한다. 그러나 전대미문한 경력을 쌓은 연주자는 세상에 맥퍼린 단 하나뿐 이다. 그는 지휘자와 솔로 연주자로서의 두 가지 음악가로서의 경력을 쌓고 있으며, 자신의 콘서트 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어린이들이 여러 다양한 음악과 친해지는데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장 큰 소망은 그의30년지기 아내와 세 명의 자식들과 함께 집에서 가능한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자유로움”은 맥퍼린의 경력을 기술하는 가장 좋은 단어이다. 지휘자이건 보컬리스트이건 맥퍼린의 공연에 친숙한 이들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유일한 공연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기존의 소리와 장르를 넘어서는 능력을 겸비하고 있는 드문 아티스트이다. 음악의 풍부한 유산들 속에서 가장 뛰어난 첨병들 중의 한 사람으로, 그는 모든 문화를 아우르고 모든 경계를 초월하는 천부적이고, 아름답고, 영원한 음악을 가진 선봉에 서 있는 것이다.
** 이 공연에 청취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7일 일요일 공연에 초대되오니 유념하고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