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 친구 토루가 공을 찬다.
“짱구야 간다! 어어? 근데 축구는 손을 쓰지 못하게 돼 있어!“
짱구가 대답한다. ”그런 건 누가 정했는데?“
“규칙을 만든 사람이 정했지.” 토루가 말하자 짱구가 맞받아친다.
“그럼 그 사람한테 손을 써도 되게 해달라고 하면 되잖아.”
친구들과 액션유치원 축구대회를 대비해 연습 중이던 짱구는
데굴데굴 굴러오는 축구공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그걸 본 토루는 손을 쓰지 못하게 돼 있다고 축구 경기의 규칙을 설명했지만,
짱구는 알겠다는 대답 대신 규칙을 만든 사람에게 손을 쓰게 해달라고 하자는
말을 한다. 짱구가 이럴 때마다 난 짱구보다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짱구는 알겠다는 대답 대신 규칙을 만든 사람에게 손을 쓰게 해달라고 하자는
말을 한다. 짱구가 이럴 때마다 난 짱구보다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누군가가 정한 규칙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꿀 수도 있는 거잖아.
말이라도 해보자는 거지.
규칙을 멋대로 지키지 않는 건 나쁜 거지만,
상의해서 정한 규칙이 있다면 다시 합의를 통해 바꿀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데 왜 먼저 말을 걸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모든 인간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
가족, 친구, 연인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며 일로 만난 사람들 모두 그렇다.
나와 그 사람의 관계가 지금 유지되고 있다면,
우리는 이해하는 마음과 합의하는 생각을 통해 그 관계를 같이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와 그 사람의 관계가 지금 유지되고 있다면,
우리는 이해하는 마음과 합의하는 생각을 통해 그 관계를 같이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란 늘 변하기 마련이고,
우리를 둘러싼 외부 요인은 언제나 통제 밖에 있다.
관계를 맺으면서 자연스레 생긴 일종의 규칙을
우리를 둘러싼 외부 요인은 언제나 통제 밖에 있다.
관계를 맺으면서 자연스레 생긴 일종의 규칙을
어느 한쪽이 지키기 힘들어진다면 그때의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둘의 관계를 올려놓은 저울이 균형을 잃고 기울어질 때마다
‘어른의 세상은 결국 혼자 사는 거니까'라며 관계를 종결짓던 일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더는 힘들어 말고
짱구처럼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손을 쓰게 해달라고 내가 먼저 말을 해보고 싶다.
* 최고운 작가의 <멀쩡한 어른 되긴 글렀군>에서 따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