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공감
형, 기억 나?
초등학교 입학한 뒤 형과 단 둘이 시꺼먼 먹물 난닝구에 묻어나는 교복 입고
처음 외갓집 가던 길.
신새벽 아버지가 건네준 삶은 달걀을 버스가 출발하기도 전 목메도록 먹고
창문으로 밀어닥치는 먼지바람에도 두리번거림 무서워 오금 저리던 길.
새벽부터 달리던 주둥이 튀어나온 버스는 결국 자갈길 위에서 투덜대더니
강가에 퍼질러 앉아버렸지.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솥단지 걸고 천렵을 했지.
길가 미루나무에서 매미들 미친 듯 울고, 솥단지 하나 물가에 걸고
어떤 사람은 투망으로 여름을 건져 올리고.
어떤 사람들은 모래밭에 심어놓은 푸성귀 뜯어 와서는,
여드름 잔뜩 돋아난 터벅머리 조수가 퍼질러 앉은 버스 뜯어 고치는 동안
호박과 뒤엉켜서 끓어오르던 솥단지.
누군가 쌀자루에서 한줌 쌀알을 꺼내고 어떤 사람은 국수 꺼내 한솥 가득 끓여내던 점심.
날은 타올라 강가에 모래알도 노랗게 달아오르고 언제 떠날지 모른 채
끓여 먹던 어죽. 입안 가득 생선가시 같은 가난들 고이고,
비포장된 인심들 모여 벌였던 잔칫집 같았던 천렵.
1965년 영동에서 보은으로 가던 보청천.
강가에 버드나무들 국수발 같은 머리칼 물위에 드리우고
우리는 한 마리 버들치가 되어 그 속을 헤엄치고 다녔지.
그 한없이 목덜미를 검게 물들이던 검은 먹물로 만든 학생복 입고 외갓집 가던 날.
기억 나, 형?
* 박기영 시인의 글 <어죽국수>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