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영화 제목을 잘못 말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요즘은 극장에 가도 거의 모바일이나 키오스크를 통하는 시스템이고,
대화를 나눌 때도 생각이 안 나면 바로 검색해서 확인하면 그만이니까.
어쩌면 뭔가를 잘못 말할 기회 자체가 사라진 것도 같았다.
전에는 이와 관련해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재밌는 일화도 많았는데.
이를테면 "<단적비연수> 두 장이요" 해야 할 것을 〈단양적성비〉 두 장이요" 했다든가 "<라라랜드〉 주세요" 해야 하는데 "<룰루랄라〉 주세요“ 했다든가.
나는 사실 이런 종류의 무해하고 귀여운 말실수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잘못 튀어나온 말'의 사례만 들으면 유달리 정신줄을 놓고 웃는다.
고전적인 일화로,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친구 엄마가 콘플레이크를 꺼내놓고 "포클레인 먹어라"라고 했다든가, 택시 타고 "전설의 고향, 가주세요" 했는데기사님이 어떻게 알고 예술의 전당 앞에 잘 내려주셨다든가 하는 이야기들.
'산달'을 ‘만기일'로, '인큐베이터'를 '컨테이너'로 바꿔 말한 예시들은
반복해 들어도 질리지 않는 나의 웃음 버튼이다. 최근 들었던 가장
재밌는 이야기는, 누나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남동생에게 엄마가
"요즘 너희 누나 엄청 바빠. 회사 일도 많고, 판교까지 텔레파시도 배우러
다니잖아" 했다는 일화다. 어머님, 필라테스 잖아요...
저 이야기를 들은 날 종일 배가 찢어지게 웃으며
'키친타월'을 '치킨타월'이라 부르는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텔레파시와 필라테스, 치킨과 키친 사이에 흐르는 희박하지만
나름 그럴듯한 유사성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그렇게 애매하게 닮은 단어를 용케 떠올리고
과감히 실험해본다는 것 자체가 가히 천재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기억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선 대체로 공백이 잘 채워지지 않고,
의심이 많아 알고 있는 것도 잘 말하지 못하는 나로선
그런 유연한 사고와 대범한 실행이 늘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었다.
어른이 되고 특히 글 쓰는 일을 하게 되면서,
어쩐지 점점 더 겁내고 움츠러드는 때가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용감한 사람들의 다양한 말실수 일화를 더 자주 떠올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도 다시 그런 마음들이 피어나면 좋겠다.
잘 몰라도 용감하게 도전해보는 마음, 틀리면 다시 배우고 익히려는
단단한 마음. 실수를 실험으로, 실패를 실현으로 바꾸는
용감무쌍한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이다.
* 영화감독 윤가은의 책 <호호호_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중에서.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하시고
개인 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 ^^